소설리스트

대몽주-993화 (993/1,214)

993화. 한계

성 아래에서 다시 한번 혼전이 펼쳐졌다.

기겁한 청구 호족과 달리 연합군 수사들은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전의가 불타올랐다. 지금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육화명 등 경지가 높은 자들은 전고 소리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심협이 후방에서 여유 있게 북을 울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금방 그의 소행임을 알아챘다.

북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갑자기 체내의 피가 북소리와 함께 뛰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럼에도 마음을 안정시킨 후에야 성벽으로 날아갔다.

성벽에서 지켜보던 청구 호족의 장로들도 더는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싸움에 임했다.

청구성 밖은 순식간에 함성과 비명으로 가득 찼고,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편, 여전히 흑려 장로와 싸우고 있던 언무사는 이미 식철곤 언갑을 집어넣고 진선 후기 단계의 시왕 언갑을 꺼내 싸우게 했다. 자신은 곤오대검을 들고 옆에서 도왔다.

언갑과 언무사의 협공에 흑려 장로는 감히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하늘에서 아래의 상황을 내려다보던 소효는 예상과 다른 전개에 후회가 들었다.

“심협 저놈을 먼저 죽였어야 했어.”

“어이, 늙은이.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있을까?”

싸늘한 목소리가 귓가를 찔렀고, 이어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동시에 그윽한 녹색 화살이 멀리서부터 순식간에 허공을 뚫고 소효의 미간 앞까지 날아왔다.

소효는 어느새 비취색 옥갑 장갑을 낀 손으로 미간 앞까지 날아온 화살을 잡았다.

그윽한 녹색 화살의 꼬리가 끊임없이 흔들렸다. 붙잡힌 것이 달갑지 않은 듯했다.

퍼펑!

화살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대량의 귀기가 번져 소효의 눈으로 몰려들었다.

소효는 즉시 두 눈을 감았는데, 눈꺼풀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졌다. 녹색 귀기에는 진선도 두려워할 독약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는데, 왠지 모르게 뒤에서 누군가 공격해오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경각심이 크게 울렸다.

소효가 짧게 포효하자 등에서 아홉 개의 초록색 꼬리가 빠르게 자라났다. 그는 꼬리를 공작처럼 활짝 펼쳐 공격을 막았다.

금색 비룡이 뒤에서 헤엄쳐와 아홉 개의 커다란 꼬리와 강하게 충돌했다.

콰쾅!

이어 산끼리 충돌한 것 같은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효는 큰 충격을 받았고, 등뒤에서 소용돌이가 폭발해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듯한 힘에 거대한 꼬리도 찢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태을 경지였다. 아홉 개의 거대한 꼬리의 광망은 찢어져도 본체는 곧바로 열 배나 길어져 곧장 뒤로 꼬리를 휘둘렀다.

거대한 꼬리에 휩쓸려 허광이 폭발한 금색 비룡은 금룡이 몸통을 휘감은 초록색 장창으로 변했고, 다시 뒤로 날아가 강신천의 손으로 돌아갔다.

소효는 두 눈의 불편함을 참으며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비룡재천(飛龍在天)?”

“오, 여우 요물 주제에 이 창을 알아본 건가?”

“흥! 이 금룡은 본래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항요보기(降妖寶器)였지만 훗날 제련되어 금창으로 변했다고 들었다. 한데 너 같은 애송이의 손에 있다니, 보물이 아깝구나.”

소효가 눈을 비비며 도발하듯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등 뒤에서 또 천지영기가 어지러워졌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칠살이 용이 조각된 검은색 장창을 들고 찔러 들어왔다. 이 창은 길이가 2장에 창날은 초승달 같았다.

창이 찔러오자 허공이 일그러지고 강력한 압박감이 뿜어져 나와 소효를 뒤덮었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형천지역(刑天之逆), 선족과 마족은 정말 보물이 넘치나 보군. 이런 신기를 어린 제자 손에 들려 보내다니. 너희가 스스로 바치겠다고 왔으니 기꺼이 받아주마.”

소효는 비릿하게 웃더니, 곧장 찔러오는 장창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칠살을 향해 돌진했다. 동시에 그가 내민 양손에는 옥갑의 장갑이 나타났는데, 그 위에 달린 용의 비늘 같은 것에는 가느다란 금빛이 흘렀다.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한 그는 양손 끝으로 창날을 흘려보내 창의 절반을 스쳐 보냈다. 옥갑의 장갑과 창이 스치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리 내놓거라.”

소효가 나지막하게 외치고는 칠살의 손에 있는 형천지역창을 꽉 쥐었다.

한데 이를 본 칠살은 표정 하나 변화하지 않고 그저 살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창에서 붉은 빛이 떠오르더니 반룡의 허상이 튀어나와 소효의 양손을 억지로 벌렸다.

소효는 눈살을 찌푸렸다. 일순 손에 힘이 빠지는 순간, 장창이 쭉 뻗어 나와 그의 가슴을 강하게 때렸고, 소효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그의 뒤에서 비룡재천도 휩쓸면서 날아와 좌우에서 협공했다.

소효는 그제야 머리 위에서 금빛이 빛나는 금색 보탑이 자신을 제압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천궁의 제자와 마왕채 제자의 호흡이 이렇게 잘 맞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강신천과 칠살도 자신들의 협공이 이렇게 순조롭게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태을 수사를 얕보는 것이냐!”

소효의 표정이 돌변했다. 이어서 그 말이 끝나자마자 몸에서 갑자기 청록색 광망이 치솟더니 거대한 여우 법상이 나타났다. 백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몸이 순식간에 강신천과 칠살을 몰아냈다.

녹색 여우 법상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입에서 거꾸로 솟구치는 폭포처럼 초록색 광망을 뿜어내자 허공에 떠 있던 금색 보탑도 그대로 날아갔다.

청록색 여우는 몸이 빠져나오자 강신천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거대한 광풍이 전장을 휩쓸자 호족 수사와 연합군 수사가 모두 날아갔다.

간신히 몸을 피한 강신천은 이 광경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심협도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는 북을 두드리던 손을 잠시 멈췄다. 연합군 수사의 전의를 더 자극한다면 두려움을 잊은 그들에게 더 많은 사상자가 생겨날 것이었다.

전고의 울림이 멈추자 연합군 수사들은 그제야 흥분 상태에서 풀렸고, 다시 두려움에 빠졌다.

거대한 여우가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며 끊임없이 공격하자 발톱의 궤적 안에 있던 수사들은 사지가 잘려나갔다.

칠살이 하늘 높이 올라가 곧장 아래로 내려왔는데, 형천지역창에서 혈홍색 광망과 함께 수백 마리 반룡의 허상이 나타나 여우 법상을 공격했다.

그때, 여우 법상이 갑자기 위를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퍼펑!

폭음이 울려 퍼졌고, 녹색 화광이 폭발했다. 여우 법상의 발톱이 폭발하자 그 충격에 칠살은 훌훌 튕겨나갔다.

“내 법상의 공격을 부수다니, 제법이구나. 허나 네놈들 자질이 아무리 뛰어난들 경지의 차이는 메우지 못하는 법이다. 흐흐흐.”

소효는 차갑게 웃더니 여우 법상의 다리를 들어 발아래 연합군 수사들을 짓밟으려 했다.

그때였다.

“뜻대로 될 것 같은가!”

호탕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심협이 어느새 여우 허상 위에 나타나 있었다. 그의 손에는 검도, 곤봉도 아닌 3척 길이의 장도가 들려 있었다.

이 장도는 바로 헌원감과 같이 탄생한 명홍도였다.

이미 이 도의 연화를 마친 심협은 법력을 주입했다. 웅웅거리는 기다란 울림이 구름을 뚫고 들려오더니 도에서는 흐르는 물과 같은 광망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백 배로 커졌다.

“받아라!”

심협이 크게 외치며 양손으로 홍명도를 잡고 소효의 머리를 내리쳤다.

도광이 스쳐가는 곳마다 갈라지면서 어두운 균열이 나타났다. 균열에서는 무시무시한 공간 파동의 울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소효는 곧바로 저 도가 범상치 않음을 눈치채고는 양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러자 여우 법상도 터져버린 다리가 빠르게 복구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교차시켰다.

이와 동시에 여우의 앞에 짐승 무늬가 번득이는 둥근 방패가 소리 없이 나타났고, 짐승의 두 눈에서 흉광이 번뜩이더니 짙은 광망이 뿜어져 나와 뒤에 있는 소효를 보호했다.

이어 도광이 허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쾅!

굉음과 함께 여우 법상의 커다란 다리가 폭발했다.

둥근 방패에서 성난 사자의 포효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흉수가 튀어나오려는 것이 언뜻 보였다. 하지만 흉수는 머리를 내밀기도 전에 절반으로 잘렸고, 둥근 방패도 갈라졌다.

소효는 저 장도가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기에 기겁하며 황급히 양손의 옥갑 장갑에 법력을 흘려보내 내리쳤다.

콰쾅!

세 번째 폭발음이 울렸고, 마침내 옥갑 장갑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비취색 광망이 하늘에서부터 그의 왼쪽 어깨를 스쳐 지나갔고, 피가 튀면서 소효의 팔이 잘려나갔다. 그럼에도 도광은 멈추지 않고 성벽을 갈랐다.

꽈르릉!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성벽에서 울려 퍼졌고, 패도의 극치이자 날카로움의 끝인 명홍도의 도광이 성벽을 비스듬히 베고 지나갔다. 성루가 무너지고 성벽 절반이 무너지면서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소효는 어깨의 상처에 맴도는 패도의 도기를 간신히 누르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심협과 그 도를 번갈아 봤다.

심협이 미소 지으며 자신을 내려다보고는 도를 잡은 두 손을 다시 높이 들어 올렸다.

소효는 덜컥 두려워졌다. 저 심협에게는 자신을 죽일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경각심이 일었고, 동시에 분노와 머뭇거림이 스쳐갔다. 그러나 결국에는 우선 위기를 넘기기로 결심하고는 몸을 돌려 성안으로 달아났다.

성벽에 남아 있던 청구 호족 수사들은 소효 장로가 싸움을 피해 도망쳐 오는 것을 보자 뒤따라 달아나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소효가 등에 달린 거대한 꼬리를 휘두르자, 광포한 힘이 그의 뒤를 쫓아 도망치려던 장로들을 뒤로 날려버렸다.

심협이 성문을 부수며 소효를 패퇴시켰고, 이로 인해 청구 호족 장로들도 두려움에 떠는 것을 성 아래의 연합군 수사들은 모두 보았다. 그러자 상실했던 전의가 치솟았다.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함성에 이어 연합군 수사들은 다시 청구성으로 돌진했다.

성문 안팎에서는 아직 물러나라는 명령을 받지 못한 청구 호족 수사들이 물러나지도 돌격하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연합군 수사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심협은 이를 제지하려 했지만, 입을 벌리는 순간 피를 토해내고 말았다. 만약 소효가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도를 쥔 심협의 양손이 계속해서 떨리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 명홍도의 도기는 실로 범상치 않아서 강제로 발동하면 뿜어져 나오는 도기가 주인마저 집어삼키려 들었다. 심협으로서는 연화한 후 처음으로 이 도를 사용한 것인데, 좀 전의 일격으로 그의 법력은 거의 다 뽑혀나갔고, 도기에 오장육부가 충격을 받았다.

심협은 명홍도를 거두고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섭채주는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는 서둘러 다가와 살폈다.

“난 괜찮아.”

심협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섭채주를 안심시키고는 단약을 먹은 후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정양에 들어갔다.

한편, 언무사는 이미 흑려 장로를 꺾은 후였고, 흑려 장로는 유려 장로를 구하기는커녕 자신까지 잡혀 버렸다.

강신천과 칠살이 수사들을 이끌고 청구성으로 쳐들어갔다.

육화명과 백소천도 합류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광풍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협이 눈을 뜨고 돌아보니 청구성 안에서 하늘까지 닿는 회오리가 일어나 수많은 모래와 돌멩이를 흩날렸다.

연합군 수사들은 회오리에 휩쓸렸고, 비명과 함께 날아가 여기저기 쓰러졌다.

백소천 등도 성 밖까지 밀려났다.

심협이 자세히 살펴보니 다들 다치긴 했어도 중상을 입거나 죽은 사람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