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92화 (992/1,214)
  • 992화. 혼자서 법진을 부수다

    비검이 사라지면서 산골짜기에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성에서부터 불어와 골짜기 밖으로 퍼져 나갔다.

    “큰일이다!”

    심협이 깜짝 놀라 외쳤다.

    은은한 꽃향기가 퍼지자 이를 맡은 자들의 눈빛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싸우긴 뭘 싸워? 다 소용없다. 다 소용이 없어.”

    그 노도의 얼굴에 슬픔의 빛이 떠오르더니 두 손을 벌리며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왜 나를 죽인 것이냐? 왜 나를 죽였어?”

    용양산의 제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횡설수설하며 무기를 마구 휘둘러 사람들을 베었다. 그의 옆에 있던 많은 동문이 칼에 베였지만, 모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영향을 받지 않은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혼란에 빠졌고, 작은 충돌이 점점 심해지면서 큰 충돌로 번지기 시작했다. 소란은 점점 널리 퍼져 나갔고, 연합군 곳곳에서 혼란과 폭동이 일어났다.

    심협은 부주진신법을 발동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을 전부 깨울 수는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섭채주는 이미 진선 후기 수사이기도 했고 신혼도 약하지 않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육화명의 눈에 금색 광흔이 감돌았고 칠살의 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두 사람의 눈빛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저들이 뭘 한 거지?”

    육화명이 의아해했다.

    “호족이 미리 성 근처에 환진을 설치해놓은 모양이오.”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며 숨겨진 법진을 찾으려 했다.

    바로 그때, 모두의 발밑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강렬하게 번득이자 강력한 신념의 힘이 땅속 법진에서 뿜어져 나왔다.

    심협조차 하늘을 찌르는 살의가 머릿속을 파고들면서 두 눈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부주진신법이 철옹성 같은 벽을 세워 그의 식해로 파고드는 강력한 의념을 막아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한순간에 연합군 전체가 혼란에 빠졌고, 거의 모두가 눈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며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육화명은 몸부림치며 저항했지만, 금방 두 눈이 붉게 빛났다.

    섭채주는 여전히 강력한 신식의 힘으로 저항하느라 붉게 빛나는 눈이 바로 다시 커졌지만, 매우 힘들어 보였다.

    강신천과 백소천의 상황도 비슷해서 힘겹게 저항할 뿐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다.

    한편 언무사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식철수(食鐵獸) 모양의 언갑을 꺼내 안으로 들어가 천기성 제자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막느라 여념이 없었다.

    심협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고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났다. 두 눈의 혈광은 다른 사람보다 강렬했고, 온몸의 살기는 거의 실제 같아 심협도 바짝 긴장했다.

    “칠살 도우!”

    심협은 재빨리 열한 자루의 순양비검을 가지런히 나열하여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한데 칠살은 예상과 달리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천천히 말했다.

    “역시 심 도우만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구려.”

    “칠살 도우, 괜찮은 거요?”

    “살의가 더 강해졌을 뿐이오. 다만 감히 내 신념을 좌지우지하려고 했으니 청구 호족을 멸족하고 싶은 마음만 더욱 강해졌지.”

    칠살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심 도우는 어서 법진을 찾아 파훼하시오. 나는 살의를 주체할 수 없으니 한바탕 날뛰어야겠소.”

    칠살은 그 말을 남기고는 곧장 하늘 높이 솟구쳤고, 다음 순간 하늘에 혈운이 몰려오더니 마기가 사무치기 시작했다.

    사각형의 검은 인(印)이 거대한 산으로 변해 혈운에서 내려와 청구성 위로 떨어졌다.

    이를 본 소효가 눈살을 찌푸리고는 뒤에 있는 흑려에게 말했다.

    “가서 유려를 데리고 와라!”

    말을 마친 그는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올라 검은 산을 향해 한 손을 휘둘렀다. 그는 한쪽 팔로 마인이 변한 산을 버텨냈다.

    한데 곧이어 혈운에서 누군가 내려와 두 발로 강하게 마인 위에 떨어졌다.

    강력한 압박감이 검은 산을 통해서 내려오자 소효의 몸이 아래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는 신식으로 위를 살펴보고서야 칠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이미 진선 후기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게 됐다.

    허나 소효는 태을 초기의 수사도 두렵지 않았기에 손에서 초록색 광망을 뿜어내 검은 산을 뒤덮기 시작했다.

    마인이 변한 산은 곧바로 초록색 광망 속에서 천천히 줄어들며 작아졌다.

    이를 본 칠살은 곧장 손을 휘둘러 마인을 거두고는 손에서 귀신이 날개를 펼친 형상을 한 청동 화살을 소환했다. 시위를 당기자 귀기가 서린 검은 화살이 생겨났다.

    “파살(破殺)!”

    칠살이 가볍게 외치자 당겨진 화살에 혈광이 감돌았고, 마기와 귀기, 살기가 모여들어 강력하기 그지없는 기세를 폭발시켰다.

    소효는 자신이 강력한 기개에 사로잡혔음을 바로 알아챘고, 눈빛이 조금 떨려왔다.

    휙!

    이어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귀마궁(百鬼魔弓)이 가까이서 폭발하자 검은 빛으로 변한 화살이 강렬한 바람과 오열을 동반했다. 마치 백 마리 귀신의 속삭임에 모두가 혼과 목숨을 빼앗길 것만 같았다.

    소효는 방심하지 않고 바로 피했다.

    한데 이 화살은 마치 눈동자가 달린 것처럼 방향을 바꿔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소효는 빠르게 움직이며 끊임없이 방향을 바꿔 화살을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피해도 그 화살은 바짝 쫓아왔고, 도저히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오히려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부득이하게 소효는 둔지로 땅속으로 피했다.

    쾅!

    폭음이 울려 퍼졌다.

    백귀의 화살은 땅속으로 파고들어 폭발했다.

    잠시 후 소효의 몸이 땅속에서 튀어나왔는데, 옷이 조금 망가진 것 외에는 멀쩡해 보였다. 그는 바로 칠살에게 달려들었다.

    한편, 성벽 위에 선 흑려 장로는 번개처럼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난장판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누구도 죽이지 않고 그저 빠르게 내달려 바닥에 시체처럼 쓰러진 사람에게로 향했다.

    가까이 도착해보니 쓰러져 있는 사람은 눈빛이 흐렸고,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이를 본 흑려 장로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복수를 할 때가 아니었다. 유려 장로를 구출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녀를 부축해 등에 업고 재빨리 그곳을 벗어나려던 참이었다.

    돌아서는 순간, 넓은 문처럼 거대한 검이 하늘에서 떨어져 앞을 막았다. 칼날은 황금빛이었고 검신은 순수한 검은색이었다. 검신에서 천하를 깔보는 듯한 왕의 위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곤오검(昆吾劍)!”

    흑려 장로가 깜짝 놀랐다.

    “그녀를 어디로 데려갈 생각이지?”

    누군가 불쑥 물었다.

    높이가 3장 되는 식철곤이 번쩍 나타나자 흑려는 한 손으로 문짝만 한 대검을 가로로 베었다. 이어 황금색 검광이 번쩍였다. 휘몰아치는 검기만으로도 그를 몇 장이나 물러나게 했다.

    흑려 장로는 식철곤 안에 유려 장로를 압송해온 언무사가 있음을 알고 분노가 더욱 커졌지만, 눈빛에는 망설임이 가득했다.

    ‘그녀를 구출하는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저자를 죽이는 게 먼저인가?’

    하지만 이내 그는 결심했다.

    ‘언무사는 천기성 성주의 계승자이고 곤오검을 들고 있다. 어린 후배라 해도 쉽게 굴복시킬 수는 없겠지. 허나 호신 언갑을 부수기만 하면 저자도 환술의 영향을 받을 터.’

    그가 생각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결단을 내린 흑려 장로는 유려 장로를 한쪽에 내려놨다. 뒤이어 양손을 돌리자 뱀처럼 구불구불한 단검이 나타났다. 위에는 검은 광택이 번쩍였다. 분명 평범한 법보는 아니었다.

    성 밑 곳곳에서 혼전이 벌어진 그 무렵, 심협은 성벽 밖으로 나왔다.

    손을 들어서 허공을 눌러보니 역시나 보이지 않는 저항이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 않은 결계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심협은 무거운 표정으로 순양비검을 쥐고 날을 세워 허공을 찔렀다.

    챙!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검끝은 허공에 막혀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심협이 팔에 힘을 주자 소름 끼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 왔다. 검끝에서는 불꽃이 튀었고, 주작신화가 위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허공에 오색 찬란한 수정벽이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심협은 수정벽이 퍼져 있는 구역을 둘러보고는 몇 걸음 물러나 법력을 끌어모으며 순양비검을 쥔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마치 대군을 이끄는 원수(元帥) 같았다.

    나머지 열 자루의 순양비검이 잇달아 날아올라 하나둘 그의 손으로 내려앉았다.

    잠시 후 열한 자루의 순양비검이 하나로 합쳐졌다.

    “간다!”

    심협은 낮게 외친 후 열한 자루 순양비검의 힘을 모아 그대로 정면을 찔렀다.

    챙! 챙!

    검이 충돌하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그의 손에서는 분명 한 줄기 검광만이 뿜어져 나왔는데, 성벽 위 호족 사람들은 앞에 마치 뜨거운 태양이 솟아 열기를 내뿜는 것처럼 느껴졌다.

    황홀한 가운데 날개를 편 주작이 가장 앞에 섰고, 그 뒤로 몇 마리의 금오가 날갯짓을 했으며, 현화신구가 미친 듯 뛰어가는 광경이 보였다. 그 기세는 실로 엄청났다.

    쾅!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허공의 금제가 깨진 유리처럼 갈라지면서 수많은 정광이 떨어지자 성 전체가 흔들렸다. 뒤이어 그 너머에 있던 성벽에 부문이 나타났고, 그 안에 박혀 있던 진반이 드러났다. 법진의 본체가 드러난 것이다.

    심협은 당연히 법진을 복구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손에 든 장검을 휘둘러서 수천 줄기 빛의 검을 쏘아 보내자 법진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숨겨진 환진이 부서지자 주위를 뒤덮었던 광기 어린 분위기도 사라졌다.

    허나 전장의 혼란스러운 국면은 아직 변하지 않았고, 곳곳에서는 여전히 서로 싸우고 있었다. 영향을 받은 심지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육화명을 비롯해 경지가 비교적 높은 자들은 이미 정신을 차려서 서로 싸우고 있는 연합군을 막고 있었다.

    하늘 높은 곳에 선 소효는 심협이 혹심난정진(惑心亂情陣)을 부수는 것을 봤지만, 어째서인지 담담했다.

    “마음은 이미 현혹되었으니 진을 부숴봐야 소용없지.”

    한데 말을 마친 그는 갑자기 표정이 굳었다. 누군가의 전음을 들은 것이다.

    그는 맹렬한 공격으로 칠살을 뒤로 물리고는 뒤쪽으로 크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청구성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성안의 청구 호족 수사들이 파도처럼 몰려나와 연합군을 향해 돌진했다.

    여전히 혼전 중인 수사들은 이를 막아내지 못해 순식간에 수많은 사상자가 생겨났다.

    육화명은 혼란에 빠진 연합군을 막지 못하자 호족의 대군으로 뛰어들었다. 손에 든 장검에서 무지개 같은 검광이 뿜어져 나가자 채소가 잘리듯 수많은 호족이 죽어 나갔다.

    백소천도 곧장 다가와 그를 돕기 시작했다.

    이를 본 섭채주가 진창해 신통으로 모두를 그 자리에 얼려버리려는데 심협이 다가와 막았다. 그러더니 그는 품에서 고풍스러운 전고(戰鼓)를 꺼냈다.

    “구려전고…….”

    섭채주는 이 법보를 보자마자 심협의 의도를 금방 알고는 씩 웃었다.

    심협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법력을 운공하여 전고를 울리기 시작했다.

    둥! 두둥-!

    심협의 법력과 신념이 섞인 북소리가 박자를 맞춰 사방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혼전 중이던 수사들이 갑자기 우뚝 멈췄다. 다만 가슴 속의 분노는 점점 더 커졌고, 눈에는 전의가 불타기 시작했다.

    둥- 둥! 둥- 둥! 둥- 둥- 둥!

    전고 소리가 점점 더 요란하고 급박하게 울려 퍼지자 움직임을 멈춘 연합군 수사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전방의 청구 호족을 바라봤다.

    “어떻게 된 거지?”

    성벽의 청구 호족 장로들은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연합군 수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혼란에 빠진 연합군 수사들을 손쉽게 토벌하려던 청구 호족들은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

    형세가 이리도 빨리 변한단 말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