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89화 (989/1,214)

989화. 적습

모두가 시끌벅적하게 다투고 있는데, 막사 밖에서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곧장 막사 밖으로 나가보니 본래 어두웠던 하늘이 붉게 물들었고, 수천 수만 개의 불꽃이 산골짜기 쪽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만천화우(漫天火雨)가 뒤덮은 그 장면은 장관이었다.

“적습이다!”

육화명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만천화우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거대한 불덩이가 폭발하자 진영 전체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콰쾅!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폭음이 쉬지 않고 울려 퍼졌고, 하늘 가득 날아온 돌들이 무수히 많은 칼날처럼 막사와 건물들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수사들은 그제야 일제히 호신 법보를 꺼내 보광을 빛냈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 왔다. 순식간에 진영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육화명이 먼저 날아가 손을 휘두르자 수백 개의 검광이 쏟아져 나와 여전히 떨어지는 불과 돌들을 가루고 만들었다. 다른 수사들도 급히 뒤를 따르자 상황은 금방 안정됐다.

만천화우는 한동안 지속된 이후에 마침내 기세가 줄어들었고, 곧 완전히 사라졌다.

엉망이 된 진영과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불꽃이며 연기를 둘러보는 사람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방금 전까지 청구 호족에게 기회를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뭇거리던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 호되게 뺨을 맞은 꼴이 되었다.

심협이라도 지금만큼은 분노가 솟구쳤다.

그는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청구 호족은 무슨 자신감으로 이렇게 많은 종문에 맞선단 말인가? 방촌산이나 보타산 같은 대형 종문도 이렇게까지 당당히 맞서지는 못할 것이다.

“심 도우, 봤소? 우리가 저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게 아니라 저들이 기회를 원치 않는 것이오. 이왕 이리 된 이상 저들의 산문과 만용을 완전히 무너트리는 수밖에 없소. 잘못을 인정하고 항복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멸망하거나. 둘 중에 하나요.”

칠살이 비열하게 웃으며 천천히 말하고는 돌아서서 골짜기 안으로 걸어갔다.

“심협, 아무래도 이번에는 자네가 저들에게 속은 듯하네. 적을 대할 때는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되고 요마를 제거할 때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네.”

백소천도 덧붙였다.

“육 형…….”

“심형, 더는 무리요.”

육화명은 심협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강신천도 고개를 젓고는 천천히 말했다.

“정말 화해를 원한다면 저들을 완전히 무너트린 다음에 말해야 할 듯싶소. 안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오.”

확실히 일이 이 지경까지 왔으니 평화적인 해결은 이미 불가능해 보였다.

심협이 산골까지를 바라보자 칠살이 하늘 높이 떠 있었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손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손바닥만 한 검은색 대인(大印)이 나타났는데, 도장에 조각된 것은 굽은 뿔의 푸른 소였다.

소는 네 발로 땅을 딛고 섰고, 머리를 약간 숙이고 있었으며, 두 개의 굽고 날카로운 뿔이 마주 보고 있었다. 전방을 응시하는 한 쌍의 동그란 눈에서는 흉광이 번득였고, 온몸의 근육은 매우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어 야성이 충만해 보였다.

칠살이 손을 높이 들자 검은색 대인이 하늘 높이 올라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뒤이어 천둥소리가 구름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더니 광풍이 휘몰아쳤고, 수많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해 하늘은 두껍고 검은 이불을 덮은 것 같았다.

심협은 고개를 들어 짙은 구름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소머리에 사람 몸을 한 마물의 허상이 은연중에 보였는데, 언뜻 우마왕과 흡사했다. 다만 그 허상이 아무리 백 장의 크기에 강렬한 기운을 뿜어낸다 해도 우마왕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저게 칠살 도우의 전승입니까?”

심협이 육화명에게 물었다.

“마왕채의 장문…… 아니지, 마왕채의 개산조사인 그 유명한 대력의 우마왕이네.”

심협은 문득 꿈속 세계에서 우마왕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종문이 거의 다 사라지고 저항 세력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우마왕의 과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 마왕채의 장문은 괴마왕인가요?”

심협은 장안에서 만났던 대머리 남자가 떠올랐다.

“그자는 우마왕에 이어 그 자리에 올랐지.”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천둥소리가 갈수록 밀집하고 주위의 바람 소리는 점점 잦아들어 조양곡 밖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갑자기 칠살의 목소리도 들려 왔는데, 마치 천둥 같았다.

“강신천, 날 도와서 저 호족들의 대진을 공격해보겠나?”

이 말에 강신천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마왕채와 천궁은 언제나 사이가 좋지 않았고, 칠살은 매우 도도하기로 유명하다. 한데 자진해서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강신천이 중얼거리더니 거절하지 않고 구름 안으로 날아갔다.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얼마 지나지 않아 요동치던 먹구름 안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백 장 높이의 금색의 거탑이 짙은 안개를 뚫고 우마(牛魔)의 거대한 허상 옆에 나타났다.

“마인번천, 진천결(魔印飜天, 震天訣)!”

“영롱보탑, 압신위(玲瓏寶塔, 壓神威)!”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천둥처럼 허공 전체에 퍼져 나갔다.

다음 순간, 짙고 두꺼운 구름이 격렬하게 용솟음치면서 천광(天光)이 터졌다. 뒤이어 그 사이로 나타난 거대한 둥근 구멍 하나에서 검은 빛이 가로지르며 날아갔고, 다른 구멍에서는 금빛이 솟구쳤다.

짙은 마기와 찬란한 천위가 솟구치는 동시에 거대한 검은 소의 발굽과 금빛이 번득이는 칠층보탑이 동시에 조양곡으로 떨어졌다.

콰쾅!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사이, 강력한 힘에 압도당했던 허공이 크게 흔들리더니 거대하기 그지없는 금광 법진이 산골짜기 위에 떠올랐다.

법진에 부문이 교차하고 가느다란 유광이 흐르기 시작하자 강력한 금제의 힘이 솟구쳤다.

검은색 발굽과 금색 보탑이 좌우에서 동시에 떨어져 거대한 금광 법진과 충돌하면서 굉음이 울렸다.

금빛이 하늘 높이 솟구치면서 폭발하자 성난 파도와 같은 강렬한 파동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굉음과 함께 산골짜기 양쪽의 돌벽이 터지면서 연기와 먼지가 뭉게뭉게 솟았다.

세차게 몰아치는 기류가 골짜기 너머로 거세게 밀려오자 마치 거대한 황토룡(黃土龍)이 연합군의 진영으로 돌진하는 것 같았다.

“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방어해라!”

육화명이 외치자 선두의 대당 관부 제자들이 미리 훈련한 것처럼 곧바로 똑같은 법결을 맺고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거대한 하얀 손바닥이 일제히 날아가 앞에 진을 쳤다.

다른 수사들도 이를 보고는 일제히 도우러 나섰고, 수천 수만 개의 손바닥으로 방어 대진을 만들어 골짜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먼지의 파도를 막았다.

광풍은 오랫동안 몰아치다가 서서히 멈췄고, 하늘에 가득하던 먼지도 사라졌다.

심협이 산골짜기 안을 살펴보니 울창한 숲 같던 경치는 이미 사라졌고, 무너진 돌과 부러진 나무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골짜기의 개울도 끊어져서 크고 작은 웅덩이로 변해버렸다.

그때, 하늘의 짙은 구름이 사라지자 강신천과 칠살이 천천히 내려왔다.

“조양곡의 방어 대진은 이미 부서졌으니 돌격해도 좋소.”

칠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골짜기에 남아 있는 작은 법진들과 함정들은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으니 조심해야 하오.”

강신천도 당부했다.

“설마 영롱보탑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소.”

심협이 강신천에게 말했다. 꿈속 세계에서 이 보탑은 이정의 잔혼이 심협에게 맡긴 바 있으니 그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스승님께서 수련과 경험을 쌓기 위해 보내셨다고는 하나 안심이 안 되셨는지 빌려주셨소. 다만 실력이 부족해 모든 위능을 발휘하지 못한다오.”

“지금은 노닥거릴 때가 아니오. 대진이 복구되기 전에 진공해야 하오.”

칠살의 깨우침에 육화명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눈빛에 확신이 섰다.

“각 종문의 수령들은 문파 제자들을 정비해 주십시오. 계획대로 조양곡으로 들어가 청구국을 치겠습니다.”

육화명의 호령이 울려 퍼지자 이미 전의가 불타오르고 있던 각 문파 제자들이 일제히 함성으로 호응했다. 전쟁을 원하는 그들의 마음을 억제하기에는 이미 늦은 터였다.

“가자!”

외침에 이어 각 문파 제자들은 수령의 인솔 아래 산골짜기로 향했다.

대군의 최전방에서는 심협 일행이 길을 열면서 청구 호족의 기습에 대비했다.

심협은 이전에 청구국에 가봤었기에 이 길이 익숙했지만, 좀 전의 공격으로 길이 무너져서 지금은 기억에 의지해 길을 안내해야만 했다.

가는 내내 청구국 마을의 부서진 가옥이 보였고 가끔은 흙으로 덮여 있는 여우의 사체와 호족의 시신도 보였다. 이들은 골짜기의 함정 법진을 책임지던 자들이 아니라 정보를 알아보는 척후에 불과한데 모두 처참히 죽었다.

심협은 속으로 탄식했다. 청구 호족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화를 자초한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벌써 길의 절반을 달렸지만, 청구 호족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함정에 걸리지도 않아서 청구 호족이 모두 성으로 물러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모두의 긴장이 풀리려고 할 때, 하늘에 갑자기, 일고여덟 명이 나타나 서로 모여들더니 고리 모양으로 대열을 이루었다. 그러자 중간에 산발을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가 청자색 지팡이를 쥐고 주문을 읊기 시작하자 바람에 옷이 펄럭였고,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온몸에서 강력한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소천 장로인가……?”

심협은 한참 뒤에야 상대를 알아봤는데, 바로 청구 호족의 장로였다.

“잠들어 있는 조혼들이여, 저의 기도를 들으사, 천호(天狐)의 분노를 내려주소서.”

소천 장로의 주문이 길게 울려 퍼졌다.

그러더니 그는 수중의 지팡이로 아랫마을의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삽시간에 모두의 머리 위에 원형 광진이 떠오르더니 안에서 붉은 구름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작열하는 광망이 점점 더 밝아지면서 붉은 불꽃이 아래로 뿜어져 나왔다.

그때, 고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화 묘법(蓮華妙法), 진창해!”

섭채주가 먼저 나선 것이다.

푸른 광망과 극한의 기운이 순식간에 솟구치더니 곧이어 하늘 높이 솟은 거센 파도가 떨어지는 불꽃을 덮쳤다.

파도가 몰아치자 불꽃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잠시 후,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얼어붙은 파도가 빠르게 녹아버렸고, 붉은 화염이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기운은 조금 약해진 상태였다.

그 순간,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횡소천군(橫掃千軍)!”

육화명이 검결을 맺자 검광이 솟구쳐 10장 정도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폭증하면서 수많은 검우(劍雨)가 되어 불꽃과 충돌했다.

콰쾅! 펑!

폭우가 쏟아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수많은 검광이 종횡무진으로 움직여 순식간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꽃을 산산조각냈다.

“금강호법, 대비장(金剛護法, 大悲掌)!”

뒤이어 불송(佛誦)이 울려 퍼지더니 산처럼 웅장한 금광의 불상이 나타났다. 불상은 왼손은 염화(拈花)를, 오른손은 파약장(波若掌)을 한 채 비스듬히 위로 휘둘렀다.

콰쾅! 쾅!

폭음이 연이어 울려 퍼지자 본래 사분오열됐던 불꽃이 완전히 소멸했다.

허공에 떠 있던 소천 장로는 두 눈에 핏발이 서더니 양손으로 지팡이를 꽉 쥐고는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휘날리면서 온몸에서 강력한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화르륵!

그의 곁을 둘러싸고 있던 자들의 몸에서 동시에 타오른 불꽃과 결연한 그들의 모습은 어떤 헌제(獻祭)를 완성하려는 것 같았다.

“크아아아!”

야수의 포효와 함께 사나운 기운이 그들이 소환한 법진에서 흘러나왔다. 이어서 거대한 불꽃의 머리가 하늘에서 튀어나오더니 아래의 수사들을 내려다봤다.

심협은 한눈에 그 정체를 알아봤다. 바로 이전에 호족의 제단에서 만났던 불꽃 거인이었다.

“조심해야 합니다. 호족 제단을 지키는 존재로, 강력한 존재입니다!”

심협이 크게 경각심을 일깨운 순간, 머리 위에서 굉음이 들려 왔다.

모두가 고개를 들어보니 거대한 불꽃 칼날이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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