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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87화 (987/1,214)

987화. 끝나지 않은 호란

“이미 사람을 보내셨군요. 다행입니다. 한데 두 선배님께서 이 말씀을 제게 해주신 것은…… 제가 도울 일이 있는 겁니까?”

“그렇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원천강이 말을 절반 정도 했을 때였다.

쿠르릉!

땅이 갑자기 크게 흔들렸고, 커다란 굉음이 주위의 하얀 빛을 뚫고 생생하게 들려 왔다.

원천강이 벌떡 일어나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대전 안의 하얀 빛도 함께 사라졌다.

심협도 바로 달려나갔다.

정교금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갑자기 그 자리에 우뚝 굳더니 두 눈에서 검은 빛이 번쩍였다.

“아무도 내 존재를 못 알아채다니, 천호섭심대법(天狐攝心大法)은 역시 현묘하군. 큭큭큭!”

차갑고 비릿한 웃음이 정교금의 입에서 나오더니 온몸에서 검은 기운을 뿜으며 나타나 땅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한편, 순식간에 편전 밖의 허공에 도착한 심협은 안색이 돌변했다.

본래 맑았던 하늘은 두꺼운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운석 같은 불덩이가 장안성 곳곳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 불덩이는 밝고 선명한 것이 분명 평범한 불이 아니었고, 땅에 떨어지자마자 강렬한 폭발을 일으켜 반경 수십 장을 파괴했다.

쾅! 콰르릉!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고, 장안성 곳곳에 큰불이 일어났다. 수많은 집과 건물이 무너지고 백성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분노한 심협은 두 발에서 뇌광을 뿜어내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순식간에 수백 장 밖에 나타나 불덩이를 향해 소매를 휘둘렀다.

금색 건곤현화탑이 나타났고, 그 아래에서 뿜어져 나온 대량의 금빛이 불덩이를 뒤덮었다.

거대한 불덩이는 빠르게 줄어들어 건곤현화탑 안으로 휙 들어갔다. 건곤현화탑에는 육정신화뿐만 아니라 현화(玄火) 공간도 있어서 천하의 모든 불을 삼킬 수 있었다.

심협이 두 발에서 뇌광을 다시 뿜어내서 다른 불덩이 아래 도착했고, 건곤현화탑은 그 불꽃도 흡수했다.

“건곤현화탑? 이런 보물이 어떻게 네게 있는 거지?”

심협이 계속해서 다른 불덩이를 흡수하려는데 근처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커다란 무언가가 허공에 나타났다. 탁탑천왕 이정이 나타나자마자 뜨거운 눈빛으로 건곤현화탑을 바라봤다.

말을 하면서도 이정은 자색 뇌고(雷鼓) 법보를 날려 만 줄기의 뇌광을 뿜어내 반경 몇 리 안에 떨어지던 불덩이를 모두 막아냈다.

이때, 둔광들이 성에서 날아오고 법보가 빛을 뿜어내며 날아와 불덩이 대부분을 막아냈다. 대당 관부와 보타산, 화생사의 고수들이었다.

보타산의 청련선자와 화생사의 공도 선사도 있었다.

그때, 장안성에 용의 포효가 울리더니 동쪽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과 함께 청룡의 허상이 하늘로 솟구쳤다. 반면 서쪽에서는 범의 포효가 하늘에 울려 퍼지더니 백호의 허상이 허공에 나타나 살벌한 기운을 뿜어냈다.

뒤이어 남쪽에서 주작, 북쪽에서 현무의 허상이 나타났고, 중앙의 하늘에 빼곡한 부문이 나타나 찬란한 별빛을 뿜어냈다. 사상천시대진이 장안성을 완전히 뒤덮자 하늘에서 떨어지던 모든 불덩이가 가로막혔다.

이를 본 심협은 안심했다. 이렇게 많은 고수가 있고 사상천시대진까지 있으니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모두 막아낼 수 있을 터였다.

유일한 걱정은 적이 저번처럼 땅속에서 튀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때, 허공의 현무 허상이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와 땅속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땅이 갑자기 크게 흔들리더니 난공불락 같은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상천시대진에 이런 변화가……?”

“안심하게. 원천강은 적이 근래에 다시 장안성을 공격해올 것을 예견했고, 성의 백성들도 이미 대비를 해놨으니 좀 전의 공격으로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을 걸세.”

이정의 말에 심협은 마음을 놓았다.

“자네가 심협이지? 본왕의 질문에 아직 대답을 안 했군.”

이정이 다시 건곤현화탑을 바라봤는데 눈에 열정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 천왕님, 이 보물은 비경에서 우연히 얻은 것입니다.”

심협이 이정에게 예를 올리고는 말했다.

“비경이라…….”

이정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오르더니 생각에 잠겼다.

심협의 시선은 이정 허리에 있는 검은색 철편(鐵鞭), 육진편으로 향했다. 저 보물은 조무(祖巫) 제강의 무기 전신편으로, 안에 담긴 섭혼대진은 채찍에 목숨을 잃은 사람의 신혼을 흡수하는 현묘하기 짝이 없는 무기였다.

심협은 이 보물을 갖고 싶었지만, 천정의 선장인 이정이 속세로 내려오는 일이 드물어 기회조차 없었다. 한데 지금 그 기회가 온 것이다!

“이 천왕께서는 건곤현화탑의 내력을 아십니까? 이 보물은 저도 우연히 얻은 것이니 천왕께서 원하신다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심협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더니 두 손으로 건곤현화탑을 건넸다.

“건곤현화탑은 태상 노군이 수산적동(首山赤銅)과 다른 선품 영재를 혼합하여 팔괘로(八卦爐)에서 81일 만에 만들어낸 법보다. 안에는 육정신화가 담겨 있어서 효용이 무궁무진하지. 한데 나에게 주겠다고?”

이정은 이 말을 듣고 의아해했다.

그는 확실히 건곤현화탑을 갖고 싶었다. 태을기로 들어선 이후로 천존기를 앞두고 있었는데 이 천험과 같은 골짜기는 수많은 태을 수사를 좌절시켰으니, 만 년을 고되게 수련해도 넘을 수가 없었다. 이정 또한 그 한계에 사로잡혀 이 고난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몇 년 전, 천존의 한계를 뛰어넘을 방법을 찾아냈다. 그러려면 세 개의 진정한 영보(靈寶)의 도움이 필요했다. 우선 영롱보탑이 있으니 두 개만 더 있으면 되는데, 저 건곤현화탑은 영롱보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이 법보는 좋긴 하나 제가 수련한 공법과는 속성이 맞지 않아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마침 이 법보를 가지고 제게 맞는 법보와 교환하고 싶었지요. 한데 오늘 이렇게 이 천왕을 만났으니 이 탑도 훌륭한 주인을 만나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보검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이지요.”

심협이 공손하게 말했다.

“과찬일세. 사실 이 건곤현화탑은 내 옛 벗의 물건이지. 자네가 이 법보의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하니 그럼 사양하지 않겠네. 한데 본왕도 후배의 물건을 무턱대고 받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법보든 단약이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게. 본왕은 가진 게 많은 편이니 자네도 만족할 걸세.”

이정은 흥분됐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심협도 마찬가지였다. 돌고 돌아서 드디어 이정을 낚은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법체(法體), 쌍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위력이 강한 편법(鞭法)을 얻었으나 아쉽게도 마땅한 철편 법보를 찾지 못했지요.”

심협은 이정의 허리춤에 걸린 육진편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웃고 있던 이정의 얼굴이 굳더니 허리춤의 육진편을 바라보았다.

이 보물은 그가 어릴 적 서쪽의 곤륜에서 배움을 받을 때, 스승 도액(度厄)진인이 내린 보물로, 품급은 그리 높지 않고 위력도 자신이 쓰기에는 마땅치 않은 정도였다. 유일하게 내세울 점이라면 재질이 단단하여 한 번도 훼손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정은 경지가 올라가면서 이 채찍을 사용한 지도 한참이었다. 다만 하산할 때, 도액진인이 절대로 육진편을 몸에서 떨어트려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기에 지금까지도 쭉 지니고 다닌 것이다. 한데 예상치 못하게 심협이 이 물건을 원할 줄이야!

‘줘? 말아? 심협은 이 채찍이 마음에 든 거 같은데, 안 주면 건곤현화탑을 얻지 못하겠지?’

이정은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결정을 내리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육진편을 이미 심도 있게 연구해봤지만, 중품 법보일 뿐이었다. 스승님이 하신 말씀도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일 터였다.

“심 소우가 이 육진편이 마음에 든 모양이군. 이 채찍은 혼금현철(混金玄鐵)로 만들어 무게가 수천 근이 나가니 쌍수를 익힌 자네가 사용하기에 제격이겠지. 원한다면 가져가게.”

이정이 육진편을 건넸다.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육진편을 받고는 바로 건곤현화탑을 건넸다.

두 사람은 각자가 원하는 법보를 얻게 돼 흡족했다.

“심협, 건곤현화탑은 위력이 강하고 안에 육전신화가 담겨 있어 매우 진귀한 법보다. 한데 어째서 육진편과 바꾼 거냐?”

“나중에 자세히 말해줄게.”

심협은 화령자의 질책 섞인 물음에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성 곳곳이 진정되어가자 심협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정에게 인사하고 떠나려 했다.

한데 그때, 갑자기 땅이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굵고 커다란 검은 빛기둥이 땅을 뚫고 하늘로 솟구쳤다. 그 기세는 마치 질주하는 번개 같았다.

두 사람은 황급히 백 장을 물러나 검은 빛기둥의 공격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빛기둥은 뭉쳐지면서 순식간에 산처럼 거대한 검은 여우의 허상으로 변했다. 두 눈은 붉게 빛났고 등에는 아홉 개의 거대한 여우 꼬리가 달려 있었다. 장안성 호란 때 나타났던 그 거대 여우였다.

“어떻게 된 거지? 땅은 사상천시대진에 봉인됐을 텐데 어떻게 여우의 허상이 다시 나타날 수 있는 거지?”

심협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은 여우의 허상 너머로 간신히 그 안이 보였는데, 누군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바로 정교금이었다.

“물러나게!”

이정도 여우 허상 안의 정교금을 발견하고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고, 손을 휘둘러 자색 뇌고(雷鼓)를 던졌다.

뇌고에서 뇌광이 번쩍하더니 순식간에 백 장 크기의 거대한 북으로 변하여 검은 여우 허상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천뇌음고(天雷音鼓)? 연등도인(燃燈道人)의 손에 있었으면 그래도 좀 무서웠을 텐데, 이정 네 경지로 발휘해봐야 내가 두려워할 것 같으냐?”

검은 여우의 허상이 차갑게 비웃고는 두 개의 꼬리를 휘두르자 천뇌음고가 허공에서 막혀 더는 내려가지 못했다.

안색이 크게 변한 이정이 허리에서 보검을 뽑으려는 순간, 다른 꼬리가 날아와서 이정과 심협을 날려버렸다.

심협은 그대로 수십 장을 날아가고도 몸을 가누지 못했고,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그때, 부드러운 힘이 갑자기 그의 뒤에서 몰려와 이 괴력을 상쇄하고 그를 똑바로 서게 해줬다.

원천강의 모습이 검은 여우의 머리 위에 나타나더니 불진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이 천라지망처럼 떨어졌다.

검은 여우는 이 광경을 봤지만, 신경 쓰지 않고 이상한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네 개의 검은 그림자가 여우의 몸에서 나왔는데 하나같이 경천동지할 기운을 뿜어냈다. 그 하나하나가 결코 이정보다도 약하지 않았다.

검은 그림자가 솟구쳐 네 사람의 모습은 똑바로 보이지 않았지만,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셋은 각각 봉과 도, 검은색 대야를 들고 있었고, 한 명은 머리 위에 구슬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동시에 큰소리로 외쳤다.

네 줄기의 검은 빛이 은색 그물에 떨어지자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그물은 찢어졌고, 천뇌음고도 검은 빛에 부딪혀 폭발하듯 날아갔다.

원천강도 재빨리 뒤로 물러났고, 이정은 천뇌음고 뒤에 나타나 얼른 그 북을 잡았다.

“며칠 동안 모든 수단을 동원했음에도 널 찾지 못했으나, 그게 국공 대인의 몸에 숨어 있어서였나.”

원천강은 네 개의 신비로운 검은 그림자를 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검은 여우의 허상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우리 일족의 비술을 세속의 수사들이 어찌 알아챌 수 있겠느냐! 저번에 장안성을 완전히 부수지 못했으니 오늘은 내 본체로 직접 강림했다. 또한 강력한 지원군이 왔으니 반드시 이 성을 피의 제사를 드려 신마 우물의 입구를 찾아낼 것이다!”

검은 여우의 허상이 키득거리더니 아홉 개의 꼬리를 거침없이 휘둘렀다.

파도 같은 흑암이 폭발했는데, 그 안에는 수많은 귀물의 울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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