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86화 (986/1,214)
  • 986화. 저승으로 통하는 길

    “이게 뭐죠?”

    고화령은 신식을 그림자 안에 넣었지만, 그림자는 끝도 없어서 그녀의 신식으로는 도저히 탐색할 수 없었다.

    심협도 신식을 운공하여 앞의 그림자를 살폈다. 그림자 가장 깊은 곳에서 저승의 기운이 은연중에 느껴지자 추측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공간의 통로일 겁니다.”

    “공간의 통로요? 어디와 연결된 통로죠?”

    고화령도 총명했기에 바로 심협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

    “자세히 느껴보면 통로의 가장 안쪽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심협은 그 말만 남긴 채 몸을 돌려 위로 날아갔다.

    고화령은 온 힘을 다해 신식을 운공하여 검은색 그림자를 살펴본 끝에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저승의 기운…… 설마……?”

    중얼거린 그녀는 심협이 이미 나갔음을 알아채고는 곧바로 땅 위로 올라갔다.

    심협은 밖에 서서 생각에 잠긴 듯 음령산맥 깊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 도우, 저 통로가 유명계와 연결되어 있는 겁니까? 유명계와 각계가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이는 육도윤회반을 통해서인데, 어째서 이 통로에서는 육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거죠? 그리고 장안성 근처에 이런 통로가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어요.”

    고화령이 심협 옆으로 다가와 연달아 물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우선 장안성으로 돌아가 원 국사님을 뵙죠.”

    심협은 시선을 거두고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한 뒤 무지개가 되어 장안성으로 날아갔다.

    고화령은 울컥 짜증이 났으나, 곧장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잠시 후에 장안성에 도착했고, 대당 관부로 향했다.

    심협은 대당 관부에서 명성이 자자했기에 원천강이 관부 편전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그와 고화령은 바로 달려갔는데, 그곳에 도착해보니 황색 옷의 소녀가 그 앞에 서 있었다. 그 자태가 그야말로 선녀처럼 고왔다.

    그녀는 바로 이숙이었다.

    옆에는 금색 옷에 도도한 기색이 역력한 자가 있었는데, 심협도 익히 알고 있는 장천이었다.

    장천은 심협을 보고는 표정이 어두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장안 대전에서 드러난 심협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비록 진선 초기에 불과했지만 태을 경지의 경하용왕을 죽였으니 자신과는 비교가 안 되는 강자였다.

    이숙도 심협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막 인사를 건네려다가 심협 옆의 고화령을 보고는 순간 표정이 멍해졌다.

    “숙 공주님, 장 도우, 오랜만입니다. 원 국사께서는 안에 계십니까?”

    심협은 두 사람에게 짧게 인사하고는 편전 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스승님은 안에서 정 국공을 치료하고 계세요.”

    얼른 평정심을 되찾은 이숙이 말했다.

    “정 국공께서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겁니까?”

    “네, 국공 대인의 몸이 매우 허약해지셨어요. 저번에 근본을 다치신 모양이에요.”

    이숙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 국공의 경지와 원 국사님의 도움이면 금방 회복되실 테니 공주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 국사님을 뵙고 중요한 일을 의논하고 싶은데 공주님께서 대신 전해주시겠습니까?”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숙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고화령을 힐끗 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심 도우는 숙 공주님과 친한가요?”

    고화령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게…… 친하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왜 그러시죠?”

    심협이 당황하더니 말했다.

    “육 도우에게 듣기로 심 도우는 보타산 섭 소종주와 혼약을 약속한 사이라고 들었는데, 그 소종주님은 도우가 사방으로 여자를 홀리고 다니는 걸 아시려나…….”

    고화령이 심협에게 한 걸음 다가오더니 전음으로 말했다.

    “홀리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저와 숙 공주님은 그저 벗일 뿐입니다.”

    심협이 깜짝 놀라서 다급하게 전음으로 말했다.

    청련선자가 아직 장안성에 있고 방금 그와 섭채주가 쌍수법을 사용한 것에 한바탕 화를 냈었는데 지금 다시 이런 말이 그녀의 귀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어찌 알겠는가?

    “그래요?”

    심협이 초조해하는 표정을 본 고화령은 아까 심협이 보였던 냉담한 태도에 복수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풀려 씩 웃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선 장천은 심협과 고화령을 힐끗거리고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는 일전에 고화령을 본 적이 있는데, 자신이 친근하게 대했건만 그녀는 완전히 무시한 채 심협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이숙도 그렇고 고화령도 그렇고, 왜 저런 산수 놈만 좋아하는 거지? 제기랄!’

    장천은 원망스럽고 짜증이 났다.

    ‘최근의 고된 수련과 천궁에서 보내온 보물들 덕에 진선 초기의 경지를 안정시켰고 머지않아 진선 초기 절정에 도달할 수 있다. 진선 중기로 돌파하면 경지로는 심협을 뛰어넘게 될 테니 다시 천궁에서 좋은 법보 몇 개만 받으면 저 망할 놈을 꺾고 한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득의양양해진 장천은 신식으로 심협의 경지를 살피다가 마른하늘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우뚝 굳어버렸다.

    심협의 체내에서는 강력하기 그지없는 법력이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무려 진선 후기의 경지였다.

    “벌써 진선 후기에 도달했다고?”

    장천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심협은 장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기에 그를 힐끗 보고는 무시했다.

    침울해진 장천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로 경지의 정진이 엄청 빠르네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건가요? 이 누이도 좀 지도해 주세요.”

    고화령은 음령산맥에서 심협의 경지에 변화가 생겼음을 진작에 눈치챘기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고 도우는 이미 뛰어난 인재인데 나의 지도가 필요하겠소?”

    심협이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화령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고는 다시 심협을 괴롭히려는데, 편전에서 발소리가 들려 왔다.

    “심 도우, 국사님께서 들어오라고 하시네요.”

    “네.”

    이숙이 나와서 말하자 심협은 서둘러 대답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고화령도 혀를 차고는 성큼성큼 따라갔다.

    원천강과 정교금 모두 앉아 있었다. 정교금은 안색이 창백했다.

    원천강은 이전과 다름이 없었지만, 경지가 크게 정진한 심협은 원천강의 기운이 더 두껍고 광활하며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원 국사님, 정 국공…….”

    심협과 고화령은 앞으로 나아가 예를 올렸다.

    “두 사람 모두 일어나시게. 심 도우, 경지가 크게 정진했군. 훌륭해.”

    원천강이 담담하게 웃으며 심협과 고화령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정교금은 아직 상처가 심해서 영감이 둔해져 있었기에 원천강의 말을 듣고 나서야 신식을 펼쳐서 심협의 경지를 살펴보고는 커다란 눈이 더 커졌다.

    “진선 후기? 자네 무슨 용한 선단이라도 먹었나? 며칠 사이에 두 경지나 돌파하다니!”

    “말씀드리자면 깁니다만,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며칠 전 서역 땅에서 우연히 창궁 비경에 들어갔다가 기연을 만났습니다.”

    심협은 최대한 간략하게 말했다. 중요한 사안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창궁 비경의 일은 상식을 뛰어넘는 일 투성이인 데다 많은 사람이 연관된 일이라 전부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창궁 비경!”

    원천강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국사님께서는 그 비경을 알고 계십니까?”

    “서적에서 그곳이 유명한 선장(仙葬)의 땅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네만, 더는 아는 것이 없다네.

    원천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선장의 땅이라…… 실로 적합한 말이로군요.”

    심협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곳의 일은 나중에 두 분께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번에 온 것은 다른 중요한 일을 두 분께 보고드리기 위함입니다.”

    “오, 무슨 일인가? 어서 말해보게.”

    심협의 말에 원천강이 물었다.

    “고 도우에게서 흠천감의 수문 관원들이 살해되고 지맥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변경된 지맥 중 하나가 장안성 서북쪽의 음령산맥으로 통하고 있는데, 저는 이전에 그곳의 고묘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하여 고 도우와 가서 확인해본 바, 묘 아래에 유명계로 통하는 공간 통로가 있었습니다.”

    심협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멈췄다. 원천강과 정교금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역시나 정교금은 그 말을 듣고 나자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원천강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고 놀란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심협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방금 제작한 지맥수문도와 제가 흠천감 수문 관원들의 일을 수사한 결과입니다.”

    고화령이 수문도와 옥간을 꺼내 원천강과 정교금에게 건넸다.

    정교금이 얼른 받아서 신식으로 살펴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

    “앞서 벌어진 대전의 상황으로 봤을 때, 적들은 땅 아래의 요마를 불러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한데 지금 그들이 또 유명계와 통하는 길을 뚫었으니 이는 유명의 귀물을 소환하여 다시 장안성으로 쳐들어오겠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정교금이 원천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 도우, 고생했네.”

    원천강은 침착하게 지맥수문도와 옥간을 받은 뒤 고화령을 치하했다.

    고화령은 당황했지만, 이만 물러가라는 원천강의 뜻을 바로 알아챘다.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고화령은 허리를 조금 숙여 심협을 힐끗 노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원천강이 불진을 휘두르자 하얀 빛이 대전을 뒤덮었다.

    이를 본 심협은 놀란 듯한 눈빛으로 물었다.

    “국사님, 지맥의 일에 뭔가 다른 사건이 있는 겁니까?”

    “말하자면 길다네. 내 듣기로 방촌산이 습격당했을 때 그대도 거기 있었다던데, 사타령과 마왕채가 방촌산을 공격한 진짜 이유를 알고 있겠지?”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신마의 우물이란 곳 때문 아닙니까?”

    심협은 원천강이 왜 갑자기 방촌산 일을 언급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아는 대로 말했다.

    “그렇다네. 신마의 우물은 삼계의 영기와 마기에 매우 중요한 곳으로, 상고 봉신전쟁 이후로 모든 부족이 힘을 합쳐서 봉인했네. 허나 최근 들어 신마의 우물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신마의 우물은 보제 비경에 있지 않습니까? 대전 이후로 그곳은 봉인되었을 텐데 장안성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신마의 우물로 들어가는 입구는 하나가 아닐세. 장안성에도 똑같은 입구가 있지.”

    대답은 정교금의 입에서 나왔다.

    “정말입니까?”

    심협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는 신마의 우물이 도대체 뭐 하는 곳인지 물으려다가 말을 삼켰다. 이 일은 중요한 기밀이니 반드시 철저히 지켜져야 할 터였다.

    “그럼 장안성의 난과 지맥이 변한 일이 모두 누군가가 신마의 우물을 열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겁니까?”

    “그렇지. 다만, 그들은 신마의 우물 입구가 있는 곳을 아직 찾지 못했네. 이전에 그들이 땅속의 괴물을 이용해 성의 백성들을 공격한 것도 피의 제사법으로 장안성 전체를 살펴보기 위함이었지. 한데 그게 막혔으니 이제 다른 방법을 시도하려는 심산일세.”

    “요마가 습격한 것은 경하용왕이 대당의 용맥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던 게 아니었습니까?”

    “그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 내 따로 조사해보니 장안성 깊은 곳에 혈제(血祭) 법진이 있었다네. 정혈과 원기로 지맥을 더럽히려 했더군. 내막을 조사해보니 경하용왕도 이용을 당한 것일세. 다행히 그날의 살육이 제때 제지된 덕에 혈제 법진의 시전이 절반에서 그쳤지.”

    “다행이군요.”

    “허나 혈제 법진은 이미 탐색을 시작했네. 얼마나 탐색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지. 지금으로서는 전력을 다해 신마의 우물 입구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해 각 문파의 고수들을 모은 것일세.”

    “국사님 말씀이 옳습니다. 다만, 음령산맥으로 통하는 지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잘라내거나 봉인해야만 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바로 사람을 보내서 처리하게 했네.”

    원천강이 웃으며 하는 말에 심협은 안심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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