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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81화 (981/1,214)

981화. 장생(長生)의 비밀

허공이 격렬하게 떨리더니 홍련의 손에 잡힌 세 개의 검은 기운이 나타났는데, 그 안에는 세 개의 소인(小人) 허상이 어렴풋이 보였다. 각각 허리가 굽은 노인과 붉은 머리의 남자, 두건을 뒤집어써서 몸과 얼굴의 절반을 가린 여인이었다. 여인은 아직 어린 소녀 같았다.

“마족의 부혼술(附魂術)인가?”

“부혼술이요?”

“일부 신념을 다른 공간에 넣어 시체나 다른 자의 몸에 기생하는 마족의 신통입니다. 그 상태로도 본체의 실력 중 8할을 발휘할 수 있으니 실로 절묘하죠.”

주철이 감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안 그래도 이들이 어떻게 갑자기 천언궁에 나타났는지, 또 어떻게 거청천의 몸에 달라붙었는지 궁금했는데, 그 부혼술 덕분이었군.”

“알았으면 우리를 당장 풀어줘라! 안 그러면 네놈의 뼈를 씹어버리고 혼을 날려버릴 테다!”

붉은 머리의 남자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이 홍굴인가? 홍굴 도우는 마족 어디의 고수지? 당신들이 창궁 비경에 온 것은 그 핏빛 조도 때문인가? 내 물음에 성실히 답하면 풀어줄 수도 있는데…….”

심협은 화내지 않고 담담히 물었다.

“우리 정체는 알 필요 없네. 우리가 온 목적은 전에 말했으니 설명할 것 없지. 그리고 이건 신념의 힘에 불과하니 소멸하려거든 마음껏 하시게.”

옆의 허리 굽은 노인이 말했는데, 유천의 목소리였다.

두건을 뒤집어쓴 소녀는 끝까지 아무 말도 없이 심협을 노려봤다.

심협은 눈을 가늘게 떴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세 사람의 신념을 없애기란 매우 쉽다. 홍련업화를 뒤집어씌우기만 하면 깨끗하게 사라질 것이다. 다만 그는 현재 마족의 동향에 관심이 있기에 세 사람에게서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유천의 태도를 보니 쉽지 않을 듯했다.

“화령자, 이들의 신념에서 정보를 알아낼 방법이 있을까?”

“완전한 신혼이면 섭혼비술이라도 시전해서 알아낼 수 있겠지만, 나약한 신념이니 불가능하다.”

심협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고는 홍련업화를 안쪽에서 타오르게 했다.

“심협, 넌 내가…….”

포효를 끝맺기도 전에 홍굴의 신념은 잿더미가 되었다. 뒤이어 유천의 신념도 불에 타 사라졌고, 이제 두겁을 쓴 소녀의 신념만 남았다.

“감히 우리 마족의 대업을 방해하다니, 용기가 가상하구나. 한데 어찌하여 내 신념은 놔둔 것이냐?”

두건의 소녀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는데, 바로 금수의 목소리였다.

“마 소저, 우리가 비록 적이 되었다고는 해도 한때는 벗이었지 않소?”

“……날 어떻게 알아본 거지?”

소녀의 몸이 조금 굳더니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고, 이내 두건을 벗어 던졌다. 드러난 얼굴은 바로 마수수였다. 다만 그때와는 좀 달라 보였는데, 허리는 가늘어지고 가슴은 봉긋 솟았으며 이목구비도 소녀의 풋풋함을 완전히 털어내 절세의 미인으로 거듭나 있었다.

“마 소저의 경지가 크게 정진한 데다 신념에 불과하니 본래는 못 알아봤소. 한데 이전에 사용했던 용린표(龍鱗鏢) 덕에 정체를 알 수 있었지. 거기에 그대의 기운이 담겨 있었소.”

심협은 금색 비표를 꺼냈다. 일찍이 금수가 그를 기습할 때 사용했던 것이었다.

“그랬군.”

마수수는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툭 뱉어냈다.

“마 소저, 오랜만이오. 어떻게 지내셨소?”

“너 때문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로 매일 복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 빼면 괜찮게 살고 있다.”

마수수의 얼굴에 뼈에 사무친 한이 서렸다.

“그대의 부친은 장안성 용맥의 힘을 빼앗기 위해 요마와 결탁하여 백성을 죽이고 살업을 저질렀소. 내 비록 대당 관부 사람은 아니나 인간으로서 마땅히 요마를 막아냈을 뿐이오.”

심협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정말로 내 아버지를 죽인 것이 너였느냐?”

“그렇소. 그러니 복수하고 싶거든 괜히 다른 이를 괴롭히지 말고 언제든 날 찾아오시오.”

심협이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오냐, 어서 내 신혼을 부숴라! 다음에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마수수가 몸을 덜덜 떨며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더니 이내 칠흑 같은 눈동자로 심협을 노려봤다.

심협도 가만히 마수수를 들여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가보시오.”

심협이 한숨을 쉬고는 홍련업화를 없애 검은 기운을 풀었다.

마수수는 일순 당황했으나 싸늘한 눈으로 심협을 노려보았고, 잠시 후에는 신념과 부혼술의 검은 기운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심협은 마수수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침묵에 잠겼다.

“오라버니는 정말 여인을 끔찍이 아끼시네요. 세 사람 중에서 저 여자만 풀어주다니. 저 여자가 건업성과 장안성에서 싸웠던 마족인 마수수죠?”

섭채주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마기에 물들어서 마족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경하용왕의 여식이야. 본성은 나쁘지 않지. 언젠가 다시 정도로 돌아올지도 몰라.”

심협이 굳은 얼굴로 몸을 돌리며 말했으나, 섭채주는 흥 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였다.

이를 본 심협은 영문을 몰라 뒤통수를 긁적였다.

“부혼술로 여기까지 잠입하다니, 마족은 실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종족이군요. 심 도우가 아니었다면 저들이 무슨 짓을 했을지 모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철이 다가와 어색한 분위기를 깼다.

“별일 아니었습니다. 한데 주 도우께서 어찌 회색 고탑에서 나오신 겁니까? 주 도우는 천언선존(天偃仙尊)과 깊은 인연이라도 있는 겁니까?”

심협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섭채주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흘겨봤으나, 더는 마수수의 일을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심 도우의 생각대로 저와 천언선존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전 천언선존께서 직접 만드신 인형이지요.”

주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으나, 심협과 섭채주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

“주 도우가 인형이라고요? 말도 안 돼! 호흡이며 심장 박동, 신혼 파동까지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게 없는데…….”

심협은 금방 평정을 되찾고는 물었다.

“저는 천언선존께서 본인의 살과 유골로 만든 골혈(骨血) 인형이라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신통과 기억 일부를 제 몸 안에 봉인해두신 덕에 저는 인간세계에서 죽지 않고 장생(長生)했던 게지요. 그러니 따지자면 천언선존의 전생한 몸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이 천지대겁을 피해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입니다.”

“그랬군요. 천언선존은 역시 당대의 기재답습니다. 그럼 천언궁을 남긴 것도 주 도우께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던 겁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로 자신의 도통을 이어받을 제자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그분의 뜻을 따라 인간세계를 돌아다녔고, 수백 년을 기다려서야 제 기억이 천천히 되살아날 수 있었지요. 지금 여기에 온 것은 우연의 일치입니다.”

“그랬군요. 주 도우는 천언선존의 환생한 몸이나 다름없으니 도우께서 천언궁을 계승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심 도우의 도움 덕분입니다. 심 도우가 아니었더라면 저들이 진즉 천언탑을 연화했을 겁니다. 그리 되면 저도 다른 방법이 없었겠지요. 그러니 엄밀히 말해 천언선존께서 택한 계승자는 심 도우입니다.”

“저는 언술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데 어찌 천언선존의 절세 언술을 계승하겠습니까? 천언궁은 주 도우께서 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심협은 연달아 거절했다.

천언선존의 전승이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천언궁은 주철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인 데다 두 사람이 비록 친분이 있으니 감히 천언선존의 전승을 이을 수는 없었다.

“심 도우는 검도와 곤법에 능하니 천언궁을 전승해도 확실히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겁니다. 다만, 이미 천언선존의 시련을 모두 통과했는데 아무런 상도 없으면 말이 안 되지요. 그러니 대신 이 <천언진경(天偃眞經)>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언술에 관한 천언선존의 평생의 깨달음이 들어 있지요. 얼마나 깨달을 수 있을지는 심 도우의 기연과 조화에 달려 있습니다.”

주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바닥만 한 하얀색 옥반을 심협에게 건넸다.

“핏빛 조도는 소요경에 봉인해두었는데 지금 가져가시겠습니까?”

심협은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거절하지 않고 <천언진경>을 감사히 받은 뒤 물었다.

“그 물건은 몇 년 전에 갑자기 이곳으로 날아온 것으로 천언궁의 물건이 아닙니다. 또한 유천의 행색을 봤을 때 핏빛 조도가 꼭 필요한 모양인데, 여기 두면 마족을 불러들이겠지요. 지금 저의 실력으로는 막아낼 수 없으니 심 도우께서 가지고 가주십시오.”

주철은 정색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답했다.

“좋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핏빛 조도는 치우와 관련이 있으니 여기에 두면 그로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천언궁 일은 마무리됐으니 저희는 이제 떠날까 합니다. 저와 채주는 천언궁을 통해 창궁 비경으로 들어왔으니 나가려면 이곳을 지나야 할 것 같은데, 저희를 창궁 비경으로 보내줄 방법이 있습니까?”

“천언탑을 연화할 때 천언궁 1층에 공간의 균열이 느껴졌습니다. 외부로 연결된 것을 보니 아마 도우는 그곳을 통해 천언궁으로 들어왔을 겁니다. 그곳의 공간 균열을 통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겠지만, 천언궁 1층의 금제를 완전히 연화한 게 아니니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괜찮습니다. 마침 저도 처리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요.”

* * *

천언궁 3층의 용암의 강. 심협은 허공에 가부좌를 튼 채 검결을 맺었다.

열한 자루의 순양검이 강 위를 날아다녔는데, 검령이 담긴 비검이 이전보다 네 자루나 더 늘어난 상태였다. 그 검령은 세 마리 금오와 한 마리의 화염준마, 즉 현화신구였다. 현화신구는 훼멸명왕 언갑에 육신이 부서지고 신혼만 남은 상태였기에 주철에게 부탁해 검령으로 연화한 것이다.

개명천수와 암영전표는 여전히 천언탑의 조종을 받고 있었는데, 현재 주철은 실력이 약하니 마침 호위가 필요한 차였다.

주철은 천언선존의 직계 계승자이고 사악한 무리가 아니니 개명천수는 기꺼이 따르기로 했다. 반면 암영전표는 당장 떠나고 싶어 했지만, 주철이 천언탑을 연화했으니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열한 자루의 비검 검령은 용암의 불꽃 금색을 흡수하여 힘을 키웠다.

심협은 검결을 멈춰 비검들이 금색 불꽃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게 한 뒤, 소요경으로 들어갔다.

화령자는 여전히 혼원무극진으로 무라를 감금하고 있었는데, 무라는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약해져 있었다.

섭채주가 법진 옆에 서서 회복 신통으로 쉬지 않고 무라의 상태를 안정시키고 있었다.

“내 본명원기 대부분이 핏빛 조도에 흡수됐으니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한다. 그러니 긴장할 것 없어.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물어라.”

심협을 본 무라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심협은 내심 당황했다. 그가 무라를 생포한 것은 분명 마족과 핏빛 조도에 대해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한데 무라가 협조적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이런 반응은 예상 외일 수밖에 없었다.

“막상 그렇게 나오니 조금 당황스럽군.”

심협은 법진 옆에 앉으며 웃었다.

“너뿐이었다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 게다. 허나 섭 도우는 앞서 핏빛 조도에게서 내 목숨을 구해주었고, 신혼이 성기에 갇히는 것을 피하게 해주었지. 덕분에 영원히 환생도 못 할 말로를 면하게 됐으니 그녀의 얼굴을 봐서 말해주마. 그러니 궁금한 게 있으면 어서 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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