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80화 (980/1,214)
  • 980화. 제게 맡겨요!

    훼멸명왕의 열일전부 앞에서 눈을 번쩍 뜬 거청천이 온몸 곳곳에서 눈부신 회백색 광망을 뿜어내자 주위에 몇 장 크기의 작은 탑이 생겨났다. 뒤이어 몸 아래에 수많은 하얀색 문로가 떠올라 백색 대진을 이루자 하얀 빛과 함께 그는 그곳에서 사라졌다.

    아직 미처 사라지지 않은 하얀 빛을 열일전부가 뚫고 지나가 땅에 박히자 거대한 산의 절벽이 잘려나갔고, 거대한 돌들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천언궁 내부를 본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법진을 이룬 하얀색 문로는 천언궁 안에서 퍼져 나온 것이었다.

    ‘거청천이 벌써 탑을 완전히 연화한 것인가?’

    그렇다면 승산이 거의 없을 터. 어차피 얻을 건 다 얻었으니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한데 그때, 허공의 백색 법진이 갑자기 몇 배나 커지더니 훼멸명왕까지 뒤덮었다.

    표정이 급변한 심협은 훼멸명왕을 조종해 피하려 했지만, 늦고 말았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고, 시야가 돌아왔을 때는 천언궁의 대현금자력 벽돌 위에 서 있었다.

    현금자력의 벽돌은 이전에 무라와 암영전표, 거청천 등이 꽤 파괴한 데다 방금 번천인의 일격에 또다시 수십 개가 부서졌지만, 여전히 절반 정도는 온전했다. 그리고 훼멸명왕은 하필 그 온전한 현금 벽돌 위에 나타났다.

    엄청난 중력이 몰려오자 천존급에 근접한 언갑 훼멸명왕조차 펑 하는 굉음과 함께 무릎을 꿇었고,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표정이 어두워진 심협은 곧장 천살시왕을 소환해 번천인으로 벽돌을 마저 부수려 했다. 번천인의 신통은 매우 단순하고도 막강한 공격이라 이런 신통이 현금의 벽돌을 부수는 데 제격이었다.

    “어림없다!”

    거청천이 차갑게 웃으며 결인했다. 그러자 천언궁 대문이 하얗게 번득이며 쾅 닫혔고, 천살시왕은 밖에 남겨졌다.

    훼멸명왕의 두 눈이 갑자기 수많은 보라색 뇌전으로 번득이면서 바닥의 현금 벽돌을 부수려 했지만 이 언갑은 갑자기 크게 떨었고, 머리에 큰 충격이 전해지면서 보라색 뇌전이 사라졌다. 언갑의 머리에 다섯 줄기 손톱자국이 생겨났는데, 그 안에는 수많은 언문이 있었다.

    온몸이 하얀 광망으로 뒤덮인 거청천이 대현금자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훼멸명왕 앞에 나타나더니 마기가 솟아오르는 양손으로 치우지박 신통을 펼쳤다. 이 두 손은 다시 한번 훼멸명왕의 머리를 강하게 두들겼다.

    쾅!

    굉음이 울려 퍼졌고, 훼멸명왕의 머리 반대편에도 다섯 줄기 균열이 생겼다.

    조종실 안의 심협은 초조해졌다. 훼멸명왕 언갑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터였다. 앞으로도 훼멸명왕은 계속 필요했기에 그는 바로 소요경을 발동하여 언갑을 집어넣고 땅에 내려섰다.

    “언갑을 회수하다니, 더 깔끔하게 죽여주마! 하하하!”

    홍굴의 사악한 웃음소리에 이어 거청천이 돌진하면서 거대한 치우지박으로 심협의 머리를 노렸다.

    그러나 심협은 침착했다. 그의 온몸에서 갑자기 눈부신 금빛과 흑망(黑芒)이 뿜어져 나왔고, 선기와 마기가 동시에 나타났다. 현양화마 신통이 폭발하는 기운의 파동은 황정경을 발휘할 때보다 열 배는 강했다.

    중력은 여전히 강력했지만, 현양화마 신통을 시전한 심협에게는 그리 큰 위협이 아니었다.

    그는 현황일기곤을 잡고 수십 개의 곤봉 허상을 뿜어냈다.

    콰쾅!

    치우지박 마조와 곤봉이 충돌하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마조가 부서지며 거청천이 뒤로 밀려났고, 심협 역시 몇 걸음 물러섰다.

    허나 그는 몸을 가눈 뒤에도 계속해서 뒤로 피했다.

    “저건 마조님의 반고성체변신(盤古聖體變身)! 네가 어떻게 그 신통을 시전할 수 있는…… 아니, 마조님의 변신과는 큰 차이가 있구나!”

    거청천의 입에서 나온 유천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꾸짖는 듯하다가 이내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반고성체변신?”

    생소한 단어에 심협은 어리둥절했지만, 신경쓸 겨를 없이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 현금의 바닥 구역을 벗어났다. 뒤이어 현황일기곤에서 금빛을 강하게 뿜어내며 전력을 다해 발천난봉을 시전하자 수많은 허상이 현금의 벽돌에 떨어졌다.

    현양화마의 힘까지 더해지자 현금 벽돌은 대부분 부서졌고, 남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 거청천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작은 회색 탑이 나타나 대량의 회색 빛을 뿜어내자 대전 안에서 커다란 금제의 광망이 떠올랐다.

    이 광망에 뒤덮이자 심협은 만 장 깊이의 늪에 빠진 것처럼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대현금자력을 부숴봐야 소용없다! 천언탑의 금제 대부분을 연화했으니 천언궁은 이제 내가 지배한다. 본좌의 손에서 누구도 도망치지 못한다!”

    거청천이 차갑게 웃었다.

    심협이 전력으로 현양화마를 시전하자 금과 흑의 빛 파동이 일어나 주위의 금제 광망을 부쉈지만, 더 많은 금제 광망이 다시 솟아올랐다.

    그가 금광검진을 시전하여 강제로 주위의 금제를 부수려는데, 소요경에서 섭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버니, 제게 맡겨요!”

    심협이 소매를 휘두르자 섭채주가 옆에 나타나더니 곧장 온몸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금빛을 뿜어냈다. 그녀 뒤에 베옷을 입고 근육이 불끈 솟아오른 역발산(力拔山)의 신의 허상이 나타났다.

    섭채주의 손에 들린 약목신궁도 태양 같은 금빛을 뿜어냈는데, 서로 호응하자 산을 무너트리고 바다를 뒤집을 강력한 힘이 폭발하여 주위의 금제 광망을 몰아냈다.

    이 광경을 본 거청천은 경악하더니 빠르게 결인하여 회색 탑을 다시 발동했다. 천언궁 천장에 갑자기 거대한 뇌진(雷陣)이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수많은 하얀색 뇌전이 번쩍였다.

    쿠르릉!

    열두 개의 하얀색 뇌전이 뿜어져 나와 빠르게 합쳐져 굵기가 몇 장에 달하는 거대한 번개 기둥이 되어 섭채주에게 떨어졌다. 그 광경은 마치 하늘의 뇌신이 세상에 날린 멸세의 일격 같았다.

    허나 섭채주는 뇌전을 전혀 개의치 않고 양손을 펼쳐 약목신궁을 당겼다. 그러자 그녀 뒤에 있던 위엄 넘치는 신도 궁을 당기는 동작을 취했다.

    수많은 금색 부문이 감도는 몇 장 길이의 금빛 화살이 만들어졌다.

    허공이 떨려오고 천지영기가 뜨거운 물이 끓는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쳤고, 무수한 오색 빛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파도처럼 금빛 화살로 모여들었다.

    “천지이변을 일으키다니! 선기 안의 대도 법칙을 완벽히 발동했을 때에나 일어나는 현상이거늘, 진선 후기의 경지로 어떻게 약목신궁의 진정한 힘을 발휘한 거지?”

    화령자의 깜짝 놀란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이 눈을 치켜뜨며 자세히 물어보려는데, 섭채주가 활시위를 놓았다.

    쐐애액!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금빛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그녀는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비틀거렸다. 온몸의 원기가 이 화살 한 방에 소모된 것이다.

    심협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고 법력을 주입했다.

    맹렬한 기세를 뿜어내는 금빛 화살이 지나는 곳마다 허공이 찢어지면서 검은 자국이 생겨났다. 화살은 모든 금제를 뚫고 번개 기둥과 충돌했다.

    꽈르릉!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졌고, 기세등등하던 번개 기둥이 산산조각 나더니 작은 번개들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금빛의 화살은 멈추지 않고 날아가 천장의 뇌전 법진을 마치 종이처럼 찢어버렸다. 이 무렵 화살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찬란하고 기세등등했다. 심지어 갑자기 방향을 돌려 그대로 거청천을 향해 날아갔다.

    이를 본 거청천은 다급히 뒤로 물러나며 양손을 차륜처럼 결인해 회색 탑을 발동했다. 휘황찬란하고 웅대한 금빛 광막이 나타나 금빛 화살을 막았다.

    콰르릉!

    금빛 화살은 연달아 10여 개의 강력한 금제 광막을 관통한 후에야 마침내 모든 힘이 다한 듯 완전히 사라졌다.

    안도의 한숨을 쉰 거청천은 눈에서 흉광을 뿜어내며 심협과 섭채주를 노려보더니 회색 탑을 결인하여 발동하려 했다.

    한데 거청천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의 손에 있던 회색 탑이 갑자기 손에서 벗어나 대전 가장 깊은 곳으로 날아간 것이다.

    “내 천언탑!”

    거청천이 실성한 듯 외치며 검은 그림자로 변해 쫓아가더니 손을 활짝 벌려 회색 탑을 손에 쥐려 했다.

    하지만 회색 탑에서 갑자기 광망이 뿜어져 나왔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의 파도가 몰아쳤다. 이에 거청천은 튕겨 나가듯 뒤로 날아갔다.

    “크윽!”

    그는 피를 토하고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회색 탑은 계속 앞으로 날아가 대전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고, 빙글빙글 돌면서 빠르게 커져 눈 깜짝할 사이에 10여 장 높이의 거탑으로 변했다.

    탑 주위로는 회색백 영광이 감돌았고, 누구도, 어떤 신식도 접근할 수 없었다. 대전 안에 발동됐던 금제도 순식간에 전부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지?”

    심협은 상황을 지켜보느라 잠시 공격을 멈췄다.

    거청천은 여전히 눈빛이 흔들렸지만, 냉정함을 되찾아 경거망동하지는 않았다.

    이때, 회색 고탑의 가장 아래층 대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다름 아닌 주철이었다.

    심협은 그를 보고는 아연실색했고, 거청천은 흠칫 놀랐다.

    “네놈은 누구냐?”

    거청천은 주철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물었다.

    “심 도우, 이곳으로 데리고 와줘서 고맙습니다.”

    주철은 거청천을 완전히 무시한 채 웃으며 심협에게 포권을 했다. 그는 겉보기에는 이전과 다름이 없었지만, 분위기와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눈빛의 깊이는 알 수가 없을 정도였고, 몸에서는 출규기 수준의 법력 파동이 느껴졌다.

    “아닙니다. 그저 우연이었지요.”

    심협도 포권으로 답했다.

    이때, 주철의 몸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거청천이 귀신처럼 나타나 그의 단전으로 검은 손톱을 뻗었다.

    심협이 깜짝 놀라 곧장 주철에게로 다가가며 손을 뻗었지만, 늦고 말았다.

    한데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주철 옆의 허공에서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허공에 열 개의 하얀 금제 광막이 나타났다. 거청천의 검은색 손톱이 연속으로 다섯 개의 광막을 뚫었지만, 여섯 번째는 뚫지 못하고 막혔다.

    당황한 거청천이 두 발에서 검은 빛을 반짝이며 번개처럼 뒤로 물러났지만, 열 개의 금제 광막이 갑자기 뒤틀리면서 열 줄의 굵고 하얀 사슬로 변해 단숨에 그의 몸을 단단하게 묶어 버렸다.

    거청천이 온몸에서 검은 빛을 뿜어내며 발버둥 쳤지만, 사슬은 끊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 도우, 저는 방금 깨어나 천언궁의 모든 금제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천언궁 천장의 뇌원적멸대진(雷元寂滅大陣)은 그대가 부쉈으니 더는 공격용 금제가 없지요. 그러니 번거롭더라도 도우가 이자를 죽여서 후환을 제거해 주시겠습니까?”

    심협은 어안이 벙벙해 잠시 멍해 있다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한 줄기 기운이 비검과 함께 번개처럼 날아갔다. 가장 처음 제련한 순양검이 단번에 거청천의 단전을 관통했다.

    몸부림치던 거청천은 우뚝 멈췄고, 입을 쩍 벌린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뒤이어 순양검에서 주작진화가 타올랐고, 눈 깜짝할 사이에 거청천의 몸은 잿더미가 되어버렸으며, 저물 법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심 도우의 비검은 화린목으로 만들었군요. 게다가 주작검령까지 있다니, 실로 대단합니다.”

    주철은 순양검을 보자마자 감탄했다.

    심협이 손을 들자 순양검이 거청천의 저물 법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한데 그 순간, 심협은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10여 장을 물러나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붉은 홍련업화가 홍련의 커다란 손이 되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