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79화 (979/1,214)
  • 979화. 살기

    “크아악!”

    개명천수가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졌다.

    “개명 도우!”

    심협은 소매에서 붉은 빛을 쏘아 보내 개명천수를 휘감고 소요경 안으로 넣으려 했지만, 투명한 쇠사슬이 소요경의 흡수를 방해했다.

    암영전표와 현화신구 역시 허공에서 끌려 나왔는데, 두 영수도 투명한 사슬에 머리가 찔려 땅에 쓰러진 채 몸부림쳤다.

    “벌써 우리의 원령 각인을 연화했다는 거냐? 이렇게 빠를 수가 없을 텐데!”

    암영전표가 고통 속에 소리쳤다.

    “평범한 제련법이라면 천언의 탑을 연화하는 데 오래 걸리겠지. 하지만 우리 마족의 연보성술진천결(煉寶聖術震天訣)이면 어떤 법보든 인간족이나 수족(獸族)보다 열 배는 빠르게 장악할 수 있다!”

    거청천이 차갑게 웃었다.

    훼멸명왕의 커다란 몸이 보랏빛으로 변하여 거청천을 향해 날아갔다.

    “너희 셋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놈을 막아라!”

    거청천은 더는 심협과 싸우지 않고, 세 영수 뒤로 피하면서 소리쳤다.

    암영전표와 현화신구 그리고 개명천수는 회색 탑에 완전히 장악된 터라 바로 일어나 심협에게로 달려들었다.

    암영전표가 양손으로 허공을 연달아 잡자 수많은 검은색 손톱 허상이 심협을 향해 날아갔다.

    현화신구의 몸이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더니 매우 커다란 불꽃의 준마가 되어 앞발을 높게 들고는 힘차게 내디뎠다. 그의 몸의 불꽃에서 수많은 화마(火馬)의 허상이 나오더니 화마 대군이 되어 일제히 심협에게 달려들었다. 천군만마가 돌진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고 지나가는 곳마다 허공이 흔들렸다.

    개명천수도 푸른 빛을 번득이며 본체로 변하더니 입을 벌려 심협을 향해 포효했다. 수많은 파문이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갔는데, 바로 움직임을 제약하는 기이한 음파였다.

    거청천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는 빠르게 회색의 탑을 연화하기 시작했다.

    “훼멸명왕 언갑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저 탑을 연화해 천언궁의 금제로 널 상대하려는 게다. 절대 뜻대로 되게 둬서는 안 된다!”

    화령자가 황급히 주의를 주었다.

    심협 역시 거청천이 원하는 대로 놔둘 생각은 없었다. 그는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고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열일전부와 뇌신추를 휘둘렀다.

    강력한 외화가 거대한 파도처럼 휘몰아쳐서 세 영수의 공격을 휩쓸었고, 지나가는 곳마다 검은색 손톱의 허상과 음파가 순식간에 소멸했다. 현화신구의 화마 대군도 전부 부서져 수많은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세 영수도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훼멸명왕의 두 눈에서 보랏빛이 번쩍이더니 굵고 맹렬한 보라색 번개가 거청천을 향해 떨어졌다.

    현화신구가 바로 몸을 멈추고는 우렁찬 콧소리를 내더니 두 눈에서 불꽃 광망을 뿜어냈다.

    부서졌던 화마는 뜨거운 불꽃이 되어 심협 앞에 빠르게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두껍고 거대한 불의 장벽이 되었다.

    보라색 번개가 떨어지자 장벽은 강하게 흔들렸지만, 부서지지 않고 버텨냈다.

    심협은 내심 놀랐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열일전부를 휘둘렀다. 그러자 찬란한 불꽃이 불꽃 장벽에 강하게 꽂혔다.

    불꽃 장벽이 아까보다 열 배는 강렬하게 흔들리자 두꺼운 벽에 유리처럼 균열이 생기더니 곧 무너질 것 같았다.

    불꽃 장벽 뒤편 현화신구의 몸도 흔들리고 균열이 생기면서 곧 몸이 붕괴할 조짐이 생겼다.

    심협은 속으로 의아했다. 열일전부의 공격은 멸세쌍목보다 훨씬 강력하고 힘을 집중한 터라 태을기 수사라도 막을 수 없을텐데 현화신구가 막아낸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암영전표가 입에서 붉은색 전기(戰旗)를 뱉었는데, 깃발에 수놓아진 태양 무늬로 미루어 화(火)속성 법보 같았다.

    깃발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에는 금색 불꽃도 섞여 있었는데, 아무래도 3층 용암의 영력이 충만하던 그 불꽃 같았다. 이 불꽃들이 현화신구의 몸으로 들어갔다.

    불꽃들을 전부 흡수한 현화신구는 균열이 생겼던 몸이 회복됐고, 곧 붕괴할 것 같던 불꽃의 장벽도 전부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이건 또 무슨 능력이지?”

    이 광경을 본 심협의 표정은 한층 진중해졌다.

    “내 짐작대로라면 저건 상고 신수 적정화원후(赤睛火元犼)의 신통이다. 이 신수는 불꽃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불꽃을 흡수해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 또 방출한 불꽃에는 불사불멸의 효과가 있어서 자신이 죽기 전에는 불꽃이 절대 꺼지지 않는다. 현화신구는 아무래도 화원후의 혈맥을 물려받은 것 같군. 다만 혈맥이 순수하지는 않은 모양이야.”

    화령자의 추론에 심협은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손은 조금도 멈추지 않고 열일전부와 뇌신추를 동시에 내리쳤다. 현화신구가 어떤 혈맥이든 결국은 진선 절정에 불과하니 훼멸명왕이 전력을 다한 일격을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한데 그때, 빼곡한 음파가 옆에서 밀려와 훼멸명왕의 몸에 닿았다. 개명천수의 음파는 이전보다 몇 배는 더 강력했다.

    심협은 일순 어지러워졌고, 훼멸명왕의 움직임도 몇 배 느려졌다. 현화신구는 이 틈에 불의 장벽과 함께 몇 장 뒤로 물러나 피했고, 전부와 뇌추는 허공을 갈랐다.

    현화신구가 입에서 굵고 큰 붉은색 불꽃을 뿜어내 불의 장벽에 주입하자 불의 장벽이 화르르 타오르면서 순식간에 퍼져 10여 장 크기의 화염 감옥이 되었다. 보기에는 불의 장벽보다 몇 배는 더 단단해 보였다.

    화염으로 만들어진 사슬이 감옥에서 튀어나와 훼멸명왕의 몸을 칭칭 감았다.

    하지만 그때 개명천수의 음파가 훼멸명왕의 몸을 벗어났고, 언갑의 움직임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죽고 싶은 게로구나!”

    심협의 눈에서 살기가 번득였다. 그는 더 이상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열일전부와 뇌신추에서 눈부신 불꽃과 뇌망(雷芒)을 뿜어내 몸을 묶은 불꽃 사슬을 전부 찢어버렸다.

    이를 본 개명천수가 다시 음파를 보내려는데, 옆에서 어두운 음파가 날아와 이 영수의 몸을 뒤덮었다. 장룡적의 음파와 함께 조비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어두운 음파에는 처절한 비명이 섞여 있어서 개명천수는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고 몸을 걷잡을 수 없어 음파를 방출할 수가 없었다.

    심협은 법력을 열일전부와 뇌신추에 주입해 불꽃의 감옥을 공격했다.

    하지만 뒤에서 갑자기 흑암이 솟아나 거대한 초록색 비단이 훼멸명왕의 목을 노리며 날아왔다.

    비단이 지나가는 곳마다 허공에 기다란 검은색 흔적이 남았고, 천지를 가득 채운 흉악하고 사나운 기운이 초록색 비단에서 폭발했다. 하늘에는 수많은 음운(陰雲)이 나타났는데, 번개가 번득여 마치 하늘도 이 사나운 기운을 참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심협은 훼멸명왕 언갑 안에서도 이 사나운 기운이 생생하게 느껴지자 가슴이 철렁해 서둘러 뇌신추로 초록색 비단을 막았다. 그 와중에도 열일전부는 여전히 불꽃의 감옥을 내리쳤다.

    콰직!

    초록색 비단과 충돌하자 가벼운 소리와 함께 수많은 검은색 뇌전을 감싼 뇌신추가 깔끔하게 동강 났고, 검은 뇌전이 전부 사라졌다.

    초록색 비단은 멈추지 않고 훼멸명왕을 베기 위해 계속해서 날아왔다.

    “이럴 수가!”

    이번에는 심협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뇌신추는 수십 종류의 견고한 영재로 만들어져 그 어떤 법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는데 단번에 잘린 것이다.

    ‘저 초록색 비단은 도대체 어떤 보물이지?’

    화염 감옥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기에 그는 몸을 돌리더니 열일전부에서 불꽃을 강하게 뿜어내 허공을 베었다. 화룡 같은 붉은색 광망이 뿜어져 나가 초록색 비단과 강하게 충돌했다.

    훼멸명왕의 강력함은 대부분 이 두 무기에서 나오는데 뇌신추가 부서졌으니 열일전부 만큼은 절대로 부서져서는 안 됐다.

    붉은색 광망도 초록색 비단에 가볍게 잘렸지만 부러진 광망이 폭발하자 태양과 같은 광망으로 변했다.

    초록색 비단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폭발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날아오는 기세가 잠시 주춤했다.

    그 순간, 가까운 허공에서 노란빛이 반짝이더니 천살시왕이 나타나 번천인으로 초록색 비단을 가격했다.

    초록색 비단은 마치 영광을 부수는 것에 자신이 있는 것처럼 가볍게 번천인 주위의 붉은빛을 전부 찢었고, 번천인마저 공격했다. 번천인에 옅은 베인 흔적이 나타났지만, 붉은색 정광이 오래된 부문에서 흘러나와 초록색 비단을 막아냈다.

    그제야 조금 안도한 심협은 천살시왕을 조종하여 모든 법력을 번천인에 주입했다. 그러자 번천인의 오래된 부문이 다시 강해졌고 암홍색의 산봉우리 같은 허상이 만들어졌다. 주위의 천지영기가 끓어오르듯 솟구치더니 성난 파도처럼 번천인으로 몰려왔다.

    콰쾅!

    허공을 짓누르는 강력한 힘이 솟구쳐 나와 초록색 비단을 산산조각냈다.

    오래돼 보이는 초록색 전도가 부서진 초록빛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바로 명홍전도였다. 도광이 어두워진 전도는 뒤로 튕겨 날아갔다.

    “이 법보였군. 그래, 헌원신제가 만든 이 전도 정도는 돼야 그런 신위를 보일 수 있겠지.”

    심협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매에서 법보를 꺼내 밖으로 내보냈다.

    암영전표가 명홍전도 옆에 나타났다. 그는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번천인의 공격에 부상을 당한 두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명홍전도의 위능은 말이 필요 없지만, 그의 실력이 부족해 위력을 다 발휘할 수 없었다.

    “내가 태을기였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암영전표가 포효하더니 다시 검은 그림자로 변해 명홍전도를 향해 돌진했다.

    그때, 훼멸명왕의 입에서 날개 달린 동전 낙보금전이 날아갔다. 이어서 명홍전도의 빛이 사라지더니 돌덩이처럼 떨어져 훼멸명왕의 손에 들어갔다.

    “내 보물을 내놔라!”

    명홍전도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아는 암영전표는 거청천에게 조종당하고 있어도 이 보도만큼은 잃기 싫었고, 그는 두 눈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며 검은 그림자로 변하여 훼멸명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이성을 잃은 듯했다.

    훼멸명왕의 두 눈에서 보랏빛이 번득이더니 보라색 뇌전이 다시 뿜어져 나가 무방비 상태의 검은 그림자를 가볍게 찢어버렸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암영전표는 피를 토하며 훌훌 날아갔다.

    심협은 그를 쫓지 않고 훼멸명왕을 조종하여 열일전부의 위력을 극한까지 올렸다. 커다란 도끼에서 태양 같은 광망이 뿜어져 나오더니 허상이 되어 불꽃 감옥을 강하게 내리쳤다.

    꽈르릉!

    불꽃 감옥이 앞선 불의 장벽보다 견고하다 해도 훼멸명왕의 전력을 어떻게 견뎌내겠는가! 결국 불꽃 감옥은 폭발음과 함께 부서졌다.

    현화신구의 몸도 다시 부서졌는데, 이번에는 산산조각이 났다.

    심협은 현화신구도 내버려둔 채 보라색 잔상을 남기며 순식간에 훼멸명왕을 이동시켰다. 뒤이어 눈 깜짝할 사이에 거청천 위에 나타난 훼멸명왕은 태양처럼 빛나는 열일전부를 내리쳤다.

    이어 허공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면서 찢어졌다.

    지금 그에게는 암영전표와 현화신구는 중요하지 않았다. 거청천이 회색 탑을 연화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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