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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78화 (978/1,214)
  • 978화. 기생

    거청천이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도 전에 만귀번이 천언궁 대문 상공에 나타나더니 수십 배나 커져 대문을 단단히 막았다. 도무지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수많은 검은색 귀물이 만귀번에서 나오더니 성난 파도처럼 거청천에게로 달려들었다.

    조비극도 만귀번에서 튀어나와 장룡적을 불었고, 짙은 음파가 다시 거청천을 향해 날아갔다. 천언궁으로 들어오기 전에 만일에 대비해 심협이 몰래 조비극을 문밖에 뒀는데, 중요한 순간에 생각지 못한 역할을 해준 것이다.

    중상을 입은 거청천은 피를 토했으나, 이미 태을기에 도달한 그는 중상을 입고도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그가 몸에서 어두운 빛을 뿜어내자 거대한 검은색 언갑이 나타났다.

    이 언갑은 여덟 개의 팔이 달려 있었고, 보병, 금방울, 대검, 대추, 방패, 쇠사슬, 은거울, 나산 등 여덟 개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바로 팔비천룡 언갑이었으나, 푸른 보병은 일전에 훼멸명왕에 당한 탓에 지금은 금색의 작은 병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병과 금색 방울에는 언문이 빼곡했는데, 병 입구에서 갑자기 강력한 흡입력이 나와 허공을 휩쓸자 달려오던 귀물들이 전부 빨려 들어갔다.

    금색 방울에서도 금색 파문이 일어나 장룡적의 음파를 막아냈다.

    이를 본 조비극은 표정이 굳더니 망설임 없이 뒤로 물러나 만귀번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진선 중기로 돌파했지만 거청천을 상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팔비천룡의 발이 움직이자 거대한 몸이 대문을 향해 달려갔고, 다른 팔에 들린 여섯 개의 무기에서는 광망이 뿜어져 나와 만귀번을 강하게 공격했다.

    만귀번은 64도 금제가 있는 법보이긴 해도 방어류 법보가 아니었기에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폭발했다.

    거청천은 크게 기뻐하며 팔비천룡을 조종하여 날아가려 했다.

    한데 전방의 허공에서 갑자기 빛이 떠올랐는데, 그 안에는 노란색 율척이 들어 있었다. 바로 축지척이었다.

    천살시왕이 빛 안에서 나타나더니 번천인을 내던졌다.

    번천인의 일격은 조비극의 음파 공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펑!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팔비천룡은 뒤로 날아가 옅은 금색 벽돌 상공에 나타났다.

    강력한 중력에 팔비천룡 언갑과 거청천은 아래로 떨어졌다.

    거청천은 또다시 피를 토했고,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인영이 휙 날아오더니, 천살시왕이 팔비천룡 언갑 상공에 나타나 백 배나 더 커져 집채만 해진 암홍색 번천인을 다시 강하게 내리쳤다.

    쿠르릉!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졌고, 천언궁도 크게 흔들렸다. 아래의 금색 벽돌은 전부 부서졌고, 사방의 벽에도 균열이 생겨났다.

    팔비천룡 언갑은 그대로 납작해졌고, 온몸에 수많은 균열이 생기면서 완전히 부서졌다.

    안에서 피가 스며 나왔고, 언갑 안의 거청천도 완전히 짓눌린 상태였다.

    심협과 거청천의 대결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청천이 당하자 암영전표와 현화신구는 아연실색하며 걸음을 멈췄고, 겁에 질린 얼굴로 심협을 바라봤다.

    심협이 팔비천룡 옆에 나타나더니 오른손에서 대량의 마기를 뿜어내 순식간에 칠흑 같은 마조를 만들어냈다. 이어서 언갑 안의 거청천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거청천은 몸이 짓눌렸지만 죽지는 않은 상태였다. 태을 존재인 만큼 확실히 죽여야만 안심이 될 것 터였다.

    거대해졌던 번천인이 심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빛을 번쩍이며 빠르게 줄어들어 원래 크기로 돌아가더니 허공에 있는 천살시왕에게 날아갔다.

    한데 그때, 세 가닥의 검은 기운이 땅에서 새어 나오더니 한 발 먼저 거청천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거청천이 감았던 눈을 번쩍 뜨더니 짙은 검은 기운이 얼굴을 뒤덮었고, 두 눈은 검게 변했다. 번천인에 눌렸던 몸은 기이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고, 암야전창에 뚫렸던 구멍도 완전히 회복됐다. 몸에서도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피부에는 굵고 시커먼 힘줄이 솟아올라 매우 흉측했다.

    콰직!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마조가 팔비천룡 언갑을 가볍게 찢고는 거청천의 머리를 잡으려 했다.

    거청천이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오른손이 번개처럼 앞으로 치고 나가 검은색 마조를 막았다.

    꽝!

    굉음과 함께 강력한 힘에 치우지박의 마조가 튕겨 나갔다.

    하지만 치우지박은 절세의 신통인 만큼 거청천의 자흑색 오른팔에도 손톱자국이 생겼다. 다만 상처가 깊지 않아서 마기가 용솟음치자 금방 치료됐다.

    “마화(魔化)!”

    심협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곧바로 손을 휘둘러 훼멸명왕 언갑을 다시 소환했고, 두 발에서 뇌광을 뿜어내며 빠르게 조종실로 들어갔다.

    그의 몸이 언갑에 들어가는 순간, 검은색 물체가 귀신처럼 나타났고, 검은 안개가 감도는 주먹이 훼멸명왕의 가슴에 꽂혔다. 마화된 거청천이었다.

    콰직!

    훼멸명왕 가슴의 갑옷이 크게 파였고, 그 커다란 몸도 뒤로 날아가 대전 대문에 부딪혔다.

    조종실 안의 심협은 움푹 파인 철벽을 보고는 표정이 신중해졌다. 만약 곧바로 훼멸명왕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미 시체가 됐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냉정함을 잃지 않고 미간에서 신념 정사를 내보내 훼멸명왕 곳곳에 찔러 넣었다.

    훼멸명왕의 손에 쥔 열일전부와 뇌신추가 영광을 뿜어냈고, 잔상을 남기며 거청천에게로 뻗어갔다.

    하지만 거청천의 몸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다음 순간 훼멸명왕 옆에 나타나 검은 기운이 감도는 주먹으로 팔을 두들겼다.

    쾅!

    굉음과 함께 훼멸명왕은 다시 뒤로 날아갔다.

    거청천은 귀신같이 움직여 심협이 훼멸명왕을 조종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반대쪽에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10여 개의 검은 잔상이 바람처럼 훼멸명왕을 둘러싼 채 공격을 퍼부었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강력한 공격에 훼멸명왕은 좌우로 흔들렸으나, 다행히 그 몸은 매우 단단해서 주먹 자국만 좀 남았을 뿐 부서지지는 않았다.

    심협은 마화한 거청천의 속도에 놀라면서도 양손을 차륜처럼 결인하여 미간에서 신혼 정사를 몇 배나 많이 뿜어내서 훼멸명왕에 주입했다.

    훼멸명왕의 커다란 몸이 갑자기 1할 정도 줄어들어 3장 정도로 변하자 거청천의 주먹이 허공을 스쳐 가면서 일순 휘청거렸다. 심협은 그 틈에 훼멸명왕을 조종하여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거청천은 바로 몸을 가누고는 검은색 잔상이 되어 다시 쫓아왔지만, 이미 한숨을 돌린 심협은 침착한 목소리로 외쳤다.

    “화령자!”

    화령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곡현성반을 발동했고, 하얀색 진문이 빠르게 밖으로 퍼져 나갔다.

    거청천 주위의 허공에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혼원무극진이 다시 나타나 그를 속박하려 했다.

    “이런 진으로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사라져라!”

    메마른 목소리로 내뱉은 거청천이 검은 기운이 감도는 두 손으로 주위의 진문을 잡고 힘껏 찢었다. 그러자 혼원무극진은 마치 종이처럼 절반으로 찢겨 나갔다.

    심협은 한층 진중해졌다. 거청천의 목소리는 마치 쇳조각을 문지르는 듯 메말랐지만, 그것이 유천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 유천은 분명 죽었는데……?”

    “네가 죽였던 그 해골들은 아무래도 기생하는 분신이었던 모양이군. 마족은 이런 신통에 아주 능하지. 아까 밖에서 마기의 파동이 느껴졌었는데 지금 보니까 유천등 세 사람 몸에 기생하던 신념이었던 것 같다.”

    그 말에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전혀 망설이지 않고 훼멸명왕의 두 눈에서 보랏빛을 뿜어냈다. 보라색 뇌전이 허공을 찢고 폭우처럼 거청천을 공격했다.

    “이런 공격은 소용없다! 심협, 네가 가진 수단을 모두 써보거라.”

    거청천의 표정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더니 금수의 목소리로 외치고는 한 발을 내딛자 환영처럼 사라져 보라색 뇌전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다음 순간, 거청천은 다시 훼멸명왕 옆에 나타났다.

    “죽어라!”

    거청천의 입에서 홍굴의 목소리가 울리더니 눈에서 분노의 광망이 번득였고, 손에서는 마기가 용솟음쳤다. 다섯 개의 손가락에서 쇠고리 같은 날카로운 검은빛이 나와서 허공에 다섯 개의 검은 흔적을 그렸다. 치우지박으로 훼멸명왕의 머리를 붙잡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훼멸명왕의 온몸에 갑자기 보라색 뇌문(雷紋)이 떠오르고 파직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아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거청천의 일격을 피했다.

    훼멸명왕은 천존급에 근접한 언갑인 만큼 공격력만 강한 게 아니었다. 이 신통은 언갑 내부의 뇌전가속금제(雷電加速禁制)인데, 신식 소모가 너무 커서 장시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거청천은 흠칫 놀랐지만 바로 차갑게 웃고는 검은색 잔상이 되어 쫓았다.

    심협은 훼멸명왕을 조종하여 빠르게 수십 장을 물러나 멈춘 뒤, 염열전부와 뇌신추로 뒤를 내리쳤다. 이어서 한 번의 움직임으로 거청천의 몇 장 앞으로 다가갔다. 거청천의 귀신 같은 속도를 따라잡은 것이었다.

    날카로운 전부와 뇌추의 공격에 거청천은 온몸이 베일 것만 같자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훼멸명왕이 곧바로 쫓아와 열일전부와 뇌신추를 광풍과 폭우처럼 휘둘러댔다.

    “어딜 감히!”

    거청천이 화를 내며 양손으로 치우지박 신통을 시전하여 마주 오는 전부와 뇌추에 응전했다.

    이어지는 시간 동안 검은색과 보라색 두 존재가 뒤섞였고, 대전 안쪽부터 바깥까지 금속의 충돌음이 울려 퍼져서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양쪽 모두 뒤로 물러났다. 훼멸명왕은 바로 몸을 가누었지만, 거청천은 열 걸음 정도 밀려났고, 양손에 만들어진 치우지박 마조는 대부분 부서진 후였다.

    거청천은 마화한 이후로 실력이 크게 늘어서 태을 절정에 거의 도달했지만, 여전히 혈육의 몸이었고, 또한 마보가 없었다. 그러니 훼멸명왕 같은 천존급에 가까운 언갑을 상대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개명천수와 암영전표, 현화신구는 대전 밖으로 나와 지켜보면서 놀라고 있었다. 다만 개명천수는 기뻐했고, 암영전표와 현화신구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심협이든 거청천이든 우리가 대항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 천언궁의 보물이 우리 수중에 넘어오는 일은 없겠군. 저들이 싸우는 틈에 서둘러 도망치죠!”

    암영전표가 전음으로 현화신구에게 말했다.

    “우리 원령 각인이 저 탑 안에 있으니 천언궁을 벗어날 수도 없고, 어디로 가든 천언의 탑이 부르면 얌전히 돌아와야 하는데 도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몇 년 전, 심협과 거청천이 전송됐을 때 천언궁에 이상이 생겨 1층에 특별한 공간이 나타났는데 바깥 세계와 연결된 것 같습니다. 거기로 피해 있다가 누군가 천언의 탑을 들고 쫓아오면 원령 각인을 버려야지요. 경지가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도망칩시다!”

    “그런 곳이 있다고? 잘됐군. 어서 가지!”

    현화신구가 기뻐하며 말했다.

    암영전표가 소매를 크게 휘둘러 검은 그림자로 현화신구를 뒤덮자 두 영수의 몸이 조용히 허공으로 사라지려 했다.

    “도망가려고? 네놈들의 원령 각인은 이미 내 손에 있으니 다 내 노예다! 이리 오너라!”

    거청천이 갑자기 그쪽을 보더니 허공을 잡았다.

    그의 손에서 작은 회색 탑의 허상이 나타나더니 훼멸명왕 앞에 갑자기 하얀 광막이 나타나 건너편을 막았다.

    이와 동시에 촤르륵 하는 쇠사슬 소리가 나더니 세 개의 투명한 쇠사슬이 회색 탑에서 날아갔다. 두 개의 쇠사슬은 허공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하나는 개명천수를 향해 날아가 머리를 푹 하고 찔렀는데, 그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심협이 막으려 했지만 하얀 광막에 가로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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