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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77화 (977/1,214)
  • 977화. 어부지리

    검은색 보호막 안의 공간이 마치 강력한 흑암의 힘으로 가득 찬 것처럼 갑자기 끝없는 어둠에 빠졌다. 보호막은 순식간에 열 배나 견고해져서 더는 무너지지 않았다.

    “만다라대진(曼茶羅大陣)!”

    “저게 무슨 법진이에요?”

    섭채주가 맑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마족의 법진인데, 매우 견고해서 부수는 게 쉽지 않아.”

    심협이 굳은 얼굴로 답하고는 손을 휘둘러 천살시왕을 소환했다. 훼멸명왕도 유천 등을 향해 성큼성큼 달려들었다.

    한쪽에서는 몇 사람이 회색 탑을 놓고 싸우고 있었는데, 상황이 심상치 않자 속전속결로 끝내려 했다.

    “오라버니, 만다라대진은 제게 맡겨요!”

    심협의 법력을 완전히 회복시킨 섭채주가 그렇게 말하더니 곤륜경을 발동했다.

    곤륜경에서 나온 검은 빛이 훼멸명왕의 조종실 벽을 뚫고 날아가 만다라대진으로 들어갔다.

    흑암의 영역이 대진 안의 어둠을 흡수하자 대진은 흑암의 힘이 빠르게 희미해졌고, 흑홍색 보호막도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왜 만다라대진의 위력이 급속도로 약해지는 거야?”

    “곤륜경이다!”

    금수의 외침에 유천도 상황을 알아챘다.

    “심협, 뒤에 숨어서 싸우는 게 부끄럽지도 않더냐? 자신 있으면 나와서 제대로 맞붙자!”

    홍굴이 도발했으나, 그 정도에 넘어갈 심협이 아니었다. 심협은 그저 조용히 순양검결을 운공해 검광 대진의 위력을 극한으로 발동했다.

    천살시왕도 번천인으로 흑홍색 보호막을 공격했다.

    콰르릉!

    굉음과 함께 흑홍색 보호막이 부서졌고, 동시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빼곡한 보라색 뇌전이 떨어지자 세 해골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늘에 가득하던 빛의 검이 그들을 무참히 베었다.

    다른 둘보다 멀리 떨어진 금수는 축지척을 발동하여 혼자 도망치려 했다.

    뎅!

    청명한 음파가 하늘에서 내려와 금수를 뒤덮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작은 은색 종이 떠올라 계속 흔들렸다.

    금수는 갑자기 어지러워지더니 술법을 시전하던 두 손도 우뚝 멈췄다.

    거의 동시에 그녀 옆에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몇 개의 검은색 마환이 나타났고, 순식간에 전신을 감쌌다. 금수는 체내의 마기가 순식간에 봉인되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유천과 홍굴도 마찬가지로 온몸에 검은색 마환이 감겨서 움직이지 못했다.

    다음 순간, 수많은 검광이 세 구의 해골로 날아가 가볍게 베어버렸다. 이들의 눈가에서 타오르던 불꽃은 이내 완전히 꺼졌다.

    유천의 부름이 멈추자 핏빛 조도는 영광을 잃은 채 툭 하고 떨어졌다.

    심협은 은광종과 마환구유를 거두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실 무라와 핏빛 조도의 강력함 앞에 좀 전까지만 해도 도망칠 방법을 생각했다. 한데 유천 등이 보물에 마음을 빼앗겨 판단력이 흐려져 가장 큰 장애물인 무라를 제거해주었고, 덕분에 심협은 이들을 몰살시킬 수 있었다.

    귀등상인이 소요경에서 붉은 빛을 쏴 핏빛 조도와 참마신검을 거둔 뒤 심협에게 돌아오더니 양시대 안으로 들어갔다.

    천살시왕도 축지척과 유천 등의 다른 법보를 챙긴 뒤 다시 사라졌다.

    “드디어 끝났네요.”

    이 광경을 본 섭채주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심협은 마음을 놓지 않고 신식을 소요경 안으로 넣었다.

    소요경에서는 화령자가 곡현성반을 제어해 하얀색 대진을 설치해놨다. 바로 혼원무극진이었다.

    다만, 혼원무극진 안에는 두 개의 하얀색 법진이 더 있었는데 구속의 힘이 느껴졌다. 세 개의 법진이 서로 합쳐져 반쯤 말라비틀어진 무라를 단단히 제압하고 있었다.

    “상고 마족인데 제압할 수 있겠어? 나중에 중요한 것을 물어봐야 하니까 절대 도망가게 해서는 안 돼.”

    심협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걱정하지 마라. 이 마족은 이제 빈껍데기나 다름없으니 어렵지 않다.”

    화령자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심협은 그제야 안심하며 신식을 거두려다가 갑자기 무라의 손목에 채워진 검은색 팔찌를 보고는 손을 휘둘렀다.

    소요경에 금빛이 반짝이더니 금색 대궁이 날아왔다.

    “후예의 힘을 계승했으니까 이 활은 네 거야.”

    심협은 신궁을 곧장 섭채주에게 건넸다.

    “약목신궁!”

    섭채주는 환하게 웃고는 약목신궁을 쥐었다. 이 신궁은 저항하지 않고 휘황찬란한 금빛을 뿜어냈다. 그녀의 몸도 눈부신 금빛으로 뒤덮이면서 약목신궁과 호응했다.

    섭채주는 가부좌를 틀더니 양손의 결인을 멈추지 않았다.

    약목신궁은 금빛을 계속 발하며 빠르게 연화됐다.

    심협은 그녀를 방해하지 않고 대전 다른 쪽을 돌아봤다.

    그곳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지만, 정세는 대체로 명확했다. 가장 강력한 거청천이 다른 셋을 쓰러트리고 작은 회색 탑을 손에 쥔 채 제련하려는 중이었다.

    세 영수는 거청천에게 달려들었지만 대여섯 마리의 황동(黃銅) 맹호 언갑에 가로막혔다. 이 황동맹호들은 크기가 2장에 달했는데, 세 영수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번개 같은 움직임과 강력한 힘에 세 영수는 가까이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했고, 피하기에 바빴다. 가끔 반격을 가하기도 했으나, 노란 빛으로 반짝이는 황동맹호의 몸은 매우 단단해 흠집 하나 남지 않았다.

    “심 도우, 어서 저 탑을 빼앗아야 합니다! 천언궁의 전승과 우리의 원령 각인이 안에 있고 또 이 탑은 천언궁의 모든 금제의 핵심이니 저자가 연화하면 이곳의 모든 금제를 조종할 테고,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심협은 그 말에 깜짝 놀라 바로 검광 검진을 발동하여 거청천을 포위했다.

    훼멸명왕도 참마신검을 거두고 뇌신추를 꺼내 거청천을 내리쳤다. 다만 검광 검진이 옮겨진 뒤, 유천 등이 죽은 곳에 솟아오른 세 개의 검은 기운이 빠르게 땅속으로 사라진 것을 그는 알아채지 못했다.

    거청천은 심협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표정이 굳더니 얼른 소매를 휘둘러 회색 탑을 거둔 뒤 황동맹호로 개명천수 등을 상대하게 하고 자신은 열 손가락을 내밀었다. 몸 주위에 초록, 보라, 노랑, 하얀색 대검이 나타났다.

    하얀색 대검은 이전에 훼멸명왕에게 부서졌던 경도설검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복구되어 있었다. 이곳에 있던 3년 동안 다시 만든 게 분명했다.

    그가 검결을 맺자 네 자루의 대검이 빙글빙글 돌았고, 검광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사색(四色)의 진도가 만들어졌다.

    수많은 금빛 검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거청천은 눈을 크게 뜨며 포효했고, 사색 진도를 향해 결인했다. 그러자 사색 검기가 뿜어져 나갔다. 초록 검기는 부드럽고 유연했고, 보라색 검기는 강렬하고 용맹했으며 빠르기가 번개 같았다. 노란색 검기는 적막한 기운으로 가득했고, 하얀색 검기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사색 검기가 수많은 금빛의 검과 충돌했다.

    콰콰쾅! 쾅!

    곳곳에서 폭발이 일며 광망이 번쩍였다. 사색 검기의 기운은 확연히 달랐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어 금광검진에 밀리지 않고 완벽하게 막아냈다.

    심협은 내심 놀랐다. 금오검령이 깃든 몇 자루의 순양검은 용암의 금색 불꽃을 대량으로 흡수해 그 위력이 창궁 비경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는데 사색 검진에 막혀버린 것이다.

    “생각났다! 저건 사계검진(四季劍陣)이야! 천여 년 전 동승신주에 휘황찬란하던 사계검파(四季劍派)라는 문파가 있었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변화에 영감을 받은 사계검법에 능통했지. 그 검법은 매우 절묘했어. 사계검법을 깊은 경지까지 익히면 사계검진을 시전할 수 있는데 그 위력은 천하를 뒤바꿀 정도였다!”

    “사계검진이라…….”

    화령자의 설명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덤덤하게 훼멸명왕을 조종하여 거청천에게로 돌진하더니 염열전부와 뇌신추로 검진을 내리쳤다.

    염열전부와 뇌신추는 매우 단단해 사계검진이 제아무리 대단해도 버틸 수가 없었다.

    콰직!

    굉음이 들리더니 사계검진에 큰 구멍이 뚫렸고, 거청천은 검과 함께 뒤로 밀려났다.

    거청천은 분노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사계검진을 안정시키고는 위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려 했다. 그때, 노란색 광망이 금광검진에서 날아와 경도설검과 충돌했다. 날개 달린 노란색 동전, 낙보금전이었다.

    “낙보금전!”

    거청천은 만수진인과 손을 잡은 동안 본 낙보금전의 신통을 알고 있었다. 이에 기겁해 경도설검을 거두려 했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경도설검의 보광이 사라져 땅으로 추락했고, 훼멸명왕이 움켜쥐자마자 금빛과 함께 바로 사라졌다.

    경도설검이 사라지자 사계검진도 무너졌다. 수많은 금빛 검이 번개처럼 날아와 사계검진을 완전히 흩어버리더니 계속해서 하늘을 뒤덮으며 거청천에게로 날아갔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거청천의 두 신발이 하나는 바람, 하나는 불을 뿜어내더니 두 개의 바퀴가 되어 빠르게 회전했다. 다음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옅은 금색 벽돌 옆에 나타나 금광검진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발의 풍화 바퀴도 사라져서 맨발이 드러났다.

    “풍화윤화(風火輪靴)?”

    심협의 눈에 의아함이 스쳐갔다.

    <천기권>에서 저 언갑에 관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풍화의 두 바퀴를 만들어내 순간이동과 같은 속도를 발휘한다고 했다. 다만 풍화윤화를 만드는 데에는 귀한 재료들이 필요했고, 일회성 언갑일 뿐이라 효율성이 떨어졌다. 진정으로 목숨이 지척에 달린 순간이 아니면 쓰지 않을 저런 언갑까지 사용한 것을 보니 거청천도 재주가 바닥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심협은 바로 돌아서 거청천을 쫓았고, 검광 검진도 방향을 바꿔 수많은 금빛의 검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거청천은 그대로 금색 벽돌 구역으로 들어갔고, 몸 아래서 회백색 광망이 뿜어져 나오면서 중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빠르게 밖으로 달아났다.

    “이런, 거청천이 회색 탑의 금제 일부를 연화했구나! 도망치게 둬서는 안 돼!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큰일 난다.”

    화령자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심협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훼멸명왕에서 나오더니 직접 거청천을 쫓았다.

    옅은 금색 벽돌은 이미 거청천과 무라 등이 대부분 부순 터라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 위를 지날 수 있었다.

    암영전표와 현화신구, 개명천수 역시 황동맹호를 버려두고 본체로 변하여 이들을 쫓았다. 셋 모두 영수인 만큼 본체의 육체가 더 강했고, 그 속도는 심협보다도 느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과 심협의 속도는 거청천에 비하면 한참 느렸다. 거청천은 확실히 회색 탑 일부를 연화해 대현금자극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기에 금세 금색 벽돌 구역을 지나 천언궁 입구에 도착했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심협 등을 노려보고는 바로 날아서 도망갔다.

    그에게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회색 탑을 연화할 것이고, 그리되면 누구도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한데 그때, 짙은 검은색 음파가 갑자기 땅에서 뿜어져 나와서 거청천의 몸을 강타했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용의 포효에 허공마저 흔들렸다.

    음파 공격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거청천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추락했다. 그는 곧바로 몸을 가누고는 손을 들어 음파가 나오는 곳을 공격하려 했다.

    휙!

    음파 속에서 검은 빛이 스쳐 지나갔고, 검은색 창이 번개처럼 나타났다. 가느다란 창끝이 어둠 속의 영혼을 부르는 손처럼 곧장 거청천의 목을 향해 돌진했다. 이 창은 암야전창이었다.

    안색이 변한 거청천은 입에서 금색의 원형 방패를 꺼내 암야전창을 막았고, 두 팔을 몸 앞에 교차시키고는 손에서 금빛을 강하게 뿜어냈다. 금빛이 두 개의 거대한 금빛 칼날로 변했는데, 칼날에는 금색 언문이 가득했다.

    암야전창이 금빛 원형 방패를 찌르자 푹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방패와 금색의 거대한 칼날은 종이처럼 찢겨나갔고, 거청천의 가슴마저 관통돼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는 그대로 날아가 천언궁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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