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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76화 (976/1,214)

976화. 말로

곤륜경과 핏빛 조도가 뿜어낸 신통은 모두 흡수의 능력이 있었기에 서로 치고받았고, 한동안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심협은 한 손을 휘둘러서 훼멸명왕 언갑을 소환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명왕의 두 눈이 뇌광으로 번쩍이더니 굵고 강한 보라색 뇌전이 뿜어져 나가 정확히 무라와 핏빛 소용돌이만을 공격했다.

동시에 개명천수도 날아올라 커다란 푸른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바람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며 수많은 푸른 빛의 깃털이 뿜어져 나갔다. 빛의 깃털에는 모두 날카로운 기운이 담겨 있었는데, 금광검진의 검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 빛의 깃털이 무라와 핏빛 소용돌이를 향해 폭우처럼 쏟아졌다.

한편, 유천 무리를 비롯한 나머지는 멀리 떨어져서 조용히 이 싸움을 지켜봤고, 끼어들 의사는 전혀 없어 보였다.

무라는 심협과 개명천수의 공격에 대응하지 않고 핏빛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훼멸명왕을 더욱 강하게 발동했고, 한층 강력해진 보라색 뇌전이 핏빛 소용돌이를 공격해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그 틈에 곤륜경에서 나온 흑암의 영역은 위세가 더 강해져 핏빛 소용돌이를 금방이라도 삼킬 것 같았다.

한데 이때, 핏빛 소용돌이가 갑자기 천둥처럼 울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몇 배로 커졌다. 이어서 날카로운 혈광이 쏟아져 나와 흑암의 영역을 단숨에 잘게 부쉈다.

이를 본 섭채주는 연달아 결인하여 흑암의 영역을 다시 합치려 했다.

하지만 핏빛 조도에서 뿜어져 나온 십방마옥도의 위세가 대폭 증가하면서 가히 절대적이라 할 만한 흡수의 힘이 뿜어져 나와 흩어진 흑암의 영역, 훼멸뇌전, 심지어 빛의 깃털까지 전부 흡수해버렸다.

섭채주와 개명천수는 모두 놀라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심협, 목숨을 내놓아라! 하하하!”

피에 굶주린 무라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하늘 전체를 뒤덮는 혈운 같은 핏빛 소용돌이가 몰려왔다.

심협이 침착하게 손을 휘두르자 훼멸명왕이 들고 있던 뇌신추가 사라지고 수십 장 길이의 금색의 대검이 허공에 나타났다. 금색 번개가 감도는 참마신검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마기를 억누를 수 있는 참마신검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훼멸명왕이 참마신검을 움켜쥐자 검의 금색 뇌광이 몇 배나 커져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참마신검! 그래서 내 불사환령체를 벨 수 있었던 것이로군! 허나 나는 불사환령결을 이미 대성했고 내게는 십방마옥도까지 있다. 누구도 여기서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

무라가 차갑게 비웃고는 핏빛 소용돌이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이때 심협은 빠르게 다가오는 혈운을 보며 참마신검을 발동하려 했다.

그 순간, 소용돌이 안에서 무라의 웃음이 뚝 그치더니 달려오던 핏빛 소용돌이도 갑자기 멈췄고, 이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소용돌이 곳곳에서 거대한 거품이 생기며 터져 나갔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심협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훼멸명왕을 조종하여 참마신검을 휘둘렀다.

은하수 같은 금색 검광이 핏빛 소용돌이를 베자 대량의 마기가 소멸했고, 핏빛 소용돌이는 절반으로 찢겨 나갔다. 마치 화약통과도 같았던 소용돌이는 참마검에 베이자 곧바로 거세게 폭발했다.

핏빛 기운이 강하게 휘몰아쳤고, 공간마저 끊임없이 뒤틀렸다.

훼멸명왕은 천존급에 가까운 언갑이었기에 아무런 피해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기운에 한참을 밀려났다.

작은 회색 탑도 이 기운에 휩쓸려 이를 감싼 금제가 전부 사라졌다.

거청천과 암영전표, 현화신구, 개명천수는 일순 당황했으나, 곧장 정신을 차리고는 빛줄기가 되어 탑으로 달려들었다.

심협은 이에 신경 쓰지 않고 흩어지는 혈광을 지켜봤고, 섭채주 역시 말없이 그의 곁을 지켰다.

“심협, 저들을 봐라!”

화령자의 말에 심협은 옆을 돌아보고는 의문이 들었다. 유천을 비롯한 세 구의 해골은 회색 탑을 내버려둔 채 조용히 서 있었던 것이다. 세 해골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혈광이 서로 연결된 것을 보니 어떤 신통을 시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십방마옥도의 이변은 저들 때문이었나?’

심협은 그렇게 추측했다.

잠시 후, 전방의 혈광이 전부 사라지자 무라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경악한 기색이었고, 팔과 얼굴 등의 근육이 크게 쪼그라든 상태였으며, 지금도 계속 쪼그라들고 있었다. 오른손에 있던 핏빛 조도는 지금 실제 같은 혈광을 강하게 뿜어내고 있었는데, 마치 피에 굶주린 악마처럼 그녀의 기혈과 정기를 빨아먹었다.

심협은 표정이 돌변했다. 이런 상황은 이전에 흑연미굴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그 핏빛 뼈 지팡이가 저렇게 귀 장로와 혈고 선조의 정기를 모두 흡수해버렸던 것이다.

무라는 저 마기를 잘 다루는 것처럼 보였고, 이런 결말을 맞게 된 것은 의외였다. 허나 그녀는 자신의 적이니 심협으로서는 도울 이유가 없었다.

“삼재마영진(三才魔靈陣)…… 유천, 네놈이 나를…….”

무라가 유천 등의 혈광을 돌아보며 원한이 사무친 목소리로 읊조렸다. 역시 이 변고는 저 셋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흥! 감히 치우님의 중보를 가로채려 들다니 당연한 말로다!”

유천이 차갑게 비웃고는 전력으로 혈광 법진을 발동했다.

핏빛 조도의 흡수력이 더욱 강해져 무라의 몸은 더욱 빨리 말라갔다. 금방 마른 시체로 변할 것 같았다.

그때, 심협이 눈을 반짝이더니 섭채주와 화령자에게 동시에 전음을 보냈다.

“또 귀찮은 일을 시키는 것이냐?”

화령자는 투덜거렸고, 섭채주는 두말없이 금색 대궁을 꺼내 금빛의 화살을 매기더니 무라의 오른팔에 쐈다.

화살이 꽂힌 순간 무라의 팔은 폭발했고, 핏빛 조도는 떨어져 나갔다. 무라 역시 한쪽으로 훌훌 날아갔다.

그 순간, 어두운 인영이 무라 앞에 나타났다. 바로 귀등상인이었다. 그는 붉은 광망으로 무라의 몸을 휘감았다.

무라는 현재 본명원기가 대부분 흡수돼 움직일 수도 없었기에 그대로 붉은색 광망에 휘감겼다.

유천 등은 갑작스런 변고에 깜짝 놀라 서둘러 핏빛 조도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세 사람 주위의 허공에서 파동이 일더니 수많은 하얀 빛이 나타나 혼원무극진이 되어 이들을 가뒀다.

훼멸명왕이 참마신검을 거세게 휘두르자 광룡 같은 금색 검광이 번개처럼 날아가 세 사람을 베었다.

천존급에 가까운 훼멸명왕은 언갑 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처럼 법보도 발동할 수 있었다. 그 강력한 법력을 사용했으니 참마신검의 위력은 심협이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러나 번개처럼 날아온 금색 검광보다 한 발 앞서 노란 빛이 스쳐 지나갔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한쪽 팔이 날아갔지만, 노란색 둔광도 바로 사라지면서 유천 등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훼멸명왕의 멸세쌍목(滅世雙目)을 발동하여 주위를 둘러봤다.

언갑의 두 눈에서 보랏빛이 번쩍이더니 굵은 보라색 뇌전이 뿜어져 나와 멀지 않은 곳의 허공을 비췄다.

그곳에 빛이 번쩍이더니 세 구의 해골이 나타났는데, 유천의 왼팔은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참마신검은 마족과 상극이어서 유천은 왼팔뿐만 아니라 왼쪽 절반의 몸에도 균열이 생겨서 붕괴 직전 같았다.

하지만 유천은 그런 상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라색 뇌전도 무시한 채 주문을 읊었다.

홍굴과 금수는 그 앞을 막아서더니 수많은 부령린화가 섞여 있는 대량의 검은 기운을 입에서 내뿜어서 날아오는 보라색 뇌전을 막아냈다.

콰쾅!

굉음이 울려 퍼졌고, 검은 기운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진동했지만, 끝까지 부서지지 않고 보라색 뇌전을 막아냈다.

유천의 몸에서 용솟음치며 나온 혈광이 한곳에 모여들어 핏빛 법진이 만들어졌다.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던 핏빛 조도에서 갑자기 혈광이 번득이더니 유천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그때, 금색 보검, 참마신검이 번개처럼 허공을 갈랐다.

챙!

핏빛 조도는 다시 땅으로 떨어졌고, 참마신검은 바로 쫓아가 조도 옆 땅에 박혔다.

이와 동시에 검에서 금색 뇌광이 섞인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금색 광막이 되어 핏빛 조도를 뒤덮었다. 이전에 천언궁 주인이 조도를 가둬놨던 것과 비슷한 수법이었으나, 참마신검은 이미 완벽해진 터라 광막이 훨씬 더 두꺼웠다.

핏빛 조도는 땅에 박힌 뒤 바로 살아 있는 것처럼 튀어올라 다시 유천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광막에 부딪혔다.

콰쾅!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몇 줄기 헌원신광이 광막에 나타나 핏빛 조도를 튕겨냈다.

표정이 돌변한 유천이 다시 뭔가를 하려는 순간, 열 개의 검광이 그들 머리 위에 나타나더니 빠르게 회전하여 순식간에 검광 검진을 이루었다.

“안 돼!”

유천은 입에서 부령린화가 담긴 검은 기운을 뱉어냈고, 세 해골 주위의 검은 기운이 몇 배 더 짙어졌다.

홍굴과 금수도 양손을 쉬지 않고 결인하여 린화의 검은 기운을 반원 형태의 보호막으로 만들었다.

세 해골이 보호막을 만들기 무섭게 수많은 금빛 검이 하늘에서 내려와 질풍처럼 반원의 보호막을 공격했다.

금빛 검진은 훼멸명왕의 뇌전 공격보다 강력해 반원의 보호막은 크게 흔들렸고, 대량의 검은 기운이 빛의 검에 베이고 흩어져 얼마 못 버틸 것 같았다.

“어서 마조의 영노(靈顱)을 쓰게나!”

유천이 홍굴을 돌아보자 홍굴이 핏빛 두개골을 꺼내더니 단번에 바스러뜨렸다.

혈광이 반구 보호막에 흘러 들어가자 보호막은 곧장 흑홍색으로 변했고, 위능 또한 더 강해져 금광검진을 막아냈다. 심지어 점점 두꺼워져서 훼손되었던 부분마저 원래대로 회복할 기미를 보였다.

이를 본 심협이 금광검진을 결인했다. 그러자 허공에 있던 열 개의 검륜이 동시에 불꽃을 뿜어냈고, 빛의 검에 불꽃이 타오르면서 위력이 더 강력해져 다시 흑홍색 보호막을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다만 금광검진을 극한까지 발동하느라 법력 소모가 커져서 심협의 얼굴은 매우 창백해졌다.

그는 서둘러 선정의 영력을 흡수하는 동시에 두 개의 회복 단약을 먹고 연화했다. 그럼에도 부족했는지 법력은 머지않아 바닥을 보일 듯했다.

그때, 훼멸명왕의 조종실에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섭채주가 튀어나왔다.

“채주? 어떻게 들어왔어? 암영둔(暗影遁)을 익힌 거야?”

심협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까 곤륜경에서 깨달았어요.”

섭채주는 얼른 대답하더니 재빨리 주문을 읊어 보도중생 신통을 시전했다.

초록색 빛이 심협의 몸으로 들어가자 주위의 천지영기가 모여들어 심협의 법력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표정이 한결 가벼워진 심협은 섭채주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진에 법력을 주입했다. 이에 금광검진의 위력이 더 강해지면서 수많은 빛의 검이 더욱 날카롭고 강한 금색 검사로 변해 배나 강력하게 흑홍색의 보호막을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섭채주는 심협 뒤에 서서 계속 보도중생으로 법력을 회복시켰다.

보타산의 소종주로 명성이 자자하고 만인이 우러러보고 있지만,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심협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라면 아무리 무서운 적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흑홍색 보호막 안의 유천 등은 놀란 기색 없이 양손을 서로 맞잡고 빠르게 주문을 읊었다. 세 줄기의 두꺼운 검은 기운이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와 수많은 부문을 번쩍이며 흑홍색 보호막으로 주입됐다. 그러자 흑홍색 보호막에 꽃잎 같은 부문이 떠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색 법진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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