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4화. 위기일발

금수는 다시 축지척을 발동하여 피하려 했으나, 개명천수가 갑자기 낮게 내지른 포효에 음파가 퍼져 나와 움직임을 방해하여 제때 피할 수 없었다.

“흥, 감히!”

금수가 버럭 화를 냈는데, 여자 목소리였다.

두 자루 기이하게 생긴 장검으로 검은 뇌검을 막자 챙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수와 검은색 연시는 한 걸음씩 물러섰는데, 연시는 금수의 장검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멀쩡해 보였다.

반대로 금수의 눈에서는 불꽃이 흔들렸고, 낮게 신음했다.

이 연시는 심협이 태을 수사의 시체를 정련하여 만든 것으로, 수중의 검은색 대검은 1층의 진선 후기 언갑이 들고 있던 음뢰의 검이었다. 금수의 검은색 기검(奇劍)에도 음뢰의 힘이 담겨 있지만, 품질은 연시의 음뢰대검에 미치지 못했다.

검은색 연시가 기세를 몰아 두 자루 음뢰대검을 폭풍우처럼 휘둘러 금수를 휘몰아쳤다. 검의 허상과 강풍이 교차하자 근처의 단단하던 바닥에도 검흔이 생겨났다.

개명천수도 음파를 이용해 금수가 축지척로 도망가는 것을 방해했다.

금수는 어쩔 수 없이 응전했지만, 검은색 연시와 개명천수의 협공에 점점 뒤로 밀려났다.

심협은 그 틈에 다시 핏빛 조도에 다가갔고, 소요경을 발동하여 붉은 빛줄기로 부러진 금색 칼날을 휘감았다.

이를 본 금수의 눈에서 금색 불꽃이 커졌다. 입에서는 두 줄기의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와 커다랗고 어두운 입으로 변하여 연시가 든 두 자루 음뢰대검을 덥석 물었다.

그러나 연시는 용맹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낮은 포효를 내지르자 음뢰대검에서 날카로운 이빨 같은 음뢰가 뿜어져 나와 금수를 공격했다.

하지만 커다란 입안에서 갑자기 강한 흡입력이 흘러나와 검은색 음뢰를 전부 빨아들였다.

개명천수가 푸른 우검에서 뿜어져 나온 수많은 푸른 빛의 깃털로 공격했으나, 금수는 개의치 않고 두 자루 검은색 기검을 던졌다. 이어서 유성처럼 개명천수를 향해 날아갔다.

개명천수는 검은색 기검에 당해본 적이 있기에 서둘러 몸을 피했다.

그사이 금수도 수많은 푸른 빛의 날개에 가격당했고, 해골의 몸은 절반이나 부서져 얼마 남지 않은 뼈로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그럼에도 금수는 자신의 몸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른손에서 짙은 검은색 빛을 발하더니 바닥을 내리쳤다.

검은 빛이 땅으로 들어가자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색 법진이 만들어졌고, 수많은 검은색 부문이 휘날리며 그윽한 광망을 발했다.

금수가 다른 손으로 무언가를 꺼냈다. 혈홍색 두개골로, 유천이 문의 금제를 파훼할 때 꺼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치우의 마기를 뿜어냈다.

두개골이 부서지면서 변한 혈광이 검은 법진에 흘러 들어가자 법진 안의 영문이 흑홍색으로 변했고, 매우 빠르게 퍼져 갔다. 그러자 현금의 벽돌이 흑홍색 진문으로 뒤덮였다.

치우의 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흑홍색 진문은 현금 벽돌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그 일부를 덮어버리기까지 했다.

거청천과 유천, 무라 등은 몸이 가벼워졌다. 비록 여전히 평소보다는 무거웠지만, 날 수 있을 정도는 되었기에 모두 안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심협은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저지하려 하기보다는 법력을 성난 파도처럼 소요경에 주입해 전력으로 부러진 금색 칼날을 집어넣으려 했다.

작은 회색 탑과 핏빛 조도가 무슨 보물이든 그는 상관없었다. 그저 이 부러진 금색 칼날만 얻을 수 있다면 충분했다.

부러진 칼날이 강하게 흔들리더니 암홍색 광막으로 사라지려던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아래의 금색 뇌막(雷膜)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헌원신뢰가 빠르게 움직여 소요경의 흡수를 막은 것이다.

심협은 욕이 절로 나왔다. 부러진 금색 칼날에도 역시나 금제가 설치되어 있어 금색 뇌막을 부숴야만 이 칼날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안 그래도 거리가 멀지 않았던 유천 등이 벌써 현금 벽돌로 뒤덮인 영역으로 들어온 후였다.

거청천과 암영전표, 현화신구는 바로 작은 회색 탑으로 달려들었고, 무라와 유천, 홍굴은 핏빛 조도로 향했다.

심협은 다급히 번천인을 꺼내 전력을 다해 발동했다.

거대해진 대인의 영문이 광망을 뿜어내자 엄청난 영압이 담긴 암홍색 빛이 강하게 금색 뇌막으로 떨어졌다.

“멈춰라!”

무라 등은 심협이 핏빛 조도를 부수려는 줄 알고 기겁해 외쳤다. 핏빛 조도가 그리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번천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깜짝 놀란 세 사람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법보를 발동했다.

암홍색 전고(戰鼓)와 푸른 전기(戰旗), 붉은 여의(如意)가 번천인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그때, 클클거리는 괴이한 웃음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지더니 노란색 무언가가 날아서 곧장 심협 옆에 나타났다. 천살시왕이 손에 노란색 부채를 들고 있었는데, 바로 염열의 무진선이었다.

천살시왕이 무진선을 세 법보를 향해 크게 휘두르자 휘몰아친 황색의 폭풍이 눈 깜짝할 사이에 10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바람기둥으로 변했다. 이 바람기둥은 단숨에 세 개의 법보를 휩쓸었는데 그 위력은 실로 놀라워 천지의 색이 변했고, 수많은 바람의 칼날에 허공이 갈라졌다. 세 개의 법보는 순식간에 휩쓸려 흔들리더니 바람기둥을 따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번천인은 아무런 방해 없이 계속 번개처럼 날아가 금색 뇌막을 내리쳤다.

콰콰쾅!

금색 보호막이 부서지고 폭발하면서 광풍 같은 형홍색 마기가 뿜어져 나오자 번천인과 무진의 바람기둥은 밀려났다. 그 안에 있던 구려전고 등의 법보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어 부러진 금색 칼날도 밖으로 튕겨나갔다.

심협은 추운축전화에서 뇌광을 뿜어내며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양손에서 금빛을 쏘아 보내 부러진 칼날을 뒤덮었다.

다른 자들은 심협이 예상과 달리 반쪽짜리 금색 칼날로 향하자 의아했지만, 이내 핏빛 조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눈은 광기로 가득했다.

심협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부러진 금색 칼날을 잡았다.

칼날이 손에 들어오자 단전 안의 참마검이 바로 격렬하게 떨리면서 강렬한 공명을 일으켰다.

‘역시 참마검의 나머지 절반이었어!’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입에서 금빛을 쏘아 보내 부러진 칼날을 단전에 넣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열한 자루의 순양검은 이 칼날 주위를 맴돌며 경계했다.

단전 안의 참마검에서 금빛이 강하게 번득이더니 부러진 칼날을 향해 날아갔다.

부러진 칼날도 참마검을 향해 날아갔고, 둘은 챙 소리와 함께 부러진 부분이 완벽하게 합쳐져 온전한 금색 신검이 되었다.

콰쾅!

참마신검(斬魔神劍)에서 갑자기 찬란한 금빛이 솟구쳤는데 순양의 힘과 매우 비슷했으나 그보다 백 배는 더 순수한 작열의 힘을 뿜어냈다. 이 기운은 곧장 심협의 몸을 한 바퀴 돌았다.

이 영력에 담긴 금색 뇌전은 헌원신뢰였는데, 이전보다 몇 배는 강해져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금색 뇌전이 번득였다.

심협 온몸의 경맥에 기생하던 마기가 썩은 나무처럼 순식간에 절반이나 부서져 사라지면서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와 동시에 방대한 정보가 심협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는데, 황제내경(黃帝內經)이라는 공법이었다.

이 공법은 매우 정교하여 황정경이나 치우무결과 비슷한 정도였는데, 당당한 정도(正道)의 모범이라 할 만했다. 다만 이 공법은 회복 전문으로, 대성할 수만 있다면 죽지 않는 몸이 될 수도 있다.

‘놀라운 공법이다!’

심협은 감탄했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수련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우선은 여기서 빠져나가야 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대전 안에서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작은 회색 탑 쪽은 섭채주와 암영전표, 현화신구, 거청천이 탑을 둘러싼 상황이었다. 개명천수도 금수를 버리고 가담해 있었다.

거청천과 암영전표, 현화신구는 원수를 만난 것처럼 죽기 살기로 공격을 퍼부었으나 손발이 맞지 않은 반면, 섭채주와 개명천수는 협공이 잘 이루어져 여유 있게 맞서는 중이었다.

핏빛 조도 쪽은 금색 뇌막이 부서진 이후로 무라와 유천, 홍굴이 달려들고 있었다.

세 사람 중 가장 강한 무라가 단숨에 조도를 손에 넣은 뒤 10여 장 밖으로 물러나 고개를 들고 미친 듯이 웃어댔다.

“무라님, 마조님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회수해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니 바로 창궁 비경에서 나가시죠. 제게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있으니 우리와 함께 가시면 됩니다.”

유천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다급히 말했다.

“창궁 비경을 나가자고? 이곳에는 수많은 선인의 무덤이 있고 보물이 넘쳐난다. 이제 치우의 뼈와 피로 만든 본명성기(聖器)를 얻었으니 이곳의 모든 보물을 차지할 수 있는데 어찌 너희와 함께 떠나야 하느냐? 하하하!”

무라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

유천이 기겁하며 화를 냈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흠칫 놀랐다.

“본명성기?”

둘을 지켜본 심협은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핏빛 조도는 금뇌의 금제가 사라지면서 기운이 완전히 드러나 마기가 하늘을 찔렀다.

이 정도 마기는 흑연미굴의 핏빛 뼈 지팡이와 동해 용궁의 핏빛 피리에서만 느껴본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두 개의 마기도 치우의 본명성기였단 말인가?’

심협은 참마검의 나머지 칼날을 얻었으니 우선은 지켜볼 생각이었지만, 핏빛 조도가 치우와 관련이 있다면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무라님, 그 말씀은 마조님을 배신하겠다는 겁니까?”

“웃기는 말이로군. 축록 대전에서 치우가 먼저 나를 버렸다. 한데 내가 왜 그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지?”

무라가 차갑게 비웃고는 검은 빛을 발하는 오른손으로 핏빛 조도를 쥐었다.

조도의 혈광이 파도처럼 무라의 몸으로 주입되자 그녀의 몸이 크게 떨렸고, 체내의 마기가 눈에 보일 정도의 팽창했다.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기운도 빠르게 강해져갔다.

그녀의 피부가 점점 혈홍색으로 물들더니 또 갑자기 빠르게 옅어져 마치 사라질 것만 같았다.

“심협, 어서 무라를 막아라! 무라는 지금 저 조도 안의 마기를 이용하여 불사환영결을 수련하고 있다. 만약 저 공법의 수련이 대성한다면 이곳의 누구도 그녀를 상대할 수 없다!”

화령자의 갑작스러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협이 두 발에서 보라색 뇌전을 번쩍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는 무라 옆에 나타나 열한 자루의 비검을 소환해 수많은 검기로 상대를 베었다.

하지만 이 검기들은 무라의 몸을 허상처럼 관통했을 뿐 어떤 피해도 줄 수 없었다.

유천과 홍굴도 금색 전기와 적홍색 여의, 두 마보를 꺼내 초록빛 한광(寒光)과 적홍의 마화로 무라를 공격했지만, 역시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역시 치우의 본명성기로구나. 불사환영결을 이 정도까지 정진시켜주다니. 그런 공격으로는 내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한다! 하하하!”

무라는 크게 웃었다.

눈가의 광망이 흔들린 유천과 홍굴은 두려운 듯 각자의 법보를 소환했다.

심협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다시 수많은 검기를 발동하여 무라를 공격했다.

“심협, 넌 쉽게 포기하지 않을 줄 알았다. 허나 그런 공격은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왜? 네 동료한테 혼원무극진을 발동해서 환령지체를 막을 수 있는지 시도해보라고 하지?”

무라는 차갑게 웃으며 피하지 않고 검기에 몸을 맡겼다. 역시나 검기들은 그녀의 몸을 그대로 통과했다.

무라가 다시 비웃으려 할 때, 하늘 가득한 검기에서 금색 뇌전이 감도는 금색 검광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녀의 목을 베기 위해 번개처럼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