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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72화 (972/1,214)
  • 972화. 좋지 않은 상태

    유천 등은 씩 웃더니 심협 일행을 내버려둔 채 천언궁 대문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 땅에서 하늘을 찌르는 하얀 빛이 솟구치더니 하얀색 대진이 네 사람을 뒤덮었다. 곡현성반의 가장 강한 금고법진, 혼원무극진(混元無極陣)이었다.

    네 사람은 마치 진흙에 빠진 것처럼 움직이기가 매우 힘들었고, 날아가던 몸도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금고법진!”

    유천은 이 대진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알지 못했지만, 곧바로 입을 벌려 몸 주위의 하얀색 대진을 덥석 물었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두 줄기 검은 마광이 거대한 입처럼 하얀 대진을 물어뜯자 찌익 소리와 함께 혼원무극대진의 진문이 뜯겨 나갔다.

    홍굴과 금수도 똑같이 진문을 물어뜯었다.

    거청천은 세 사람 같은 신통이 없었기에 크게 소매를 휘둘렀다.

    언문으로 가득한 두 개의 적홍색 단창이 날아가 강하게 폭발하자 두 개의 광포한 불꽃으로 변하여 혼원무극진에 떨어졌다.

    두 개의 불꽃은 맹렬해 보였지만 효과는 세 해골의 공격보다는 못해서 진문을 조금 흔들 뿐이었다.

    그럼에도 혼원무극진은 절반이나 부서졌고, 휘청거리며 언제든 무너질 것 같았다.

    유천 등이 다시 맹공을 퍼붓자 혼원무극진은 마침내 완전히 부서졌고, 유천 등은 금고에서 벗어나 곧장 다시 천언궁 대문으로 향했다.

    대문의 혈광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고, 마지막 한 겹의 태현금제는 이미 불에 타서 사라졌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금빛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기대감에 가득한 눈을 빛내며 유천은 검은 빛으로 변하여 서서히 넓어지는 문 틈을 향해 날아갔다. 다른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바깥의 혈광 속에서 심협의 온몸이 갑자기 금빛으로 강하게 번쩍이더니 땅에서 뛰어올랐다. 움직임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유천 등이 곧 대전 안으로 들어갈 것 같자 다급해진 그는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 빛이 개명천수와 섭채주를 소요경 안으로 데려갔다.

    동시에 그는 양팔에서 금색 뇌광을 발해 발의 추운축전화에 주입했다.

    콰쾅!

    대량의 보라색 뇌전이 그의 몸을 뒤덮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져 대전을 향해 날아갔다.

    다섯 명은 거의 동시에 문으로 들어갔다.

    * * *

    그곳은 대청 같은 곳으로, 바닥은 옅은 금색이었다. 대청 양쪽에는 의자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었는데, 그 끝에는 길이가 3장 정도 되는 검은색 탁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들은 평범한 자단(紫檀) 재질이라 눈길이 가지 않았지만, 마치 만년묵옥(萬年墨玉)으로 만든 듯 영롱한 검은색으로 빛나는 탁자는 예사롭지 않 았다. 한눈에 봐도 보물이 분명했다.

    탁자는 하얀 빛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광막 너머로 두 개의 물건이 보였다. 하나는 작은 회색 탑이었고 다른 하나는 핏빛 조도(爪刀)였다.

    5층짜리 작은 회색 탑은 마치 천언궁을 축소해놓은 듯 똑같이 생겼고, 영력 파동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조도는 눈부신 혈광을 발하고 있어 더 눈에 띄었고, 이 보물의 상공에 부러진 금색 칼날이 있었다. 보검의 일부 같았다.

    부러진 칼날에서 흘러나온 실낱같은 금빛이 광막처럼 핏빛 조도를 뒤덮고 있었다. 금색 전류가 어렴풋이 흐르며 전력을 다해 핏빛 조도를 봉인하고 있었지만, 강력한 마기 파동이 그대로 느껴졌다.

    다섯 명은 대전 안을 쭉 둘러보고는 각자 목표물을 정했다.

    거청천의 눈은 회색 탑에 고정되었고, 유천 등은 핏빛 조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협의 시선도 핏빛 조도 쪽을 향했지만, 그가 보는 것은 그 위에 떠 있는 부러진 금색 칼날이었다.

    ‘저 금색 전류는 헌원신뢰 같고 기운과 형태는…… 설마 참마검의 부러진 칼날인가?’

    그는 눈을 번쩍 떴다.

    부러진 참마검은 그가 매우 아끼는 보물이었다. 이 검은 마기와 치우의 마기를 억제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힘이 부족한 터라 마기가 강해질 때면 역부족이었다.

    ‘만약 저것이 진짜로 참마검의 나머지 칼날이라면? 두 개를 합치면 상고의 참마신검과 같지는 않더라도 위력은 크게 증가하겠지.’

    쾅!

    다섯 사람은 다섯 개의 유광이 되어 탁자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옅은 금색 바닥에서 상공으로 날아오르자마자 이들은 갑자기 몸이 무거워졌다. 마치 만 근의 거대한 산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쿵!

    그들은 모두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특히 유천 등은 끔찍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갈비뼈 몇 대가 부러졌다. 심협과 거청천은 안색이 창백해졌는데, 거청천은 입가에 피가 흐르기도 했다.

    “중력(重力) 금제!”

    심협은 전력을 다해 황정경을 운공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하지만 이 중력금제는 너무도 강해서 그의 강력한 육신으로도 전신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괜찮은 편이었다. 거청천도 일어나려 했지만, 결국은 다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유천 등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는데, 해골의 몸으로는 앉을 수도 없었기에 바닥에 딱 붙은 채 발버둥 치기에 바빴다.

    네 사람은 법력을 운공하여 둔술로 벗어나려 했지만, 주위의 중력금제가 술법을 교란한 탓에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심협은 네 사람을 무시한 채 전력으로 황정경을 운공했다. 피부에 용의 비늘이 떠올랐다. 이어서 두 팔은 용의 팔로, 두 다리는 코끼리 다리로 바뀌어갔다.

    이제 심협은 충분히 중력금제를 버텨낼 수 있었고, 천천히 탁자로 다가갔다.

    거청천 등은 이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랐지만, 중력금제에 눌려 있던 탓에 감히 심협을 공격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유천 또한 분노가 치밀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한 걸음 걷는 것도 더없이 힘들었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고도 심협은 금방 중력금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심협, 섭채주와 개명천수의 상태가 좋지 않다. 어서 들어와 봐라.”

    갑자기 들려온 화령자의 목소리에 심협은 서둘러 신식을 소요경 안으로 넣었다.

    섭채주와 개명천수는 소요경 안으로 옮겨졌지만 여전히 움직임을 회복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음한의 기운이 그들의 체내를 헤집고 다니면서 점점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 갔다.

    화령자가 두 사람 주위를 맴돌며 양손으로 결인하고 술법을 시전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심협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체내의 검은색 씨앗이 이 음한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지만, 그가 제어할 수는 없었기에 공간을 넘어 흡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소한 두 사람과 직접 접촉해야 가능성이라도 생길 텐데,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때, 섭채주와 개명천수의 몸이 회색으로 빛나더니 매우 기이한 회색 반점이 떠올랐다.

    “이게 뭐지?”

    깜짝 놀란 심협의 분신이 소리를 질렀다.

    “아무래도 마독(魔毒) 같다. 어서 만독혼원주를 주어라.”

    심협은 망설임 없이 만독혼원주를 소요경 안으로 넣었다.

    화령자가 낮게 기합을 넣고는 곡현성반과 만독혼원주를 빨아들였다. 그러자 나반에서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녹색 법진을 만들더니 섭채주와 개명천수를 뒤덮었다.

    만독혼원주는 보라색 광채 위에 떠 있었는데, 녹화천보진(綠化天寶陣) 안에 녹아 들어가 두 사람 체내의 담긴 음랭의 기운을 해독하는 것을 도왔다.

    하지만 화령자가 아무리 대진을 발동해도 두 사람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회색 반점들은 점점 빠르게 커져서 금세 섭채주와 개명천수의 몸 절반에 번졌다.

    두 사람의 기운은 점점 약해져간 반면 음랭의 기운은 더욱 커져갔다.

    이를 지켜보던 심협은 곧장 마른 노인, 귀등상인으로 변해 바로 무릎을 꿇었다.

    유천과 거청천은 심협이 움직이지 않자 무언가 이상하게 여겼는데, 뒤이어 귀등상인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는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인지 몰라 깜짝 놀랐다.

    한편, 심협은 소요경 안에 나타나더니 섭채주의 어깨를 잡고는 오른손 법맥의 검은색 씨앗을 발동했다. 씨앗의 검은 뿌리가 조금씩 움직여 섭채주의 몸을 찌르자 그녀 체내에서 음랭의 기운이 갑자기 빠르게 흡수됐다. 이에 따라 몸의 반점도 함께 사라졌다.

    동시에 왼손으로는 개명천수의 어깨를 쥐자 마찬가지로 검은색 뿌리가 그의 몸을 찔렀다.

    두 사람 체내에 담긴 음랭의 기운이 완전히 빨려 들어가자 몸의 반점도 사라졌고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심협, 도대체 어떻게 두 사람을 치료한 거냐?”

    “나중에 말해줄게. 지금 대청에는 강력한 중력금제가 있으니 채주와 개명 도우는 잠시 여기 있어. 적당한 때 내가 꺼내줄게.”

    심협은 간략하게 설명하고는 바로 소요경을 나갔다.

    대청에서는 귀등상인의 몸이 반짝이더니 다시 심협으로 변했다.

    무서운 중력이 몸을 짓눌렀지만, 그는 바로 몸을 가누고는 뒤를 돌아봤다.

    대청 상황은 그대로여서 네 사람은 여전히 바닥에서 쓰러진 채 중력금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심협은 안도하고는 계속해서 대전 깊은 곳으로 향하려 했다.

    그때였다.

    쾅!

    굉음이 울리더니 대전의 문이 부서졌고, 세 사람이 들어섰다. 무라와 암영전표, 현화신구였다. 부상은 완치된 상태였고, 무라의 기운은 더 정진하여 다시 태을기에 도달해 있었다.

    세 사람은 대전을 살펴보더니 깜짝 놀랐다.

    거청천은 아군이 아닌 무라 등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지자 가슴이 철렁했다. 특히 작은 회색 탑을 보는 눈길은 더욱 초조해졌다.

    “무라님, 당신입니까?”

    유천이 무라를 보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무라의 등장에 놀랐던 심협은 유천이 그녀와 아는 사이라는 사실에 경계심이 더욱 커졌다.

    ‘무라는 창궁 비경에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상고의 마족이다. 그렇다면 유천이라는 저 해골도 상고 시기의 마두라는 건가?’

    그때, 무라가 의외라는 목소리로 답했다.

    “오, 유천 아닌가?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살아 있다니, 신기한 일이로구나.”

    “마조님께서 무라님이 과거 축록 전쟁에서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속 사람을 보내 찾으셨는데 여기서 만나다니, 정말 잘됐습니다. 지금 삼계가 혼란하니 마족이 다시 일어날 때입니다. 치우님과 일족이 당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천이 심협과 거청천을 힐끗 보더니 흥분된 말투로 무라에게 전음을 보냈다.

    “치우가 너희를 왜 보냈지? 저 조도를 가져오라고 보낸 건가? 마족에 언제 저런 보물이 생겼지?”

    무라는 유천의 말을 듣고도 감동한 기색 없이 탁자에 봉인된 핏빛 조도를 보고는 심드렁하게 물었다.

    “저건 마조님께서 오래전에 만드신 중보인데 교활한 인간족 수사가 훔쳐갔습니다. 마조님께서 저것을 회수해오라고 하셨습니다.”

    유천의 눈에서 초록색 불꽃이 조금 흔들렸다.

    “오, 그런가? 알겠다.”

    무라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표정을 봐서는 그 말을 믿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심협은 유천과 무라가 전음으로 대화하는 것을 바라봤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전진했다.

    심협이 점점 대전 깊은 곳의 탁자에 접근해가자 무라가 유천과의 대화를 멈추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하얀 빛이 빠르게 날아가 옅은 금색 바닥 상공으로 향했지만, 아무런 중량이 없는 빛줄기조차도 중력금제의 영향으로 터져 나가면서 바닥에 뿌려졌다. 이 빛줄기는 수많은 백색 잔광(殘光)이 되어 흩어졌다.

    무라는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 역시 육신의 힘은 그다지 강하지 않으니 금색 바닥에 들어서면 유천과 같은 꼴이 될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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