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70화 (970/1,214)
  • 970화. 불청객

    대전을 나온 세 사람은 바깥의 풍경이 다시 바뀌어 길이 어지러이 교차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현재 그들은 산봉우리 오른쪽 꼭대기에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죠?”

    섭채주의 물음에 심협은 먼 곳을 바라보며 자신이 남긴 검기를 감지함으로써 앞서 들렀던 곳들을 제외한 후 가장 가까운 곳을 택했다.

    “우선 저쪽으로 가자.”

    심협은 한쪽을 가리킨 후 앞장서서 걸으려 했다.

    허나 그는 이내 굳은 얼굴로 제자리에 멈춰 섰다.

    “왜 그래요?”

    섭채주와 개명천수는 영문도 모른 채 우선 멈춰서는 심협을 바라봤다.

    심협은 대답 대신 소매에서 소요경을 꺼내 하얀 빛의 문을 열었다. 곧이어 한 사람이 걸어 나왔는데, 바로 주철이었다.

    주철은 흐리멍덩했던 두 눈이 서서히 밝아지더니 얼굴에는 절박한 기색이 역력해졌고, 이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끊임없이 주위를 살폈다.

    “뭔가 느껴지시오?”

    “모르겠습니다. 다만 무언가 절 부르면서…… 어서 오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주철이 눈살을 찌푸렸는데,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말을 마친 그는 서둘러 걸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심협이 따라 붙으며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데, 어떤 목소리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머릿속에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반드시 가야만 합니다.”

    주철은 멈추지 않고 걸으며 말했다.

    그는 금세 작은 숲길을 벗어나 울창한 숲으로 접어들었다.

    “그쪽은 들어가면 안 됩니다! 한번 길을 잃으면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오!”

    개명천수가 심협을 바라보며 서둘러 말했으나,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머릿속의 목소리가 그리로 가라고 합니까?”

    “네, 이쪽입니다. 저에게 반드시 오라고 합니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갈 것이니 절 막지 마십시오. 그것이…… 절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철이 초조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무거운 얼굴로 머뭇거렸다.

    “무라의 소행일까요?”

    섭채주가 물었다.

    “그건 아닐 거야. 무라가 그를 조종하고 싶어도 신념을 소요경 안으로 넣을 수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이렇게 빙빙 돌려서 조종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심 도우, 잘 생각해야 합니다. 숲속에서 길을 잃으면 저들에게 선수를 빼앗겨서 진짜 천언궁을 못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는 법. 저는 따라가볼까 합니다.”

    심협이 생각을 정리한 뒤 그렇게 말하고는 더는 주철을 만류하지 않았다.

    심협이 결단을 내리자 다른 두 사람도 말없이 주철을 따라 숲으로 들어섰다.

    주철은 특정한 방향이나 목적지도 없는 것처럼 잠시 걷다가는 방향을 바꿨고, 또 수십 걸음을 걸은 뒤 방향을 바꿨다.

    세 사람은 그를 따라 한참이나 이리저리 숲길을 걸었지만,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숲속을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심 도우, 더는 위험합니다. 반나절 내내 돌고 돌아서 벌써 여섯 바퀴나 돌았습니다.”

    “저도 압니다. 주철은 정말로 빙빙 돌고만 있지요. 허나 이곳의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하셨군요. 계속 숲속이지만, 한 바퀴 돌 때마다 풍경은 달라졌습니다.”

    심협은 자신의 팔을 잡은 개명천수의 손을 슬쩍 밀어내고는 계속해서 주철을 쫓아갔다.

    “무슨 소리입니까?”

    “어! 그러고 보니까 주위의 숲이 갈수록 빼곡해지고 나무 색깔도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섭채주는 바로 심협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주위의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에 개명천수도 문득 크게 깨달았다.

    “그 말은…… 우리가 계속 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계속 길을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소. 지금 우리는 숲속에 있어서 바깥 풍경을 볼 수는 없지만, 사실 계속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거요. 내 추측대로라면 이미 산 중턱일 겁니다.”

    “산 중턱? 중턱에는 궁전이 없을 텐데…….”

    개명천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장 앞에서 걷던 주철이 갑자기 멈췄다.

    그를 따라가던 세 사람도 걸음을 멈췄다. 한데 주철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서 눈앞의 높게 솟은 나무만을 바라봤다.

    “여기는……?”

    개명천수는 어리둥절했고, 심협은 주철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손가락으로 노인 앞의 허공을 가볍게 찔렀다.

    우웅-!

    귓가에 기이한 소리가 울리더니 마치 거대한 천막이 갑자기 확 열리는 것처럼 눈앞이 밝아졌다. 이윽고 시야가 트이더니 숲은 사라지고 평탄하고 넓은 암벽이 펼쳐졌다.

    암벽은 산벽 한쪽 구석의 은폐된 곳이었는데, 그곳에도 궁전이 우뚝 서 있었다.

    주철이 앞장서서 그 궁전을 향해 걸었다.

    세 사람도 그를 따라 문으로 다가가 잠시 살펴보았는데, 궁전 문에서 금제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

    이 궁전은 그리 크지도 않고 외관도 특별할 것 없었다.

    “당신을 계속 부른 것이 이 대전 안에 있소?”

    심협이 물었지만, 주철은 대답하지 않고 곧장 대문으로 다가가더니, 망설임 없이 굳게 닫힌 하얀색 문으로 발을 들여놨다.

    문에서 하얀 빛이 물결처럼 출렁이며 피어올랐고, 주철은 마치 폭포를 뚫고 들어가듯 대문으로 들어간 발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심협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신서가 손에서 날아가더니 주철의 몸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아직 출렁이고 있는 하얀 빛의 대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주철과 달리 신서는 문에 닿자마자 하얀 빛에 튕겨 나갔다.

    섭채주가 얼른 손을 들어 부드러운 영광으로 신서를 받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녀는 신서가 다친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심협을 돌아보며 물었다.

    심협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잠시 후 검결을 맺으며 주문을 읊었다.

    아홉 자루의 순양검이 몸에서 번개처럼 날아가더니 빙글빙글 돌면서 하나로 합쳐져 10여 장 크기의 붉은 대검으로 변했다. 대검에서는 강력한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바로 구검합일 신통이었다.

    그가 바로 또 결인하자 대검에서 몇 종류의 뜨거운 천화가 피어오르더니 서로 합쳐지면서 대검은 산을 베고 바다를 가를 기세로 하얀 대문을 베었다.

    쾅!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졌고, 하늘을 찌르는 붉은 빛이 궁전의 대문으로 쏟아졌다.

    잠시 후, 붉은 빛이 사라졌다.

    활활 타오르는 대검은 대문의 하얀 빛에 가볍게 막혔고, 뒤쪽의 대문은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강력한 금제로군! 내 추측이 맞다면 여기가 아마 진짜 천언궁일 겁니다.”

    심협은 대검을 거두고는 실망한 기색 없이 천천히 말했다.

    “정말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주철 때문인가요?”

    “그냥 직감이랄까. 어쨌든 우선은 금제를 파훼해보자.”

    심협이 천천히 말했다.

    “좋아요. 다만 저 대문의 금제가 매우 단단해 구검합일로도 흠집조차 낼 수 없으니 아마 힘으로 깨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제가 곤륜경으로 시도해볼 테니 뒤로 물러서세요.”

    “곤륜경으로 금제도 파훼할 수 있는 거야?”

    “곤륜경에는 흡자(翕玆) 조무의 흑암의 힘이 깃들어 있어요. 흑암의 힘의 본질은 모든 것을 삼키는 무한한 인력(引力)이니까 금제에도 당연히 효과가 있을 거예요. 다만, 대문의 백광(白光) 금제는 현묘한데 제가 곤륜경을 다루는 데 미숙하니 성공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죠.”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개명천수와 옆으로 비켜섰다.

    섭채주가 주문을 읊조리며 곤륜경을 발동했다. 그러자 거울에서 갑자기 강렬한 검은빛이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대문 전체를 뒤덮었고, 흑암의 영역이 되어 소리 없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천언궁 대문 주위의 공간이 흑암의 영역에 이끌리는 것처럼 안으로 조금씩 파이기 시작했고, 대문의 백광 금제도 반짝였다. 하지만 약해질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별다른 효과가 없어 보였기에 심협은 소요경 안의 화령자를 불러 곡현성반으로 금제를 파훼해보려고 했다. 한데 개명천수의 귀가 살짝 움직이더니 갑자기 낭떠러지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누가 옵니다.”

    심협은 표정이 변하더니 섭채주를 힐끗 돌아보았다. 그녀는 아직 술법을 시전 중이었다.

    심협이 오화칠금선을 꺼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말발굽 소리가 울리더니 네 사람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거청천과 세 구의 검은 해골이었다.

    이들의 머리 위에는 1척 크기의 거대한 보라색 부적이 떠 있었고, 그 위에는 기이한 보라색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부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적에서 흘러나온 짙은 보랏빛이 광막이 되어 멸신원광을 막아주고 있었다.

    무라 일행일 것이라 생각했던 심협은 상대가 거청천임을 알고는 조금 놀랐다.

    “심협, 네놈이었구나!”

    거청천도 심협을 보고는 표정이 험악해지더니 초록색, 보라색, 노란색, 하얀색 네 개의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려 했다.

    지금 그는 실력이 크게 정진했고, 이전에 거청천과 싸워본 적이 있었기에 심협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는 바로 현황일기곤을 꺼내 싸울 준비를 했다.

    “두 분, 잠시만요.”

    검은 그림자가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나 양손에서 어두운 광막을 펼쳤다. 세 구의 해골 중 하나였다.

    “유천, 이게 뭐 하는 짓이오? 저놈들은 내 적이니 당신들의 적이기도 하오. 당장 죽여야 하오!”

    거청천이 호통을 쳤지만, 발은 멈춰 있었다.

    심협 역시 잠시 손을 멈췄다.

    “거 도우, 난 당신들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는지는 관심 없고, 보물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오. 공격할지 말지는 내가 판단하겠소!”

    유천이라 불린 해골이 담담하게 말했다.

    “맞아. 거 도우, 뭘 그리 흥분하시오?”

    홍굴이 유천 옆에 나타나더니 히죽 웃었다.

    심협을 바라보는 금수의 눈에서는 금색 불꽃이 조금 흔들렸는데, 그 역시 유천 옆으로 와서 섰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청천의 눈에는 분노가 서렸지만, 이를 악물고 네 자루의 대검을 거뒀다.

    심협은 이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현황일기곤을 내리고는 상대가 무슨 꿍꿍이인지 살펴보기로 했다.

    “귀하가 심 도우로군. 거 도우에게서 자주 들었네. 그나저나 그대들은 이곳이 진짜 천언궁인지 어떻게 안 건가?”

    유천이 심협을 바라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 말에 심협의 눈빛이 번뜩였다. 저 해골의 말대로면 자신의 추측이 맞은 것이다.

    이 무렵, 섭채주는 금제 파훼를 멈추고 곤륜경을 소환하여 세 사람을 보호하고 있었다. 옆에서는 개명천수가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세 구의 해골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온통 적의가 가득했다. 그는 선가(仙家)의 신수라 천성적으로 요마의 기운을 혐오했던 것이다. 심협이 말하면 바로 달려들 기세였다.

    “어떻게 알아냈는지까지 알려줄 이유는 없지. 당신들도 천언궁 때문에 온 건가? 이곳은 고명한 금제가 보호하고 있지. 자, 우선 한바탕 싸울까 아니면 금제를 부수고 다시 싸울까? 난 뭐든 좋은데…….”

    심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현황일기곤에서 다시 금빛을 뿜어내며 말했다.

    그의 옆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여덟 자루 순양검이 동시에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강력한 검기를 뿜어내자 허공이 찢기고 일그러졌다.

    “아직 보물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싸우는 건 현명하지 않지. 지난 원한은 잠시 접어두고 함께 금제를 파훼한 후에 각자 알아서 보물을 차지하는 게 어떻겠나?”

    유천은 심협의 여유로운 모습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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