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69화 (969/1,214)
  • 969화. 하늘이 날 돕는구나!

    “오라버니!”

    섭채주가 큰소리로 외치며 달려왔다.

    개명천수도 몸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며 빠르게 돌진했는데, 그가 향한 곳은 심협이 아니라 현화신구가 손에 넣으려 하는 검은 조롱박 쪽이었다.

    무라는 차갑게 비웃고는 다시 귀신처럼 변하여 연못가에 섰다. 그리고는 서둘러 심협을 공격하지 않고 먼저 비취지란을 챙겼다.

    비취지란이 뽑히자 본래 안개가 자욱하던 연못의 물이 갑자기 역류하면서 비취지란을 향해 용솟음쳤고, 가까이 왔을 때는 영무(靈霧)로 변하여 지란 선초 본체로 스며들었다.

    “영액이 역류하여 스며들다니, 실로 장관이구나.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급이 높은 비취지란이로군.”

    이를 본 무라가 크게 기뻐했다.

    한데 그 순간, 돌기둥 뒤의 그림자에서 갑자기 금빛이 반짝이더니 누군가가 튀어나와 잔상을 만들며 무라의 뒤로 다가갔다.

    무라가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어서 현황일기곤이 꽂힌 등뼈는 산산조각이 났고, 오장육부가 강하게 흔들려 피가 솟구쳤다. 그 충격에 그만 비취지란을 놓쳐버렸고, 기다렸다는 듯이 한 줄기 유광이 날아와 이를 휘감아 갔다.

    유광이 돌아온 곳에는 심협이 우뚝 서 있었다. 그는 비취지란을 잡자마자 살펴볼 겨를도 없이 바로 저물 법기 안으로 넣었다.

    무라는 간신히 버티고 서서는 두 명의 심협이 있는 곳을 흘깃 보더니 바로 박선주사를 휙 잡아당겼다.

    치익!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투명한 정사 위로 차가운 빛이 반짝이더니 묶여 있던 심협을 바로 조각냈다.

    허나 토막 난 시체는 뼈와 살이 아니라 액체처럼 흘렀는데, 그 안에는 한 방울의 피만 섞여 있었다. 심지어 그마저도 순식간에 타올라 사라졌다.

    무라는 그간 나서지 않고 있던 섭채주를 돌아봤다. 그제야 그녀가 사용한 환화(幻化)의 술법임을 눈치챈 것이다.

    “언제……?”

    무라는 입가의 피를 닦았지만 깨끗하게 닦이지 않아 흔적이 남았다.

    “대전으로 들어갈 때.”

    심협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

    무라는 그제야 아까 저들이 먼저 대전으로 들어가면서 섭채주가 곤륜경을 발동하여 본체는 돌기둥 그림자에 숨겨두고 가짜를 만들어 자신들을 속인 것임을 알게 됐다. 물론 누구도 심협의 계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짤랑!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니 비취색 빛이 순식간에 대전을 환하게 비췄다.

    심협이 돌아보니 암영전표가 땅에 비스듬히 꽂혀 있던 전도를 뽑아 올리고 있었다.

    그가 도에 법력을 주입하자 덮여 있던 먼지가 껍질처럼 부서져 떨어지더니 도의 본래 모습인 영롱한 초록빛이 드러났고, 우렁찬 울림이 들려왔다.

    “확실해. 진짜 명홍전도(鳴鴻戰刀)였어!”

    암영전표의 흥분한 목소리에 심협은 흠칫 놀랐다.

    명홍전도는 명성이 자자하여 화령자도 감탄한 적이 있었다. 이 도는 상고 신병으로, 헌원검(軒轅劍)과 같은 용광로에서 만들어졌다. 다만, 도가 완성되었을 때, 도기가 하늘을 찌르고 살기가 너무 강하여 심지어 주인마저 삼키려 들었기에 황제(黃帝)가 헌원검으로 이 도를 부수려 했다.

    허나 같은 용광로에서 나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헌원검은 이 도를 부술 수 없었고, 결국 황제는 비법을 통해 명홍전도를 봉인했다.

    암영전표는 그제야 무라가 심협에게 당한 것을 알아채고는 서둘러 전도를 쥐고 달려들었다.

    한데 그가 두 걸음째 내딛었을 때,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옆에서 날아와 하마터면 충돌할 뻔했다.

    황급히 피한 암영전표가 돌아보니 현화신구가 돌기둥에 부딪혔다. 코와 입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품에는 커다란 검은색 조롱박을 꼭 안고 있었다.

    개명천수가 바로 쫓아오더니 입에서 날카로운 음파를 발해 현화신구를 공격했다.

    현화신구는 이전에 당한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터라 개명천수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품에는 검은색 조롱박을 안고 있어서 막을 힘이 전혀 없었다.

    이를 본 암영전표가 그의 앞을 막아서더니 양손으로 홍명전도를 꽉 쥐고 음파를 세로로 내리쳤다.

    장도에서 초록색 광망이 번득이더니 비취 같은 도광이 뿜어져 나와 음파를 단번에 베어버렸다. 음파는 두 개의 강력한 기류가 되어 양쪽으로 날아갔다.

    암영전표는 봉인이 전부 풀리지 않아 아직 연화하기 전인데도 장도가 이렇게 강력한 힘을 내는 것을 보자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가 기뻐할 새도 없이 옆에서 손바닥이 튀어나와 그의 장도를 움켜쥐려 했다. 심협의 손이었다.

    암영전표는 곧장 허리를 틀며 도를 가로로 베었다.

    심협은 도의 옆면을 손으로 딛고 그 반동으로 몸을 높이 띄우면서 다른 손으로 암영전표를 공격했다.

    암영전표는 차갑게 비웃더니 몸에서 갑자기 검은 빛을 뿜어냈다.

    심협은 눈앞에서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뒤이어 가슴에 강한 통증을 느끼며 뒤로 날아갔다.

    허나 그런 와중에도 양 소매를 휘두르자 소매에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열한 자루의 순양비검이 동시에 암영전표를 향해 뻗어 갔다.

    암영전표는 열한 자루 비검을 모두 막아낼 자신이 없었기에 도를 한 번 크게 휘두르고는 바로 옆의 돌기둥 뒤로 물러났다.

    “발밑을 조심해!”

    그가 땅에 내려서는 순간, 갑자기 고함이 들려왔다.

    암영전표는 무라의 목소리에 서둘러 몸을 돌려 먼 곳으로 피했다.

    발밑의 그림자가 갑자기 커지더니 그를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 그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암영전표는 땅에 내려온 뒤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섭채주가 곤륜경 흑암의 영역을 돌기둥 뒤의 그림자에 숨겨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제때 피하지 못했다면 염열과 같은 처지가 됐을 거란 생각에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그가 무사히 화를 피한 반면, 현화신구는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방향을 튼 열한 자루 순양비검이 일제히 스쳐 지나가자 수백 개의 검광이 그를 베었다.

    현화신구는 피할 방법이 없자 바로 손을 크게 휘둘렀다. 손은 순식간에 검은색 말발굽이 되어 겉에 허광이 뒤덮였다. 이어서 말발굽은 더 커졌고, 검광들을 막아냈다.

    챙! 챙! 챙!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한바탕 어지럽게 울려 퍼졌고, 모든 검광이 산산조각 났다. 그러나 현화신구의 말발굽도 검광에 베여 산산조각이 난 후였다.

    현화신구는 팔에 큰 상처를 입었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피하려 했지만, 이미 개명천수가 쫓아와 음파 공격으로 보이지 않는 압박의 힘을 펼쳤다.

    심협은 이 음파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았기에 재빨리 현화신구가 들고 있는 검은색 조롱박을 빼앗으려 했다.

    허나 그의 손이 조롱박에 닿으려는 순간, 강력한 법력 파동이 몰려왔다. 강렬한 힘이 파도처럼 개명천수의 음파를 흩어버렸다.

    이와 동시에 검은색 단추(短錘)가 뒤에서 곧장 심협의 뒤통수로 날아왔다.

    긴박한 상황에 심협은 어쩔 수 없이 조롱박을 빼앗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돌려 피했다.

    그의 뒤에 있던 무라는 좀 전의 공격에 무리를 한 것인지 피를 토하며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검은색 단추는 제어를 잃고 방향을 틀어 곧장 현화신구 품에 있는 검은색 조롱박으로 날아갔다.

    펑!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모두의 의아한 눈길 속에 커다란 검은색 조롱박이 부서지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매우 짙은 검은 연기와 함께 죽음의 기운이 순식간에 퍼져 나왔고, 수많은 짙은 초록색 빛이 빠르게 날아다녔다. 이 초록색 빛은 자욱한 연기 속에서 빠르게 팽창하더니 순식간에 수많은 회백색의 죽은 영혼으로 변해 모여들었는데, 방향도 모르고 의식도 없는 것처럼 대전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팽창하는 초록색 빛이 점점 많아지자 대전은 회백색의 죽은 영혼으로 가득 찼다.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았다. 조금만 숨을 쉬어도 연기처럼 휘날리는 죽은 영혼들이 자신에게 달라붙어서 콧구멍으로 빨려 들어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조심해요. 이 연기에는 미혼(迷魂) 효과가 있어요!”

    섭채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사혼(死魂)의 조롱박이라니, 하늘이 날 돕는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무라였다.

    그녀는 부상에도 개의치 않고 돌기둥에 기대어 서서 양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소매가 바람도 없이 혼자 펄럭이더니 안에서 검은 빛의 소용돌이가 하나씩 나타났다.

    쉬익!

    바람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두 개의 소용돌이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대전에 가득한 연기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수많은 죽은 영혼을 순식간에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무라는 죽은 영혼과 연기를 흡수할 때마다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고 기운이 조금씩 돌아왔다.

    “채주, 곤륜경으로 무라를 없애!

    “알겠어요!

    섭채주가 대답하고는 무라를 향해 돌진했다.

    심협도 곧장 손을 휘둘러 만귀번을 펼쳤다.

    깃발이 펼쳐지면서 그 위의 검은 빛이 밝아지더니 무라처럼 안에 가득한 연기와 죽은 영혼을 미친 듯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만귀번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귀장 조비극은 심협의 명 없이도 귀도 공법을 운공해 연기와 죽은 영혼을 흡수해갔다.

    한편, 무라는 섭채주가 곤륜경을 발동하여 달려오는 것을 보자 양 소매를 다시 휘둘러 대전의 검은 연기와 죽은 영혼을 절반 정도 감싸고는 뒤로 돌아 그대로 대전 밖으로 날아갔다.

    현화신구와 암영전표도 뒤를 따랐다. 개명천수는 이를 막으려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쫓을 필요 없습니다.”

    심협이 그와 섭채주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소매를 휘둘러 대전의 문을 다시 닫고는 전력으로 만귀번을 발동해 얼마 남지 않은 연기와 죽은 영혼을 전부 흡수했다.

    연기가 일제히 만귀번으로 빨려 들어가자 크게 손상됐던 만귀번에서 다시 귀기(鬼氣)가 폭증했고, 뿜어내는 파동은 그전보다도 더 강력해졌다.

    “방금 무라를 죽일 기회였는데 저렇게 많은 죽은 영혼을 갖고 갔으니 부상을 완벽히 회복할 뿐만 아니라 더 강해질 겁니다. 앞으로 그녀를 상대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요.”

    개명천수는 심협이 그녀를 놔준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무라는 보기보다 훨씬 강합니다. 큰 부상을 입고도 당신의 음파 공격을 막아낸 것을 보면 분명히 다른 수단을 숨기고 있을 겁니다. 지금 그들과 사활을 걸고 싸우면 거청천이 어부지리를 얻게 되겠지요.”

    개명천수는 심협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기회에 저희도 좀 쉬었다 가죠.”

    섭채주의 말에 세 사람은 각자 가부좌를 튼 채 단약을 먹고 정양했다.

    심협은 만귀번을 가만히 바라보며 무언가를 기다렸다.

    한참 뒤, 만귀번에서 갑자기 강렬한 파동이 뿜어져 나오자 앉아서 정양하던 섭채주 등이 차례대로 눈을 떴다.

    두 사람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심협이 막 설명하려는 순간, 만귀번에서 갑자기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오며 누군가 나타났다. 바로 귀장 조비극이었다.

    조비극은 뿜어내는 살기가 줄어들었고 귀기도 명확하지 않았으며 얼굴색이나 몸의 기질이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두 눈동자에는 마치 오래된 심연처럼 짙은 어둠이 모여 있었다.

    “진선 중기로 들어섰구나. 보아하니 후기가 코앞이로군. 축하한다.”

    심협이 조비극을 살펴보더니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주인님 덕분입니다. 주인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오랫동안 중기를 돌파할 수 없었을 겁니다.”

    조비극이 공손하게 포권을 올렸다.

    “우리 운이 좋은 것도 다 네 조화다.”

    심협이 웃으며 답했다.

    “드디어 주인님의 발목을 잡지 않을 수 있게 된 듯해 기쁩니다.”

    “서두를 것 없다. 우선 만귀번에서 더 정양하고 경지를 안정시켜라. 도움이 필요하면 널 부르마.”

    조비극은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만귀번으로 돌아갔다.

    “심 도우는 맹장을 키우고 계셨군요.”

    개명천수의 말에 심협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세 사람은 어느 정도 정양한 뒤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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