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68화 (968/1,214)
  • 968화. 다섯 종류의 부진(符陣)

    대전에서 나온 심협이 대전에 검기 표식을 남긴 뒤 무라 등을 따라 그들이 말한 대전으로 향했다.

    이들은 금방 천언궁 문 앞에 도착했다.

    심협이 다가가서 살펴봤지만, 다른 천언궁과의 차이점을 알 수 없었다. 그는 손을 휘둘러 법력으로 궁궐의 대문을 두들겼다.

    펑!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궁전의 대문이 크게 흔들리더니 두꺼운 나무문에서 갑자기 원형의 부문이 떠올라 강렬히 빛나면서 뜨거운 불길이 심협에게 달려들었다.

    심협은 황급히 뒤로 피했지만, 불꽃은 그림자처럼 바로 쫓아왔다.

    그가 한 손을 결인하여 휘두르자 수룡(水龍)이 허공에 생겨나 뜨거운 불꽃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하지만 수룡은 순식간에 증발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불꽃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은 채 강렬한 기세로 돌진해왔다.

    심협은 곧장 순양비검을 꺼내 불꽃을 베려 했다.

    그때, 누군가가 심협 앞에 나타나 손을 들었다. 손에서 떠오른 기이한 검은색 부진이 빛을 번득이더니 어두운 동굴처럼 모든 불꽃을 빨아들였다.

    불꽃을 모두 흡수한 뒤, 무라가 천천히 손을 내리고는 설명했다.

    “이 문의 금제 불꽃은 수법(水法)으로 끌 수 없고, 화법(火法)으로 없앨 수 없으며, 외력의 참격에는 더 강렬한 폭발을 일으킨다. 그러니 완전히 흡수하는 수밖에 없다.”

    “고맙네.”

    심협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별일 아니니 개의치 말게. 금제를 파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천언궁의 상황을 살펴보겠다.”

    무라가 손을 내저으며 말하고는 손에서 새까만 원형 나반(羅盤)을 꺼냈다.

    “그것으로 대전 안쪽을 살펴볼 수 있는 건가?”

    “이 무령나반(巫靈羅盤)은 기물이나 법보의 영력에 매우 예민해 대전 안에 있는 보물의 개수뿐만 아니라 영력의 분포를 토대로 그 형태까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말을 마친 그녀가 암영전표와 현화신구를 불렀고, 세 사람은 동시에 술법을 시전하여 무령나반을 향해 법결을 맺었다.

    세 줄기의 영광이 날아 들어가자 무령나반이 천천히 그들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나반의 바늘이 빠르게 회전하더니 대전을 가리켰다.

    바늘 끝에서 한 줄기 광망이 날아가 대전에 떨어지자 나반에서 3척 높이의 하얀 빛줄기가 솟아올랐다.

    이 빛줄기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세 개의 검은색 허상이 떠올랐다.

    자세히 보니 그 허상 중 하나는 1척 크기의 비취지란이었고, 다른 하나는 3척 길이에 자루가 긴 전도 그리고 커다란 조롱박이었다.

    허상이 잠깐 번쩍이더니 이내 사라졌고, 나반에서 뿜어져 나온 빛줄기도 같이 사라졌다.

    무라가 나반을 소매에 챙겨 넣고는 암영전표 등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심협을 돌아보며 말했다.

    “본 대로 이 대전에는 비취지란 외에 전도와 조롱박이 있다. 세 개뿐이니 이번에 심 도우에게 줄 수 있는 건 비취지란뿐이다. 만약 이후로도 계속 동행한다면 다음에 보물을 찾을 경우 심 도우가 먼저 고를 수 있게 해주겠다. 어떤가?”

    “나중 일은 나중 일이고, 지금은 저 세 개 중 비취지란에 하나를 더 받아야겠다. 대신 둘 중 어떤 것을 고를지는 선택하게 해주겠다.”

    심협의 말에 무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욕심이 과하군! 우리가 아니었으면 문의 금제를 파훼할 수나 있었을 것 같은가?”

    암영전표가 화를 내며 말했다.

    “우리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너희는 멸신원광을 견디지 못하고 5층에서 기어나가지 않았을까?”

    개명천수도 지지 않고 차갑게 비웃으며 답했다.

    그의 이 말에 세 사람은 반사적으로 발밑의 그림자를 힐끗 봤다.

    “심 도우,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비취지란뿐이다. 내키지 않으면 이번 거래는 없었던 것으로 하고 직접 금제를 부수고 보물을 차지하게. 우리는 여기서 그만두겠다.”

    무라가 그 말만 남기고는 떠나려 했다.

    “오라버니, 비취지란만 받아요. 저건 오라버니에게 매우 중요하잖아요.”

    섭채주가 심협에게 급히 전음을 보냈다.

    “잠깐!”

    심협이 갑자기 불러세우자 무라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럼 비취지란만 받겠네. 허나 먼저 태청단의 단방도 넘겨줘야겠네.”

    심협의 말에 무라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흔쾌히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라면 문제없다.”

    무라가 한 손에서 백서(帛書)를 꺼내 던졌다.

    심협은 백서를 받아 펼쳐서 살펴보고는 바로 챙겨 넣었는데, 소매로 넣은 듯했지만 사실은 소요경을 통해 화령자에게 전달했다.

    화령자가 살펴보더니 별문제 없다고 전음으로 말해주자 심협은 무라에게 포권했다.

    “고맙네.”

    “아니다. 그럼 같이 금제를 파훼할까?”

    무라가 웃음을 거두지 않고는 물었다.

    “이 금제는 어떻게 파훼하면 되는 거지?”

    심협이 신중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이 대전의 금제는 오정병화금진(五丁丙火禁陣)이라 하는데 금제를 파훼하기 위해서는 다섯 명이 동시에 다섯 종류의 파금부진(破禁符陣)을 펼쳐 함께 대진을 역회전해야만 한다.”

    “다섯 종류의 파금부진? 어떤 종류인지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겠나?”

    “그건 걱정하지 말게. 다섯 종류의 부진 진도는 내가 이미 다 갖고 있네. 그저 여러분의 손바닥에 그린 후, 모두가 같이 부진을 발동하면 금제가 파훼될 것이다. 단, 부진을 발동할 때 법력을 반드시 통일된 상태로 유지해야 하네. 절대 파동이 너무 커서는 안 돼.”

    무라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심협은 슬쩍 개명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 둘은 금제를 파훼하고, 그동안 채주는 곤륜경으로 우리를 멸신원광으로부터 보호하게 하면 되겠구려.”

    모두가 그의 말뜻을 알아챘으나, 무라는 여전히 옅은 미소를 띠며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개명천수 역시 바로 답했다.

    섭채주는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서 그를 안심시켰다. 금제를 파훼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그녀는 바로 곤륜경을 발동하여 무라 등을 삼킬 생각이었다.

    “심 도우, 안배가 끝났으니 지체하지 말고 바로 시작하지.”

    무라가 재촉하고는 두 손가락에 작은 초록색 붓을 들더니 법력을 모았다. 이내 붓끝에 짙은 먹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선 자신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암영전표와 현화신구, 개명천수 손바닥에 부진을 그린 뒤 마지막으로 심협 곁으로 왔다.

    심협은 손바닥을 펼쳐 내밀었고, 무라는 그의 손바닥에 부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라의 붓끝이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손바닥에서 뜨거운 느낌이 전해졌다. 작은 법력들이 모여서 선을 이루면서 손바닥에 부진이 만들어지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심협은 이 법력을 막지 않고 자신의 손바닥에 모여들게 놔두면서도 이것들이 자신의 피부를 뚫고 안으로 침투하지는 않는지 지켜봤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법력들이 모여서 만든 법진은 얌전히 그의 손바닥에 떠 있었다.

    심협은 조금 안도하긴 했지만, 여전히 방심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다른 낌새가 보이지 않자 잠시 의심을 거두긴 했지만, 경각심은 조금도 내려놓지 않았다.

    부진을 모두 그리자 이들은 무라의 안내에 따라 각자의 위치에 서서 대전의 문을 향해 부진이 그려진 손을 내밀었다.

    “준비됐으면 시작합니다.”

    무라의 명령에 따라가 모두가 각자의 손바닥에 법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심협의 손바닥에 그려진 부진이 갑자기 빛나더니 작열하는 힘이 솟구쳤고, 그 안에서 붉은 불꽃이 솟아올랐다. 그의 옆에 있는 개명천수의 손바닥에서는 황금색 불꽃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암영전표, 현화신구 그리고 무라의 손바닥에서도 불꽃이 솟아올랐는데, 각각 청과 녹, 흑의 불꽃이었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속성의 파동 또한 모두 달랐다.

    “모두 조급해하지 말고 먼저 불꽃을 안정시키고, 법력을 같은 정도로 조절해 오정병화 금진을 향해 쏘세요.”

    무라가 서둘러 말하자 사람들은 법력을 제어해 각자의 손에서 흔들리는 불꽃을 천천히 안정시키기 시작했다. 불꽃의 범위가 점차 좁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다섯 불꽃의 크기가 동일해졌다.

    “됐어요. 이제 다 같이 금진을 향해 보내요!”

    무라의 외침에 모두가 손을 앞으로 내밀자 다섯 개의 불꽃이 천천히 흔들리면서 대전의 문에 떨어졌다.

    불꽃이 가까이 가기도 전에 대전 문의 금제 법진이 뭔가를 감지하고 나타나더니 대량의 불꽃을 뿜어냈다.

    “흔들리지 말고 버텨야 합니다.”

    무라가 크게 외쳤다.

    금제를 파훼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다시 집중했다. 이들은 금제가 쏟아낸 불꽃에 뒤덮이면서도 각자의 손바닥에 있는 파진의 불꽃을 금진을 향해 몰아넣었다.

    금제의 불꽃이 그들을 집어삼키려는 순간, 다섯 개의 색이 다른 불꽃이 불바다 속에서 빠르게 회전하더니 금방 오색 빛의 고리로 변하여 역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불바다가 뚫고 나오기도 전에 오색 고리에 이끌려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파진 불꽃이 오색 고리 안으로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든 불꽃이 사라지자 대전 문에 빛이 흐르더니 거대한 부문 금제가 천천히 떠올랐고, 대전의 문에서 벗겨져 그대로 잿더미가 되었다.

    “금제가 파훼됐네.”

    무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손을 내렸다.

    이를 본 심협도 손을 소매로 넣고는 손가락을 가볍게 문질러서 손바닥에 그려진 부문을 지웠다.

    “심 도우, 들어가지.”

    무라가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서며 말했다.

    진즉 신식으로 대전을 살핀 심협은 아무런 위험도 없었기에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뒤를 따랐다.

    대전에 들어서자마자 건물 앞에 사각형 모양의 연못이 보였는데, 그 안은 영기가 가득해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연못 중앙에는 비취색의 영롱한 선초가 있었는데, 크기는 1척에 불과했지만 뿜어져 나오는 빛은 매우 밝았고, 간간이 달콤한 향이 풍겼다.

    대전 왼쪽의 기둥 옆 바닥에 3척 길이의 오래된 전도가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그 위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 잿빛이었다.

    반대편 구석에는 1척 크기의 커다란 조롱박이 있었는데, 먹물처럼 새까맣고 겉에는 반질반질한 윤기가 흘러 먼지 하나 묻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심 도우, 비취지란은 도우의 것이니 약속대로 다른 두 개의 보물은 우리가…….”

    무라가 심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하게.”

    심협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호쾌하군.”

    무라는 환하게 웃으며 말하더니 암영전표와 현화신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각각 오래된 전도와 커다란 조롱박을 향해 다가갔다.

    한데 그때, 심협의 발밑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이더니 몸이 순식간에 연못가로 이동하여 비취지란을 잡으려 했다. 워낙 갑작스러웠던 터라 누구도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암영전표와 현화신구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속도를 높여 두 보물을 향해 돌진했다.

    심협의 손이 비취지란에 닿으려는 순간, 무라도 움직였다.

    그녀는 마치 귀신처럼 앞에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곤륜경이 지배하는 영역을 벗어나 손을 휘둘러 몇 가닥의 투명한 정사를 뻗어 심협의 손을 휘감았다.

    “박선주사(縛仙蛛絲)!”

    심협이 저항하기도 전에 강력한 속박의 힘이 투명한 정사에서 흘러나와 그의 팔을 뒤로 잡아당겨 꺾고는 계속해서 그의 몸을 묶기 시작했다.

    곧이어 유리 같은 광채가 곧장 심협의 머리 위로 날아왔는데, 그 모양은 매우 특이해서 마치 보병(寶甁) 같은 유리정등(琉璃晶燈)이었다.

    이 등은 나타나자마자 빙글빙글 회전했고, 겉의 수많은 유리 결정이 갑자기 굴절돼 서로 종횡으로 교차하면서 환상 같은 유리 광망으로 변하여 심협을 뒤덮었다.

    광망에 휩싸인 심협은 두 눈이 갑자기 흐려지고 눈앞의 사물이 뒤틀려 보이기 시작했다. 사물이 알록달록해져 마치 환각에 빠진 것 같았는데, 조금의 반항심도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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