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67화 (967/1,214)
  • 967화. 각자 다른 생각을 품다

    곧이어 세 구의 완전한 검은색 해골이 귀신의 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그의 앞에 섰다.

    제단의 불꽃이 점점 줄어들어 사라지더니 검은색 해골의 비어 있는 눈가에서 갑자기 광망이 일렁였다. 세 구의 불꽃 광망은 서로 달랐다.

    가장 왼쪽의 검은색 해골은 무릎에 닿을 정도로 양팔이 매우 길어서 마치 늙은 원숭이 같았고 허리도 조금 굽어 있었는데, 눈가에서 어두운 녹색의 불꽃 광망이 반짝였다.

    가운데 해골은 그보다 머리 두 개 정도는 컸고 전체적인 골격도 굵고 튼튼했으며, 몸도 곧았다. 해골임에도 몸에서 패자(霸者)와 같은 기질이 뿜어져 나왔고, 눈가에서는 암홍색 광망이 번득였다.

    마지막 해골은 몸이 균형 잡힌 평범한 모습이었는데, 눈에서는 금색 불꽃이 타올랐다.

    이 세 구의 해골 모두 마기를 뿜어냈는데, 그 기운은 진선 절정 수준으로 태을 경지까지 반 걸음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끌끌. 거청천, 결국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냐?”

    크고 위풍당당한 해골이 비아냥거리며 웃어대자 거청천은 그저 콧방귀를 뀌었다.

    “홍굴(紅窟), 닥쳐라! 거 도우,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것이오?”

    몸이 굽은 해골이 버럭 호통을 치고는 거청천에게 물었다.

    “유천(幽泉) 도우, 현재 천언궁의 상황이 상당히 복잡해졌소. 심협 외에도 무라가 암영전표와 현화신구를 데리고 들어와 천언궁의 통제권을 빼앗으려 하고 있지. 상황이 좋지 않소.”

    거청천이 천천히 표정을 풀고는 말했다.

    한데 그가 심협을 언급하는 순간, 가장 오른쪽 해골의 눈에서 타오르던 금색 불꽃이 확연히 요동쳤다.

    “거 도우, 급할 것 없소. 우선 천언궁의 구체적인 상황을 상세히 알려주시오.”

    마른 해골이 말했는데, 분명 여자의 목소리였다.

    “금수(綿秀) 도우, 좋소. 상세하게 알려드리겠소.”

    거청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에게 천언궁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잠시 후, 세 구의 해골이 모두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5층에 들어갔겠군. 지체해서는 안 되니 우리도 바로 움직입시다.”

    유천이라는 마른 해골이 먼저 말했다.

    “알겠소.”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단 깊은 곳의 빛의 문을 향해 바로 출발했다.

    * * *

    5층의 산봉우리. 어느 궁전 앞에서 심협 등이 문의 금제를 파훼하고 있었다.

    대전에 걸려 있는 금제는 복잡하지 않아서 그리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파훼할 수 있었다.

    슬쩍 밀자 끼익 소리와 함께 두꺼운 문이 안으로 밀리면서 텅 빈 대전이 드러났는데, 낡고 약간 곰팡이 핀 냄새가 갑자기 덮쳐왔다.

    심협이 가장 먼저 문턱을 넘어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은 바닥에 청석이 깔려 있었고, 제법 넓었는데 안에는 어떤 장식도 없었다. 그저 대전을 지탱하는 기둥 몇 개만 우뚝 서 있었다.

    심협은 이곳을 꼼꼼히 살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여기는 진짜 천언궁이 아닌 것 같군요.”

    심협이 유명귀안으로 안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이제 겨우 첫 번째인데 벌써 찾을 수 있겠어요?”

    섭채주가 웃으며 다독였다.

    “진짜 천언궁은 아마 문의 금제부터 쉽게 파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앞서 나가려던 개명천수의 눈이 갑자기 번득이더니 눈에 잘 띄지 않은 대전의 기둥 하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돌기둥 앞으로 다가가 한 손으로 결인했고, 푸른색 광망이 떠오른 손바닥으로 기둥을 가볍게 문질렀다.

    그러자 돌기둥에서 광망이 번쩍이더니 겉에 몇 개의 오래된 부문이 떠올랐고, 이어 광망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1척 길이의 돌로 된 항마저(降魔杵)로 변했다.

    대전을 지탱하던 돌기둥이 하나 사라졌지만, 대전은 아무런 흔들림도 없었고,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 듯했다.

    심협이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대전 안의 돌기둥은 좌우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개수도 똑같았다. 항마저가 변해 있던 돌기둥은 본래 필요 없는 기둥이었던 것이다.

    개명천수가 돌로 만들어진 항마저를 들고 법력을 천천히 주입하자 겹겹의 금제 부문이 떠올랐는데, 그 수가 49개 이상이었다.

    “첫 대전부터 품질이 낮지 않은 법보를 찾아내다니, 운이 좋으시군요.”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다만 지금은 연화할 시간이 없으니 이 법보에 어떤 위력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군요.”

    “천언궁을 차지하고 자유의 몸이 된 후 연화하면 되겠죠.”

    심협의 말에 개명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항마저를 챙겼다.

    한데 대전 밖으로 나온 순간, 세 사람은 넋이 나가고 말았다. 아까 걸어왔던 작은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주위는 온통 울창한 숲이었던 것이다.

    “완전히 바뀌었군.”

    심협이 정신을 차리고는 감탄하며 말했다.

    “변화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에요. 우리가 출발했던 곳이 원래 있던 방향에 있는 걸 보니까 방위는 바뀌지 않았어요.”

    섭채주가 까치발을 들고는 산 중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심협이 돌아보니 방금 들어갔던 대전의 문은 어느새 닫혀 있었다. 금제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아직 살펴보지 않은 대전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대전에 표시를 새기려던 심협은 잠시 망설였다. 혹시라도 거청천이나 무라가 쫓아온다면 그들을 도와주는 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방 결단을 내리고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소매에서 순양비검이 날아가 대전 옆 벽면에 깊은 검흔을 남기고 검기를 안에 넣었다.

    심협은 돌아서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대전을 바라봤다.

    “다음은 저쪽으로 가보죠.”

    개명천수는 그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돌렸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그러시죠? 저쪽이 가장 가까운데요.”

    섭채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직선거리로 보면 그렇습니다만, 여기서 바로 통하는 길이 없습니다. 이곳의 숲은 다른 곳과 달리 그냥 건너가기는 힘들지요.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 돌아서 가더라도 저 산등성이에 있는 대전으로 가시죠.”

    개명천수가 그렇게 설명하면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쪽을 보니 맞은 편의 먼 산등성이에 대전 하나가 외로이 서 있었다. 산등성이 옆에 구불구불한 작은 길이 있었는데, 몇 갈래 갈림길만 지나면 곧장 갈 수 있었다.

    “좋습니다. 저쪽으로 가죠.”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고, 세 사람은 아무런 방해 없이 금방 그곳에 도착했다.

    허나 대전 문의 금제는 이미 부서져 있었고, 안을 둘러봐도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무라의 기운이 느껴지네요.”

    “여기가 진짜 천언궁이 아니라 다행이군.”

    “속도를 낼까요? 저들보다 먼저 진짜 천언궁을 찾아야 합니다.”

    “좋습니다.”

    세 사람은 곧장 대전에서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바깥의 풍경은 바뀌어 있었다. 현재 그들은 산의 지세가 비교적 낮은 곳에 있었고, 반대편에는 또 하나의 산등성이가 솟아 있었다. 허나 그 산등성이에는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손을 휘둘러 다시 대전에 표식을 남기고는 다른 산길을 골라 나아갔다.

    이후 세 사람은 산 위의 숲길을 오가며 대전을 하나둘씩 찾아다녔지만, 진짜 천언궁은 찾지 못했다. 곤륜경의 보호 덕에 멸신원광으로 인한 피해가 적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데 점점 조급해지던 세 사람은 다섯 번째 대전 앞에서 다른 무리와 마주쳤다.

    이들을 보고도 무라 등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심협은 긴장된 얼굴로 경계 태세를 갖추며 무기를 꺼내 싸울 준비를 했다.

    암영전표와 현화신구도 일제히 법보를 꺼내 방어 태세를 갖췄지만, 무라가 손을 들어 그들에게 무기를 거두게 했다.

    “심 도우, 조급하게 굴지 말게. 우리가 약간의 마찰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보자마자 생사를 걸고 싸울 필요가 있겠는가? 설령 해결하지 못할 충돌이 있다 해도 그게 반드시 지금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무라의 말에 심협도 바로 공격을 하는 대신 물었다.

    “심 도우, 혹시 태을 경지에 흥미가 있지 않아?”

    무라는 미소를 지었다.

    “무슨 뜻이야?”

    “솔직히 말하지. 내가 아는 천언궁이 비록 진짜 천언궁은 아니지만 다른 궁전과는 달리 안에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다. 그중에는 전설의 선령지보이자 태청단(太淸丹)의 주재료인 비취지란(翡翠芝蘭)도 있었다. 태청단에 어떤 효력이 있는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겠지?”

    무라가 웃으며 말했다.

    심협도 당연히 태청단을 알고 있었다. 태을 경지로 올라갈 때 막대한 작용을 하는 영단 묘약으로, 절정급 법보만큼의 가치가 있는 보물이었다.

    그의 자질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꿈속 세계의 수련 경험이 있다고 해도 태을 경지로 올라가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태청단 같은 선단의 보조 없이는 이번 생에서는 태을 경지로 올라서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와 힘을 합쳐서 함께 대전의 금제를 부수는 게 어떤가?”

    심협이 흔들리는 듯하자 무라가 덧붙였다.

    “조건이 있을 텐데?”

    “그 대전의 위치는 매우 특별하나, 내가 찾아줄 수 있다. 다만, 지금부터는 곤륜경으로 우리를 보호해줘야 하고, 우리와 함께 금제를 부숴야 해. 대전에 들어가서 비취지란은 심 도우가 갖고, 다른 것은 모두 우린가 갖는 거다. 어떤가?”

    “별로군.”

    무라의 물음에 심협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서로에게 이익인 일인데 왜 거절하는 거지?”

    무라는 다소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몰라서 묻는 거냐? 우리 사이에는 믿음이 없지 않아? 게다가 가는 동안 당신들을 멸신원광으로부터 지켜주고 금제까지 함께 부숴주는데, 당신들은 고작 안내밖에 안 하잖아? 한데 우리더러 비취지란 하나만 받고 떨어지라니, 그게 합당하다고 생각해?”

    “심 도우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인데, 그 대전에 지금 있다고 확신하는 건 비취지란뿐이고 다른 보물은 있는지 없는지 누구도 모른다. 만약 비취지란뿐이면 우리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지. 게다가 우리가 길 안내만 한다니, 우리가 없으면 당신들이 그 대전을 찾아도 문도 못 열걸?”

    무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심협은 그녀의 태연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조금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그때, 개명천수가 갑자기 그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심 도우, 저보다 저들이 천언궁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니 힘을 합쳐도 좋다고 봅니다. 또한, 같이 움직이면 저들이 먼저 진짜 천언궁을 찾는 것도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들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지만, 힘을 합치는 게 안 될 건 없지. 단, 보물 분배 문제는 가본 뒤에 다시 얘기하자.”

    “좋다.”

    심협의 말에 무라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심협은 섭채주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섭채주가 곤륜경을 꺼내 주문을 읊었고, 이 보물에서 물결 같은 광망이 반짝이더니 세 개의 그림자가 심협 등의 발밑에서 어우러져 거대한 흑암의 영역으로 변했다.

    무라 등은 바닥의 그림자를 보더니 다소 난감한 기색이었다. 이전에 염열이 흑암의 영역에 삼켜진 것을 똑똑히 봤으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멸신원광의 침투를 피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네.”

    심협의 말에 무라가 머뭇거리다가 먼저 걸음을 옮겨 그림자 영역으로 들어갔고, 뒤이어 암영전표와 현화신구도 그림자로 들어섰다.

    세 사람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눈빛은 확연히 달라졌다. 곤륜경의 보호가 생기자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심 도우가 진심으로 대해줬으니 나도 소홀히 할 수 없지. 따라오게.”

    무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장서서 안내했다.

    “서두르지 말고 먼저 저 대전부터 살펴보고 가지.”

    심협이 앞의 대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대전은 벌써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가도…….”

    “아, 심 도우가 가보도록 놔두시죠. 어쩌면 우리와 달리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무라가 현화신구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말했다.

    심협은 아랑곳않고 섭채주, 개명천수와 함께 대전으로 향했다.

    허나 대전은 텅 비어 있었다.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건지 아니면 무라 일행이 다 가져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