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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65화 (965/1,214)

965화. 흑암의 영역

심협은 긴 말 없이 두 개의 단약을 꺼내 복용한 뒤, 한 손에는 현황일기곤을 든 채 다른 손은 뒷짐을 졌다. 그러자 열한자루의 순양비검의 그의 뒤에 나란히 떠올랐다.

검은 갑옷 용의 눈에서 혈광이 번쩍이더니 여덟 개의 팔 중 하나가 움직였고, 은거울에서 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매우 밝아졌다.

이 빛줄기는 심협만을 노린 것인지 주위의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오직 심협만이 두 눈을 자극하는 강렬한 빛에 눈을 감았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눈알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일순 앞을 조금도 볼 수 없었다.

동시에 신식도 손상을 입어서 당분간 감지 능력도 사라졌고, 이에 심협은 본능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온몸이 조여오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쇠사슬 같은 무언가에 묶인 것이다.

심협은 서둘러 대개박술로 두 눈을 치료했고, 잠시 후 회복되었다.

그제야 붉은 쇠사슬이 자신을 가슴까지 묶은 채 그 반대편 끝이 팔비천룡의 손에 쥐어져 있음을 알게 됐다.

팔비천룡이 강력한 힘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맞은편에서는 검은색 대추(大錘)가 머리 위로 날아오고 있었다. 검은 빛으로 번득이는 대추에는 한 마리 거대한 검은색 곰의 허상이 떠올라 있었는데, 강력한 진선의 기운을 몸에서 뿜어내며 두 발톱을 강하게 휘두를 기세였다.

검은색 대추는 분명히 둔기(鈍器)인데도 허공이 찢어져 균열이 생겼다.

심협은 심념으로 열한 자루의 순양비검을 조종해 일제히 하늘로 띄웠다. 주작 검령이 선두에서 몇 개의 금오검령을 이끌고 불꽃을 뿜어내며 맞받아쳐 갔다.

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허공이 크게 흔들렸다. 곰 허상의 힘은 강력했지만, 검령들이 힘을 합친 일격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고, 검은색 대추(大錘)는 그대로 튕겨나갔다.

추와 검이 맞닿은 곳에서 새빨간 불꽃이 튀었다.

“하!”

심협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온몸에서 마기와 금빛이 강하게 번득이더니 현양화마 신통이 발동했다. 온몸에 금린과 마갑이 동시에 떠오르며 강력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순식간에 폭발했다.

펑!

심협의 온몸을 휘감고 있던 쇠사슬이 산산이 부서졌다.

한데 그가 곤봉을 들고 돌진하려는 순간, 눈처럼 하얀 빛이 다시 반짝이며 두 눈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비하고 있었기에 그는 팔을 들어서 눈앞을 막았다.

한데 뒤이어 암홍색 광망이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와 심협의 몸을 비췄다.

그 순간, 심협은 형용할 수 없는 중압감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게 느껴졌다. 어깨와 발은 마치 납처럼 무거워져 몸이 뻣뻣해졌고, 발밑의 대지가 무너지면서 그는 땅속으로 3척 정도 가라앉았다.

간신히 머리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자 머리 위에 금속의 나산이 떠 있었다. 산이 길게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는 산맥의 허상이 보였다.

“이것도 피해 보거라. 하하하!”

거청천이 껄껄대며 웃었다.

다음 순간, 대검을 든 팔비천룡의 팔이 움직이자 검은색 검광이 순식간에 백 장 길이가 되어 심협을 향해 날아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검은 빛 안에서 외뿔이 달린 거대한 구렁이의 검령이 검광을 휘감고는 독니를 드러낸 채 날아오고 있었다.

심협은 눈을 번득이더니 몸을 살짝 굽혔고, 이어서 왼팔을 든 채 높이 뛰어올랐다. 겹겹의 치우지박이 용솟음치며 그의 팔을 휘감았다. 중첩된 치우지박은 곧 거대한 치우지박을 만들어냈다.

거대한 치우지박이 전력으로 날아가 검광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꽈르릉!

심협을 중심으로 광포한 기의 파동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섭채주가 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곳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기의 파동은 순식간에 백 장 높이까지 솟구쳤다.

검은색 검광은 이 파동에도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궤적을 유지하지 못하고 옆으로 비껴갔다.

그 위에 있던 금속 나산도 강력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좌우로 크게 흔들리면서 심협의 몸을 뒤덮었던 산 같은 중압감이 불안정해졌다.

연기가 사라졌을 때, 나산 아래 어디에도 심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팔비천룡이 고개를 휙 들자 이미 하늘 높이 올라간 심협이 거대한 치우지박으로 열 배가 넘게 커진 현황일기곤을 쥔 채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곤봉은 마치 허공을 휘젓기 위해 하늘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는 것 같았고, 한 겹의 마염이 곤봉을 뒤덮고 있었다. 허공을 압박하는 듯한 우르릉거림은 마치 천둥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이를 본 거청천은 진중한 표정으로 온몸에서 검은 빛을 강하게 뿜어내며 살기를 폭증시켰다. 그러자 갑옷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뒤이어 그는 양팔을 교차하더니 검과 추를 위로 교차하며 베었다.

검은 빛에서 곰의 기령과 외뿔의 거대한 구렁이 검령이 동시에 나타나자 온몸의 기운이 이전보다 두 배로 폭증하여 진선 후기 단계에 이르렀다.

무기에 빙의한 기령과 검령이 광망을 뿜어내며 하늘을 떠받치는 곤봉의 허상과 강하게 충돌했다.

콰쾅!

형용할 수 없는 두 줄기 강력한 힘이 폭발하자 허공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고, 웅장하기 그지없는 힘이 모든 것을 휩쓰는 폭풍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번에는 제단도 무사하지 못해 섭채주마저 휩쓸려 날아갔다.

수중의 대검과 대추에서 뿜어져 나오던 광망이 순식간에 부서지더니 검과 추에 균열이 생겨났지만 팔비천룡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반면 심협은 좀 전의 일격에 대부분의 힘을 소모한 탓에 현양화마 신통이 풀려버렸고, 이내 땅으로 떨어졌다.

거청천은 심협의 일격에 깜짝 놀랐지만, 손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팔비천룡은 다시 한 팔을 높이 들어 올리더니 푸른색 보병을 심협을 향해 내밀었다.

검푸른 보병에 빼곡한 부문이 떠오르더니 병의 입구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와 3척 크기의 푸른색 소용돌이가 만들어졌고, 이 소용돌이는 빛을 번쩍이며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에서 실 같은 빛줄기가 나타나더니 마치 물에 떠다니는 해초류처럼 심협을 휘감기 위해 날아갔다.

이를 본 심협이 서둘러 곤봉을 휘둘렀지만, 푸른 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현황일기곤을 피해 그의 손목과 발목을 휘감았다.

이 실에 휘감기는 순간, 기이한 금제의 힘에 안 그래도 법력이 부족했던 심협은 한동안 떨쳐낼 수 없었다.

곧이어 푸른색 실타래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심협을 푸른 빛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당겼다.

심협이 심념을 움직이자 열한 자루의 순양비검이 일제히 날아와 푸른색 실을 자르려 했다.

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던 거청천은 비검이 날아오기 전에 검광과 추의 허상으로 막아냈다.

심협은 푸른 빛의 소용돌이에 가까워질수록 보병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한 파동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지금 상태로는 빨려 들어가면 빠져나올 가능성이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안심하고 죽어라. 이곳이 네놈의 무덤이다. 크하하!”

승기를 쥔 거청천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변이 일어났다!

두 줄기의 실제와 같은 보라색 광망이 멀리서 날아오더니 한곳에 모여들어 정확하게 검푸른 보병을 공격했다.

콰지직!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검푸른 보병이 보라색 광망에 관통되어 그대로 깨졌다.

보병 입구의 푸른색 광망이 흩어지면서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온 실 같은 푸른 빛도 함께 사라지자 심협은 속박에서 벗어나 서둘러 땅으로 내려왔다.

“멸세쌍목(滅世雙目)……?”

거청천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훼멸명왕의 두 눈에서 나온 보랏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때 거청천의 발에서 갑자기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거대한 몸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곧장 심협의 앞에 나타나 대추를 강하게 휘둘렀다.

심협은 황급히 방어했지만, 거대한 추에 몸을 보호하던 보광이 부서졌고,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게다가 그가 몸을 가누기도 전에 머리 위에서 또 어두운 그림자가 덮쳐왔다. 염열이 다시 제어하기 시작한 건곤현화탑이 떨어지고 있엇던 것이다.

심협은 피할 방법이 없었기에 훼멸명왕을 불러오는 동시에 현황일기곤을 들어서 머리 위를 막았다.

쾅!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곤현화탑은 어느덧 현황일기곤 끝에 내려와 있었다.

“떨어져라!”

염열이 외치며 법력을 끊임없이 건곤현화탑에 주입하자 보탑에서 현화가 솟아오르고 중압감이 폭증하자 현황일기곤을 끊임없이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때, 거청천도 달려와 대검에 힘을 모았다. 그러자 부문과 함께 외뿔의 거대한 구렁이가 다시 나타나 심협을 베려 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멀지 않은 곳의 폐허에서 누군가 갑자기 날아왔다. 바로 섭채주였다.

그녀가 손에 검은색 거울을 든 채 무족의 언어를 읊조리자 거울에서 어두운 광망이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반경 백여 장을 뒤덮었다.

검은 빛으로 뒤덮은 곳은 마치 심연에 빠진 것처럼 어둠에 잠겼다.

무라는 훼멸명왕이 심협 쪽으로 물러가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쫓아왔는데, 검은 빛이 뒤덮자 우뚝 멈춰 섰다.

개명천수와 난전을 펼치던 흑의의 청년도 쓰러져 있는 마면 사내를 들쳐 매고는 빠르게 물러났다.

“흑암(黑暗)의 영역! 곤륜경을 연화하자마자 바로 저 힘을 사용하다니!”

무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편, 거청천은 반응이 매우 빨라서 팔비천룡 언갑에서 곧장 빛을 뿜어내 그의 주위만을 밝혔다.

반면 염열은 건곤현화탑으로 심협을 제압하느라 바빴기에 반응할 틈이 없었다.

그때, 그의 아래에 갑자기 검은색 소용돌이가 나타나더니 심연의 거대한 입처럼 그를 집어삼켰다.

이와 동시에 곤륜경에서 검은 빛이 번쩍이며 겉에 물결 같은 파동이 떠올랐고, 안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들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서둘러 훼멸명왕과 모든 법보를 거두었고, 주인이 사라진 건곤현화탑을 챙겨 섭채주의 옆으로 다가갔다.

“가자!”

섭채주의 허리를 감싸 안은 그는 바로 을목선둔을 시전해 초록빛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개명천수 역시 두 사람이 사라진 것을 보더니 두 눈에서 기이한 광채를 내뿜고는 바로 날아올라 다시 거대한 새가 되어 그곳을 벗어났다.

“무라. 먼저 저들끼리 싸움을 붙인 후 어부지리를 노리자더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곤륜경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멀쩡하게 달아나지 않았습니까?”

흑의의 청년이 마면 사내를 내던지고는 따지듯 물었다. 이들은 거청천 등이 난입하자 두 사람이 심협과 싸우느라 양쪽 모두 법력 소모가 심해졌을 때 나서기로 했다.

그 말에 무라는 표정이 차갑게 변해 흑의의 청년을 노려봤지만, 다른 설명은 없었다.

“너도 마찬가지다. 속도로는 아무도 따라올 자가 없으니 곤륜경을 손에 넣는 건 문제없다 하지 않았느냐? 그 결과가 이거냐?”

땅에 누워 있는 마면 사내도 화를 냈다.

“말은 잘도 하는군요. 한심한 작자 같으니라고……. 내가 아니었으면 당신은 저 재수 없는 놈과 똑같은 꼴이 되었을 것 아닙니까?”

마면 사내가 더 화를 내려는데 무라가 버럭 호통을 쳤다.

“입들 좀 다무시죠! 지금 그딴 걸 따져서 무얼 한단 말입니까? 이제 우리 선택은 하나뿐이니 어서 가시죠.”

그 말에 마면 사내와 흑의의 청년 모두 분노를 가라앉혔고, 두 사람은 무라를 따라 제단 깊은 곳으로 향했다.

한데 무라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거청천을 돌아봤다.

“거 도우, 우리끼리는 별다른 충돌이 없었으니 지금부터라도 손을 잡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놈들을 다시 마주쳤을 때 그쪽이 더 승산 있지 않겠어요?”

거청천은 팔비천룡 언갑을 해제하지 않고 용의 눈으로 무라 등을 슥 보더니 무시하고는 몸을 돌려서 제단을 떠났다.

무라 역시 개의치 않는 듯 돌아서서 두 사람과 함께 계속해서 제단 깊은 곳으로 향했다.

세 사람은 금방 폐허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빛의 문이 있었고, 무라는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흑의의 청년과 마면 사내 역시 바로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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