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1화. 치명적인 화살

암수의 왕은 쏟아지는 공격에 분노가 폭발한 듯 곤봉의 허상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가히 궁전만 한 주먹이 곤봉의 허상과 충돌했지만, 예상했던 굉음은 울려 퍼지지 않았다. 산 같은 곤봉의 허상이 주먹과 닿자마자 갑자기 늪에 빠진 것처럼 전부 사라진 것이다.

“주먹에도 그 기이한 흡수의 힘이 있는 것인가?”

심협은 내심 놀라면서도 양발에서 보라색 뇌광을 번쩍였고, 곧장 보라색 뇌전이 되어 순식간에 암수지왕(暗獸之王)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암수지왕이 갑자기 휙 돌아보더니 사납게 포효했다.

육안으로 보이는 검은 음파가 뿜어져 나오며 거친 파도 소리와 함께 심협에게로 휘몰아쳤다.

생각보다 빠른 반응이었지만, 심협은 당황하지 않고 한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붉은 빛과 함께 새빨간 장검이 바로 나타났고, 그 위로 주작의 허상이 떠올랐다. 주작의 검령이 있는 순양검이었다.

검을 쥔 손목을 살짝 떨자 붉은 검기가 검산(劍山)처럼 세차게 솟아올라 검은 음파를 강하게 베었다.

하지만 검은색 음파에마저 강력한 흡수 신통이 있는 것인지 검기는 닿자마자 사라졌다.

그러나 이 순양검은 앞서 대량의 용암진화를 받아들여 그 위력이 대폭 증가한 터라 어마어마한 검기를 뿜어냈기에 검은색 음파도 절반밖에 흡수하지 못했다. 나머지 절반 정도의 검기는 계속해서 암수의 왕을 베기 위해 날아갔다.

대전이 눈부신 검기의 광망으로 뒤덮이면서 흑암이 대부분 사라졌다.

심협이 결인을 바꾸자 붉은 검기에서 두 개의 진화가 솟아올랐다. 하나는 주작진화였다. 주작진화가 엄청난 고온을 뿜어내자 대전의 허공이 진동했다. 다른 하나는 같은 붉은색이지만 그다지 뜨겁지 않았지만, 불꽃 안에서 수많은 신혼이 고통스러운 몸부림쳐 소름이 끼쳤다. 바로 홍련업화였다.

음과 양의 두 진화는 상충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로 어우러져 강력한 위세를 떨쳤다.

암수지왕은 깜짝 놀라 입에서 칠흑 같은 정혈을 검은 고경(古鏡: 오래된 거울)에 뱉어냈다.

고경이 갑자기 웅웅 떨리기 시작하더니 검은 빛을 뿜어내 암수지왕에게로 녹아들었다. 그러자 암수지왕의 몸에서 짙은 검은 빛이 떠올라 본체를 뒤덮었다.

암수지왕의 몸을 벤 무수한 검기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모두 사라졌다.

심협이 굳은 얼굴로 황급히 결인을 하자, 순양검에서 나온 검기가 모두 돌아왔다.

암수지왕의 몸을 뒤덮은 검은 빛 또한 빠르게 사라졌다. 놈은 팔을 다시 검은색 고경에 넣었다. 방금의 술법을 시전하느라 지쳤는지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데 그때, 암수지왕의 뒤편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천살시왕이 나타나 번천인을 크게 내리쳤다.

반짝이는 영광과 함께 순식간에 백배로 커진 번천인은 궁전만 해져 정확하게 제단 위의 검은색 고경에 떨어졌다.

“천살시왕! 저 암수들은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이 민감할 텐데 어떻게 숨긴 거냐?”

소요경 안의 화령자가 명화연로에서 나오더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몸 주위에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니 완전히 회복된 듯했다.

“깨어났어? 저 암수들은 암영의 힘으로 기운을 감지하니 분명 대단하지. 허나 이 술법에는 큰 허점이 있어. 지나치게 흑암의 힘에 의존하니 흑암이 사라지면 저것들의 신통도 대폭 떨어진다는 거지.”

심협은 화령자가 반가워 환하게 웃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그렇군. 아까 하늘 가득 검기를 쏘아 보낸 것도 암수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천살시왕을 숨기기 위함이었군.”

암수지왕도 이 연시가 어떻게 숨어들었는지 깜짝 놀란 듯 다급히 손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꽈르릉!

번천인이 운석처럼 떨어지자 제단에서는 경천지동할 굉음이 울려 퍼졌다.

대청 전체가 갑자기 크게 흔들리더니 주위의 벽에서 검은 빛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자갈과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제단에서도 검은빛이 뿜어져 나와 번천인의 일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고경 옆의 암수지왕은 납작하게 눌려 시커먼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렸고, 바로 흑홍의 광망이 교차하며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암수지왕의 통제가 사라지자 검은색 고경도 광망이 전부 사라져 평범한 거울이 되었고, 대전 밖 여덟 개의 흑암의 촉수들도 사라졌다.

그러나 심협은 평범해 보이는 대전이 번천인의 일격을 견뎌내자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암수지왕에게서 고경을 분리한다는 목적은 달성했으니 돌아서서 암수지왕을 향해 결인했다.

대전 꼭대기에서 굉음과 함께 열 자루의 붉은 검광, 순양검이 쏟아져 들어오더니 번개처럼 암수지왕에게로 날아가 빠르게 회전하며 금세 순양금광검진을 만들었다.

암수지왕은 비록 고깃덩어리처럼 변해버렸지만, 아직 죽지 않았기에 꿈틀거리며 다시 형체를 이루려 했다. 그러나 무수히 타오르는 금색 검광이 성난 파도처럼 몰려오자 순식간에 몸에 수많은 구멍이 뚫렸다.

뒤쪽의 벽에도 커다란 구멍이 났는데, 부서지는 돌 사이로 검은색 문로가 어렴풋이 보였다.

심협도 빠르게 날아와 오화칠금선을 전력으로 부쳤다.

오색 불기둥이 뿜어져 나가 암수지왕의 부서진 몸을 뒤덮었다.

쾅!

굉음과 함께 불기둥은 오색 불바다가 되어 암수지왕은 물론 뒤덮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암수지왕은 검은 고경과의 연결이 끊기면서 원기가 크게 손상된 상태에서 순양금광검진과 오화칠금선의 공격이 이어지자 마침내 몸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새어 나온 흑암의 힘은 바로 오색의 불꽃에 타서 원기가 빠르게 흩어지며 금방이라도 완전히 타버릴 것 같았다.

이 암수는 당연히 죽고 싶지 않았기에 포효하며 먹물 같은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이 검은 기운은 고경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빛과 비슷해 그 강력한 오색 화염도 손쉽게 흡수했다.

암수지왕은 숨 돌릴 틈이 생기자 몸을 빠르게 합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얼굴에 있는 여섯 개의 눈이 전부 떠지면서 동시에 혈광을 뿜어냈다.

하나로 합쳐진 혈광은 굵은 빛줄기가 되어 주위 공간을 조금씩 뒤틀어 대번에 오색 불바다를 뚫었다. 심지어 바깥의 순양금광검진도 함께 뚫렸다.

뒤이어 검은 그림자가 빛줄기 안에서 튀어나왔는데, 바로 암수지왕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변고라 심협도 미처 막을 겨를이 없었다.

심협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순양금광검진을 향해 결인했다. 검진은 곧장 암수지왕을 쫓아갔다.

두 발의 추운축전화도 보라색 빛을 강하게 뿜어내며 내달렸다.

암수지왕은 망설임 없이 검은 그림자가 되어 대전 한구석의 그늘진 곳으로 향했다. 이 암수는 태을 경지였지만, 오늘은 운이 좋지 않아서 실력도 제대로 발휘해보지 못하고 중상을 입은 채 힘이 삼 할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천언궁 4층에는 흑암의 힘이 가득하니 무사히 도망치면 빠르게 회복할 수 있고, 그리 되면 저 무례한 인간에게 자신의 강력함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암수지왕의 몸에 검은 빛이 짙어지더니 추운축전화보다도 몇 배나 빨라졌다.

이를 본 심협은 다급해졌다. 4층은 곳곳이 어둠이라 암수지왕이 도망치면 잡을 수 없을 터. 그로서는 후환을 남길 수는 없었다.

심협은 서둘러 모든 법력과 함께 양팔의 금색 뇌전에 담긴 힘도 추운축전화에 주입했다.

추운축전화에서 뇌광이 번쩍이더니 보라색 뇌전이 마치 찬란한 꽃처럼 피어올라 그의 몸을 뒤덮었다.

콰쾅!

천둥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더니 심협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다음 순간 그는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암수지왕 앞에 나타났다.

심협이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나자 암수지왕은 멍해졌는데, 놀라기는 심협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내가 전설의 뇌둔을 쓴 건가?’

심협은 추운축전화 안의 뇌전 금제가 갑자기 발동된 것을 느끼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뇌둔술은 천하의 둔술 중 가장 빠르고 신비로운 둔법으로, 풍둔과 마찬가지로 혈맥의 힘이 필요하거나 천부적인 자질 또는 신통이 보조되어야만 수련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이 추운축전화도 평보청운화처럼 둔술 신통이 있었던 것이다.

만수진인이 이전에 이 신발을 사용했을 때는 뇌둔 신통을 시전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평범한 법력으로는 이 안에 담긴 둔술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리라.

‘반드시 뇌전의 힘을 사용해야만 발휘할 수 있는 모양이군.’

심협은 기뻐하면서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오화칠금선의 영광을 강하게 뿜어내며 크게 휘둘렀다.

“캬오오오!”

온 하늘에 주작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거대한 오색 봉황이 부채에서 날아올라 암수지왕을 향해 날아갔다.

암수지왕은 방금 응집한 몸이 다시 절반 정도 부서졌고, 뒤이어 폭발음과 함께 오색 불바다에 뒤덮였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 오색 불바다 안에서는 수많은 신비한 부문이 떠오르며 끊임없이 용솟음쳤는데, 무서운 영압(靈壓)이 담겨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였다.

오색 불바다 안에서 암수지왕 몸은 급격히 붕괴하며 빠르게 줄어들었다.

암수지왕은 경악하며 다시 검은 기운을 뿜어내 주위의 오색 불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허공에서 검은색 마광이 번쩍이더니 검은색 마환 다섯 개가 나타나 목과 사지를 뒤덮었다.

다섯 개의 구유마환이 강하게 조여와 파고들자 암수지왕은 우뚝 굳어버렸고, 체내에 숨겨둔 흑암의 힘도 끌어낼 수 없었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오더니 수많은 금색 광진이 날아왔다. 순식간에 몰려온 순양금광검진이 오색 불바다로 뛰어들어 암수지왕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심협이 결인하자 5장 길이의 금색 검광이 암수지왕 목을 스쳐가며 머리를 베려 했다.

그 상태에서도 암수지왕은 죽지 않았고, 동강 난 몸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리더니 액체 같은 검은 기운으로 변하여 다시 합쳐지려 했다.

심협은 금광검진으로 검은 기운을 완전히 태워버리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단전에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법력이 모두 소모된 것이었다.

‘이런! 하필 이럴 때!’

연이은 격렬한 전투에 법력 소모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그는 서둘러 두 개의 선정을 꺼내 영력을 흡수했다.

선정 안의 영력은 매우 순수하지만 법력으로 바꾸려면 어느 정도의 과정이 필요했다. 그사이 순양검광검진은 법력이 사라지면서 빠르게 어두워졌고, 오색 불바다도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불바다 속의 암수지왕은 액체 형태로 변해 간신히 버티며 좌절하던 중 예상치 못한 변고에 눈을 번득였다.

이전보다 훨씬 작아진 혈색 빛줄기가 간신히 오색 불바다와 순양 검진을 뚫고 전방의 어둠을 향해 날아갔다.

심협은 이미 법력이 모두 떨어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때였다.

슈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섭채주가 대전 입구에서 빠르게 날아 들어오더니 두 눈에서 무서운 금빛을 뿜어냈다. 수중의 대궁은 그보다도 밝은 금빛을 뿜어냈는데, 시위가 당겨지자 마치 보름달 같았다.

금빛 화살이 활에 걸려 있었는데, 이는 무력(巫力)으로 만든 화살이 아닌, 이전에 심협이 준 후예의 금빛 화살이었다.

쉬익!

섭채주가 손을 놓자 금빛 화살은 허광(虛光)으로 변하여 허공을 찢어버릴 것처럼 날아가 혈색 빛줄기를 관통했다.

빛줄기가 부서지면서 암수지왕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였다.

암수지왕은 마치 모든 힘이 바닥난 것처럼 쓰러지더니 절망이 가득한 여섯 개의 눈으로 힘겹게 아랫배를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몸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기운이 되어 사라졌다.

검은 기운에서 혈홍색 물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암수지왕의 여섯 개의 눈이었다.

심협은 그제야 안도하고는 오화칠금선을 집어넣고 순양금광검진을 거둔 후, 열 자루의 순양검을 체내로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