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8화. 무(巫)의 습격
“정말요? 그럼 그 섬과 이곳이 정말 관련이 있다는 말이네요. 그런데 그 섬은 천언궁 밖에 있는데 어떻게 이곳과 연결이 되어 있는 걸까요?”
영민한 섭채주는 바로 그 연관성을 알아채고는 가느다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내 생각에는 연시가 있는 곳이 비석에 적힌 무덤이 아닐까 싶어. 설령 아니라 해도 관련은 있을 거야.”
“그럼 더 잘됐네요. 이 성은 너무 커서 목적 없이 찾아다니려면 정말 번거로웠을 거예요.”
심협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순양검을 꺼내 비석을 가로로 베었다.
눈부신 검광이 스쳐 지나가면서 비석이 잘려 나가자 그는 소매에서 붉은 빛을 쏘아 보내 비석을 소요경에 넣었다. 거청천 역시 3층에서 이런 짓을 했으니 이번에는 그가 비석을 가져간다 해도 미안해할 이유가 없었다.
“가자. 워낙 기이한 곳이니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몰라. 조심하는 게 좋겠어.”
심협은 천두금준을 소환한 뒤 유암의 성으로 향했다.
섭채주도 두 개의 법보를 소환했다. 하나는 노란색 범선(帆船) 모양 법보였고, 다른 하나는 옥정병이었다. 그녀는 백과 황의 광막으로 몸을 보호한 뒤 심협의 뒤를 따랐다.
유암의 성이 초행길임을 생각하여 두 사람은 날지 않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폐허가 된 건물을 지나가자 금방 반 시진이 지났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주위의 건물들은 더 커졌다. 어떤 집은 보통 건물보다 대여섯 배나 크기도 해 실로 장관이었다.
“방이 이렇게 크다니, 거인이 사는 곳일까요?”
섭채주의 말에 심협은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스쳐갔다.
‘이렇게 큰 건물들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가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두 개의 가느다란 검은 그림자가 기척도 없이 두 사람 뒤의 어둠에서 나타나더니 조용히 다가왔다. 두 개의 그림자는 심지어 아무런 기운이 없었고, 어둠에 섞여 있기까지 해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중 하나인 길이가 1장 정도 되는 검은 뱀이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와, 땅에서 튀어나오더니 기이한 검은 빛이 감도는 날카롭고 기다란 이빨로 섭채주가 쳐놓은 노란색 보호막을 덥석 물었다.
범선 법보가 만든 이 보호막은 매우 단단했지만, 검은 뱀의 이빨에 대번에 큰 구멍이 뚫렸다.
검은 뱀은 멈추지 않고 다시 번개처럼 달려들어 옥정병이 만든 하얀 광막까지 물었다.
챙!
맑은 소리가 울렸고 하얀 광막이 살짝 떨렸지만, 그뿐이었다.
섭채주는 그제야 깜짝 놀라 재빨리 서원마봉을 꺼내 휘두르는 동시에 구천선릉을 10여 개의 붉은 천으로 변화시켜 검은 뱀을 휘감았다.
검은 뱀은 공격이 막히자 바로 돌아서 도망쳤는데, 어찌나 빠른지 구천선릉과 서원마봉의 틈으로 빠져나가 금세 근처의 어둠으로 다시 들어가 사라졌다.
섭채주가 공격을 당하고 있을 때, 다른 한 마리의 검은 뱀도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심협에게로 달려들어 천두금준이 만든 보호막을 물었다.
금색 보호막이 격렬하게 흔들렸지만, 부서지지 않았다. 그러자 이 검은 뱀의 길고 가느다란 눈에서 흉광이 번쩍이더니 이빨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다시 물려고 달려들었다.
심협의 반응은 섭채주보다 빨라서 검은 뱀이 나타났을 때 바로 눈치챘고, 침착하게 소매를 휘둘렀다.
두 자루 순양검이 날아가 쌍검합벽 검식이 되어 한 발 먼저 검은 뱀의 몸을 베었다.
찍!
비단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뱀의 몸이 깔끔하게 두동강 났다.
휙!
가벼운 소리와 함께 몸이 반만 남은 검은 뱀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심협 옆으로 다가와 다시 입을 벌렸다.
내심 놀란 심협의 양손에 금빛이 반짝이자 순식간에 피부에 금색 용 비늘이 나타나 용의 발톱으로 변했다. 뒤이어 그는 오른손을 크게 휘둘러 검은 뱀의 머리를 잡더니 힘껏 움켜쥐었다.
콰직!
무서운 힘에 허공마저 강하게 흔들렸고, 검은 뱀의 머리는 단숨에 터졌다. 이어 남은 뱀의 몸도 시커먼 액체로 변했다.
하지만 이 뱀은 죽기 전에 용의 비늘로 뒤덮인 심협의 팔을 세게 물었다. 심협은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고, 동시에 음산한 느낌이 팔을 타고 들어와 곧장 머리로 침투하는 게 느껴졌다.
심협의 신혼은 마치 무언가에 강하게 물린 것 같은 격렬한 통증이 느껴지자 서둘러 은광종으로 신혼의 힘을 퍼트렸다.
뎅!
종소리 같은 기이한 소리가 울리면서 신혼의 힘이 담긴 강력한 음파가 퍼져 나가자 음한의 힘은 씻은 듯 사라졌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섭채주가 다급히 물었다.
“괜찮아. 저 뱀에게는 신혼을 공격하는 음한의 힘이 있으니 조심해.”
그가 팔을 들어 올리자 용의 비늘에 두 개의 깊은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 주위는 까맣게 물든 상태였다.
“엄청나게 강력한 이빨이로군. 용린의 방어는 상품 법보에 맞먹는 정도인데도 막아내지 못하다니…….”
심협은 크게 경계하며 만독혼원주를 발동했다.
은은한 보랏빛이 깊게 파인 구멍으로 모여들자 상처의 검은 기운이 빠른 속도로 증발했고, 색깔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상처 주위에서 무력(巫力)의 파동이 느껴져요. 아무래도 저 검은 뱀은 무족과 관련이 있나 봐요.”
옆에서 지켜보던 섭채주가 말했다.
“무력이? 하긴, 그럴 수 있지. 일전에 지부(地府)에서 무족의 유적을 본 적이 있는데, 이곳과 건축 양식이 비슷했어.”
심협은 아까 머릿속에서 스쳐간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생각났다.
“무족의 유적을 본 적이 있다고요?”
“나는 무족과 꽤 인연이 있나 봐. 무족 관련한 일을 많이 접했지. 나중에 얘기하자. 우선 여기 일이 마무리되면 자세하게 말해줄게. 지금은 빨리 들어가자.”
심협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하자 섭채주도 더는 묻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검은 뱀의 습격으로 두 사람은 경계를 높였다. 심협은 네 자루 순양검을 주위에 맴돌게 하며 검기를 모아 방어를 펼쳤고, 그 안으로는 천두금준이 만든 금색 광막을 펼쳤다. 뒤이어 연연나금의를 발동해 금색 광막 안에 세 번째 방어까지 펼쳤다.
섭채주도 마찬가지로 옥정병과 범선 법보 외에 은련(銀蓮) 법보를 꺼내 겹겹의 은색 연꽃잎이 주위를 맴돌게 했다.
이어진 여정에서도 심협과 섭채주는 끊임없이 기이한 암수(暗獸)들의 공격을 받았다. 전갈 같은 파충류도 있었고, 검은 늑대나 호랑이 같은 짐승도 있었으며, 박쥐 떼도 있었다.
이 암수들은 처음 보았던 검은 뱀들보다 강했지만, 공격 방식은 비슷해서 모두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기습했다.
암수들의 기습이 갈수록 심해졌음에도 두 사람이 이런 기습에 익숙해지면서 수월하게 대처했기에 별다른 위험은 없었다.
그때였다.
휙!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울렸고, 뒤이어 사람 머리통만 한 검은 전갈이 어둠에서 튀어나오더니 꼬리가 검은 선이 되어 빠르게 섭채주의 연꽃잎을 공격했다. 연꽃잎은 방어가 뚫렸지만, 두 번째 노란색 광막은 이 공격을 막아냈다.
검은 전갈은 공격이 막히자 곧장 옆으로 피해 도망가려 했다.
허나 그때, 어디선가 붉은 비검이 날아와 검은 전갈을 땅에 박았고, 이어 눈부신 금빛 불꽃이 비검에서 타올라 검은 전갈을 감싸고 태웠다. 바로 태양진화였다.
오는 길에 그는 몇 종류의 천화급 영염(靈焰)을 시도해봤는데 태양진화가 이 암수들에게 가장 위력적이었다.
검은 전갈은 비명을 질렀고, 금방 잿더미가 되었다. 하지만 꼬리는 타지 않고 그대로였다. 꼬리안에 담긴 기이한 무력이 태양진화를 막은 것이었다.
심협은 담담하게 소매를 휘둘러 금빛으로 전갈의 꼬리를 감쌌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써 몇 번이나 있었다. 기습한 암수들은 그다지 강하지 않지만 몸 곳곳에 기이한 무력(巫力)이 있었다. 검은 뱀은 이빨, 이 전갈은 꼬리였다.
무력(巫力)이 깃든 부위는 매우 강력해서 천두금준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니 이처럼 무력이 깃든 재료에 관심이 생겼고, 심협은 이것을 화령자에게 보여주고 법보로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다시 길을 나선 두 사람이 또 한참을 걷고 나니 눈앞의 건물이 비로소 완전해지기 시작했고, 시야를 가렸다.
“오라버니, 조심하세요. 앞에 숨어 있는 암수의 수가 많이 늘어났어요. 제가 본 것만 해도 스무 마리는 넘어요.”
섭채주가 눈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심협에게로 다가오더니 전음으로 말했다.
“응, 나도 감지했어. 다만, 그 연시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계속 가야지.”
“알겠어요. 그런데 이 암수들이 4층의 시련일까요?”
“그럴지도……. 뭐가 됐든 앞으로 가보는 수밖에 없어.”
심협이 현황일기곤을 꺼내 들자 곤봉에서는 강렬한 금빛이 번쩍였다.
섭채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눈의 금빛을 강하게 발했고 등 뒤에서 금백(金白)의 나비 날개가 나타났다.
하얀색 날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지만 금색 날개에서 광망이 강하게 발하더니 눈부신 금빛이 날아와 그녀의 수중에 떨어졌고, 금색의 대궁(大弓)으로 변했다.
섭채주가 금색 대궁을 강하게 쥐자 온몸의 피부도 빠르게 금색으로 변했는데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서 강력한 기운이 폭발했다.
“법력이 전부 회복된 거야? 후예의 힘을 발동하면 원기가 소모될 텐데.”
“아까 복용했던 단약은 보타산의 특제 영단이라 이미 법력이 완전히 회복됐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섭채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는데 얼굴에 이전에 없던 위엄이 넘쳤고 목소리도 조금 변화가 있었다.
심협은 눈빛이 흔들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건물들 안으로 들어갔다.
앞 건물에있는 암수들의 눈에서 흉광이 반짝이더니 검은 그림자에 숨어있던 것들이 전부 튀어 나왔다.
눈살을 찌푸린 심협이 주위에 있는 네 자루의 순양검에서 붉은빛을 강하게 발하자 주위가 환하게 빛났다.
하지만 더 밝아진 광망에 그림자가 생기자, 심협 발밑에 있던 한 가닥의 그림자가 갑자기 몇 배로 커지더니, 처음에 두 사람을 공격했던 검은 뱀보다 몇 배는 더 큰 커다란 뱀이 튀어나오며 가장 밖에 있는 검기의 광막을 물었다.
검기의 광막이 강하게 떨리면서 콰직 하는 파열음이 났다.
금색의 곤봉이 검은 뱀의 머리에 나타나더니 금빛의 불꽃, 태양진화가 타올라 단번에 검은 뱀의 머리를 가격했다.
광포한 곤봉에 담긴 태양진화의 힘이 검은 뱀의 몸 안에서 폭발하자 뱀의 몸이 완전히 타서 금빛이 되어 사라졌다.
위기는 해소되지 않고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심협 주위의 돌, 땅의 틈, 심지어 발밑의 그림자까지 살아있는 것처럼 빠르게 커지더니 암수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와 심협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이 암수들은 체구가 컸지만 실력은 이전의 검은 뱀보다 못했다.
심협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양손을 차륜처럼 돌리자 빼곡한 곤봉의 허상이 바람을 가르며 주위를 휩쓸었다.
이미 정수를 깨달은 발천난봉의 허상이 하늘을 뒤덮고 휩쓸자 이전과 같은 무서운 기세가 아니라 유유히 구름이 흐르는 곤봉 허상들이 정확하게 암수들에게 꽂혔고, 암수들은 하나둘 목숨을 잃어갔다.
섭채주도 수많은 암수의 기습을 받았는데, 그녀는 별다른 수단을 쓰지 않고 금색 대궁을 쥐었다. 금빛이 번득이자 시위도 당기지 않았는데 금색 화살이 폭우처럼 날아가 달려오던 암수들을 몰살시켰다. 이 금색 화살에는 후예의 무력이 담겨 있어서 무력(巫力)을 사용하는 암수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두 사람은 막힘없이 빼곡한 건물들을 향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