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56화 (956/1,214)

956화. 정(靜)으로 동(動)을 제압하다

두 사람은 다시 불바다로 들어갔고, 금방 용암 근처에 도착했다.

심협은 다시 법력을 섭채주에게 일부 전해주고는 이전처럼 열한 자루의 순양검을 발동해 두 사람을 보호했고, 네 마리의 검령을 용암으로 보내 빠르게 금색 불꽃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네 자루 비검 안의 영력이 빠르게 늘어났고, 세 자루의 금오 비검 안의 순양 금제가 다시 천천히 만들어졌다.

법력이 절반 정도 회복된 섭채주도 주위를 경계하며 심협의 호법을 섰다.

“심협, 무슨 생각으로 갑자기 멈춘 거냐? 네 아내처럼 나까지 속일 생각은 마라. 네가 천언선존의 전승에 관심 없다는 말은 안 믿으니까.”

소요경에서 줄곧 눈을 감고 조용히 있던 화령자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웃으며 물었다. 이곳 금제에 소요경은 봉인되었지만, 신식은 자유롭게 뚫고 나올 수 있었다.

“무슨 소리야? 난 채주를 속인 적 없어. 정말로 여기 금색 불꽃은 얻기 어려우니 순양검의 위력을 높이고 싶다고. 안 그래도 네가 필요했는데 마침 잘됐군.”

“무슨 일인데? 설마 금빛 화살에 있는 금오의 혼도 검령으로 만들어달라는 건 아니겠지?”

화령자가 화살 세 개를 들며 말했다.

“눈치 한번 빠르다니까. 왜 아니겠어? 내 오화칠금선도 소요경에 있으니까 세 개의 금오의 혼을 금선에 봉인된 비검에 넣어줘.”

소요경 안, 붉은 빛을 번득이며 오화칠금선이 소요경 깊은 곳에서 나오더니 안의 다섯 자루의 순양검도 나와서 화령자 앞에 나타났다.

“전혼기령비술을 시전하려면 비검의 주인인 네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너는 소요경 밖에 있어서 비검을 제어할 수 없으니 실패할 확률이 이전보다 훨씬 높다.”

화령자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러나 지금 천언궁의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최대한 빨리 실력을 키워야겠어. 그리고 난 널 믿는다. 반드시 성공할 거야.”

“내가 있다고 해서 꼭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화령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다소 음흉하게 웃었다.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빙빙 돌리지 말고 어서 말해봐.”

“역시 말이 잘 통한다니까. 조건은 간단하다. 네가 갑자기 멈춘 진짜 이유를 말해줘.”

“겨우 그거야? 그건 너와 아무 관계없는데?”

“삼계에서 나와 관련된 일은 어차피 많지 않지. 그냥 호기심 때문이다.”

심협은 놀란 기색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 화령자가 처음 제시한 거래도 단순히 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었던다.

“뭐, 말해줘도 상관없겠지. 그냥 누가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야, 아니, 뒤가 아니라 앞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그래? 어떻게 알았지? 이곳은 신식이 멀리까지 나갈 수 없는 데다가 네 유명귀안은 멀리 내다볼 수 없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시력만 따지면 확실히 채주보다 못하지. 그들을 발견한건 정말 순전히 우연이었어.”

“오, 어떻게 발견했는데?”

“아까 채주가 사막에서 무력 파동이 느껴졌다고 한 거 들었어?”

“들었지. 근데 그게 왜?”

심협이 오히려 반문하자 화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처음에는 그냥 우연인 줄 알았어. 그런데 무력 파동이 느껴졌다는 곳으로 가보니 이 불바다와 용암 시련이 있었지. 그리고 그 용암을 건너니까 또 우연히 3층에서 나갈 수 있는 빛의 문 부근에 도착했다? 이게 정말 우연일까?”

“그러니까 네 말은 이전의 무력 파동이 누군가 일부러 방출해서 너희를 3층 출구로 유인한 거다? 그건 그냥 추측이지 증거가 없지 않은가.”

화령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서 아까 그곳에 수단을 좀 남겨놨지.”

심협의 담담한 목소리에 이어 미간에서 검은 기운이 반짝이더니 검은색 세로 눈이 나타났다. 바로 천마안 신통이었다.

천마안 안에서 희미한 화면이 나타났는데, 바로 심협과 섭채주가 불바다를 건너고 나서 대화를 나눴던 그 모래언덕이었다.

그런데 모래언덕 근처에 이상한 어둠이 나타나더니 안에 서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정말 네 말대로 누군가의 소행이었군. 한데 천언궁에는 너희만 들어오지 않았나? 잠깐, 저들 가운데는 무라 같은데? 옆의 둘은 누구지? 거청천과 염열이 아니야! 이곳에 다른 자들이 있다니…….”

“저자는 무라가 맞아. 천마안으로 마기를 확인했어. 다른 둘은 낯선 자들이고. 무라에게 소요경 같은 공간 법보가 있는 건지도 모르지. 아니면 원래 천언궁에 있던 자들일 수도 있고. 어쨌든 저들의 목표는 나와 채주야. 저들이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나와 채주를 서둘러 다음 층으로 보내는 게 목적인 것 같다. 그래서 저들의 반응을 지켜보려고 시간을 좀 끈 거야.”

“일리가 있군. 정황을 알 수 없는 상황이면 정(靜)으로 동(動)을 제압하는 게 타당하지. 심협, 네 지력이 날이 갈수록 치밀해지는구나. 능구렁이 같은 늙은이들도 널 따라가지 못할 거다.”

화령자가 웃으며 말했다.

“고맙군. 자, 원하는 걸 말해줬으니 이제 금오의 혼을 제련해줄 건가?”

“물론이다.”

화령자는 약속을 지키는 자였기에 바로 곡현성반을 꺼냈다.

수백 개의 금빛 광흔이 성반에서 솟구치더니 밀실 구석구석으로 내려와 복잡한 법진을 이뤘다. 바로 현성속대진이었다.

연신대진의 비석도 검은 빛을 뿜어내 검은색 소용돌이를 만들어 현성속대진과 하나가 되었다.

심협은 잠시 지켜보다가 근처에 있던 순양비검을 두 대진으로 보냈다.

화령자가 명화연로를 향해 손을 휘두르자 보라색 불꽃, 자심지화가 연로에서 뿜어져 나와 순양검을 감싸고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적갈색 모래언덕 근처. 무라와 그리고 두 사람은 심협이 있는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 사람 주위에 있던 검은 그림자가 사라지면서 이들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붉은 그림자는 말의 얼굴을 한 사내였다. 납작한 코와 작은 귀, 붉은빛이 감도는 피부가 퍽 괴이했다.

다른 자는 흑의의 청년으로, 이목구비는 준수했지만 얼굴에 이상한 검은색 문로가 가득했으며, 차가운 눈빛은 두 개의 끝이 보이지 않은 깊은 연못 같았다.

“출구가 눈앞인데 왜 갑자기 멈추는 게냐!”

말 얼굴의 사내가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다.

흑의의 청년이 입을 벌리자 앞에 검은 빛이 나타나더니 금세 검은색 거울로 변했다. 뒤이어 결인하자 검은색 거울에서 파문이 일어나더니 금방 희미한 화면이 나타났다. 심협과 섭채주의 모습이었다. 화면은 흐렸지만 심협이 네 개의 검령을 발동하여 용암 안의 금색 불꽃을 흡수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저건…… 검령이잖아? 금염원염(金焱元焰)을 흡수하다니! 신수급 검령인가?”

마면(馬面)의 사내는 이 광경에 깜짝 놀랐다.

무라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마면 사내와 달리 그녀는 보자마자 세 마리의 금오검령이 후예의 사일신전(射日神箭) 안에 있던 금오지혼임을 눈치챘다.

하지만 요혼을 기령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워서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은데 심협은 후예 능묘에서 얻은 세 개의 금빛 화살을 전부 기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심협에게 요혼을 검령으로 만드는 수단까지 있었던 건가?’

무라는 내심 충격을 받았다. 자신에게도 금오의 혼이 세 개가 있으니 만약 이것들을 기령으로 만든다면 세 가지 법보의 위능을 보일 수 있으리라.

“가던 길이나 갈 것이지 왜 저런 짓을 하는 거야?”

마면 사내는 놀란 표정을 금세 지우고는 말했다.

무라의 표정도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눈살은 잔뜩 찌푸려진 채였다.

이들 세 사람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심협과 섭채주가 빨리 나아갈 수 있게 해줬다. 정확한 방향을 안내했을 뿐만 아니라 뒤에서 최대한 거청천과 염열 등의 여정을 지연시켰다. 모든 것이 심협과 섭채주를 서둘러 4층으로 보내 그들이 오랫동안 갈망하던 보물을 얻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한데 심협이 갑자기 멈춰섰으니, 세 사람은 정말로 적잖이 당황했다.

“보아하니 저 금염원염으로 법보 위력을 높일 수 있는 모양입니다. 저 불꽃이 매우 드물기는 하죠.”

“그럴지도…….”

흑의 청년의 말에 마면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녀는 심협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챈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전에 방향을 안내한 수단이 실수였습니다. 부디 못 알아챘길 바라는 수밖에요.”

무라가 불만을 표하며 마면 사내를 노려봤다. 저자는 실력이 강하지만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너무 충동적이었다. 이전에 무력 파동으로 심협 등에게 방향을 알려준 것도 저자의 소행이 아니던가. 이는 너무 성급한 행동이었고, 말릴 틈도 없이 저질러버린 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심협이 불바다를 살피러 갔을 때 저 여자를 끌고 올 걸 그랬어.”

마면 사내가 달갑지 않은 듯 혀를 찼다.

“지금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앞으로 어찌 할지나 상의하시죠.”

흑의의 청년이 마면 사내를 노려보고는 말했다.

“무라, 당신 생각은?”

“심협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챘을지 모른다는 게 걱정입니다.”

“그럴 리가 없다. 지금까지 조심하며 거리를 유지해왔고 또 노흑(老黑)의 암영둔(暗影遁)을 사용해서 모든 흔적을 감추고 조금의 기운도 남기지 않았어.”

마면 사내가 말도 안 된다는 듯 투덜거렸다.

“무력 파동으로 방향을 알려준 것이 우리의 흔적을 드러냈다는 겁니까?”

흑의의 청년이 날카롭게 지적하자 마면 사내는 화가 난 듯 두 눈에 붉은 빛이 감돌면서 두 개의 불꽃이 확 타오른 채 흑의의 청년과 무라를 노려봤다.

“맞습니다.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알려준 방향에서 3층 출구를 발견했으니, 신중하고 명민한 심협이라면 의심할 만도 하지요.”

무라는 마면 사내의 눈빛을 무시한 채 차갑게 말했다.

“분명 그건 경솔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어찌 하는 게 좋겠습니까?”

흑의의 청년도 마면 사내를 무시하고 물었다.

“저자가 벌써 우리를 의심하기 시작했으니 앞으로는 절대로 나서서는 안 됩니다. 우선은 거청천의 행보를 최대한 늦춰야 합니다. 천언선존의 전승이 앞에 있으니 아무리 의심이 들어도 줄곧 저리 시간을 끌지는 않을 겁니다.”

“좋습니다. 거청천을 막는 데 주력하지요. 안 그러면 모든 것이 수포도 돌아갈 겁니다.”

흑의의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면 사내는 팔짱을 끼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봤다.

흑의 청년이 손을 휘두르자 그림자가 다시 세 사람을 뒤덮었고, 이들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뒤이어 모래언덕 부근의 허공에서 검은 빛과 함께 검은색 마안이 나타나더니 곧바로 소리 없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 * *

불꽃처럼 붉은 빛으로 온몸을 감싸 바닥과 주위의 열기를 차단한 채 가부좌를 하고 있던 심협은 천마안을 통해 무라 등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여기서는 날아다닐 수 없는 것 아니었던가? 저들은 어떻게 비행을 한 거지? 저 검은 옷을 입은 자에게는 이곳의 금제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건가?’

그는 눈빛을 번득였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는 네 자루 검령으로 용암의 금색 불꽃을 흡수하는 데 전념했다.

흑의의 청년과 마면 사내는 딱 봐도 강자들로, 지금의 무라보다 약하지 않았다. 앞으로 험난한 예정이 될 것 같으니 더욱 조심하고 신중해야 했다.

네 자루 비검 위력은 조금씩 강해졌다. 주작검령의 본체 금제는 이미 64도에 도달하여 용암의 불꽃을 흡수해도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주작검령이 두 배로 커지고 외형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 꼬리 깃털이 더 길어졌고 머리 위의 우관(羽冠)도 더 커져서 점점 남이(南離) 신수 주작의 패기를 드러냈다. 주작검령은 본디 알에서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주작으로, 비록 기령이 되긴 했지만 힘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이미 성년이었던 금오의 혼은 금색 불꽃을 흡수해도 큰 변화가 없었지만, 검령이 있는 세 자루 순양검의 위능은 크게 증폭했고, 금제도 한층 더 늘어갔다.

심협은 신중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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