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49화 (949/1,214)
  • 949화. 시간을 다투다

    “좋은 보물이군. 내가 가져가마!”

    심협이 짧게 외치며 양손에서 푸른 빛을 강하게 뿜어냈다.

    콰쾅!

    더 거대한 푸른 한파가 인형 언갑에게로 휘몰아쳤다.

    인형 언갑은 온몸에서 푸른 빛을 발하고는 다시 허공에서 사라졌다.

    이를 본 심협은 양손을 좌우로 휘둘러 푸른 빛을 증폭켰다. 그러자 푸른 한파도 몇 배로 증폭해 극한의 힘이 순식간에 하얀색 대청 전체를 뒤덮었다.

    쩌적!

    굉음과 함께 거대한 벽과 땅에 커다란 얼음들이 맺혔다. 허공도 마찬가지라 대청 안의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수십 장 밖에 나타난 인형 언갑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타나자마자 두꺼운 얼음 결정이 맺혀서 움직일 수가 없게 됐다.

    언갑은 굴복하지 않고 양발의 영화(靈靴)에서 푸른 영광을 뿜어내 다시 풍둔술을 시전하려 했다.

    하지만 진창해 한기의 영향으로 영광을 발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심협의 진창해는 영력을 얼리는 수준까지 오른 것이었다. 다만 너무 방대한 범위에 시전하다 보미 한기가 퍼져나가는 효과가 크게 줄었다.

    “영력동결(靈力凍結)!”

    심협이 결인하자 푸른 빛의 파동이 언갑을 향해 퍼져 나가면서 주위의 영력은 완전히 얼어붙었고, 푸른 영화의 풍(風) 속성 영력도 굳어버렸다.

    심협은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가 지나는 곳마다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그는 순식간에 언갑 옆에 도착했다. 붉은 검광이 소매에서 날아가 인형 언갑의 머리를 베었다.

    인형 언갑은 머리와 몸이 분리되자 온몸의 영광이 빠르게 어두워졌고, 두 발의 푸른색 영광도 함께 사라졌다.

    불쌍한 진선 후기 언갑은 실력을 제대로 뽐내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했다.

    “오라버니 실력이 이 정도까지 정진했을 줄은 몰랐어요. 제가 시간 신통을 시전해도 오라버니 적수가 되지 못하겠는데요?”

    심협이 뚫어놓은 통로를 통해 날아온 섭채주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니야. 언갑의 공격 방식을 미리 알고 있었던 덕분이지.”

    심협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평소의 그라면 인형 언갑과 몇 차례 손을 섞으면서 신통을 파악한 후 제대로 상대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무라가 다른 관문을 통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심협은 결인하여 대청 안의 한기를 제거한 뒤, 인형 언갑의 잔해를 가져왔다.

    우선 인형 언갑의 발에서 영화를 빼내어 보니 푸른 영문이 반짝였고, 옆에는 평보청운화(平步靑雲靴)라는 글씨가 작게 쓰여 있었다.

    신식으로 살펴보니 이 영화는 60도 금제가 있는 풍속성 법보였다. 금제 하나하나가 매우 현묘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역시 좋은 영화로군! 채주, 어서 신어 봐.”

    그는 크게 감탄하더니, 곧장 섭채주에게 건넸다.

    섭채주가 영화를 받더니 휙 던지자 영화는 두 개의 푸른 빛으로 변하여 심협의 몸으로 들어가 그의 두 발에 나타났다.

    심협은 갑자기 강력한 바람의 영력이 두 발을 감싸는 느낌과 함께 몸이 매우 가벼워져 언제든 바람을 타고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채주, 이건 네 거야.”

    “그 영화는 풍속성 영력이 있어야만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저는 풍속성 신통을 수련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신어봐야 별 도움이 되지 못하죠. 그 영화는 오라버니의 팔에 있는 풍뢰영문과 아주 잘 어울려요. 그리고 앞으로 오라버니가 나를 지켜주면 되잖아요.”

    심협이 막 반박을 하려던 때였다.

    “그만! 오라버니, 무라가 지금 어디까지 갔는지 모르는데 우리끼리 이런 일로 시간 낭비하지 말아요.”

    맞는 말이라 심협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형 언갑 수중의 대검을 들어 위에 새겨진 흑뇌(黑雷) 금제를 살폈다.

    한 줄기 음한 뇌전의 힘이 전해지자 머릿속 신혼의 힘까지 흔들릴 정도였다.

    “역시 현음지뢰였어! 이 뇌전은 매우 드문데, 천언궁에 현음지뢰가 담긴 법보가 있다니. 자극한빙도 그렇고, 천언궁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보물이 있는 걸까!”

    심협은 크게 감탄하고는 검은 대검과 언갑 잔해를 소요경에 넣었다.

    그때, 허공에 파동이 일어나더니 은빛 문이 나타났다.

    “이전과 똑같군.”

    화령자가 멀리서 날아왔다.

    그는 사람 머리통만 한 하얀 돌을 들고 있었는데, 위에는 영문이 가득했다. 벽 안에 있던 금제 돌덩이 같았다. 다만 화령자가 무슨 수단으로 이것을 가져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채주와 화 도우는 소요경에 있다가 필요할 때 후방을 지원해줘.”

    화령자가 든 돌을 힐끗 쳐다본 후, 심협이 말했다.

    두 사람은 거절하지 않고 소요경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한 걸음을 내디뎠는데, 평보청운화에 담긴 금제를 연화하지 않았음에도 그 속도는 배로 빨라져 단숨에 빛의 문으로 들어갔다.

    * * *

    화평곡. 심협과 무라가 법진으로 사라진 후, 거청천 등의 몸을 감싼 검은색 실도 조금씩 사라져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세 사람은 바로 전송법진으로 다가갔지만, 법진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 더는 빛이 반짝이지 않았다.

    “젠장! 젠장!”

    거청천은 분을 참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염열과 만수진인은 덜컥 겁이 나 뒤로 물러났다.

    “보아하니 천언궁을 탐색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군.”

    염열이 만수진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자는 경지가 높고 지금 거의 미쳐가고 있으니 빨리 달아나시죠. 우리가 힘을 합쳐도 상대가 안 될 겁니다. 여기를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요?”

    “이전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만도 않네.”

    염열이 씩 웃으며 묵혼비와 청천연을 꺼냈다.

    “방금 심 도우와 교환한 법보가 아닙니까. 이 법보들이 도움이 될까요?”

    “청천연과 묵혼비는 방금각 전대 각주의 본명법보일세. 공간 조종하는 대신통이 담겨 있지. 이 두 법보만 잘 사용하면 이곳의 공간을 찢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걸세.”

    설명을 끝낸 염열은 법력을 두 법보에 주입했다.

    두 보물에서 빛이 반짝이자 전송법진 안의 하얀 빛도 함께 반짝였다.

    이를 본 거청천은 표정이 돌변하더니 휙 돌아봤다.

    * * *

    눈부신 빛에 감싸였던 심협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5층 회색 거탑 앞에 서 있었다. 탑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그는 곧바로 탑 문 너머의 검은 통로로 들어갔다. 무라가 이미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었겠지만, 시간을 다투는 상황임은 분명했다.

    도중에 미궁 지도가 숨겨진 곳을 지나가던 그가 잠시 멈추고 살펴보니 돌벽에 똑같이 무족의 문자가 남아 있었다.

    “그대로인 걸 보니 환술이나 환상은 분명 아니군.”

    그는 내심 마음이 놓였다. 무라의 환술이 워낙 절묘하니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나아가 금방 천선미궁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미궁의 모든 것은 이전과 똑같았고, 안내하는 비석도 그대로였다.

    심협은 이곳의 지도를 가졌으니 걱정하지 않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평보청운화 덕분에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미궁 곳곳을 누볐다.

    그때, 후방의 검은색 통로 벽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누군가가 튀어 나왔다. 바로 무라였다.

    “심협, 여기까지 쫓아올 줄이야. 가장 경계해야 할 놈은 역시 너였구나. 허나 내 흑마주술(黑魔呪術)에 걸린 이상 네 목숨은 이제 내 손에 달렸다!”

    무라는 음산하게 웃으며 중얼거리더니 결인했다. 그러자 미궁 입구의 허공에 검은 빛들이 나타났는데, 매우 가늘어 눈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검은 빛이 빠르게 커지더니 다섯 개의 고치 같은 검은 실로 변했다. 실에는 수많은 검은 빛의 점이 반짝였는데, 자세히 보니 이 광점은 하나하나가 작고 시커먼 해골 머리였다. 이 해골들은 모두 소리 없이 포효하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매우 거칠어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검은 실들은 누군가에 의해 끊어져 있었다. 당연히 심협의 소행이었다.

    다섯 개의 끊어진 검은 실이 바로 불꽃으로 타오르더니 금방 사라졌고, 무라도 천선미궁으로 들어가 금방 사라졌다.

    한편, 심협은 미궁의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러나 바로 미궁 끝으로 가지 않고 곧장 천공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훼멸명왕 언갑의 강력함을 떠올리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훼멸명왕이 천공전에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 언갑의 위력은 막강해 거청천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것만 손에 넣으면 천언궁에서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그런 생각에 심협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심협, 거청천은 어차피 밖에 있으니 두려워할 것도 없지 않느냐. 괜히 서두르다 일을 망칠 수도 있으니 서두르지 마라.”

    화령자의 말을 듣고서야 심협은 자신이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걸음을 약간 늦췄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아. 거청천은 이곳을 자신의 전유물로 여겼으니 아마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야.”

    “네 말도 맞다. 천언궁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자니까 어떻게든 쫓아올지도 모르지. 어쨌든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그 말에 심협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명귀안으로 주위를 살피며 나아갔다.

    그렇게 속도를 줄였음에도 반 시진 후에는 천공전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몇 번인가 언갑의 공격을 받았지만, 이 언갑들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변변찮은 재료나 법보도 없었기에 소득도 적었다.

    이전에 훼멸명왕을 이용해 거청천과 맞붙었던 흔적은 완전히 복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수리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천언궁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건가? 아니면 천선미궁도 자동으로 복구되는 능력이 있는 걸까?”

    심협은 귀언의 인형에 있던, 자동으로 복구되는 능력이 떠올랐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젓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아홉 자루 순양검이 날아올라 구검합일의 신통으로 천공전의 대문을 쪼갰고, 동시에 신서를 소환하여 안으로 넣었다.

    잠시 후, 심협은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순조롭게 천공전의 대문을 열었다.

    대전 안은 텅 비어 있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곧장 가장 안쪽의 밀실로 향했다.

    밀실 입구의 금제에도 아무런 흔적이 없어서 이전처럼 검은색 열쇠를 꽂은 후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거대한 훼멸명왕 언갑이었다.

    자신의 직감이 들어맞자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게다가 천기성 장로의 영패도 아직 안에 꽂혀 있어서 언갑 가슴에 숨겨져 있던 문이 드러나 있었다.

    심협이 날아올라 훼멸명왕 가슴에 있는 숨진 문을 당기자 조종실이 나타났다.

    한걸음에 들어가 금색 의자에 앉은 그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언갑을 조종했다.

    지금 그의 경지는 한층 강해진 터라 이전과 달리 훼멸명왕을 조종해도 여유가 있었다. 거대한 언갑의 몸에서 금방 각양각색의 빛이 번득이더니 웅웅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은 빠르게 줄어들어 몇 호흡 만에 몇 장 높이로 변했다.

    소요경의 붉은 빛이 훼멸명왕을 휘감고는 소요경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신식도 이전보다 많이 진보해 언갑을 발동해도 여유가 있었고, 심지어 그 안의 여러 금제 상황을 살펴볼 여력도 있었다.

    훼멸명왕 언갑은 강력하긴 했지만, 소모가 극심했다. 단전이 있는 곳에는 단령법진(鍛靈法陣)이 설치되어 있어 연료를 주입해야만 법진의 운공이 유지되면서 훼멸명왕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다행히 이 단령법진은 언정만이 아니라 선옥이나 다른 영력이 담긴 물건으로도 발동이 가능했다.

    심협이 이전에 거청천과 싸우느라 훼멸명왕을 발동하면서 언갑 단전에 쌓아둔 영력은 절반이나 소모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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