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48화 (948/1,214)
  • 948화. 꿍꿍이

    산골짜기는 별로 크지 않아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심협과 염열은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고, 거청천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무라 수중의 검은 빛이 갑자기 번득이더니 그 아래 전송법진도 함께 요동쳤다.

    “무 도우, 문제를 찾은 겁니까?”

    거청천이 긴장한 목소리로 서둘러 물었다.

    “뭔가 단서를 찾은 것 같긴 해요. 전송법진이 이렇게 된 주요 원인은 내부의 금제가 오랜 세월 관리를 받지 않아 영력이 무너진 곳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거청천도 그런 문제일 거라고 의심하긴 했지만 확인되지 않았을 뿐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금제의 영력이 무너졌다고?”

    소요경 안의 화령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심협의 법력 분신이 물었다.

    “저건 절대 아닐 거다. 그리 간단한 문제였다면 내가 못 알아냈을 리가 없어.”

    “그래?”

    화령자의 단호한 말에 심협의 법력 분신이 눈빛을 반짝였다. 그러나 소요경 밖의 심협은 말없이 무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무 도우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이 정도 손상이면 당연히 해결할 수 있지만, 시간이 좀 오래 걸려요. 적어도 2, 3일은 걸릴 거예요. 시간이 부족합니다.”

    “이럴 수가……. 혹시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음…… 하나 있긴 한데……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무라가 거청천과 심협, 염열 등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떤 방법입니까?”

    “전송법진의 금제를 복구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법력으로 온양해주면 되지요. 다만, 지금은 상황이 긴박하니 모두의 힘을 빌려 서로 도와야 합니다. 제가 전송법진에 마원온영진(魔元蘊靈陣)을 설치할 테니 여러분께서 이 진에 영력을 주입해주세요. 잘하면 반나절 안에 복구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도와야지요. 어서 진을 설치해주시오.”

    거청천이 안심하며 말하자 무라는 검은색 진기와 진반을 꺼내서 빠르게 전송법진 주위에 설치했다.

    심협은 옆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무라를 바라보기만 했다.

    “오라버니, 무라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괜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만일은 대비해야겠지. 채주, 화 도우. 준비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나서줘.”

    “알겠다.”

    화령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곡현성반을 꺼냈다.

    “오라버니, 저는 화 선배 같은 신통이 없어서 소요경 너머로 술법을 시전할 수 없어요. 그러니 이 구천선릉을 먼저 밖에 놔두세요. 그럼 제가 제때 술법을 시전할 수 있을 거예요.”

    섭채주의 구천선릉을 심협이 몰래 결인하자 발아래의 땅에서 붉은 빛이 약하게 번득이더니 바로 땅속으로 사라졌다. 구천선릉은 토(土) 속성 법보였고, 산골짜기는 신식의 탐색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아무도 이 현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무라는 금세 법진의 설치를 마쳤다. 이 법진은 매우 커서 진문이 반경 30여 장을 뒤덮었다. 또한, 진문은 복잡해 그 안에 다섯 진안이 있었는데, 하나를 중심으로 나머지 네 개가 사방에 설치되었다.

    “화 도우, 이 법진에 뭔가 이상한 점은 없어?”

    심협이 마진을 바라보며 전음으로 화령자에게 물었다.

    “마족의 법진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지금 봤을 때는 취령진이 맞는 것 같긴 하군.”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건가.’

    무라가 가운데에 있는 진안에 서고 거청천과 심협, 염열, 만수진인이 다른 네 곳의 진안에 서서 마원온영진의 진기를 잡았다.

    “개(開)!”

    무라가 낮게 외치자 마원온영진이 발동했다.

    법진에서 갑자기 그윽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법진 안의 사람들을 뒤덮었다.

    심협 등은 무라의 말대로 수중의 진기를 발동했다.

    쿠쿵!

    대진이 돌아가면서 빠르게 네 사람 체내의 법력을 흡수해 진문을 타고 전송법진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송법진이 하얗게 번득이더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나아진 모습이었다.

    이를 본 거청천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순간이었다.

    펑!

    수중의 검은색 진기가 갑자기 터지더니 수많은 가느다란 검은 실로 변하여 빠르게 몸 곳곳을 휘감았다.

    이 검은 실은 새까맣고 반들반들한 데다가 검은 기운이 은은하게 흐르며 알 수 없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뭔지는 몰라도 사악한 물건인 게 분명했다.

    거청천은 깜짝 놀라 바로 술법으로 반격하려 했지만, 체내의 법력이 굳어버린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협과 염열, 만수진인도 같은 상황이었다. 이들은 모두 검은색 실로 만들어진 커다란 그물에 뒤덮인 채 법력이 봉인되어 움직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말도 할 수 없었다.

    심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검은색 깃발을 잡았을 때 몇 번이고 자세히 살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안심했는데 무언가를 놓친 것이 분명했다.

    법력이 봉인된 상태라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소요경을 열 수도 없었고, 그러니 화령자나 섭채주의 술법도 바깥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다행히 신중한 섭채주가 만일에 대비해 구천선릉을 바깥에 꺼내놨기에 심협은 바로 신식으로 그녀와 소통할 수 있었다.

    무라는 꼼짝도 못 하는 네 사람을 웃으며 바라보고는 진기를 크게 흔들었다.

    마원온영진에서 번득이던 검은 빛이 일렁이더니 겹겹의 검은 빛의 허상으로 변했다.

    심협 등은 몸이 다시 무거워졌고, 마치 진흙에 빠진 것처럼 더더욱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이를 본 무라는 더는 네 사람에게 손을 쓰지 않고 바로 전송법진으로 뛰어들면서 법진을 향해 소매에서 검은 빛을 쏘아 보냈다.

    법진 안의 하얀 빛이 다시 크게 번득이더니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녀를 전송하려는 순간, 법진 옆의 땅에서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붉은 비단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빠르게 무라의 몸을, 비단의 반대쪽은 심협을 감쌌다.

    하얀 법진의 움직임이 절정에 도달하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라와 붉은색 비단, 그 반대편에 연결된 심협의 몸까지 크게 흔들리더니 함께 사라졌다.

    * * *

    시야가 하얀 빛에 뒤덮였다가 다시 회복되었다. 심협은 압도적으로 넓은 하얀 대청에 나타났는데, 처음 천언궁에 전송되었을 때의 그 대청 같았다. 허공의 금신 금제마저도 똑같았다.

    그의 몸에는 여전히 검은색 실이 감겨 있어서 법력을 봉인하고 있었지만, 무라의 조종이 사라지자 실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법력도 느슨해졌다.

    구천선릉이 주위에 휘날렸지만 무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별다른 위험이 없음을 알고 있는 심협은 전력으로 공법을 운공하여 검은색 실의 봉인을 완전히 떨쳐냈고, 봉인된 법력의 제어도 천천히 회복됐다.

    “하!”

    그가 기합을 넣자 태양진화가 폭발하여 남은 검은색 실을 전부 불태워버렸다. 그제야 법력의 운공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무라는 어떻게 전송법진을 조종할 수 있었던 거야?”

    심협은 소매를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방금의 상황은 무라가 술법으로 모두를 따돌리고 혼자 천언궁 시련에 들어가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미리 대비했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면 그대로 함정에 빠질 뻔했다.

    옆의 허공에서 하얀 빛의 문이 나타나더니 섭채주와 화령자가 소요경에서 날아 나왔다.

    “무라는 이 비경에 오랫동안 머물렀으니 이전에 와봤을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군.”

    화령자의 말에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무라에게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여기는 전의 그 대청인가요?”

    섭채주가 구천선릉을 거두며 주위를 둘러봤다.

    화령자가 그 말에 멍하니 있다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바로 대청 구석에 돌덩이 금제가 숨겨져 있는 벽으로 날아갔다. 뭘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찰칵!

    대청 중앙 바닥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리더니 시커먼 구멍이 나타났고, 이전의 그 언갑과 똑같이 생긴 청사(靑蛇) 언갑이 튀어나왔다.

    청사 언갑은 나오자마자 바로 심협과 섭채주를 보더니 두 발로 땅을 박차서 푸른색 환영으로 변하여 달려들었다.

    섭채주가 공격하려는 순간, 붉은 검의 허상이 몇 개의 잔상을 남기며 번개처럼 날아가 청사 언갑의 몸을 스쳐갔다. 심협이 한 발 앞서서 손을 쓴 것이다.

    청사 언갑이 세 걸음을 내디뎠을 때, 커다란 몸이 두 동강 나면서 쿵 하고 쓰러졌고, 동시에 몸에 남아 있던 영광도 사라졌다.

    바닥의 검은색 구멍에서 다시 찰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 번째로 은랑(銀狼) 언갑이 나타났다.

    허나 이번에는 언갑이 달려들기도 전에 다시 순양검이 나타나 좀 전의 순양검과 쌍검합벽 검식을 이루었다.

    쌍검이 웅웅 떨더니 갑자기 사라졌고,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은랑 언갑 앞에 나타나 스쳐 지나갔다.

    쉿!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더니 은랑 언갑은 한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두 동강이 났다.

    섭채주는 살짝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바라봤다.

    반면 심협의 표정은 더없이 평온했다. 지금 그의 경지로 순양검을 발동하면 전선 초기 실력에 불과한 은랑 언갑은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첫 번째 관문에서 그의 관심이 가는 것은 오직 세 번째 언갑 뿐이었다.

    ‘이번에도 자극빙염을 가지고 있을까?’

    그의 진창해는 이미 제5층에 도달했지만 계속해서 자극빙염을 흡수하는 것은 여전히 도움이 됐다.

    검은색 동굴에서 다시 찰칵 소리가 나더니 세 번째 언갑이 튀어나왔다.

    이 언갑은 키도, 생김새도 평범한 사람 형태였다. 다만 들고 있는 무기는 이전의 언갑과 달리 검과 방패가 아닌 한 쌍의 검은색 대검이었다.

    대검의 검신에는 시커먼 번개무늬가 가득해 평범한 뇌전과는 반대 되는 느낌이 들었고, 음랭의 기운이 가득한 것이 뇌겁 중 현음지뇌(玄陰之雷)와 비슷했다.

    언갑의 신발도 조금 특이한 푸른 빛을 띠었고, 그 위에는 광풍 같은 영문이 가득한 것이 마치 회오리가 휘몰아치고 있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언갑을 한눈에 살핀 심협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다시 쌍검합벽을 시전했다.

    쌍검이 한순간 사라지더니 가위 같은 날카로운 검광이 언갑 앞에 나타나 크게 베었다.

    하지만 인형(人形) 언갑의 두 발에서 푸른 광풍이 불더니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쌍검합벽은 허공을 베었다.

    거의 동시에 푸른 허상은 귀신처럼 심협 뒤에 나타나더니 두 갈래의 어두운 뇌전 같은 쌍검을 휘둘렀다.

    심협은 내심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뒤로 소매를 휘둘렀다.

    푸른 한파가 강하게 뿜어져 나와 수십 장을 뒤덮고는 성난 파도처럼 인형 언갑을 향해 몰아쳤다.

    그의 진창해 신통은 이미 제5층 경지에 도달해 그 위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파에 몸이 닿기도 전에 언갑의 몸에 푸른 얼음이 맺히더니 빠르게 두꺼워졌다.

    허공에서도 얼음이 맺히더니 인형 언갑을 빠르게 포위했다.

    인형 언갑이 낮게 포효하자 두 발에서 강하게 뿜어져 나온 푸른 빛이 빠르게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갔다.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인형 언갑은 얼음으로 가득한 허공에서 기이하게 사라지더니 다시 백 장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풍둔술(風遁術)!”

    섭채주가 경악했고, 심협도 눈을 홉떴다. 오랫동안 수행해온 심협도 풍둔을 직접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풍둔은 오행둔술에 속하지 않아 익히기 매우 어려워 풍속성의 천부적 자질이나 혈맥의 힘을 통한 도움이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한번 익히고 나면 금둔(金遁)이나 화둔(火遁) 같은 보통의 오행 둔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순식간에 백 리를 날아가는 뇌둔술(雷遁術)과 맞먹을 정도였다. 한데 눈앞의 언갑은 저 신발로 풍둔을 시전하고 있었다. 저 보물을 손에 넣는다면 섭채주에게는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 하나 더 늘어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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