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44화 (944/1,214)
  • 944화. 음양상제(陰陽相濟)

    “미쳤어! 진짜 미쳤어!”

    화령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점점 어수선해지는 충돌음이 들려오자 화령자는 한숨을 내쉬고는 가부좌를 틀더니 전력을 다해 곡현성반을 제어하고 법진을 유지하여 모든 비검을 가두었다.

    심협의 단전은 마치 화산이 분출하는 것 같았고, 혈맥은 용암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이에 오장육부가 타는 듯한 고통이 끊임없이 그의 의지를 갉아먹어 숨 쉬기도 버거웠다. 조금만 숨을 쉬어도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그도 한 번의 연검으로 체내의 화독이 이토록 강렬하게 폭발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 그의 체내는 본래 순양의 힘으로 가득했는데, 순양비검 안에 세 마리의 금오검령이 들어가면서 극양의 기운이 붕괴 직전까지 폭증한 것이었다.

    주작석에 검을 갈면서 비검에 담긴 순양의 힘이 더욱 순수해지고 날카로워지면서 마침내 극양의 한계를 돌파했고, 화독이 모조리 폭발하여 그의 몸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심협은 이미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수(水)의 힘으로 화독을 제압하려 했지만, 두 힘의 차이는 너무 컸다. 그럼에도 주작석이 거의 다 소진되고 비검의 연마도 거의 완성되었기에 심협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펑! 펑! 펑!

    비검과 법진의 충돌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이는 심협의 비검 제어가 갈수록 약해지고 그의 의식도 붕괴 직전까지 왔음을 의미했다.

    이를 본 화령자가 탄식하더니 손을 휘둘러 더 많은 법력을 곡현성반에 주입했다. 뒤이어 허공에서 주먹을 쥐자 금색 방어 법진이 그의 동작을 따라 끊임없이 줄어들어 비검의 활동 범위를 압축했다. 그렇게 비검들이 주작석과 더 빨리 충돌하게 하여 검을 연마하는 속도를 더 높인 것이다.

    고작 1각의 시간이 화령자에게는 마치 1년처럼 길고 길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주작석이 마침내 사라졌다. 이에 모든 비검이 검광을 뿜어내며 법진 밖으로 빠져나왔다.

    펑!

    커다란 폭음이 울려 퍼졌다.

    곡현성반에서 뿜어져 나오던 금색 방어 법진은 비검의 날카로운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단번에 산산이 부서졌고, 화령자도 충격에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허공에 떠 있던 곡현성반도 힘없이 떨어졌다.

    화령자는 곡현성반의 상태를 살펴볼 틈도 없이 서둘러 몸을 일으켜서 심협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심협의 몸에 손을 대려는 순간, 그 불길 같은 뜨거움에 깜짝 놀라 손을 거뒀다.

    “설마…… 몸이 타고 있는 거냐?”

    하지만 그의 외침에도 심협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이때, 허공을 맴돌던 열여섯 자루의 비검이 일제히 심협의 곁으로 돌아오자 심협의 체온은 더 올라가 정말로 옷이 타기 시작했다.

    이 광경에 화령자는 당황하여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갑자기 땅에 떨어진 곡현성반을 주웠다. 후 불어 흙먼지를 털어낸 그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했다.

    곡현성반이 천천히 날아올라 심협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뒤이어 그가 양손을 벌려 허공으로 내밀자 곡현성반에서 빛이 번득이더니 푸른 법진이 하늘에서 내려와 물의 장막이 되어 그를 뒤덮었다.

    법진 중앙에 앉은 심협의 온몸에서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야 심협은 정신이 들었다.

    그는 전력으로 대진을 유지하고 있는 화령자의 모습에 왠지 마음이 뭉클해져 허공에 떠 있는 모든 비검을 거두지 않고 전부 동부 문 쪽으로 보내 자신에게서 떨어트렸다.

    “고맙군. 진심이다.”

    “감사는 됐고, 이 천일수원진(天一水元陣)은 곡현성반에서 가장 고급 수법인 대진인데도 네 화독을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는 거냐? 없으면 바로 유언이라도 남겨라.”

    화령자가 꾸짖는 사이 그의 입가에 피가 흘렀다. 그도 크게 무리를 한 것이다.

    심협이 떨리는 손을 들자 소요경의 문이 열렸다.

    영문도 모른 채 나온 섭채주는 발가벗은 심협을 보고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금방 심협의 기운이 기이함을 느끼고는 다시 돌아섰다.

    그녀는 남녀유별을 신경 쓰지 않고 한걸음에 빛의 문에서 나와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화독의 영향을 받아서 지금 생명이 위태롭다.”

    화령자가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이 말에 섭채주는 당황했지만,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럼에도 걱정되는 기색은 감출 수 없었다.

    다가가 심협의 팔을 잡은 그녀는 그 뜨거움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화 도우도 상태가 좋지 않으니 여기는 제게 맡기고 먼저 소요경으로 들어가 치료하세요.”

    “하지만 심협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는 한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알겠다. 그럼 부탁하마.”

    화령자는 그녀의 확고한 표정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곡현성반을 들고 소요경으로 들어갔다.

    빛의 문이 닫히자 섭채주는 다시 심협을 바라봤다.

    천일수원진이 사라지자 화독이 폭주하여 심협은 순식간에 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의 법력으로는 이미 화독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어서 체내에 작열하는 힘이 폭주하자 온몸의 피부가 빨개지다 못해 가뭄의 논밭처럼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섭채주는 서둘러 곁에 무릎을 꿇고는 양손을 그의 복부에 대고 빙한의 힘을 뿜어내 주입했다.

    치익!

    하얀 김이 그녀의 손에서 끊임없이 솟아올랐고, 심협의 체온은 그제야 조금씩 내려갔다.

    하지만 이 또한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았다. 자극을 받자 심협 단전안의 화독이 오히려 더욱 거세졌다.

    혼수상태에서도 심협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심협의 얼굴을 바라보던 섭채주의 얼굴에 망설임의 빛이 스쳤다.

    “어쩌지. 이대로 오라버니가 죽게 둘 수는 없어. 방법은 정말 그것뿐인가……?”

    섭채주가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으윽!”

    섭채주가 머뭇거리는 사이, 심협의 입에서 가벼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섭채주도 손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져 내려다보니 심협의 단전 안에 있던 불꽃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더 지체한다면 화독이 완전히 폭발하여 그를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오라버니. 어떡하지? 정말 어쩌지?”

    초조해진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현재 그는 육체만 화독에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신혼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었으니 불러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식해 곳곳이 불꽃으로 활활 타올랐고, 신혼 소인은 불길에 갇혀 육체를 포기하고 신혼만 탈출할 기회도 없었다.

    사실 자기 몸의 화독이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챘지만, 연검 한 번에 화독이 이렇게 강렬하게 폭주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지? 천신만고 끝에 단련한 육체를 정말로 버려야 하나? 하지만 신혼도 무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렵게 도망쳤다가 차질이 생기면 신혼과 육체가 모두 소멸하여 윤회에 들지도 못하는 상황이 올 텐데…….”

    현재 심협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육체를 보존해야겠다는 순진한 생각은 버린 지 이미 오래였고, 그저 신혼만 소멸하지 않고 무사하길 바랄 뿐이었다.

    그때였다.

    콰쾅!

    단전에서 갑자기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신혼은 갇힌 상태라 신념으로 단전의 상태를 볼 수는 없었지만, 단전 안에 도사리는 화독이 활화산처럼 거대해졌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화독은 한계를 뛰어넘고 완전히 폭발해 그를 파멸로 이끌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 이렇게 죽느니 도박이라도 해보는 수밖에…….”

    심협의 신혼이 한탄하더니 두 눈을 번득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는 하늘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았다.

    결심을 굳히고 화독이 폭발하여 육체가 소멸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때, 푸른 빛이 갑자기 식해 안의 불꽃을 뚫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뒤이어 희미하지만 아름다운 허상이 화염을 뚫고 더 가까이 다가왔다.

    매우 희미했지만 익숙한 윤곽이었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채주! 어떻게 들어온 거야?”

    “오라버니.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서 보타산의 비법으로 들어왔어요.”

    그 희미한 윤곽이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 역시 섭채주의 것이었다.

    “곧 내 화독이 버티지 못하고 터질 거야. 내 옆에 있으면 위험하니까 서둘러 도망쳐. 아, 내 비검과 저물 법기, 소요경, 건곤대도 모두 챙겨서 떠나. 멀면 멀수록 좋아.”

    심협이 급히 당부했다. 그것들을 섭채주가 가지고 간다면 자신도 안심하고 폭발할 수 있을 터였다. 만약 다행히 잔혼이 남는다면 이것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섭채주에게 물려주면 그만 아닌가.

    “오라버니. 우선, 내 말을 들어주세요. 지금 오라버니의 위급한 상태를 구해낼 방법이 있어요. 다만…….”

    섭채주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심협이 끊었다.

    “상황이 위급한 걸 알고 있으니까 어서 떠나라는 거야. 천 리, 아니 만 리는 떨어져야 안전할 거야. 난 걱정하지 마. 운이 좋으면 잔혼은 남을 테니까 내가 먼지가 되었을 때 다시 날 찾으러 와줘.”

    심협은 섭채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라버니. 저한테 오라버니를 구할 방법이 있으니 자폭하지 않아도 돼요.”

    섭채주가 힘주어 말하자 그제야 심협은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마. 이 화독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이미 억제할 수 없어서 무슨 수를 써도 소용없으니까 괜히 휘말리지 말고 어서 달아나.”

    “그게 아니라 제가 말한 방법은…… 음…… 음양상제(陰陽相濟)…… 남녀쌍수법(男女雙修法)이에요!”

    섭체주의 신념 허상은 재빨리 말하고는 부끄러운지 뒤로 돌아섰다.

    “남녀……쌍수법…….”

    심협의 신혼은 중얼거렸지만, 목구멍이 탁 막히는 느낌이었다.

    섭채주는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심협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보, 보타산에 왜…… 왜 쌍수법이 있는 거야?”

    “종문의 선조께서 우연히 창시하신 건데, 나중에 사문에서 봉했어요. 저…… 저도 우연히…… 비급 창고에서 본 거라…….”

    이 쌍수 비술은 창시된 이후 정식으로 부여받은 이름이 없었기에 비전에도 그저 음양상제지술(陰陽相濟之術)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섭채주는 처음 봤을 때 뭔지 몰랐고, 심지어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한 후로는 감히 다시 펼쳐보지 못했지만, 잊을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이 비술을 그저 망측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목숨을 구해줄 비술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심협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우리는 비록…… 합방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미 혼인을 약속했으니 이런 상황에서라면 예법에 어긋나는 건 아닐 거예요!”

    섭채주는 그렇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힘들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심협은 예의를 중시하지만 고리타분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예법을 따질 생각은 없었다. 그저 섭채주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뿐이었다.

    “진즉 정식으로 혼인을 올렸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나중에…… 나중에 더 아껴줘요.”

    섭채주가 작은 소리로 말하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 순간, 식해 주위의 불꽃이 갑자기 기승을 부리더니 뜨거운 기운이 순식간에 섭채주의 신념 허상에 충격을 가해 빛이 흔들리고 하마터면 사라질 뻔했다.

    “이런! 이미 늦었나!”

    “아직 괜찮아요. 제가 쌍수법의 심법을 알려줄 테니 잘 기억하세요.”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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