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3화. 화독의 영향
잠시 후, 검광이 다시 모여들며 검에서 불꽃이 타오르자 삼족금오의 허상이 나타나 금색 불꽃 날개를 펄럭였고, 방어대진을 향해 돌진하려 했다.
이를 한참이나 바라본 심협은 비검의 금제가 53도까지 올라간 후로 더 이상 올라갈 기미가 없자 그제야 느긋하게 손을 휘둘러 한 줄기 법력으로 비검을 뒤덮었다. 이어서 그는 선천연보결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다른 법보와 달리 순양비검은 심협이 직접 온양하여 만든 보물인 데다 이미 대부분의 금제를 연화했둔 상태였기에 연화는 매우 순조로웠고, 불과 반 각 만에 완성됐다.
마지막 금제까지 연화하자 심협은 뜨거운 기운이 비검과의 연결을 타고 천천히 몸으로 흘러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이 기운은 단전에서 어떤 힘과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은연중에 갑자기 단전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그 통증은 씻은 듯 사라졌다.
순양비검도 허공에서 흔들리더니 허공을 한 바퀴 돌고는 심협 옆으로 날아왔다.
심협이 한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자 비검이 그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완전히 길이 든 것 같았다.
뒤이어 그가 손을 들어 가볍게 움켜쥐자 순양검이 그의 수중으로 떨어졌고, 그의 심념과 함께 불꽃을 뿜어냈다. 불꽃의 열기가 주작 검령 비검과 비슷할 정도였다.
“좋아, 잘했어!”
심협이 기뻐하며 칭찬했다.
화령자도 매우 흡족해 보였다.
“역시 화령자! 연기의 도가 실로 절묘해. 그럼 계속해볼까?”
“뭐? 내가 아무리 연기에 능숙하다고 해서 법력 소모도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조금은 쉬게 해주라고!”
“알겠어, 알겠어.”
심협은 환하게 웃으며 답했는데, 손에서는 순양비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반 각 정도 쉰 후, 화령자는 다시 바닥에 부문을 그리고 또 두 개의 새로운 금색 부적을 붙였다.
“시작하자!”
“좋아!”
이번에는 화령자가 말하기도 전에 심협은 원환 법진 중앙에 앉았다.
첫 번째 연검(煉劍) 경험을 토대로 그는 한 자루씩 차례로 연기하기로 했다.
이번 금오 요혼도 난폭했고, 장악에서 벗어나려 했다. 다만 이번에는 주작뿐만 아니라 한패가 된 이전의 그 삼족금오까지 나서자 두 형님의 안내에 따라 금오 요혼은 순조롭게 검령이 되어 순양비검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자 검의 금제가 54도로 늘어났다.
이번은 심협과 화령자의 예상보다 훨씬 순조로웠기에 두 사람은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끝냈고, 휴식도 필요 없이 바로 세 번째 작업에 들어갔다.
마지막 금오는 세 형님의 보호 아래 더욱 순조롭게 요혼에서 검령으로 전화하였고, 마찬가지로 금제가 54도였다.
검령이 생긴 네 자루의 비검이 심협 주위를 맴돌더니 금오와 주작의 허상이 나타나 위아래로 춤을 추듯 날아다녔다. 매우 즐겁고 신이 나 보였다.
“평범한 법보 기령도 막상 만들려니 정말 힘들군. 너처럼 가장 얻기 어렵다는 검령을 한 번에 네 개나 얻는 사람도 없을 거다.”
옆의 화령자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심협은 그의 의도를 바로 알아채고는 공손한 표정으로 찬사를 늘어놓았다.
“내 이런 조화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화 도우의 절묘한 수단 덕분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내 어찌 세 개의 검령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그제야 화령자는 씩 웃었다.
“아부는……. 이제 주작석을 정제해 예리함을 늘려줄 테니 다른 검들도 꺼내봐.”
“급할 것 없으니 오늘은 쉬고 내일 해도 돼.”
“내가 널 돕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이 도(道)에 심취해 있기 때문이지. 이번에도 다 내 구상이 완벽한지 검증해보고 싶어서 도운 게다. 그리고…… 내 그동안 너를 잘 도와줬으니 내가 원할 때 네가 날 놓아줬으면 하는데…… 어때?”
“떠나려고?”
심협이 무거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당장은 아니야. 허나 헤어짐 없는 만남은 없다지 않나. 언젠가 다른 계획이 생긴다면…… 날 보내줄 수 있을까?”
화령자는 심협의 표정 변화를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론이지.”
심협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은 그 말이면 충분하다.”
화령자도 만족하며 고래를 끄덕였다.
말을 마친 그는 바닥에 설치한 것들을 치우고 새로운 부문을 그렸다. 쉬지 않고 기세를 몰아 심협의 이번 작업을 완성해주려는 것 같았다.
심협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손을 휘둘러 오화칠금선에 봉인된 다섯 자루 비검을 제외한 나머지 열한 자루의 순양검을 가지런히 정렬하여 허공에 띄웠다.
“이 주작석을 다른 비검에 연화하여 넣는다는 것은 사실 정확한 말이 아니다. 이것을 숫돌처럼 써서 모든 비검을 더 날카롭게 가는 것에 가깝지.”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그렇게 간단한 거라면 네가 그토록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을 테니까.”
심협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당연하지. 주작석은 천외운석 중에서도 극품의 영재인데 그렇게 간단할 리가 있나! 직접 보면 알게 될 게다.”
화령자는 설명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바닥에 소박해 보이는 불꽃무늬를 그렸다. 뒤이어 그가 손을 휘두르자 곡현성반과 이전에 설치했던 금색 방어대진이 다시 나타났다.
화령자가 또다시 붉은 부적을 꺼내 불꽃무늬에 붙인 후 내던지자 주작석이 날아가 법진 중앙에 떨어졌다. 이어서 화령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바닥의 붉은 부적에서 타오른 불꽃이 순식간에 바닥의 불꽃무늬에 불을 붙였다.
바닥에서 불꽃이 치솟는 동시에 주작석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는데, 불꽃이 허공에서 떠받치더니 활활 타올랐다.
“뭘 멍하니 보고만 있는 거야? 어서 불을 지펴!”
심협이 옆에서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자 화령자가 버럭 호통을 쳤다.
그제야 심협은 모방한 오화칠금선으로 법진 중앙을 향해 크게 부채질했다. 그러자 활활 타오르는 남명이화가 날아가 바닥에서 치솟은 불꽃에 휩쓸렸다.
법진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치솟으면서 열기가 사방으로 퍼지자 심협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불꽃이 끊임없이 타오르자 법진 중앙에 떠 있던 주작석이 마침내 타오르는 인두처럼 조금씩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됐다! 비검을 넣어!”
화령자가 외치자 심협은 두말없이 열한 자루의 비검을 법진 안으로 넣었다.
거의 동시에 화령자가 손을 휘두르자 위에 있던 금색 방어 법진이 화염 대진과 모든 비검을 뒤덮기 위해 천천히 내려왔다.
“잠깐!”
“왜?”
심협이 갑자기 만류하자 화령자가 의아한 듯 돌아보며 물었다.
심협은 난처한 표정으로 수중의 오화칠선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들도 법진에 이끌렸는지 법진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음, 알겠다.”
화령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심협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오화칠선금에 들어 있는 다섯 자루의 비검을 꺼냈다.
이 비검들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법진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금색 방어대진이 천천히 내려와 열여섯 자루의 비검을 모두 뒤덮었다.
“이제 다 네게 달렸다.”
화령자가 웃으며 심협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한테 달렸다니?”
심협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법진이 완성되었으니 난 통제만 조금 해주면 된다. 지금부터는 네가 비검을 통제하여 저 주작석에 쉬지 않고 갈아줘야 하지.”
“음…… 알겠어.”
심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뒤 심념을 움직이자 열여섯 자루의 비검도 함께 움직였다.
“가라!”
심협의 나지막한 외침에 대진에서 굉음과 함께 검광이 뿜어져 나오더니 열여섯 자루의 비검이 붉게 달아오른 주작석을 향해 앞다투어 날아갔다.
주작 검령이 들어 있는 순양비검이 가장 먼저 도착하여 주작석 가장자리를 스쳐 지나가자 챙 하는 소리와 함께 금색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뒤이어 삼족금오가 들어 있는 세 자루 순양비검도 연달아 주작석을 스치며 날아갔고, 똑같이 금속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이후로 나머지 비검들도 끊임없이 날아가 주작석을 스쳐 지나가면서 불꽃을 뿜어냈다.
한 자루 한 자루의 비검이 정확한 제어 아래 질서 있게 연달아 주작석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협은 한 번 스쳐 지나갈 때마다 순양비검의 칼날이 마치 고온에 닿은 것처럼 모두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알았다. 그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옆에서 이를 본 화령자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때? 좀 알겠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매번 충돌하고 갈릴 때마다 주작석 안의 무언가가 비검의 칼날 안으로 조금씩 들어오는 것 같군.”
심협이 주저하며 말했다.
“잘 봤다. 그게 바로 검의 날카로움을 대폭 늘려주는 주작석의 정수지.”
심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대진 안에서 끊임없이 다듬어지는 칼날을 자세히 바라봤다. 마찰음이 들릴 때마다 비검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검들도 이 과정을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찰음이 울려 퍼질수록 주작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반투명한 빛무리가 점점 많아졌고, 이것들은 점차 비검 안으로 흡수됐다. 이에 따라 비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광도 점점 날카로워졌다.
“화령자, 내가 착각한 건지 모르겠는데…… 왜 비검들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내 통제도 더 가벼워지는 것 같지?”
“뭐가 이상해? 비검이 날카로워질수록 공기의 저항도 줄어들고, 그러니 당연히 속도가 더 빨라지고, 네 통제도 가벼워지는 게다. 알아둬라. 자신이 직접 온양한 비검은 닥치는 대로 빼앗은 것과는 확연히 달라서 비검이 성장하면 너도 성장하게 된다.”
이제 딱히 할 일이 없어 옆에서 느긋하게 방관하던 화령자가 덤덤하게 설명했고, 심협은 더욱 신경 써서 비검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법진에서 비검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고, 마찰음이 끊이지 않았으며, 찬란한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작석은 점점 작아졌고, 비검의 속도는 이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져서 모호한 검의 허상이 서로 교차할 때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어느 순간, 펑 하는 폭발음이 울려 퍼지자 눈을 감고 있던 화령자가 깜짝 놀랐다.
그 순간, 두 번의 굉음이 또 울려 퍼졌다.
펑! 펑!
두 자루의 비검이 제어를 벗어나 금색 방어대진을 공격하자 법진 전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거의 부서질 뻔했다.
화령자가 급하게 곡현성반을 제어하여 금색 방어대진을 강화했다.
“심협, 뭐 하는 거냐?”
짜증을 내며 시선을 돌려 심협을 본 순간, 화령자는 기겁했다. 심협은 두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하고 있었는데, 옷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얼굴과 몸은 붉게 달아올라서 마치 잘 익은 게 같았다. 미간은 잔뜩 찌푸려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와중에도 수중의 검결은 여전히 결인하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 비검의 제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이, 심협. 괜찮은 거냐?”
이를 본 화령자가 초조해하며 물었다.
그러자 심협이 천천히 두 눈을 떴는데, 핏발이 잔뜩 서 있었고, 눈동자 주위에는 금색 광문이 감돌고 있어서 매우 기이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법진 안의 비검을 바라보며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화령자는 비검 연마를 계속하겠다는 그의 생각을 알아챘다.
“화독의 영향을 잔뜩 받고도 검을 연마하겠다니…… 이거 나보다 더 무식한 놈일세.”
“곧 끝나니까…… 도와줘…….”
심협이 의연한 눈빛으로 이를 악물며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