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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42화 (942/1,214)
  • 942화. 설득

    이어서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눈을 부릅뜬 채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화령자가 버럭 외쳤다.

    “뭘 멍하니 보고 있는 거야? 순양검 안 꺼내?”

    심협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서둘러 손을 휘둘러 세 자루의 비검을 가지런히 꺼내 놨다.

    “괜히 실패해서 한 번에 다 부수느니 우선 한 자루만 해보자고.”

    화령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 말은 들은 심협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화령자, 믿어도 되는 건가? 성공 확률이 정말로 8할 맞아?”

    “뭘 걱정하는 게야? 나도 혹시나 해서 그러는 거라고. 그럼 세 자루 한꺼번에 할까?”

    “아니야, 시키는 대로 할게.”

    심협은 바로 두 자루의 비검을 집어넣고 한 자루만 몸 앞에 띄웠다.

    이를 본 화령자의 표정이 엄숙해지더니 양손을 허공에 휘두르며 주문을 읊었다. 그러더니 전방의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검은색 비석의 법진이 바로 빛나더니 검은색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화령자가 법결을 바꾸고 다시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삽시간에 뿜어져 나온 검은색 광망이 허공에 뭉치더니 검은색 소용돌이로 변했다.

    뒤이어 바닥에 새겨진 부문도 번득이더니 땅에서 튀어나와 암홍색 원형 빛줄기로 변하여 곧장 검은 소용돌이로 뚫고 들어갔다.

    두 개의 부진이 서로 교차하자 놀랍게도 균형이 잡히며 하나로 합쳐졌다.

    “좋아, 내 예상대로야.”

    화령자는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심협은 조금 걱정됐다. 화령자는 자신의 구상대로 하나하나 검증해 나갔지만 사실 성공률이 정말로 그의 말대로 8할이나 될지는 오직 하늘만이 알 일이었다. 이미 후회하기는 늦은 것이다.

    “검을 소용돌이 안에 넣어라. 법진 운공에 방해되지 않게 살살 해야 한다.”

    화령자의 당부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순양비검을 제어하여 천천히 법진을 통과한 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검은 소용돌이에 넣었다.

    장검이 천천히 소용돌이로 들어가자 더는 심협의 제어를 받지 않고 무형의 힘에 의해 곧장 소용돌이 중앙에 단단히 묶였다.

    순양비검에 있는 약한 영성이 이를 눈치챘는지 갑자기 격렬하게 요동치며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본래 안정적이었던 검은 소용돌이와 암홍색 빛줄기가 갑자기 뒤틀리더니 천둥 치는 소리가 법진 중앙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균형이 무너져 공든 탑이 무너질 위기였다.

    “어서 비검을 제어해!”

    화령자의 명에 따라 심협이 서둘러 심념으로 비검을 제어하자 그제야 소용돌이는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대진의 소란도 멈췄다.

    이를 본 화령자가 손에서 붉은색 부적을 꺼내 두 손가락에 끼고는 허공을 향해 휘두른 후 앞쪽의 지면을 가리켰다. 그러자 부적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삽시간에 붉은 불꽃이 지면의 부문을 타고 퍼져 붉은 빛줄기로 들어갔다.

    한숨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붉은 빛줄기가 순식간에 불꽃에 휩싸이더니 곧장 검은 소용돌이로 들어가 마치 화룡처럼 순양비검 주위를 휘감았다.

    이 불꽃이 어떤 종류의 이화(異火)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매우 뜨거운 불꽃에 휩싸인 순양비검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르더니 정석처럼 붉은빛으로 투명해지는 모습이 소용돌이 너머로 보였다.

    그때, 화령자가 갑자기 위로 올라가더니 한 손을 칼처럼 허공 너머의 순양비검을 향해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동작과 함께 소용돌이에도 정교하게 생긴 시커먼 작은 칼이 생겨났다. 검날에 새겨진 흔적은 바로 기령을 받아들이는 부문이었다.

    부문이 완성되자 화령자는 다시 법진으로 내려와 심협에게 말했다.

    “요혼을 꺼낼 준비를 해라.”

    심협이 금색 화살을 손에 올려놓자 화살이 떠오르는 동시에 매우 뜨거운 기운이 허공에 퍼지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화령자에게도 그 기운이 느껴졌다.

    “심협, 이 요혼은 쉬운 상대가 아닌 것 같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 조심해라.”

    사실 화살에 봉인된 삼족금오(三足金烏)가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심협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그가 양손으로 화살을 가리키자 화살에 새겨진 붉은 부문이 바로 떠올랐다.

    뒤이어 그는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여 조심스레 검지와 엄지로 부문을 잡고는 낮은 기합과 함께 힘을 줬다.

    콰직!

    화살이 부러지면서 새겨져 있던 부문이 빛을 강하게 발하더니 이내 꺼졌다.

    화살촉이 금빛 광망으로 번득이며 엄청난 화력(火力)이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화살촉이 금색 불꽃으로 완전히 뒤덮였고, 삼족금오의 허상이 나타나 두 날개를 펼치고는 까마귀의 울음 같은 듣기 괴로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심협이 기뻐하며 손을 휘두르자 영력이 삼족금오를 뒤덮으려 날아갔다.

    하지만 그의 영력이 삼족금오의 요혼과 맞닥뜨리는 순간, 금색 불꽃의 허상은 강력한 침입자를 만난 것처럼 화를 내기 시작했다.

    두 날개를 펄럭이자 금색 불꽃이 순식간에 두 배로 커졌고, 강력하기 그지없는 열기를 뿜어내 심협이 방출한 영력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동부 밀실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백배나 올라가자 암석에서 치직 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동부가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았다.

    “심협! 가능하겠어?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면 바닥의 부문이 금오의 불꽃에 녹고 우리 둘도 용암에 휩싸일 게다!”

    화령자의 경고에도 심협은 덤덤히 손을 휘둘렀다.

    검은 빛이 소매에서 날아가더니 검은색 둥근 고리로 변하여 삼족금오의 몸에 씌워졌다.

    구유마환에서 검은 빛과 함께 강력한 구속력이 흘러나와 삼족금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색 불꽃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삼족금오는 제압을 당하자 더욱 분노했다. 입에서는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고, 두 날개를 쉬지 않고 펄럭였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이 더욱 강렬해져 구유마환을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허나 치우의 마기인 구유마환은 재질이 평범하지 않은 반면 삼족금오는 한낱 요혼에 불과했기에 본체가 있지 않은 이상 구유마환을 밀어낼 수는 없었다.

    “아직도 반항하는 것인가!”

    심협이 크게 외치며 다시 손을 휘두르자 번천인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더니 3척 크기의 거대한 인으로 변하여 위에서 삼족금오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금색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계속해서 발악하던 삼족금오의 요혼은 충격에 멍해졌는지 일순 반항을 멈췄다.

    “심협, 지금이다! 요혼을 소용돌이 안으로 넣어.”

    화령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요혼을 전화하여 기령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요혼을 넣는 시기였다. 한데 요혼이 계속 저항하면 적기를 놓칠 수도 있기에 심협은 서둘러 구유마환을 다시 발동하여 삼족금오을 구속하고는 검은 소용돌이 안으로 끌고 갔다.

    거의 다 왔을 때쯤, 정신이 돌아온 삼족금오가 더욱 분노하여 그 어느 때보다 격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고, 격렬하게 구유마환과 충돌했다. 심지어 몸의 화력도 남김없이 뿜어냈다.

    더없는 열기가 폭발하자 구유마환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안의 마기가 증발했다. 피해가 적지 않았기에 심협은 씁쓸해진 반면 삼족금오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마치 과거 아홉 형제와 하늘에서 만물을 태우며 횡포를 부리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것은 본래 세상의 고귀한 생령이었는데 후예의 화살에 맞고 지금과 같은 요혼으로 전락했으니 인간족을 향한 원망이 바다처럼 깊은 것도 이해할 만했다. 게다가 화살에 봉인된 동안 자유를 잃었으니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고통을 다시 맛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끝났어! 이제 시간이 없다고!”

    화령자가 바닥의 부문이 타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한탄했다.

    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협이 온양한 첫 번째 순양비검이 날아오르더니 구유마환에서 발악하고 있는 삼족금오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거리가 가까워지자 강렬한 붉은 빛과 함께 주작의 허상이 검에서 나타나 두 날개를 펼치고 금색 불꽃을 스쳐갔다.

    불덩이 속의 삼족금오가 이를 보고는 어리둥절했고, 이내 주작을 향해 날아갔다.

    조금 더 가까워지자 삼족금오 요혼은 구유마환을 끌고 주작을 향해 달려들어 삼키려 했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먹겠다는 것이냐!”

    이를 본 심협의 눈에 분노가 타올랐다.

    그가 검결을 결인하자 순양비검이 거꾸로 돌았고, 주작은 포효와 함께 단숨에 삼족금오의 요혼을 베려 했다.

    심협의 분노가 담긴 순양비검이 매우 강렬한 기세로 삼족금오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요혼이었기에 불꽃이 사라졌다가 다시 합쳐졌다.

    한데 회복된 삼족금오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추더니 갑자기 반항을 포기했다.

    심협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길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삼족금오를 제어해 바닥의 부문이 전부 타서 효력이 사라지려는 마지막 순간에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갔다.

    실패한 줄 알고 실망했던 화령자가 크게 기뻐하더니 바로 양손을 휘둘러 빠르게 결인하고 주문을 읊어 삼족금오를 순양비검에 융합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약간 반항하다가 이내 얌전히 검의 부문으로 들어갔다.

    이를 본 화령자도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갑자기 얌전해진 거지?’

    심협은 구유마환을 거둔 뒤 의아한 눈빛으로 옆에 있는 순양비검을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네가 설득한 거냐?”

    비검에서 불꽃이 반짝이더니 주작이 다시 나타나 심협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심협은 감응을 통해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삼족금오는 한 번의 격돌로 검령이 된 주작의 강력함을 느꼈고, 또 화살에 봉인됐을 때처럼 자유가 없는 게 아님을 알게 되자 협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잘했다. 앞으로 두 마리가 남았으니 또 말을 안 들으면 네게 부탁하마.”

    심협의 칭찬에 주작은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주위를 크게 한 바퀴 휘돌고는 다시 검으로 돌아갔다.

    한편, 금오 요혼이 순양비검으로 들어가는 순간, 바닥의 두 부적이 동시에 타들어갔다. 그러자 바닥에서 솟아오른 부문 광망이 두 줄기 나선형 금빛으로 변하여 붉은 빛줄기를 타고 흘러가 검은 소용돌이와 합류했다.

    이 광망이 들어가자 갑자기 순양비검이 떨리더니 금빛을 뿜어내며 밖으로 날아가려고 했다.

    주위의 검은 소용돌이가 바로 모여들어 그것을 가두려 했으나, 칼날에서 불꽃이 타오르며 삼족금오의 허상이 나타났다.

    챙! 챙!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고, 허공에 금제 부문이 생겨났다.

    순양비검의 품질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순양비검의 연화를 완전 연화에서 부분 연화로 바꾸자 비검에 대한 심협의 장악은 많이 약화됐다. 이에 금오의 혼이 기령으로 변하면서 비검은 심협의 장악에서 벗어나 스스로 빠져나오려 했다.

    치익!

    불꽃이 치솟으며 순양비검이 정말로 검은 소용돌이를 뚫고 튀어나갔다.

    “아직도 도망칠 생각을 하는 거냐? 크하핫!”

    화령자는 화를 내기는커녕 재미난 놀이라도 생겼다는 듯 낄낄댔다. 그러더니 손을 아래로 휘둘렀는데, 곡현성반에서 뿜어져 나오던 금색 법진이 갑자기 아래로 내려와 순양비검을 뒤덮었다.

    순양비검은 법진을 들이박았지만, 금속음과 함께 뒤로 튕겨나갔다.

    하지만 비검은 포기하지 않고 검광을 사방으로 미친 듯이 쏘아대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한 자루 비검이 수천만 개의 검광으로 변하여 금색 방어대진을 두들기면서 금속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지만, 끝내 뚫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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