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41화 (941/1,214)
  • 941화. 불세출의 재목

    곡현성반을 뺏어가려는 게 아님을 안 화령자가 안도하자 심협이 곧장 검은 돌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돌로 시선이 향한 순간, 화령자의 표정이 눈에 띠게 달라졌다.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볐고, 이내 흥분한 기색으로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를 본 심협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화령자의 저 반응으로 보아 이 돌은 상당히 가치가 있는 물건이 분명했던 것이다.

    “이건…… 주작석(朱雀石)이다! 이거 어디서 났느냐?”

    “유홍의 저물 반지에 있더군.”

    “이 운도 억수로 좋은 놈!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생기는구나! 와하핫!”

    화령자가 손을 비비며 흥분한 얼굴로 껄껄 웃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전에 일곱 자루 순양비검이 적화(赤火)의 위능은 강한데 예리함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랬지. 순양의 힘이 강하긴 하나 그 자체의 예리함이 부족해 적의 방어를 깨뜨리지 못해 아쉬웠지. 화염의 힘만으로는 공격력에 한계가 있고…….”

    “그래서 네 운이 좋다는 거다. 이 주작석을 일곱 자루의 비검에 나누어 넣고 연화하면 비검들은 예리해질 게다. 또한, 그 근원이 같으니 검성(劍性)에 부합하지. 방어를 깨는 능력이 대폭 증가할 거라는 뜻이다.”

    “정말인가?”

    “당연하지! 허나 내 최근에 연구한 연신대진에서 얻은 심득(心得)에 이 곡현성반에서 발견한 재미난 것까지 더하면 며칠 뒤에는 완전히 새로운 법진을 융합할 수 있을 테니, 연화하는 건 그 후에 도와주마.”

    “시기도 참 절묘하군. 그럼 이번에 금오의 혼을 세 개 얻었는데 연신대진이 완성되면 검령도 만들어줄 수 있나?”

    “물론이지!”

    화령자가 호언장담했다.

    “그래?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데?”

    심협은 기쁜 듯 웃으며 물었다.

    “네가 방해하지만 않으면 내 철저히 연구해서 7할은 성공할 게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잘 쳐줘야 이 정도…….”

    화령자가 손가락 세 개를 들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이제 방해 안 할 테니 열심히 연구하십시오.”

    화령자는 심협의 너스레에 피식 웃고는 소요경으로 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칫하더니 주작석도 들고 갔다.

    “들어본 적은 있어도 직접 본 건 처음이니까 이것도 가져가서 연구할 거다.”

    그가 떠난 후에도 심협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섭채주도 같이 기뻐했다.

    심협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번에는 도향의 저물 팔찌를 열어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종류대로 정리했다.

    도향은 진선 후기 수사였기에 유홍과 이표에 비해 저물 법기에 든 것도 더 많았다. 특히 영재와 선약이 많았는데, 하나하나가 상당히 가치 있는 것들이었다.

    심협이 병들을 들어 살펴보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섭채주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하지만 이 미세한 동작도 심협은 놓치지 않았고, 그의 손은 백옥병에서 멈췄다.

    건원단(乾元丹).

    병에 적힌 세 글자를 읽은 후, 심협은 마개를 뽑고 가볍게 냄새를 맡았다. 안개 같은 수증기에 섞인 짙은 영기가 흘러나와 심협의 식해로 들어가면서 머리가 맑아지고 두 눈이 더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누이의 수행에 큰 도움이 되겠는데?”

    “건원단은 약성이 온화해서 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수사의 수행에 도움이 될 거예요.”

    “그야 그렇지만, 누이는 최근 혈맥을 전승하고 또 진선 후기로 돌파했으니 경지를 굳건히 할 때지. 이 건원단은 누이를 위해 도향이 준비해둔 건가 봐.”

    기분이 좋은지 심협이 평소답지 않게 농을 섞어 말하며 단약을 건네자 섭채주도 더는 거절하지 않고 받았다.

    심협은 살짝 미소를 지은 채 계속해서 도향의 물건들을 살피다가 띠 같은 보물, 만리권운을 발견하고는 눈이 밝아졌다.

    이 보물은 청천연과 묵혼비보다 훨씬 품질이 좋았고, 이전에 도향이 사용할 때 범상치 않은 위력을 보였던 보물이었다.

    심협은 말없이 일어나 섭채주의 뒷머리를 만리권운으로 묶더니 몇 걸음 물러나서 살펴보고는 감탄했다.

    “좋은데? 잘 어울려!”

    “오라버니, 이건 받을 수 없어요.”

    섭채주가 손을 뒤로 내밀어 만리권운을 풀려 했으나, 심협이 다급히 말렸다.

    “이건 물리적 방어만이 아니라 신혼의 방어력을 높여주는 법보야. 매우 귀하긴 해도 나는 신체와 신혼이 강한 데다 신혼을 방어하는 비술도 있으니 딱히 필요치 않아. 누이가 갖는 게 그 보물의 가치를 더 높여줄 거야.”

    “보물이 많아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저는 다만 …….”

    섭채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협이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어차피 이 띠는 여성용이잖아. 그리고…… 누이 머리에 묶으니까 너무 예뻐.”

    섭채주는 얼굴이 발그레해져 고개를 숙였다.

    심협은 다시 다른 물건들을 살펴보고, 모두 분류하여 집어넣었다.

    이번 수확은 꽤 풍부했다. 쓸 만한 단약과 법보만 해도 평범한 수사가 반평생을 모아야 할 정도였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당분간은 정양하면서 법력을 회복해야지. 그리고 다시 천언궁으로 갈 생각이야. 이 비경을 빠져나갈 방법은 그곳에 있을 테니까.”

    “그동안 시간이 꽤 지났으니 그자도 이전보다 더 강해졌을 거예요.”

    “어쨌든 피할 수 없는 싸움이잖아. 우리가 힘을 합치면 문제없을 거야. 다만…… 천기성이 어떻게 됐을지 걱정이구나.”

    “천기성은 소부자 성주님이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 게다가 수괴(首魁)인 거청천은 우리와 함께 이 비경에 들어왔으니 잔당들이 천기성을 뭐 어쩌겠어요?”

    “그건 그렇군.”

    일리가 있는 말에 마음이 좀 놓였는지 심협은 그제야 웃었다.

    “그럼 제가 호법을 설 테니 안심하고 치료하세요.”

    “그럼 부탁할게.”

    심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섭채주는 한쪽으로 가서 정좌했고, 심협은 치료 단약을 먹고 정양을 시작했다.

    * * *

    보름이 지났을 때, 심협의 상처는 완전히 회복됐고, 섭채주는 소요경으로 들어가 폐관수련을 시작했다.

    이날, 심협이 뭔가를 감지하고 소요경을 열었다. 그러자 화령자가 흐뭇한 얼굴로 곡현성반을 들고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연신대진이 마침내 완성됐다! 이번 것은 개량판인 고급 법진이니 기대해도 좋을 게야! 크하하!”

    그의 모습이 보이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그의 흐뭇한 표정과 위풍당당한 걸음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어떻게 개량했기에 화 도우 기분이 이렇게 좋은 걸까?”

    심협은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자 화령자는 그 질문에 기분이 더 좋아졌다.

    “곡현성반을 연구한 결과, 그 안에서 6급의 응혼대진(凝魂大陣)을 찾아냈다. 그 대진과 연신대진이 잘 맞아서 신혼을 제련했을 뿐만 아니라 혼백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모을 수 있게 됐으니, 이 방법이면 성공 확률은 8할 이상이다.”

    “8할씩이나?”

    “기뻐하기는 일러! 나 또한 이 대진을 실제로 사용했던 건 한 번뿐이다. 나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으니 네가 옆에서 보조해야 한다.”

    “물론입지요. 화 도우의 지휘만 따르겠습니다.”

    심협이 또다시 너스레를 떨자 화령자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색 비석과 진기들이 나타났다. 화령자는 검은색 진기들을 비석 주위에 하나하나 꽂았다.

    “내가 연구한 것은 본래 요혼전화기령지술(妖魂轉化器靈之術)이다. 법기와 법보의 연단 단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성공할 확률도 잘해야 4할 정도에 이렇게 도중에 연화하면 1할도 되지 않았다. 한데 운 좋게도 무족의 연신대진을 얻어서 내 전화대진과 결합하니 성과가 빼어나더구나! 하하하!”

    화령자는 껄껄대며 바닥의 돌에 복잡하기 그지없는 부문을 새겼다.

    “이렇게 기묘한 전화대진을 구상할 수 있다니, 역시 불세출의 재목이로군.”

    심협은 부적과 법진에 문외한이 아니었기에 화령자의 절묘한 법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번에는 너스레나 아첨이 아니라 진정한 감탄이었다.

    “요령을 알아챈 게냐?”

    화령자가 멈칫하더니 물었다.

    “어느 정도는……. 진기들이 꽂힌 지점을 보니 취령법진을 참고한 듯하군. 아마도 요혼의 정순한 힘을 끌어올리기 위함이겠지. 그리고 이 부문대진은 모종의 섭혼대진에서 유래한 것인가? 요혼을 구금하여 법보로 이끌기 위함이로군? 취령법진과 섭혼대진은 하나는 정(正)하고 하나는 사(邪)한데 이 두 개를 같이 쓰다니, 이건 화 도우만 가능한 일일 거야.”

    화령자는 본래 심협이 그저 아첨하기 위해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정작 법진의 정수를 꿰뚫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썰미가 좋은데? 제법이구나. 맞다. 그 두 종류의 법진을 변용한 것이다.”

    화령자는 이어서 법진 전체를 보충하여 완성했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게…… 이 법진은 분명히 개량하긴 했지만 위능면에서는 다소 부족해 보인단 말이지. 이 평범한 두 개의 법진을 전화법진으로 바꿀 방법이 있는 건가?”

    “물론이지. 내 전화법진이 고작 이 정도라면 성공률이 1할만 돼도 다행일 게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뭔가 절묘한 수단을 전화의 관건으로 삼을 생각인 모양이군.”

    “그것도 알아챈 게냐? 진짜 제법인데?”

    화령자 역시 점점 심협에게 감탄하더니 품에서 금색에 붉은색 무늬가 그려진 두 장의 영부를 꺼내 흔들었다.

    “봤느냐? 이것이 바로 관건이다.”

    심협이 자세히 바라봤지만 전혀 모르는 영부였다.

    “화 도우, 부디 가르침을 주시오. 이건 어떤 영부지?”

    심협은 포권하며 반쯤 장난스레 물었다.

    “가르침은 무슨……. 내가 네 스승이냐? 이건 내 비장의 수단인데 그렇게 쉽게 알려줄 것 같은가? 이제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 있어!”

    화령자가 눈을 부릅뜨며 손을 휘젓자 심협도 더는 묻지 못하고 한쪽으로 가서 조용히 기다렸다.

    화령자는 앞으로 나아가 부문이 교차하는 바닥의 주요 부분에 영부를 한 장씩 붙였다. 그러자 검은색 비석 좌우에서 몇 갈래의 부문이 뻗어 나와 두 개의 둥근 법진을 만들어냈다.

    설치를 마친 화령자는 길게 탁기를 내뱉었다. 이것만으로도 많은 정력을 쏟은 게 분명했다.

    “이제 시작하자.”

    “급할 거 없으니까 조금 쉬었다가 하는 게 어때?”

    “흥! 날 뭐로 보는 거냐? 넌 안 급해도 난 급하다고! 삼중의 대진을 처음 융합해서 사용하는 거니까 성공할 것인지는 단번에 결정될 거다.”

    화령자의 눈이 이글거렸다.

    “알겠어.”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검은색 비석 좌측에 가부좌를 틀었고, 화령자도 오른쪽 원환 법진에 가부좌를 했다.

    화령자가 손을 들어 올리자 빛이 반짝이더니 곡현성반이 나타났고, 그의 손짓을 따라 천천히 떠올라 검은색 비석 위에 머물렀다.

    뒤이어 화령자가 양손을 허공에 몇 번 흔들자 곡현성반에 새겨진 흔적도 마치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에 이끌리듯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곡현성반에 빛이 일더니 곧이어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수백 개의 금색 광흔이 날아가 밀실 구석구석으로 떨어지면서 새로운 법진이 만들어졌다.

    “이건……?”

    “곡현성반에서 방어대진을 발견했다. 말이 방어대진이지, 사실은 진 안의 힘의 충돌을 막아주고 있는 것이더군. 그것으로 연신대진과 전화대진의 안정성을 끌어올렸다.”

    “그 대진의 이름은?”

    “현성속(玄星束)……. 네 이놈! 그런 수작으로 내 연신대진에 대해 알아내려는 게냐! 내 정신력이 흐트러져서 전화에 실패하면 네 책임이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안 물어볼게.”

    심협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멋쩍게 웃었다.

    “잠시 후에 내가 금오의 혼을 풀어놓으라고 하면 풀어라. 너무 이르거나 늦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수도 있어!”

    화령자의 긴장된 표정을 보자 심협도 덩달아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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