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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40화 (940/1,214)
  • 940화. 풍부한 수확

    심협은 한숨을 내쉬고는 소매를 휘둘러 돌 부스러기들을 무너진 산 아래로 보냈다. 그곳에 동족의 시체가 있으니 죽은 뒤에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허공의 섭채주는 몸에서 금백 빛이 동시에 번쩍이더니 굳게 닫혀 있던 두 눈을 천천히 떴다.

    “채주, 괜찮아?”

    이를 본 심협은 석상을 애도할 새도 없이 다가갔다.

    “오라버니!”

    심협을 본 섭채주가 환하게 웃으며 그를 향해 마주 날아왔다.

    등에 달린 한 쌍의 나비 날개가 금백의 빛으로 빛나더니 열 배나 빠른 속도로 날아왔고,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 그녀는 심협의 가슴에 강하게 충돌했다.

    심협은 그간 단약을 연화하고 대개박술로 상처를 치료해 부상의 절반을 회복했지만, 이번 충돌은 실로 강력해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내, 내가 어떻게 된…… 오라버니, 괜찮아요?”

    섭채주 자신이 누구보다도 놀란 듯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며 심협에게로 서둘러 다가왔다.

    “괜찮아. 아까 다친 부상이 아직 완쾌되지 않은 것뿐이야.”

    “후예 대신의 신기를 찾은 거예요? 손에 넣었나요? 그런데…… 제 몸에 왜 이런 힘이 생긴 거죠? 이게 후예 대신의 힘인가요?”

    섭채주는 심협이 괜찮아 보이자 조금은 안도하더니,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서둘러 물었다.

    심협이 씩 웃고 대답하려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섬 주위에 있던 검은 안개 금제에서 갑자기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검은 안개가 모두 섬을 행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후예의 능묘가 무너져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건가?”

    심협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쨌든 이 검은 안개는 심상치 않으니 서둘러 빠져나가라. 한쪽으로 돌진하면 내가 곡현성반으로 금제를 파훼할 테니 너희는 옆에서 돕도록 해!”

    화령자가 소리치고는 곡현성반을 향해 결인했다.

    심협은 천살시왕과 순양검을 거둔 뒤, 섭채주와 함께 가장 가까운 바닷가를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전력을 다해 날자 몇 호흡 만에 섬 끝에 도착했다. 검은 안개 금제는 무서울 정도로 음한한 힘이 담긴 음풍을 동반한 채 몰려오고 있었다.

    화령자가 전력을 다해 곡현성반의 힘을 발동하자 도향이 시전했을 때보다 두 배나 큰 별빛 기둥이 뿜어져 나와 검은 안개 금제를 휘갈겼다.

    퍼펑!

    근처의 검은 안개 금제가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폭발했고, 순식간에 약해졌다.

    심협이 기뻐하며 순양검으로 곡현성반을 도와 금제를 파훼하려는데 검은 안개 금제의 다른 방향에서 검은 기운이 갑자기 빠르게 몰려와 약해졌던 부분이 빠르게 회복됐다.

    “이런!”

    심협과 화령자는 경악했다. 도향 등이 금제를 부술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금제가 폭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금제를 부수려면 저 검은 음기의 흐름을 제어해야 될 것 같아요. 여기는 저한테 맡겨주세요.”

    섭재주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냐? 설마 시간의 힘을 쓰려고?”

    화령자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벌써 혈맥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거야?”

    “능숙하지는 않지만, 금제는 부술 수 있을 거예요. 서두르세요. 이 검은 안개가 짙어질수록 파훼가 힘들어져요.”

    “알겠다. 그럼 너에게 맡기마.”

    화령자가 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곡현성반에서 커다란 별빛을 뿜어내 검은 안개를 강하게 때렸다.

    검은 안개 금제가 다시 부풀어 오르다가 터지자 검은 안개가 아주 옅어졌고 주위의 검은 기운이 다시 용솟음치더니 옅어진 곳을 향해 다시 몰려왔다.

    섭채주 등 뒤의 하얀 날개에서 신비한 영문이 일더니 순식간에 세 배로 커져 눈부신 하얀 빛을 뿜어내 검은 안개를 비췄다.

    용솟음치던 검은 안개 금제가 주문이 걸린 것처럼 갑자기 우뚝 멈췄다.

    화령자와 심협도 하얀 빛에 둘러싸여 금제와 마찬가지로 그곳에 굳어버렸다.

    섭채주가 심협과 화령자를 향해 결인하자 두 사람 주위에 있던 하얀 빛이 빠르게 흩어져 순식간에 10여 장 크기의 둥근 공터가 만들어졌다.

    “좋았어!”

    움직임을 회복한 화령자는 방금 자신이 멈춰 있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크게 소리치더니 곡현성반을 결인했다.

    곡현성반의 별빛이 갑자기 10여 개의 커다란 별빛 칼날이 되어 하늘을 가르자 검은 금제가 다시 갈라졌다.

    심협도 자신이 방금 일순 멈췄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장 검은 안개를 공격했다. 다만 순양검이 아닌 오화칠금선을 꺼내 크게 휘둘렀다.

    검은 안개 금제가 다시 어떤 수작을 부리기 전에 가장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기로 한 그는 부채 안에 들어 있는 다섯 자루의 순양검을 가장 강력한 순양검으로 바꿨다.

    퍼펑!

    폭발음과 함께 다섯 개의 불꽃이 뿜어져 나갔는데, 그중 주작진화가 특히 컸다.

    “캬오오오!”

    주작의 울음과 함께 다섯 개의 불꽃이 빠르게 합쳐지더니 순식간에 다섯 종류의 천화가 합쳐진 거대한 불꽃 주작으로 변해 검은 안개 금제와 충돌했다.

    콰쾅!

    검은 안개 금제가 종잇장처럼 폭발하더니 몇 장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심협이 섭채주를 부르려 하는데, 화령자가 그를 잡아끌며 그 구멍으로 향했다.

    “괜히 방해하지 말고 나랑 빨리 나가자고! 그녀는 시간의 신통이 있으니 검은 안개에서도 무사할 게다!”

    두 사람이 날아오르는 순간, 검은 안개 금제가 시간의 하얀 빛에 둘러싸이면서 합쳐지려던 커다란 구멍이 다시 멈췄다.

    한 줄기 금빛이 곧바로 커다란 구멍에서 나왔다. 물론 섭채주였다.

    잠시 후, 주위에 있던 시간의 하얀 빛이 빠르게 사라지자 검은 안개 금제도 정상으로 돌아와 계속해서 용솟음쳤다.

    섭채주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고, 허공에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기에 심협이 서둘러 금빛으로 그녀를 감쌌다.

    “괜찮아?”

    그가 섭채주의 손을 잡고 순수한 법력을 그녀의 체내로 흘려보냈다.

    섭채주는 정신이 조금 들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시간의 신통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녀가 소모한 것은 혈맥의 힘이다. 바로 정양해야 할 게야.”

    화령자의 말에 심협은 서둘러 섭채주를 소요경 안에 넣었다.

    섭채주는 안도하고는 바로 가부좌를 튼 채 정양에 들어갔고, 그제야 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심협은 신식으로 섭채주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마음 아파하며 자책했다.

    ‘시간의 신통을 시전하는 데 이렇게 소모가 클 줄이야. 내 실력이 약해서 채주가 이런 고통을 겪는 거야.’

    옆에서 이를 본 화령자가 심협의 어깨를 다독였다.

    “심협, 너무 자책하지 마라. 진선기는 법력이 약해서 시간 신통의 법력 소모를 버티지 못하지만, 네 약혼녀가 태을기에 들어서면 이런 일은 없을 거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령자도 소요경 안에 넣고 붉은 검광이 되어 빠르게 날아갔다.

    그는 서둘러 날아가는 바람에 섬에 있는 검은 안개 금제가 마치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것처럼 줄어들던 기세가 멈춰 있음을 보지 못했다.

    * * *

    심협은 망망대해를 꼬박 하루 동안 날아간 뒤에야 크지도, 작지도 않은 둥근 섬으로 내려갔다.

    섬 안쪽 항구 근처에 은밀한 곳을 골라서 일곱 자루의 순양비검으로 굴을 파자 단단한 암벽에 임시 동부가 생겼다.

    동부 밖에 방어와 은신 법진을 설치한 뒤 동부로 들어가 돌문을 굳게 닫고 동부 안에 형석(螢石)의 빛을 비추고 나서야 그는 긴장을 조금 풀었다.

    한동안 계속된 싸움에 쉬지도 못하다 보니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심협이 가부좌를 하고 한참을 있다가 손을 휘두르자 소요경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공간의 대문이 회전하면서 열렸다.

    문 뒤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던 섭채주가 바로 튀어나왔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섭채주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심협은 그녀의 손을 끌어 앞에 앉히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내상이 조금 있을 뿐이니 단약을 먹고 며칠 정양하면 될 게야.”

    “몸을 돌보지 않고 계속 변고에 휩싸이는데 내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섭채주가 핀잔을 주자 심협은 오히려 기뻐하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어쨌든 이렇게 무사하지 않더냐. 하하하! 이번에는 좀 위험했지만, 그래도 수확은 괜찮았다.”

    “그건 그래요. 다른 건 몰라도 무족의 혈맥은…… 완전히 각성하지 않았는데도 제가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니까요.”

    섭채주도 마침내 웃으며 말했다.

    “완전히 각성한 게 아니었어?”

    “네. 촉구음의 혈맥은 상고 무족의 혈맥 중 가장 강한 갈래인데 쉽게 완전히 각성이 되겠어요? 그래도 시간만 있으면 완벽하게 깨우칠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이번에도 수확이 꽤 많으니까 어떤 것들이 있나 같이 보자.”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으며 말했다. 마치 장사하러 나갔던 남편이 보따리를 잔뜩 메고 집으로 돌아와 수확을 부인 앞에 펼쳐보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섭채주도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심협과 달리 수행을 시작한 이후로 줄곧 종문의 비호를 받아왔다. 물론 간혹 임무를 수행하러 나가기도 했고 싸움에도 참여했지만,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이렇게 앉아서 수확물을 살펴볼 기회도 적었다.

    심협이 웃으며 저물 반지 두 개와 저물 팔찌 하나를 땅에 내려놓았다.

    두 개의 저물 반지는 유홍과 이표의 것이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저물 팔찌는 도향의 것이었다. 세 사람이 죽은 뒤 저물 법기를 모두 심협이 챙겼다.

    그는 먼저 이표의 저물 반지를 연화한 뒤 손을 휘둘렀다. 안에 있던 물건들이 두 사람 앞에 펼쳐졌다.

    적잖이 놓인 병들을 하나하나 살폈는데, 그중에는 치료 단약이 많았다. 품질도 낮지 않았는데, 그중 가장 의외였던 것은 바로 화련단이었다. 이전에 폐관수련할 때 원래 있었던 화련단을 모두 소모해 약에 내성이 생기면서 화련단도 수련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

    “역시 방금각 장로답게 단약은 많지만 법보는 별로 없군.”

    심협은 또 다른 것들을 살펴보더니 내심 실망했다.

    이표의 법보 중 청천연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나머지는 그저 그런 것들로, 가장 좋은 것도 겨우 9도 금제에 불과해 심협의 눈에 들지 않았다.

    심협은 물건을 종류대로 분류한 후, 유홍의 저물 반지를 연화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크게 실망했다. 이표보다도 가진 것이 훨씬 적었고, 심지어 단약들도 별로였던 것이다. 법보도 매한가지였다. 그나마 가장 좋은 법보가 묵혼비였다.

    이전에 유홍과 이표가 이 두 개의 보물을 사용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하나하나의 위력도 제법이었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이 보물을 발동하자 허공에 독특한 공간의 힘을 통해 통로가 생겨났다. 만약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심협은 이 두 보물을 연화하기로 마음먹고 시선을 돌려 바닥에 있는 검은 돌을 유심히 살폈다.

    이 돌은 주먹만 했고, 그 위에는 울퉁불퉁한 자국이 가득했다. 사람이 두드려서 만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도 않았다.

    광택이 흐르는 검은 돌을 쥐는 순간, 빙한(氷寒)의 힘이 돌에서 뿜어져 나와 전신으로 퍼졌다. 더욱이 예상외로 무거워서 하마터면 들다가 떨어트릴 뻔했다.

    “무거운데?”

    심협이 의외라는 듯 말하자 섭채주도 호기심에 손을 내밀었다가 깜짝 놀랐다.

    “이건 무슨 돌인데 이렇게 무거운 거죠?”

    “모르겠다. 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아무튼 평범한 물건은 아닌 것 같구나.”

    심협은 다시 화령자를 불러냈다.

    화령자는 정신을 가다듬고 곡현성반의 법진 하나하나를 연구하는 데 몰두하고 있던 터라 인상을 찌푸렸다.

    “또 왜?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그가 투덜거리자 심협은 멋쩍은 듯 웃었다.

    “미안하게 됐군. 도움이 좀 필요해서…….”

    화령자는 그의 말에 곡현성반을 꼭 끌어안았다.

    “너…… 이 보물은 내가 연구 중이니까 눈독 들이지 마!”

    “그거 말고, 이거. 좀 봐줘.”

    심협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뭔데? 어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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