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39화 (939/1,214)
  • 939화. 환상 속의 환상

    심협은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고는 전음을 끊고, 다시 소요경을 발동하여 옆에 있는 약목신궁을 휘감았다.

    하지만 소요경의 붉은 빛이 약목신궁에 닿는 순간, 아홉 마리 금오의 혼이 증오가 담긴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아홉 개의 부리로 붉은 빛을 쪼아 부쉈다.

    뜨거운 화력이 붉은 빛을 타고 소요경 안으로 들어오자 거울이 마치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가 된 듯했다.

    “감히 나까지 공격하다니. 말 안 듣는 짐승에게는 매가 약이지.”

    심협은 차갑게 내뱉더니 결인했다.

    대청 상공의 금광검진이 다시 빛을 발하더니 수많은 금빛 검이 아홉 마리 금오의 혼을 향해 폭발하듯 날아가면서 경천동지할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 차례 경험이 쌓이면서 심협은 순양금광검진에 점점 능숙해졌고, 덕분에 위력은 배가 되었다.

    이 난폭하기 그지없는 금오의 혼은 오랫동안 약목신궁에 봉인되어 있던 터라 화가 치민 상태였기에 하늘 가득한 빛의 검을 전혀 겁내지 않고 날개를 펼치더니 금오지화(金烏之火)를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아홉 마리 금오의 혼을 공격한 금빛 검은 타오르는 금오지화에 삼켜져 별다른 힘도 쓰지 못했다.

    심협은 내심 놀랐지만, 어차피 그의 목적은 금호의 혼이 아니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때, 관 옆쪽에서 초록 빛이 반짝이더니 귀등상인이 불쑥 튀어나와 곧장 약목신궁을 잡았다.

    허공에 있던 금오의 혼은 이 광경에 화를 내며 날카로운 부리를 앞세워 밑으로 돌진해갔다.

    이를 본 심협은 씩 웃더니 푸른 빛이 번득이는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그의 앞쪽 허공에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거대한 얼음벽이 허공에 나타나 아홉 마리의 금오를 막았다.

    아홉 마리 금오의 혼은 부리로 강하게 찍어대고 금오지화를 성난 파도처럼 뿜어내 얼음벽을 빠르게 녹였다.

    하지만 이 얼음벽은 제5층 경지에 도달한 진창해 신통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이 맹렬한 공격에도 굳건히 버텨냈다.

    얼음벽 아래에서 귀등상인이 신궁을 들고 심협에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한데 그때, 귀등상인 옆에 파동이 일더니 무라의 얼굴로 변한 전삼칠이 불쑥 튀어나와 액체 같은 검은 기운을 입에서 뿜어냈다. 바로 절영마기였다.

    “네가 나올 줄 알았다!”

    심협은 차갑게 비웃더니 붉은 빛과 함께 오화칠금선을 꺼내 강하게 휘둘렀다.

    오색 불기둥이 솟구치더니 전삼칠을 향해 날아갔다.

    전삼칠 안의 무라는 이 화선에 호되게 당한 바 있기에 감히 막지 못하고 서둘러 피했다.

    이 틈에 귀등상인이 절영마기를 피해 약목신궁을 들고 심협 옆으로 날아와 두 손으로 건넸다.

    이 광경을 본 전삼칠은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곧장 뺏으려 들지 않고 몸을 돌려 멀리 날아갔다.

    심협은 전삼칠을 쫓지 않고 귀등상인에게서 약목신궁을 받아 들고 안에 담긴 힘을 느껴보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약목신궁에서 갑자기 금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며 하늘을 찌르는 열력(熱力)이 새어나와 그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심협의 체내에 있던 순양검이 이 열력을 감지하고는 미친 듯이 요동치더니 똑같이 작열하는 힘을 뿜어냈고, 두 힘은 강렬하게 충돌했다.

    금색 태양이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와 빠르게 대청을 온전히 뒤덮었다.

    펑!

    폭발음에 이어 심협은 피를 뿜어내며 뒤로 튕겨나갔다. 갈비뼈가 움푹 들어가면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고, 그는 얼음벽에 처박혔다.

    얼음벽은 아홉 마리 금오의 혼에게 공격을 받아 이미 균열이 가득했는데, 심협이 충돌하자 결국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약목신궁도 반대쪽으로 튕겨나갔고, 위에 있던 아홉 개의 금빛 화살도 날아갔다.

    금빛 화살이 약목신궁에서 날아가자마자 금빛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얼음벽 맞은편에 있던 아홉 마리 금오의 혼도 마치 버틸 힘이 사라진 것처럼 금빛으로 변하여 화살 속으로 들어갔다.

    아홉 개의 금빛 화살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세 개는 심협 근처에 떨어졌다.

    심협은 충격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러운 와중에도 소요경에서 붉은 빛을 발사해 이 세 개의 화살을 감쌌다.

    화살 안에 담긴 금오의 혼도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들어갔다.

    심협은 고개를 돌려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또 다른 세 개의 화살을 돌아봤다. 이어서 소요경을 발동하여 거두려는 순간, 갑자기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염열이 나타나 세 개의 금빛 화살을 거두고는 다시 허공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만수진인은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 본존의 천 년 계략이 헛되지 않았구나! 약목신궁이 마침내 내 손에 들어왔다. 하하하!”

    광포한 웃음이 염열의 반대쪽에서 들려왔다.

    전삼칠은 한 손에 약목신궁을 들고 다른 손에는 마지막 세 개의 금빛 화살을 들고는 미친 듯이 웃어대며 검은 빛과 함께 땅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심협은 중상을 입은 상태라 막지 못하고 모든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사실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약목신궁은 그의 순양검과 상극인 듯 격렬하게 저항하니 어차피 다시 뺏는다 해도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신궁의 영이 마치 심협의 손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쓰게 웃고는 치료 단약을 먹고 연화했다.

    그때, 능묘가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주위의 벽에 금이 생겨 빠르게 퍼져 나갔고, 능묘가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뒤이어 대청의 빛이 빠르게 번득이더니 신식을 막는 금제가 갑자기 사라졌다.

    심협이 신식을 펼쳐 살펴보니 능묘 위쪽의 금제도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후예의 유물이 전부 사라지니 지탱할 무력도 사라지면서 이곳의 금제도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능묘가 곧 완전히 무너질 테니 빨리 벗어나는 게 좋겠다.”

    화령자의 말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운공을 강행하여 부상을 치료하며 몸에서 초록빛을 뿜어내 허공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 * *

    이름 없는 황량한 섬. 후예의 능묘가 있는 거대한 산이 갑자기 크게 흔들리더니 눈부신 하얀 빛이 안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무서운 힘의 파동이 일어났고, 하늘마저 흔들렸다.

    산봉우리 허공에 초록 빛이 반짝이더니 심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안색은 능묘 안에 있을 때보다 더 창백했다.

    후예 능묘 안의 금제는 무너졌지만, 그 공간은 무너지지 않았기에 한참이나 공을 들인 끝에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전삼칠과 염열 등은 어디로 도망쳤는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딱히 그들을 찾을 생각은 없었던 심협은 고개를 숙여 백아 부족이 있던 산골짜기를 바라봤다.

    그곳은 돌덩이만 굴러다닐 뿐 텅 비어 있었다.

    “아무래도 무라의 환술에 걸렸던 모양이군. 한데 아직도 이해 안 되는 게 있어.”

    심협이 쓴웃음을 짓더니 중얼거렸다.

    “뭐가 이해 안 된다는 거냐?”

    화령자가 소요경에서 나오더니 물었다.

    “내가 조금도 알아차릴 수 없는 환술이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 게다가 이런 강력한 환술이 있으면서 왜 후예 능묘에서는 쓰지 않은 거지? 후예 능묘에서 사용했던 환술이 대단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강력하진 않았어.”

    “백아 부락에서의 환술은 어떤 법보나 진법의 힘이 더해진 건지도 모르지.”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 한데 생각해보면 생혼문과 사혼문의 독충과 이수들, 능묘 안의 석상들로는 그녀를 막을 수 없었어.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의 행동과 후예 능묘에서 벌어진 모든 일은 무라의 설계였던 듯하군. 그녀는 어떠한 이유로 후예의 봉인을 열 수 없어서 우리를 이용한 거지. 아마도 약목신궁을 가져가려는 게 주요 목적 중 하나였던 것 같군.”

    “무라가 죽은 척하고 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비록 그녀가 어떻게 전삼칠의 몸에 달라붙었는지 나도 모르겠다만, 네가 무라를 쓰러트린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후예의 관에서 싸웠을 때도 그녀의 힘은 너보다 훨씬 약했다. 전삼칠 몸에 붙어 있는 건 잔혼에 불과해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다가 우연히 날아간 약목신궁을 주운 것뿐이다.”

    “네 말이 맞길 바라야지.”

    한데 고개를 끄덕이던 심협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 * *

    소요경 안. 섭채주와 석상을 감싸고 있던 하얀 안개 광막이 격렬하게 흔들리더니 태양처럼 찬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안개 광막을 찢어버렸다.

    콰쾅!

    금빛이 빠르게 번쩍이고 일파만파 강력해지며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자 소요경 공간의 모든 금제가 견디지 못하고 곧 무너질 것처럼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 돼!”

    심협은 곧장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소요경을 발동했다.

    찬란한 금빛이 하늘 높이 떠오르더니 더욱 맹렬하게 폭발하여 순식간에 반경 수십 장을 뒤덮었고, 그 폭발력에 심협도 튕겨져 나갔다.

    안 그래도 부상이 심했던 그는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려는 피를 억지로 삼키며 서둘러 백 장을 물러났다.

    금빛은 점점 찬란해져서 마치 진짜 태양이 강림한 것처럼 섬을 비추었다.

    심협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무라가 아직 섬에 있다면 이 변화를 보고 달려올 게 분명했다.

    하지만 섭채주의 지금 상태는 그가 다가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소매를 휘둘러 열 자루의 순양검으로 빠르게 금광검진을 설치했다. 천살시왕도 나와서 번천인을 들고 금빛 반대편으로 날아가 주위를 경계했다.

    하지만 반 시진이 지나도록 무라는 물론이고 염열이나 만수진인도 나타나지 않았다.

    섭채주의 몸에서 빛나는 금빛은 더욱 밝아져서 심협은 다시 백 장 정도 물러나야 했다.

    “후예의 힘은 역시 범상치 않구나.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트린 상고 대무다워!”

    화령자는 금색 태양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반면 심협은 감탄보다도 섭채주가 저 엄청난 힘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또다시 일각(약 15분)이 지났다. 금빛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하얀 빛이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가 빠르게 흩어졌고, 금세 금빛의 영역을 절반이나 빼앗았다.

    하얀 빛은 금빛보다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특이한 기운이 감돌았다. 무궁무진한 힘을 가진 금빛은 하얀 빛이 침투하자 바로 움직임을 멈추더니 쉽게 밀려났다.

    “이건…… 시간의 힘?”

    심협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무래도 천존의 경지만 시간의 힘을 쓸 수 있는 건 아닌가보군. 조무의 혈맥은 정말 신비롭단 말이야.”

    화령자가 눈을 반짝였다.

    금과 백, 두 가지 색깔이 어우러져 번득이더니, 몇 호흡 뒤에는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이내 모두 사라졌다.

    섭채주의 모습이 허공에 나타났는데, 아직 의식이 없는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외모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등에는 나비 같은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하나는 금색이었고 하나는 하얀색으로, 더없이 신비로워 보였다.

    방대한 기운이 그녀의 몸에서 폭발하더니 진선 후기에 도달했는데, 그 기운은 매우 신비로워 선(仙) 같으면서도 아닌 듯했고, 무(巫) 같으면서도 아니었다. 마치 섭채주의 몸에 무족의 혈맥과 선도의 법력이 어우러져 있는 것 같았다.

    석상은 섭채주 옆에 서 있었는데, 온몸에 금이 간 채 계속해서 부스러기가 떨어져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평생의 숙원을 마친 것처럼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흐뭇하게 섭채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예 대신이시여. 마침내 사명을 완수하였습니다…….”

    중얼거림이 끝나자마자 최후의 영광이 빠르게 사라져 더는 허공에 떠 있지 못하고 석상은 추락했다.

    금빛이 날아와 석상의 몸을 받았고, 그 옆에 심협이 나타났다.

    “채주에게 후예 대신의 힘을 계승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심협이 한 손을 가슴에 대고는 무족의 예를 올렸다.

    “아니다. 후예 대신의 힘을 계승한 저 아이가 우리 무족의 희망이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

    “채주는 제 약혼녀입니다. 목숨을 바쳐 보살피겠습니다.”

    그 말에 안심한 듯, 석상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고, 몸을 감싼 영광이 완전히 사라지더니 평범한 석상이 되었다가 이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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