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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38화 (938/1,214)
  • 938화. 금색 유골

    나무 상자 안에는 회백색의 네모난 옥이 들어 있었다. 손바닥만 한 옥에는 무족 문자가 돌출돼 있었다. 언뜻 봐서는 눈에 띄지도 않았고, 강력한 영력도 담겨 있지 않아서 어떤 용도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심협은 곧장 나무 상자와 네모난 옥을 챙긴 뒤 통로로 들어갔다.

    바깥에서는 보기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그 끝은 백여 장 정도였다. 단지 앞에서 약간 굽어 있었다.

    금세 끝에 도착하자 폭이 50여 장에 이르는 네모난 대청이 나타났다.

    천장에는 10여 개의 주먹만 한 하얀색 명주가 박혀 있어서 대청을 환하게 비추었고, 특별한 것 없이 가운데에 회백색 관만 놓여 있었다.

    관 주위의 바닥에는 수많은 무족 문자가 새겨져 무진을 이루고 있었다.

    염열과 만수진인, 전삼칠이 이 무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빛줄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 빛줄기 안에는 강력한 금고의 힘이 담겨 있는 것인지 세 사람은 마치 보석 안에 닫힌 파리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의 자세로 미루어 이들은 관으로 달려들다가 무진을 건드려 갇힌 게 분명했다.

    “하하하! 먼저 들어가더니 꼴 좋구나. 쌤통이다! 심협, 어서 이놈들을 죽이고 마음 편하게 관 안에 있는 후예의 힘을 계승해!”

    화령자가 크게 웃더니 험악한 말을 쏟아냈다.

    심협은 신식으로 화령자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서 죽이지 않고 뭘 멍하니 있는 게야?”

    화령자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보아하니 정두칠전서를 사용한 대가가 큰 모양이군. 겨우 화살 두 개만 쐈는데도 이 정도라니, 앞으로 그건 안 쓰는 게 좋겠어.”

    심협이 한참을 침묵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그 말에 화령자는 표정이 변해 자신의 몸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고, 한참 뒤에야 다시 눈을 떴다.

    “정두칠전서는 역시 사문(邪門)이로군. 기령지체인 이 몸도 이 보물의 저살(詛煞)의 기운에 사로잡히다니.”

    “저살의 기운?”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도 경지가 높으니 누구든 남의 생명을 취하는 자는 그 몸이 살기로 물든다는 걸 알 게다. 이건 생명이 사라질 때 생기는 원념에 사로잡히는 것으로, 천지인과의 규칙이라 누구도 피할 수가 없지. 살기에 여러 종류가 있는데, 어떤 수단으로 사람을 죽이느냐에 따라 생기는 살기가 다 다르다. 저살의 술로 사람을 죽이면 저살의 기운이 생기는 것이지. 정두칠전서는 그야말로 가장 흉악한 저살의 술이다.”

    화령자의 말투가 평소대로 돌아온 걸 보니 살기의 영향에서 이미 완전히 벗어난 듯했다.

    “역시 아는 것도 많군. 한데 방금 저살의 기운이 네 심지에 영향을 주고 있다더니, 어떻게 푼 거야?”

    심협은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고는 궁금한 듯 물었다.

    “저살의 기운은 확실히 예사롭지 않지만,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내게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앞으로 조심하면 절대로 내 심지를 조종할 수 없지. 푸는 방법은 불문의 가르침이 필요한데, 불문의 선정지법(禪定之法)이 심마와 살기를 푸는 데 효과가 있다. 과거에 우연히 무량정토(無量淨土) 심법을 익혀서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이 저살의 기운을 연화할 수 있었지.”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은 나 때문이니 내가 돕지. 이 정원의 사리는 선천영천의 정원 부처께서 좌화하시며 남기신 물건이니 네가 가지고 있으면 살기의 영향을 막아낼 수 있을 거야.”

    심협은 금색 사리를 꺼내 소요경 안으로 넣었다.

    “불문의 사리라고? 그건 선옥이 산더미처럼 많아도 살 수 없는 건데! 무량정토 수련에 큰 도움이 되겠어!”

    화령자는 기뻐하며 사양하지 않고 사리를 받아 몸에 달았다.

    심협은 염열 등을 슥 둘러보고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심협 또한 저살의 기운에 사로잡힌 상태였지만, 그 영향이 화령자보다 적었기에 그들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몸에 저살의 기운이 물든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창 요동치는 시점인 지금 살생을 저지른다면 저살의 기운이 크게 강해져 후환이 따를 것이다. 더욱이 세 사람은 이미 무진에 잡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심협은 세 사람을 내버려둔 채 무진 너머의 관을 살폈다. 대청 안은 무형의 힘이 가득하여 신식을 펼칠 수 없었기에 눈으로 직접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주위를 반 바퀴쯤 돌던 그는 우뚝 멈춰 섰고, 시선은 관의 반대쪽에 머물렀다.

    관 중심에 네모꼴 홈이 파여 있고, 그 주위로 무족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작은 무진 같았다.

    심협은 네모난 옥석을 꺼냈다. 그러자 옥석은 뭔가를 감지했는지 하얀 빛을 발했다.

    관의 홈 주위의 무진에서도 하얀 빛이 번득이고 웅웅 떨려오더니 바로 강력한 흡입력을 뿜어냈다.

    네모난 옥석이 손에서 날아가는 것을 심협은 막지 않았다.

    툭!

    작은 소리에 이어 옥석은 홈에 끼워졌는데,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들어맞았다.

    홈 주위 무진의 빛이 더 강해지면서 빠르게 돌기 시작하자 대전 전체가 크게 흔들렸고, 천장에서는 먼지가 떨어졌다.

    심협은 설레는 마음으로 회백색 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그는 떠오른 것이 있어 소요경 안의 석상에게 물었다.

    “알려주신 대로 해서 지금 후예 대문의 관이 열리고 있습니다. 채주의 혈맥의 힘은 열렸습니까?”

    “이미 열렸다. 다만, 방금 무족의 혈맥을 깨우치느라 몸이 버티지 못해 의식을 잃었을 뿐이다. 허나 그녀가 후예 대신의 전승을 잇는 데는 문제없다.”

    들려오는 석상의 목소리는 매우 미약해서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

    심협은 석상의 말에 안도하고는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회백색 관에도 하얀 빛이 감돌더니 뚜껑에서 갑자기 찰칵 하는 소리가 울리며 천천히 열렸다. 그러자 그 틈으로 미세한 금빛이 새어 나왔다.

    웅장한 무력(巫力)에 멀리 떨어져 있는 심협도 막대한 압박감을 느꼈다.

    “역시 상고 대무답군.”

    심협은 허공으로 떠올라 관 안을 자세히 살펴보려 했다.

    한데 그때, 관 주위의 무진 안에 있던 전삼칠의 몸에서 갑자기 대량의 짙은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빠르게 주위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 검은 기운들은 순수하기 그지없는 마기였는데, 매우 끈적해 마치 검은색 액체처럼 하얀 무진 안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무진 절반을 물들였다. 무진 안의 강력한 금고의 힘은 이 마기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번득이던 하얀 빛이 빠르게 어두워지자 진법의 작동이 멈추면서 마치 기계에 뭔가 낀 것처럼 끼이익 하는 소리가 났다.

    “절영마기(絶靈魔氣)! 심협, 전삼칠이 이상하다. 어서 저자를 죽여!”

    화령자가 놀라서 소리쳤다.

    심협은 전삼칠에게 기이한 일이 생기는 것을 느끼자마자 화령자가 말하기도 전에 소매를 휘둘러 두 자루의 순양검을 내던졌다. 두 자루 순양검은 서로 합쳐지면서 쌍검합벽의 술을 시전했다.

    지금은 정두칠전서의 저살의 기운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심협의 반응은 매우 빨랐지만, 그럼에도 한 발 늦은 뒤였다. 전삼칠의 몸 전체가 검게 물들더니 가볍게 떨리며 검은색 허상으로 변했는데, 바로 매우 익숙한 불사환령결의 허화였다.

    쌍검합벽 신통이 몸을 베었지만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했다.

    “무라!”

    심협이 경악하며 오른손에서 검은 기운을 뿜어내 순식간에 생겨난 치우지박의 마조를 전삼칠에게 휘둘렀다. 거의 동시에 왼손을 결인하자 남은 여덟 자루의 순양검이 날아가 앞서 날아간 두 자루와 함께 빠르게 순양검진을 펼쳤다.

    하지만 전삼칠은 이미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속도를 높여 대번에 후예의 관으로 뛰어 들어갔고, 치우지박 마조는 허공을 베었다.

    하얀 무진이 멈추자 염열과 만수진인도 금제에서 벗어났는데, 이들 역시 망설임 없이 회백색 관으로 돌진했다.

    다급해진 심협은 검은색 마조를 관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렀다.

    쾅!

    굉음과 함께 회백색 관이 날아가 대청 벽에 박혔다.

    이 관은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치우지박의 일격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그 충격에 뚜껑은 날아가 버렸다.

    그 순간, 두 개의 물체가 안에서 튀어나왔다. 하나는 금색 유골이었고, 하나는 금색 대궁이었다. 대궁 위에는 아홉 개의 화살이 매겨져 있었다.

    유골은 매우 커서 키가 3장에 이르렀고, 유골임에도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기운의 파동이 산을 옮기고 별을 떨어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금빛 활 역시 강력하기 그지없는 기운을 뿜어냈는데, 특히 아홉 개의 금빛 화살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한 발 앞서 관으로 들어갔던 전삼칠이 튕겨 나왔으나, 곧장 몸을 가누더니 재빨리 금빛 활을 잡으려 했다.

    그 순간, 활에 매겨진 아홉 개의 금빛 화살에서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금빛 불꽃이 대번에 커져 눈 깜짝할 사이에 아홉 개의 거대한 금빛 불꽃으로 변했다.

    이 불꽃들은 다시 한번 변하여 아홉 마리의 거대한 금빛 불꽃 새가 되었는데, 마치 발이 세 개 달린 까마귀 같은 모습이었다. 이 새들은 하늘을 태울 것처럼 뜨거운 기운을 내뿜었다.

    “이것은 설마…… 금오(金烏)의 혼?”

    심협은 금빛 화살의 변화를 보고 멈칫했다.

    “금오가 분명하다. 약목(若木)에 사는 금오가 날아오르면 태양이 뜨고 둥지로 돌아오면 태양이 진다. 어느 날, 열 마리의 금오가 일제히 날아오르자 열 개의 태양이 모두 떠올라 백성들이 고초를 겪었다. 후예는 약목으로 활을 만들어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트리고 금호의 혼을 그 궁에 담았으니, 희화(羲和)의 빛이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저 화살이 바로 후예가 태양을 쏜 약목신궁이다.”

    화령자가 천천히 말했다.

    한편, 아홉 마리 금오의 혼은 나타나자마자 전삼칠을 쪼아댔다.

    전삼칠은 한쪽 팔이 터지면서 튕겨나갔는데, 마침 심협이 있는 방향이었다.

    심협의 눈에서 매서운 빛이 스쳐 지나가더니 부러진 금색 검, 참마검을 꺼내 인검합일 신통으로 금색 검홍이 되어 전삼칠의 머리를 베어갔다.

    전삼칠은 참마검의 위력을 느끼고는 서둘러 몸을 가누고 양쪽 어깨를 흔들어 대량의 잔상을 만들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심협에게는 유명귀안이 있었다. 특히 마기가 섞이면서 시력이 더 강해져 마족의 신통을 관찰하는 데 능해졌으니, 전삼칠이 아무리 열석보를 시전해도 그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금색 검홍이 왼쪽으로 날아가 그쪽에 있는 어두운 잔상을 크게 베었다.

    촤악!

    전삼칠은 두 다리가 무릎까지 잘렸지만, 여전히 필사적으로 도망쳐 대청 벽에 부딪히더니 그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심협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여기에서는 신식을 펼칠 수 없었기에 전삼칠을 탐지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한데 그때, 염열과 만수진인이 관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염열이 대뜸 소매를 휘둘러 금색 유골을 감쌌다.

    “어딜 감히!”

    심협이 호통을 치며 상공을 향해 결인했다.

    이미 펼쳐져 있던 순양금광검진에서 금빛 검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와 염열과 만수진인을 공격했다.

    앞서 순양검광 검진의 위력을 본 적이 있는 염열과 만수진인은 막아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도마뱀처럼 멀리 달아났다.

    손을 휘둘러 두 무리를 쫓아낸 심협은 회백색 관 근처로 다가가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소요경을 발동했다.

    붉은 빛이 날아와 금색 유골을 감싸고는 거울 속으로 집어넣어 섭채주와 석상이 있는 하얀 안개 광막으로 던졌다.

    “말씀하셨던 후예의 힘이 이 유골입니까?”

    심협이 전음으로 석상에게 물었다.

    “이것이 후예 대신의 유해다. 그의 웅장한 무력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내 술법으로 이 힘을 섭채주의 몸에 넣어 후예 대신의 힘을 이어받게 할 것이다.”

    석상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데 제가 무족의 힘에 관해 잘 모르지만, 이 유골의 힘이 진선의 경지를 넘은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채주의 지금 경지로 이 힘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걱정 마라. 섭채주는 이 세상 마지막 무족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찌 그녀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겠느냐. 후예 대신의 힘은 확실히 이 아이의 경지를 뛰어넘지만, 후예 대신의 힘을 그녀 몸에 봉인하여 절반만 방출하면 괜찮을 게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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