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5화. 몰살
유홍이 곧장 묵혼비를 잡고 은색 먹물을 묻힌 뒤 빠르게 허공에 그리자 눈 깜짝할 사이에 은색 대문이 나타났다.
“열려라!”
두 사람이 동시에 두 보물을 발동하자 두 줄기의 푸른 빛이 은색 대문으로 날아갔다. 대문에서 환한 빛이 번쩍이더니 천천히 열렸고, 문 뒤로 바깥 세계의 바다 풍경이 어렴풋이 보였다.
“가자!”
세 사람이 곧장 둔광으로 변하여 그쪽으로 날아갈 때였다.
쉿!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은 기운이 은색 대문 아래에서 솟구치더니 대문을 뒤덮었다. 열려가던 허공의 문은 갑자기 멈췄고, 안에서 어렴풋이 보이던 바다 경치에도 그림자가 드리웠다.
뒤이어 검은 기운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는데, 이미 실체가 된 무라였다.
“도망가려고? 요혼 하나를 망가트렸으니 너희 신혼을 내놓고 가거라!”
무라의 눈에서 흉광이 반짝였다.
도향은 허공에 나타난 무라를 보고 놀란 듯 표정이 크게 변했다.
하지만 그녀 옆에서 만리권운이 갑자기 청백색 빛을 강하게 발하더니 수백 개의 기다란 비단으로 변하여 무라를 휘감으려는 듯 쏘아져 나갔다.
어느새 도향은 얼음처럼 차갑고 살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허나 무라는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입에서 구유마환을 꺼냈다.
“애송아, 비록 아직 온전히 제련하지 못했지만, 네게 진정한 구유마환의 위력을 보여주마.”
무라가 한 손으로 구유마환을 쥐고는 검은 그림자 공간에 있는 심협을 보며 조롱하듯 말을 내뱉고는 팔을 휘둘렀다.
구유마환에서 검은 빛이 강하게 번득이더니 크고 작은 고리 허상이 빼곡하게 뿜어져 나와 엄청난 기세로 청백색 비단을 향해 날아갔다.
하늘 가득하던 청백색 비단이 갑자기 완전히 사라지더니 만리권운이 나타났는데, 몇 개의 검은 고리 허상에 묶여서 꿈쩍도 못 하고 있었다.
도향의 주위에도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다섯 개의 고리 허상이 나타났다.
도향은 그녀의 전력을 다한 일격이 이렇게 쉽게 파훼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 또한 이미 대비하고 있었기에 바로 뒤로 물러나면서 고운 손을 휘둘렀다.
사람을 취하게 하는 기운이 담긴 수많은 분홍색 꽃잎이 그녀의 소매에서 뿜어져 나가 검은 고리 허상을 둘러쌌다.
이 분홍색 꽃잎은 위해가 없어 보였지만, 사실 그녀가 섭혼미심대법(攝魂迷心大法)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라 상대의 법보를 통해 미심의 힘을 침투시킬 수 있었다.
한데 검은 고리 허상은 피할 생각조차 없는 듯 분홍색 꽃잎에 휩싸였다.
꽃잎에 담긴 미심의 힘이 검은 고리를 통해 몸으로 침투했지만, 무라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오히려 도향의 몸에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다섯 개의 검은 고리 허상이 나타나 그녀의 몸을 꼼짝도 못 하게 단단히 묶었다.
겁에 질린 도향은 크게 후회했지만, 모든 것이 늦은 뒤였다.
하지만 그녀도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바로 모든 법력을 곡현성반에 주입하여 다시 혼원무극진을 발동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녀의 법력은 빠르게 곡현성반의 중요 금제를 연화했고,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르게 곡현성반을 발동했다. 하얀색 대진이 허공에 나타나더니 그녀와 무라를 같이 뒤덮었다.
무라는 현재 실체였기에 혼원무극진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지만, 그만큼 힘 또한 허화 상태일 때보다 강했다. 그녀는 검은색 마도를 좌우로 휘둘렀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대량의 검은 도의 허상이 날아가 혼원무극진를 기다랗게 찢었다.
무라가 열석보를 시전하자 몸에서 파지직 하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 그림자로 변하여 도향을 덮쳤다.
본래의 열석보는 순간이동에 가까운 효과를 낼 수 있는데, 지금은 혼원무극진 안이어서 속도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속도는 엄청났다.
도향은 곡현성반의 연화가 더욱 심화되어 순식간에 다시 법보를 발동할 수 있었다. 은색 번개 뱀으로 만들어진 대진이 허공에 나타났는데, 바로 이전에 시전했던 은사두뇌진이었다. 그 위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커다란 뱀 형상 번개가 강하게 떨어져 무라를 절반으로 쪼갰다.
이를 본 도향은 긴장을 풀고는 은사두뇌진으로 몸 주위의 검은색 고리를 부수고 빠져나가려 했다.
한데 그때, 반으로 쪼개진 무라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뼈가 없는 것처럼 흐물거리며 수십 장까지 늘어나 은사두뇌진을 뚫고 순식간에 도향 앞으로 다가왔다.
도향은 놀랄 틈도 없이 곡현성반을 발동하려 했지만, 무라가 한 발 더 빨랐다.
무라가 입을 쩍 벌리자 검은 뿔 모양의 물건이 소름 끼칠 만큼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도향의 머리에 꽂혔고, 경천동지의 폭음이 울려 퍼졌다.
꾸르릉!
도향의 머리는 완전히 터져 나갔고, 신혼도 재가 되어 사라졌다.
만리권운과 곡현성반은 제어를 잃었고, 영광도 완전히 사라진 채 떨어졌다. 혼원무극진과 은사두뇌진도 당연히 와르르 무너졌다.
무라가 나타나 도향을 죽이기까지는 눈 깜짝할 사이였다.
유홍과 이표는 그제야 화들짝 놀라 겁에 질린 표정으로 각자 뒤로 날아갔다.
두 사람이 같이 움직였다면 살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겁에 질린 그들은 흩어져 도망쳤기에 그 기회마저 사라져버렸다.
무라의 두 다리가 순식간에 수십 장으로 늘어나 눈 깜짝할 사이에 유홍과 이표에게 다가오더니 거대한 구렁이처럼 두 사람의 몸을 칭칭 감았다.
두 사람이 발악하기도 전에 두 줄기의 길고 날카로운 검은 물체가 번개처럼 날아와 두 사람의 몸을 관통했다. 흑염마도였다.
두 사람의 몸은 빠르게 말라버려 순식간에 두 구의 마른 시체가 되었고, 신혼과 정기 역시 모두 마도에 흡수된 듯했다.
무라의 몸에는 검은 빛이 조금 강해졌고 얼굴에는 흡족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까 흡수한 요혼을 심협 등과 싸우는 데 사용하면서 그녀의 본체는 소모가 컸다. 한데 지금 유홍과 이표의 신혼과 정기를 흡수함으로써 적잖이 회복했다.
무라는 만리권운과 곡현성반을 바라봤다. 이 두 법보는 마보가 아니지만 위력이 상당했다.
그녀가 입에서 검은 빛을 쏴서 두 법보를 휘감으려는데 그 앞의 허공에 노란 그림자가 번개처럼 나타나더니 한 발 앞서 법보들을 감싸고는 멀리 도망쳤다.
분노한 무라가 바라보니 그것은 심협의 태을기 연시였다. 오직 그 연시만이 그녀의 입에서 물건을 빼앗을 수 있었다.
그녀가 분노로 포효하며 몸을 원래 상태인 검은 잔상으로 바꾸고는 천살시왕을 쫓아갔다.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고, 다시 발동한 금광 검진에서 수많은 금빛 검이 날아와 옆에서 검은 공간을 베자 검은 그림자 안에서 몇 개의 눈부신 영광이 뿜어져 나왔다.
안팎의 협공에 검은 그림자는 폭발했고, 심협 등은 재빨리 빠져나왔다.
천살시왕은 이를 보고는 검은 빛으로 변하여 심협의 몸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무라는 심협 등이 이렇게 빨리 빠져나온 것에 놀랐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고는 마도를 휘둘렀다. 두 개의 검은 도의 허상이 세 사람에게 날아갔다.
심협은 도향과 유홍, 이표 세 사람의 시신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차고는 현황일기곤을 꺼내 빼곡한 곤봉의 허상으로 두 개의 검은 도에 대응했다.
콰쾅! 펑!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심협은 뒤로 밀려났다. 대신 검은 도의 허상 또한 완전히 부서진 후였다.
심협은 몸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바로 몸을 가누었고, 두 팔을 두꺼운 용의 팔로 바꾸어 다시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수많은 곤봉 허상이 그의 몸을 뒤덮고는 다시 무라를 향해 돌진했다.
무라의 신통을 어느 정도 파악한 그는 이 마족을 이길 자신이 생겼다.
허공에서는 세 개의 검륜이 빛을 뿜어내더니 무라를 향해 세 줄기의 폭포 같은 거대한 검우를 뿜어냈다.
전삼칠과 염열, 만수진인은 이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아까 수사의 검은 그림자에 갇혀 있을 때 신식을 펼쳐서 세 사람의 결말을 모두 살펴봤고, 풀려나자마자 도망갈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다만 후예의 능은 독립된 공간이라 둔술로는 빠져나가기가 불가능했다.
만약 심협이 지금 죽는다면 자신들은 살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될것을 깨달았고, 세 사람은 머뭇거림 없이 결정을 내리고는 각자의 법보를 움켜쥐었다.
월화주, 건곤현화탑, 금룡쌍전, 세 개의 법보가 세 줄기의 영광으로 변하여 무라를 향해 날아갔다.
무라는 현재 실체화된 상태라 경지는 심협 등보다 높았지만, 이렇게 많은 강력한 법보들을 전부 받아낼 수는 없었기에 입에서 대량의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이 기운은 빠르게 돌기 시작하더니 금방 검은 소용돌이가 되어 그녀의 몸을 뒤덮었다. 바로 탄천대법이었다.
전삼칠은 탄천대법에 호되게 당한 바 있기에 바로 결인하여 월화주를 멈췄다.
염열과 만수진인도 무라가 이 신통으로 전삼칠과 심협의 두 마보를 흡수하는 것을 봤기에 서둘러 공격을 멈췄다. 그렇게 세 개의 금빛 검만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탄천대법에 들어갔다.
검은 소용돌이는 그저 조금의 파동을 일으키더니 세 개의 검광을 전부 흡수했다.
심협 역시 공격을 멈췄으나, 이 광경을 보고도 평안한 표정이었다. 그는 차분하게 허공의 검진을 결인했다.
허공에서 한층 강력해진 검광이 떨어졌는데, 그 안에는 금색 불꽃인 태양진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태양진화를 두른 검광이 탄천대법을 베자 검은 기운 안에 있던 무라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탄천대법은 불사환령결의 허화 효과가 없기에 태양진화를 막아낼 수 없었다.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검은색 마환이 검은 기운에서 날아갔는데, 바로 구유마환 이었다.
마환에서 검은 빛이 감돌더니 대량의 검은 고리 허상이 다시 바람을 가르며 떨어지는 금빛 검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열 개의 더 커다란 고리 허상이 능 상공에 있는 열 개의 금색 검륜을 향해 날아갔다.
“만수 도우, 낙보금전!”
심협은 다급히 만수진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만수진인이 움찔하더니 바로 결인했다.
가느다란 노란 빛이 그의 몸에서 순식간에 수십 장을 날아가더니 구유마환 본체와 충돌했다.
땡!
기이한 금속음 같은 소리가 울렸고, 노란 빛이 흔들리더니 양쪽에 날개가 달린 오래된 동전이 나타났다. 색깔은 노란색이었다.
마환의 검은 빛도 완전히 사라지면서 고리 허상들이 사라지자 구유마환은 돌덩이처럼 떨어졌고, 미리 기다리고 있던 심협은 얼른 소매 속으로 챙겨 넣었다.
탄천대법의 검은 소용돌이 안에서 무라의 포효가 들리더니 다른 공격을 하려는 듯 소용돌이 안의 검은 기운이 갑자기 치솟았다. 그러나 커다란 태양진화가 타오르는 빛의 검이 하늘에서 내려와 공격했다.
소용돌이는 순식간에 빛의 검에 관통당해 구멍투성이가 되었고, 달궈진 솥에 물을 부은 것처럼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검은 기운이 사라졌다. 탄천대법이 일격에 격파된 것이었다.
무라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을 때는 이미 허화된 상태였다.
그녀는 낮게 울부짖으며 전삼칠에게 사용했던 신혼 공격을 심협에게도 시전하려는 듯 검은 화살 허상을 쏘아 보냈다.
심협은 피하지 않고 체내의 마기를 발동하며 왼손을 결인했다. 오른손은 어느새 마족의 손으로 변해 있었고, 오른팔이 순식간에 두 배로 커지면서 핏줄이 불끈 솟았다. 그 손으로 그는 코앞까지 다가온 화살을 붙잡았다.
“치우지박!”
무라는 깜짝 놀라 온힘을 다해 옆으로 피했지만, 검은색 마조가 몸 절반을 긋고 지나갔다.
그녀의 왼쪽 팔이 그대로 잘려 나가면서 피가 솟구쳤고, 마조는 멈추지 않고 그녀 몸에 몇 개의 기다란 상처를 냈다.
중상을 입은 무라의 몸이 갑자기 실체로 돌아왔다. 곳곳의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고 심지어 내장이 거의 다 드러난 상태로 기운이 크게 흐트러졌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 매우 강력한 존재였다. 그런 중상에도 버텨내더니 대량의 마기를 뿜어내 몸을 감싸고는 멀리 물러났다.
“화령자의 말대로 마기는 통하는구나.”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바로 무라를 뒤쫓았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소매에서 솟아난 붉은 빛이 무라가 흘린 피를 쓸어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