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33화 (933/1,214)
  • 933화. 모습을 드러내다

    심협은 마도가 겨우 반 장 앞까지 다가온 후에야 가까스로 알아차리고 서둘러 옆으로 피했다. 동시에 만귀번이 머리 위에서 촤라락 펼쳐지더니 검은 빛을 강하게 뿜어내 마도의 일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만귀번은 방어 법보가 아닌 만큼 쉽게 뚫렸고, 단숨에 긴 구멍이 생겨났다. 그 안에 있던 음혼들도 갑자기 밖으로 새어나갔다.

    어쨌든 만귀번도 64도 금제의 법보인 만큼 흑염마도를 잠깐이나마 막을 수 있었다.

    귀등상인은 이 틈에 옆으로 피했지만, 완벽히 피하지는 못한 터라 가슴에 거의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

    흑염마도 끝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빠르게 나타났는데, 바로 키가 5장 정도 되는 여마장이었다.

    그녀는 이목구비가 넓어서 남자 같은 얼굴이었으나 몸에는 요염한 칠흑의 마갑을 걸친 상태였다. 몸 주위에는 다섯 개의 검은 빛의 고리가 맴돌면서 칠흑의 마염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마장이 양손에 든 흑염마도는 발끝까지 늘어져서 매우 무서워 보였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대하기 그지없는 태을기의 마기는 거청천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저게 무라인가?”

    도향 등이 깜짝 놀라 옆으로 흩어졌다.

    한데 그들은 내심 의아했다. 지금까지 보였던 무라의 행동이나 말투를 보면 남자 같았는데, 예상치 못하게도 요염한 여마장이 나온 것이었다.

    일격에 귀등상인을 죽이지 못한 무라는 혀를 차더니 다른 마도를 거의 동시에 휘둘렀다. 칼날이 순식간에 귀등상인 옆까지 다가와 당장이라도 몸을 반으로 가를 것만 같았다.

    그때, 노란 그림자가 몸에서 튀어나오더니 두 주먹을 휘둘렀다.

    펑!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도를 막아낸 것은 천살시왕이었다.

    귀등상인은 이 틈에 마도의 영역에서 벗어나 멀리 날아갔다.

    천살시왕은 마도의 일격을 막은 뒤 바로 노란 빛으로 변하여 귀등상인의 몸으로 들어갔다.

    한편, 도향 등은 귀등상인이 태을 존재의 공격을 막아내는 광경을 보고는 무척 놀랐다. 방금 천살시왕은 워낙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기에 그들 모두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지 못했다. 그저 강렬한 시기가 느껴진 것으로 미루어 귀등상인이 비밀리에 만든 연시일 것이라 추측할 뿐이었다.

    “태을기의 연시? 천언궁(天偃宮)의 수단이 섞인 잡스러운 물건으로 날 막겠다는 게냐?”

    무라는 차갑게 웃고는 검은 빛으로 변하여 귀신처럼 순식간에 귀등상인을 쫓아가더니 쌍도를 교차하며 베었다.

    소요경 안의 심협은 내심 긴장했다. 귀등상인은 완벽하게 그의 조종 아래 움직였지만, 그래도 진짜 자신의 몸으로 싸울 때에 비해 반응 속도나 술법 시전 속도가 조금씩 늦었다. 그러니 무라 같은 태을경 존재를 상대하기에는 벅찼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는 빠르게 결인하여 천살시왕을 다시 불러내 쌍도를 정면으로 받아치려 했다.

    한데 그때, 커다란 하얀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라의 몸을 뒤덮었다. 도향이 곡현성반을 사용하여 도와준 것이다.

    하얀 빛줄기가 어떤 진법인지는 모르겠으나, 덕분에 무라의 몸이 순간 멈췄다.

    귀등상인은 그 틈에 빠르게 물러나 도향 등에게로 합류했다.

    “고맙소.”

    귀등상인이 조용히 감사했다.

    “지금은 모두 한배에 탔으니 힘을 합치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안 그러면 여기서 모두 죽을 겁니다.”

    도향이 나지막하게 말하자 염열 등도 고개를 끄덕였다.

    “개미들이 힘을 합친다고 사자를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어이, 여자! 네 방금 행동이 날 불쾌하게 했다. 가장 마지막에 상대하려 했더니, 그리 죽고 싶다면 네 목숨을 먼저 거둬주마.”

    무라는 하얀 빛줄기에서 빠져나오더니 도향을 노려보며 살기를 뿜어냈다. 또한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모습이 흔들리더니 육안으로 분별할 수 없는 검은 그림자로 변하여 날아왔다.

    도향은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전력으로 곡현성반을 발동했다. 그러자 풍운 대진이 주위에 나타나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만리권운도 노을 같은 빛을 뿜어내며 커지더니 순식간에 몇 배로 길어졌다. 거의 동시에 수십 개의 커다란 천으로 변하여 하늘을 덮을 듯이 빠르게 날아가 두 번째 방어를 펼쳤다.

    이를 마친 도향의 눈앞에 갑자기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무라가 귀신처럼 나타났다. 주위의 풍운대진이나 수많은 천도 그녀에게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두 자루 흑염마도가 무라의 손에서 날아가 교차하며 도향의 목을 베려 했다. 방금 귀등상인을 공격했던 것과 같은 수법이었다. 도향이 한 번 막아낸 공격으로 그녀를 응징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도향은 그제야 반응할 수 있었고, 깜짝 놀라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늦은 터라 발을 절반도 들기 전에 두 개의 검은 도가 목덜미까지 다가왔다.

    도향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려는 순간, 금빛 그림자가 옆에서 날아오더니 금색 곤봉을 갑자기 수백 배로 늘려 도향 앞을 가로막고는 태양 같은 금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빼곡한 곤봉의 허상이 금빛에서 나타나 무라의 마도와 충돌했다.

    쾅! 쾅! 쾅!

    하늘마저 놀랄 듯한 굉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지면서 금빛 그림자는 뒤로 튕겨나갔고, 무라도 두 걸음을 밀려났다.

    겨우 목숨을 건진 도향은 서둘러 뒤로 피했다.

    “누구냐?”

    무라는 검은 빛을 번득이며 몸을 가누고는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금빛 그림자도 이제야 몸을 가누고는 바로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열 자루의 순양검이 능 곳곳으로 날아가 빙글빙글 돌면서 열 개의 금색 광륜으로 변하여 순식간에 검진을 이루었다.

    이를 마친 금빛 그림자에서는 금빛이 없어졌고,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심협이었다.

    “당신은…… 그날 상점에 재료를 사러 왔던 심 도우! 아니지, 이 금색 곤봉은 그때 만수진인을 데려갔던 신비의 수사인데…… 당신이 바로 그자였군요! 어쨌든 목숨을 구해줘서 고마워요.”

    도향은 심협의 외모와 법보를 보고는 짧은 순간에 눈이 커졌다 줄어드는 등 표정이 여러 번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도 심협을 알아봤다. 특히 만수진인은 기뻐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반면 염열은 심협과 가히 원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으니 표정이 영 떨떠름했다.

    전삼칠과 유홍, 이표 등은 심협과 별 관계가 없었기에, 잠시 놀라긴 했어도 감정에 큰 요동은 없었다.

    “괘념치 마십시오.”

    심협은 도향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무라를 바라봤다.

    무라는 워낙 강력한 자라 혼자서는 상대할 자신이 없었으니 도향 등은 아직 죽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도향은 이전에 자신을 한 번 구해준 적이 있으니 이번에는 빚을 갚은 셈이기도 했다.

    “귀하가 무라요?”

    심협이 무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 여장은 이전에 만났던 검은 그림자와는 싸우는 방식이 너무나 달랐다. 검은 그림자는 공격력이 강하지 않아 환술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 여마장은 정반대였으니 두 사람이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의심이 들 만했다.

    “호호호! 저 나무 요물과 싸울 때 천에 가려진 채 싸우는 기분이 들어서 이상하더니, 저건 꼭두각시였구나. 나와 싸우고 있던 건 바로 너였어!”

    무라가 심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귀등상인을 번갈아보며 깔깔댔다. 그러나 그녀로서도 심협을 상대하기는 다소 꺼려졌는지 곧장 공격하지는 않았다.

    도향과 염열 등은 심협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의아해하고 있던 터라 그녀의 말을 듣고는 얼른 귀등상인을 돌아봤다. 그리고 눈에 띄게 굼떠진 귀등상인을 보고서야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귀등상인이 꼭두각시가 된 게 저자의 소행이란 말인가? 이전에 누군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착각이 아니었구나.”

    도향은 심협의 신출귀몰함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지금은 무라를 상대해야 했고, 애초에 귀등상인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기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심협은 도향 등의 이런 반응에 내심 안도했다. 저들이 혹시라도 귀등상인과의 의리 같은 것을 따지려 든다면 무척 번거로워졌을 것이다.

    “저 무라는 강력하니 힘을 합쳐야 하오. 내가 먼저 나설 테니 여러분은 저자의 신경을 분산시키며 기회를 노리시오.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합쳐 치명타를 날립시다.”

    심협의 전음에 모두 알겠다고 답했다.

    심협이 허공의 금광 검진을 향해 결인하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검륜(劍輪)이 빛을 발했다. 빼곡한 금빛 검이 폭발하듯이 무라를 향해 날아갔다.

    무라는 주위의 검진에 신경 쓰고 있었기에 바로 마도를 휘둘렀다. 칠흑 같은 도의 허상이 바람을 가르며 날카로운 기운이 금빛 검과 충돌했다.

    챙! 챙! 챙!

    파열음이 연이어 울려 퍼지면서 검은 도의 허상은 부러져갔고, 작은 산만 했던 도의 허상도 썩은 나무처럼 일제히 부서져 사라졌다.

    촘촘한 금빛 검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무라에게 날아들었다.

    우르릉!

    몸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무라는 허공에서 사라졌고, 금빛 검은 허공을 베었다.

    “열석보!”

    심협은 무라가 사용한 보법을 알아보고는 곧장 신식을 펼쳤다. 하지만 상대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이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렇게 기운마저 지우는 신통은 마족의 특기였다. 평범한 수사라면 전혀 대응을 못 했겠지만, 다행히 그는 마족과 여러 번 싸워본 적이 있기에 이런 신통도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그는 유명귀안을 극한으로 운공하여 주위를 둘러봤다. 두 눈에 마기가 감돌자 검은 빛이 시야에 잡혔다.

    심협이 양손을 들자 두 개의 금색 뇌전이 허공을 갈랐다. 수많은 눈부신 금뇌가 강렬하게 날아가며 천둥소리와 바람 소리가 교차하자 아무도 없던 허공에서 검은 빛이 튀어나오더니 곧이어 무라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고 양팔을 흔들더니 다시 사라졌다.

    심협의 눈이 청흑빛으로 번득이더니 두 번의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두 줄기의 뇌전이 하늘에서 내려와 또다시 허공을 찔렀다. 그러자 이번에도 그곳에서 무라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매우 신중한 표정이었다.

    한 번은 우연일지 몰라도 두 번 연속으로 찾아냈으니, 상대에게는 자신의 흔적을 추적할 능력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번에 심협이 시전한 것은 장심뇌 신통이었다. 경지가 높아지면서 장심뇌 위력도 몇 배나 강해진 터라 제아무리 무라라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녀가 휘청거리는 순간, 옆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거대한 검은색 마환이 나타나 순식간에 줄어들면서 양손과 몸을 꽉 묶었다. 바로 마보 구유였다.

    대량의 검은 빛이 뒤덮자 무라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허공의 금광 검진이 빛을 뿜어냈고, 대량의 금빛 검이 바람을 가르며 폭우처럼 무라에게 날아들었다.

    사실 도향 등은 나서서 돕고 싶었지만, 심협과 무라의 싸움은 전광석화라는 말도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 끼어들 팀도 없었다. 허나 다행히 지금 무라가 붙들리면서 마침내 이들도 공격할 기회를 얻었고, 서둘러 법보를 발동했다. 곡현성반, 건곤현화탑, 암홍색 전고, 금룡 쌍전 등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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