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31화 (931/1,214)

931화. 무라 강림

심협은 섭채주와 석상의 일이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자 결인했다.

하얀 안개가 하늘에서 내려와 안개 광막으로 변하여 두 사람을 덮었다.

그때, 껄껄 하는 웃음소리가 밖에서부터 우렁차게 들려왔는데, 마치 금석이 곧장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듯 소요경을 가득 채웠다.

심협은 머릿속 신혼이 그 영향으로 일순 부르르 떨려왔고, 눈앞의 광경이 일그러졌다. 깜짝 놀란 심협이 서둘러 부주진신법으로 신혼을 진압한 후에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엄청난 환술이다. 웃음소리만으로 환각이 일어나다니, 설마 무라가 온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심협은 서둘러 귀등상인의 시야를 통해 바깥을 살폈다.

소요경이 차단해준 덕에 심협이 환술에 빠지지 않은 것과 달리 염열과 도향 등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신혼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눈앞에 만화경 같은 환상이 연달아 일어났다. 다행히 몇 명은 그동안 경지가 크게 정진한 데다 신혼을 유지하는 법보를 얻은 덕에 각자 술법을 펼쳐 환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육대 요혼을 풀어주도록 도와줘서 고맙구나. 허나 이제 너희들이 할 일은 없으니 얌전히 옆에서 지켜보거라! 껄껄껄!”

괴이한 웃음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도향 등은 마치 수많은 바늘이 귀속을 찌르는 것만 같아 몸을 떨었고, 서둘러 술법으로 방어했다.

그때였다. 하얀 빛이 주위에서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여섯 사람의 눈앞이 하얗게 빛나더니 하얀 안개로 가득한 세계가 펼쳐졌다. 이 안개들은 아직도 변화무쌍하여 마치 요수가 수많은 촉수를 휘둘러 그들의 혼을 빼놓는 듯했다.

“이 안개는 환술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으니 다들 조심하세요!”

도향이 주위의 상황을 보더니 바로 이전에 운무산에서의 경험이 떠올라 서둘러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도 이 안개의 기이함을 진즉 알아챘기에 전력을 다해 막아냈다.

하지만 이곳의 환무(幻霧)는 운무산의 안개보다 강력해서 상대적으로 경지가 약한 만수진인과 유홍, 이표는 주위의 환상을 온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눈빛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전삼칠과 염열, 도향은 아직 버틸 만해 보였다.

“보아하니 환상법진인 것 같은데, 단숨에 이렇게 강력한 환상을 만들어 내다니…… 무라가 확실하군.”

소요경 덕에 환무의 영향을 덜 받은 심협은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향은 유홍과 이표의 상태가 심상치 않자 서둘러 무언가를 읊조렸다. 그러자 만리권운이 청백색으로 빛나더니 보호막이 생겨나 두 사람을 뒤덮었다. 뒤이어 가까이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 감쌌다.

만리권운은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어서 이들은 빠르게 상태를 회복했고, 금세 환무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고맙소.”

염열이 도향에게 공수했다.

도향은 손을 내저었다. 지금 그들은 한배를 탄 것과 마찬가지였다.

“방금 그것은 누구의 웃음이었을까? 그리고 그자의 말은 무슨 뜻인 것 같소?”

전삼칠이 물었지만 도향과 염열도 아는 것이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방금 무족 석상에서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는데, 그 웃음은 무라라는 요마가 낸 것이라 하오.”

심협이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말했다. 귀등상인의 머리에 은빛이 나타났는데, 그 안에는 작은 은색 종이 어렴풋이 보였다. 이 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파동이 주위의 안개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이 은색 종은 무영 야귀에게서 얻은 은광종으로, 신혼 공격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다.

“무라가 누구지?”

“무라라고 했소?”

도향과 전삼칠이 동시에 말했는데, 한 명은 어리둥절한 반면 다른 한 명은 경악했다.

“전 도우는 무라를 아시오?”

“옛 서적에서 본 적이 있소. 상고 요마로서 치우 휘하의 대장이었다더군. 허나 과거 축록(逐鹿)의 전쟁에서 죽었을 텐데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무라가 치우의 휘하였다니, 심협은 이 소식을 듣자 깜짝 놀랐다.

“귀등 도우, 다른 정보는 얻어낸 게 없나요? 방금 우리가 육대 요혼을 풀어줬다던데, 그건 무슨 뜻인가요?”

도향의 물음에 심협은 숨김없이 석사에게서 들은 것들을 전부 말했다.

“무라가 왜 백아 부족으로 변하여 우리를 속이고 육대 요혼을 풀어줬는지 모르겠지만, 그자는 줄곧 이곳에 잠들어 있는 후예의 신기를 노렸다 하오. 그러니 우리를 절대 살려두지 않을 게요. 우리가 힘을 합쳐 이 환상을 부수고 무라를 죽여야 할 듯하오. 후예의 전승은 이후 각자의 능력에 맡기는 게 어떻겠소?”

도향과 전삼칠 등은 귀등상인의 말을 듣고는 어안이 벙벙하여 속으로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경지가 높은 자들이라 지금 환상에 빠져 있다고는 해도 상대의 허점을 간파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방금 전의 일을 생각해보니 귀등상인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더욱이 그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귀등 도우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 무라의 환상에 갇혔고 또 이 환상은 매우 강력하니 힘을 합치지 않는 이상 벗어나기 어려울 겁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도향이 먼저 말을 꺼내자 전삼칠과 염열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렇다면 이 환상을 깰 방법을 아는 분이 있소?”

심협이 물었다. 이 환진은 양산(陽傘) 환상보다도 고명하여 그로서는 도저히 파훼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심협은 사람들에게 물으며 화령자를 쳐다봤다.

“흥! 날 그렇게 보지 마라. 저 환진은 매우 고명해서 나처럼 늙고 약한 기령으로서는 깰 방법이 없다.”

그 말에 심협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화령자마저 방법이 없다니…… 그렇다면 힘으로 부숴야 하나?’

그때였다.

“여러분, 내게 방법이 있는데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소.”

염열이었다.

“편하게 말해 보시오.”

“내게 진법이 하나 있는데, 적멸금강진(寂滅金剛陣)이라 하오. 서천령산(西天靈山)의 비전 진법으로, 적멸불화(寂滅佛火)를 소환할 수 있소. 모두가 알다시피 불문의 적멸선정지법(寂滅禪定之法)은 환술 신통과 상극이니 어쩌면 이 환상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르오.”

“적멸금강대진! 영산의 그 유명한 진법을 염열 도우가 알고 있다니, 놀랍소. 한데 그 대진은 불문의 힘이 있어야만 시전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우리 중 불문 신통을 익힌 자가 없지 않소?”

전삼칠은 깜짝 놀란 와중에도 물었다.

“그건 걱정 마시오. 내게 대진의 진도가 있으니, 아홉 명의 진선 수사가 진도 안으로 들어가 법력을 주입하면 진도가 발동되어 적멸금강대진을 시전할 수 있게 되오.”

염열이 그렇게 말하면서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한 폭의 금색 진도가 나타나 빠르게 퍼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백여 장까지 커졌다. 그 안에서 아홉 개의 광점(光點)이 떠올랐는데, 금강 같은 허상이 희미하게 나타나더니 범음 소리가 환상에 울려 퍼지자 주위의 하얀 안개가 멀찍이 물러났다.

“아홉 명의 진선 존재…… 우리는 일곱 명밖에 안 되는데요.”

“내게 두 개의 진선기 금강 꼭두각시가 있으니 그것들이 진선 수사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오.”

염열이 손을 휘두르자 두 개의 금빛이 날아가 진도 안 두 개의 금빛 광점에 떨어지더니 이어서 손에 법기를 든 두 개의 불문 금강이 나타났다.

두 금강 꼭두각시는 살아 있는 사람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고, 화가 난 듯한 눈에 몸에서는 강력한 금빛 불광을 뿜어냈다.

도향 등은 이를 보고는 머뭇거렸으나, 각자 진도 안의 광점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환상에 갇혀 있는 동안 무라가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니 반드시 서둘러 진을 부수고 나가야 했다.

심협도 주저하지 않고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광점으로 들어갔다.

광점에 들어간 순간, 강력한 불문의 힘이 몸을 감싸더니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불쾌한 느낌이 신혼을 파고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불문의 힘은 침투해오지 않았기에 견딜 만했다. 심협은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천시진경을 운공했고, 이내 머릿속이 상쾌해졌다.

“법력을 진도에 주입하면 내가 법진의 변화를 조종하겠소.”

염열은 중앙의 금점에 들어가 금색 구슬을 꺼내고는 빠르게 결인하여 발동했다.

“저건 사리(舍利)?”

자신에게도 정원 사리가 있었기에 심협은 곧장 그 금색 구슬을 알아봤다.

적멸금강진의 진도에서 하늘을 찌르는 듯한 찬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오자 허공에 울리던 범음 소리가 열 배로 커졌고, 수많은 금색 부문이 금빛 속에서 요동치면서 주위의 하얀 안개를 물렸다.

귀등상인을 비롯한 아홉 명의 발밑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불문의 금빛 무늬가 가득한 금색 연대(蓮臺)가 떠올랐다.

그들이 법력을 운공하여 연대에 주입하자 진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살마하, 금강노목, 적멸불화, 연화군마(菩薩摩訶, 金剛怒目, 寂滅佛火, 煉化群魔)!”

염열은 전력으로 앞에 있는 사리를 발동하며 큰 소리로 주문을 읊었다.

진도가 전력으로 돌아가면서 금빛이 흐르는 물처럼 대진 중앙으로 모여들었고, 몇 호흡 사이에 수십 장 크기의 삼두육비 금강법상이 나타났다.

염열이 들고 있던 금색 사리를 던지자 휙 날아가 금강법상의 미간에 박혔다.

금색 사리에서 갑자기 빛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면서 거대한 금색 눈이 세로로 쭉 찢어지듯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대량의 금색 화염이 뿜어져 나와 환상 공간을 휩쓸었다.

콰쾅!

공간이 크게 흔들리더니 대량의 하얀 안개가 타올랐고, 곳곳에서 치이익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곧 무너질 낌새를 보였다.

“효과가 있다! 모두 법력을 더 주입하시오!”

이를 본 염열이 기뻐하며 큰소리로 외쳤고, 모두가 곧장 더욱 거세게 법력을 주입했다. 금강법상의 세로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적멸불광(寂滅佛光)이 한층 강해지더니 계속해서 주위의 환상을 불태웠다.

환력이 적멸금강대진에 의해 불타서 빠르게 사라져갔다.

“심협, 양의미진진의 환력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 기회에 주위의 환력을 흡수하여 부적을 보충하는 게 좋겠다.”

화령자의 말에 심협은 곧장 양의미진부를 꺼내 귀등상인에게 건넸다.

귀등상인이 부적을 발동하자 사라져가던 주위의 환력이 갑자기 몰려들었다.

가까이 있던 전삼칠은 환력이 갑자기 이상한 흐름을 보이자 의아한 표정으로 귀등상인을 돌아봤지만, 별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의 환상 공간이 빠르게 희박해져갔고, 바깥의 능침은 어렴풋해졌다.

“공간이 부서지기 시작했으니 모두 힘을 합쳐서 환상법진을 부숩시다!”

염열이 우렁차게 외치고는 적멸불광으로 환상 공간을 불태우는 동시에 작고 붉은 탑을 꺼냈다.

이 탑은 빙글빙글 돌면서 거대한 9층 보탑으로 변했다. 탑 전체에서 하얀색 불꽃이 타오르더니 운석처럼 환상 공간의 취약한 부분으로 떨어졌다.

도향도 곡현성반을 꺼내 대량의 별빛을 뿜어내 같은 곳을 공격했다.

전삼칠의 머리 위에는 암홍색 전고(戰鼓)가 나타나 크게 울리더니 대량의 붉은색 음파를 뿜어냈다. 이 역시 같은 곳으로 향했다.

만수진인과 유홍, 이표도 각자의 법보를 꺼내 전력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귀등상인도 낮게 외치고는 허공을 움켜쥐자 환상 공간 위에 파동이 일더니 커다란 노란색 손이 나타났고, 짙은 시기(尸氣)를 감싼 손이 날아갔다. 바로 천시진경의 절학(絶學), 천시신장(天尸神掌)이었다.

심협은 위력이 부족하지 않도록 천살시왕의 힘을 귀등상인의 몸에 일부 주입했다. 그러자 천시신장의 위세가 갑자기 한껏 높아져 다른 사람의 공격마저 뒤덮으며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염열 등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전에도 연달아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은 또 이렇게 강력한 공격을 시전하니 귀등상인이 이전과는 달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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