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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30화 (930/1,214)

930화. 속임수

10장 떨어진 곳, 여섯 요혼의 검은 안개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끌끌끌, 마침내…… 마침내 나왔구나!”

안개 중 하나가 용솟음치자 매우 거대한 검푸른 뱀이 나타났다. 뱀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날개가 끊임없이 펄럭이며 거친 바람 소리를 냈다.

“피…… 피가 필요해!”

뱀은 두 눈에서 혈홍색 빛이 반짝이며 쉬지 않고 새빨간 혀를 날름거렸고, 갈증과 배고픔을 참지 못하겠는 듯 고함을 질러댔다.

그 옆에서 다른 요혼 안개도 잇따라 용솟음치더니 거대한 검은색 멧돼지가 나타났다. 입가에는 여섯 개의 하얀 이빨이 솟아 있었고, 군침을 질질 흘리며 우직하고 무던하게 말했다.

“수사, 저기에 있지 않나? 모두 혈기왕성하니 보양식으로는 최상품이군.”

“내 거야! 다 내 거야! 낄낄낄!”

수사라고 불린 요혼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수사, 그 독식하려는 병은 아직도 못 고친 건가? 그때도 네 식탐 때문에 후예에게 당한 것 아닌가? 그리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병을 못 고치다니, 다시 봉인되고 싶은 건가?”

옆의 다른 요혼 안개도 용솟음치더니 이윽고 온몸이 빨갛고 몸 주위에 구름을 휘감은 커다란 말이 나타났다. 머리에는 새하얀 사람 얼굴이 있어서 보기에 마치 귀물의 얼굴 같았다.

“알유, 이 몸의 일에 네가 왜 신경을 쓰는 게야? 한 번만 더 주절거리면 너부터 먹어버린다!”

수사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엄포를 놓았다.

“한심한 놈…….”

말 몸에 사람 얼굴을 한 요혼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옆에 있던 다른 세 개의 요혼도  용솟음치더니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는 몸집이 매우 거대하고 온몸에 푸른색 비늘이 달린 거대한 사슴 같은 존재였다. 목 위에는 뿔이 없는 아홉 개의 괴상한 머리가 달려 있었고, 온몸에서 매우 강력한 살의를 뿜어냈다.

그 옆에는 몸집은 보통 사냥개 정도에 형체는 독수리와 비슷하고, 알유와 똑같이 이상한 사람 얼굴이 있었는데,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고 있어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요혼의 형태가 가장 기이했다. 형태는 사람 같은데 매우 못생겼고, 검푸른 피부에 그 커다란 입에서는 날카로운 이빨이 서로 교차했으며, 수시로 끽끽 하고 이 가는 소리가 났다.

이 요혼들이 나타난 이후로 대전의 모든 석상에서 하얀 빛이 번득이더니 강력한 금제의 파동이 뿜어져 나와 대전 전체와 묘한 공명을 일으켰다.

이와 동시에 일곱 개의 조각상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여섯 개의 요혼에게 떨어졌다. 그중 머리 아홉 달린 녀석은 특별 대상이었는지, 하얀 빛이 그에게만 두 줄기 떨어졌다.

빛이 떨어지자 강력한 제압의 힘이 대전에서 뿜어져 나와 여섯 마리 요혼을 제압했다. 도도하던 머리들은 제대로 저항해보지도 못하고 제압당했다.

“크아아!”

그 순간, 머리 아홉 개의 요혼이 먼저 반항하기 시작했다. 성난 포효와 함께 아홉 개의 머리가 일제히 입을 벌리고는 강력한 불과 물을 동시에 뿜어냈는데, 이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자신에게 떨어지는 하얀 빛을 격파했다.

옆에서는 못생긴 요혼이 허공에 손을 움켜쥐자 수중에 오래된 청동 방패가 나타났고, 다른 손에는 기다란 이빨처럼 생긴 설백의 장창이 나타났다. 녀석도 마찬가지로 하얀 빛을 격파했다.

다른 네 마리 요혼도 각자의 수단으로 석상의 제압을 완전히 격파했다.

“하하! 진혼주가 부서지면서 대진도 더는 힘을 못 쓰는데 잔혼 석상 따위가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머리 아홉 개의 요혼이 유쾌한 듯 웃으며 말했다.

“저것들은 무시하고 먼저 피부터 먹자. 더는 못 참겠어!”

수사가 미친 듯이 외치고는 거대한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듯이 날아가더니 거의 순식간에 심협 등의 앞에 나타나 입을 벌리고 도향을 한입에 삼키려 했다.

그 커다란 입 너머는 마치 음습한 마굴처럼 어둡고 캄캄했다.

“어딜 감히!”

도향이 나서기도 전에 이표와 유홍이 먼저 좌우에서 수사를 공격했다.

이 무렵, 다른 다섯 마리 요혼도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비록 여전히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만수진인 등도 어쩔 수 없이 싸움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양쪽 모두 깜짝 놀랐다.

우선 만수진인 등은 요혼들의 강력함에 깜짝 놀랐다. 방금 제압에서 풀려나 아직 덜 회복된 상태인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상대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요혼들도 먹이들이 이토록 강력한 법보가 있어 자신들을 고통스럽게 할 줄은 몰랐기에 내심 놀랐다. 허나 이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제압당해 있던 탓에 아직 힘을 회복하기 전이라 일어난 일이었을 뿐이다. 과거 삼계를 휩쓸고 다닐 때 모두 법보를 먹어본 존재들 아닌가.

심협은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독수리 같은 요혼과 싸우고 있었는데, 감히 가까이 접근할 수도 없었다. 저 요혼은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은 채 두 날개를 휘둘렀는데, 그때마다 바람의 칼날이 마구 몰아쳐 심협을 번번이 날려보냈다.

“이것들은 도대체 뭐야?”

심협이 의아해하고 있는데, 그의 눈에 저 뒤편의 석상이 들어왔다. 그는 마침 불어닥친 바람 칼날의 힘을 이용해 그 석상 앞에 떨어졌다.

귀등상인은 여자 석상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게 됐소.”

말을 마친 그는 모두가 싸움에 정신이 없는 틈에 소요경에서 한 줄기 빛을 뿜어내 그 석상을 뒤덮더니 그대로 끌어들였다. 그리고는 곧장 다시 돌진하여 독수리 요혼과 싸우기 시작했다.

* * *

소요경 안. 심협과 섭채주 그리고 화령자가 동시에 석상 앞에 섰다.

“파렴치한 것들! 너희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어서 날 다시 돌려보내라! 저 요혼들이 도망치고 무라의 뜻이 이루어지면 삼계는 다시 피바람에 휩싸일 것이다!”

석상은 노발대발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이런 하책을 쓴 것뿐이니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저희는 정말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분명 시련을 통과하면 후예 선배가 남긴 전승을 받을 수 있다 하여 온 것인데, 왜 요혼이 풀려난 겁니까?”

심협이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했다.

“너희는 무라가 보낸 자들이 아니냐?”

“무라가 누굽니까?”

“너희는…… 휴우, 사실인가? 이곳은 후예 대인의 능침이 확실하고 안에는 분명 대인이 남긴 지보가 있다. 허나 이 지보는 동시에 진압의 보물로써 인간 세계의 화근인 저 여섯 마리의 상고 요마를 봉인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석상은 길게 탄식한 후 설명했다.

“저놈들이 상고 요마라는 겁니까?”

“저 거대한 뱀은 수사, 과거 파촉 땅에 도사리며 수많은 사람을 잡아먹었다. 못생긴 요혼은 남부 대택의 요마 착치인데, 마찬가지로 그쪽의 화근이었지. 머리 아홉 개의 요마 구영, 저 거대한 멧돼지는 홍황 마종(魔種) 봉희다. 그리고 대풍, 알유도 하나같이 사악한 존재들로, 죄악이 극에 달한 존재들이다. 훗날 후예 대인께서 화살로 죽였지만, 요혼들은 소멸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봉인하였다. 한데 이번에 너희가 진혼주를 부순 탓에 풀려난 것이다.”

“진혼주라니, 우리는 그런 걸 부순 적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심협은 퍼뜩 무언가가 생각났다. 자신들이 부순 혼생주와 혼사주가 바로 석상이 말한 진혼주일지도 모른다!

“뭔가 이상합니다. 우리가 산 아래에서 만난 무족 후손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곳에 후예가 남긴 시련이 있고, 혼생주와 혼사주를 부수면 보물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무족의 후손? 어떤 무족의 후손을 말하는 거지?”

심협은 불길한 예감을 안고는 산 아래에서 만난 무족 부락에 대해 설명했다.

“그럴 리가 없다. 우리 무족은 상고 때 이미 전멸했다. 우리야말로 마지막 남은 무족 사람들이지. 우리는 일찍이 석상에 잔혼을 남겨 능침을 지키고 있었는데 어찌 또 무족의 후손이 있다는 것이냐?”

석상이 단호하게 말했다.

“설마 산 아래에서 겪었던 모든 것이 환상이었단 말인가?”

심협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광범위하고 오랫동안 환상을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너희 일행도 매우 조심스러운 자들인데, 아무런 허점을 찾지 못하고 심지어 의심조차 들지 않게 했다는 것는 실로 정말 무서운 일이다.”

화령자도 탄성을 금치 못했다.

“아무래도 너희는 무라의 환술에 당한 모양이구나. 그자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무라? 그자는 도대체 누굽니까?”

“무라는 창궁 비경에 사는 상고 요마다. 본래 환술에 능통하지. 비경 안의 어느 절지에 봉인되어 있었는데, 천여 년 전에 어떠한 이유로 풀려났다. 그 뒤로 줄곧 후예 대인 능침 안에 있는 신병, 약목신궁(若木神弓)을 탐냈다.”

“약목신궁…… 과거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트렸던 그 신병인가?”

화령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렇다.”

“그자가 환술로 오라버니 등을 속인 것도 그 신궁을 얻기 위함이니 절대 그의 뜻대로 되게 둬서는 안 돼요.”

섭채주가 말하는 순간, 석상의 두 눈에서 갑자기 뿜어져 나온 두 줄기 빛이 그녀의 몸에 떨어졌다.

심협이 깜짝 놀라 이를 막으려 했으나, 그가 나서기도 전에 두 줄기의 빛은 갑자기 사라졌다.

“무슨 짓이오?”

심협이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라버니,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섭채주가 서둘러 그의 손을 잡으며 만류했다.

“이상하구나. 네 몸에 왜 우리 무족의 혈맥이 있는 거지? 게다가 아직 각성하지는 않았지만 이토록 순수한 촉구음(燭九陰) 혈맥이라니.”

석상은 심협을 무시한 채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촉구음 혈맥?”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우리 무족에 있어서도 매우 독특한 갈래다. 이 혈맥은 각성하면 시간 신통을 시전할 수 있지.”

“시간 신통…… 그게 정말입니까?”

심협의 두 눈이 커졌다.

그는 그 말이 가진 의미를 잘 알았다. 시간 신통은 그만큼 신비롭고 또 매우 강력한 속성이기 때문이었다.

석상은 이번에도 심협의 질문을 무시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 무족 혈맥을 가진 후손을 만나다니, 모두 하늘의 뜻인가. 내 너의 무족 혈맥을 열어주겠다. 원하느냐?”

섭채주도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심협을 돌아봤다.

“그녀가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겁니까?”

이제 석상도 심협이 섭채주가 신임하는 사람임을 알아채고는 그에게 말했다.

“아무런 대가도 필요 없다. 그저 이 힘을 얻은 뒤, 후예 대인의 지보가 무라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지키겠다고 약조하고 이를 지키면 된다.”

“무라…… 그놈은 우리를 이용했으니 어차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럼 됐다. 지금의 내 힘은 너무 약해서 무족 혈맥을 겨우 열어줄 수 있을 뿐. 후에 그녀가 후예 대인의 힘을 계승할 수 있게 돕는 일은 네게 맡기마.”

이말을 들은 심협은 석상이 진심으로 부탁하는 것임을 알고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곧바로 심협의 마음속 호수에 물결이 잔잔히 일렁였고, 석상의 목소리가 그의 식해에서 울려 퍼졌다. 후예 능침을 여는 방법이었다.

“신뢰를 절대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심협이 진중하게 포권했다.

“좋다. 그럼 시작하지.”

석상은 답례하지 않고 툭 내뱉었는데, 그녀의 미간에서 갑자기 암홍색 빛이 뿜어져 나와 섭채주의 미간으로 들어갔고, 마치 다리처럼 두 사람을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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