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9화. 일곱 개의 조각상
소요경속의 심협은 녹초가 되었다. 금잠고의 비행 궤적을 간파하고 그들이 동시에 예정된 위치에 도달하는 때를 파악하느라 신혼의 힘을 절반이나 소모한 것이다. 다행히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아서, 모든 금잠고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더욱이 그들이 기뻐하는 사이, 구렁이와 독거미들 역시 일제히 쓰러지더니 그대로 죽었다.
“이게…… 누가 혼사주를 부순 건가요?”
“아니오.”
모두의 놀란 눈빛 속에 금색 꼬리 구렁이와 검푸른 독거미들은 빠르게 썩어서 사라져갔고, 체내의 고독이 흩어지면서 대전 전체를 가득 채웠다.
심협은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아채고는 서둘러 손을 휘둘러 남은 귀물과 연시를 만귀번으로 불러들였다.
“귀등 도우, 이게……?”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귀등상인에게 답을 구했다.
“이 독충들의 최후의 반격이오. 모두 서둘러 코와 입을 막고 자신을 방어하시오! 최대한 빨리 사혼주를 부수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이오!”
심협이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크게 외쳤다.
금잠고가 모두 죽자 고사와 독거미는 체내의 고독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전부 자폭하여 자신의 고독을 방출함으로써 금잠고와 혼합을 시도한 것이다. 허공에서 혼합된다면 비록 체내에서 합쳐지는 것에 비할 바는 되지 않겠지만, 어쨌든 그 위력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할 것이다.
지금은 혼사주를 찾느냐 못 찾느냐가 죽느냐 사느냐의 관건이었다.
귀등상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 일제히 비술을 시전하여 독성을 막아냄과 동시에 혼사주를 찾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이때, 사방에 흩어져 있던 고독이 갑자기 흐르기 시작하더니 한쪽으로 모여들었다. 검은 안개가 끊임없이 피어올랐고, 색깔도 점점 검붉은 색으로 변해갔다.
검붉은 독무가 뭉치자 크기는 처음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여전히 광범위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독무는 갑자기 두 번째 확장을 시작했다.
“귀등, 금잠고만 죽이면 괜찮다고 했지 않나! 이게 무슨 상황인가?”
전삼칠이 화를 냈다.
“그 입 좀 다물어! 저 고독이 네 몸 안에서 합쳐졌으면 지금 그렇게 떠들 수나 있었을 것 같아?”
심협도 더는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이제 어찌 하면 좋소?”
만수진인도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염열은 독무가 점점 다가오자 더는 참지 못하고 무진선을 휘둘렀다.
휭!
광포한 바람 소리가 울려 퍼졌고, 점점 커지던 독무 중앙이 바람에 갈려져서 큰 구멍이 생겼다. 하지만 양쪽으로 갈라진 안개는 더욱 맹렬한 속도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가장 먼저 유흥의 몸에 닿았는데, 그는 몸에 보호 영부를 붙여 푸른 영광으로 몸을 지키고 있었기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붙어 있던 영부도 동시에 불타올라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만수진인은 피수결(避水訣)을 결인하여 물 보호막으로 몸을 뒤덮었지만, 마찬가지로 고독에 닿는 순간 보호막은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합쳐진 고독의 위력은 모두의 상상을 초월했다.
“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사혼주를 찾아. 안 그러면 다 끝이야!”
전삼칠이 소리쳤다.
모두가 뒤로 물러나는 한편 신식을 펼쳐서 주위를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위급한 상황인 만큼 제대로 집중하기는 힘들었다.
귀등상인의 소매, 소요경 안에서, 심협은 영목 신통을 사용하여 살펴볼까를 고민 중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저기다!”
이표가 갑자기 독무 안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그가 가리키는 곳을 돌아봤지만, 독무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어서 사혼주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가 있다는 거야?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다 죽일 참인가?”
전삼칠이 소리쳤다.
“닥쳐! 방금 저쪽 안개가 잠깐 투명해졌을 때, 그 안에 혼생주와 비슷하게 생긴 검은색 기둥을 분명해 봤다고!”
이표도 분을 참지 못하고 맞받아쳤다.
이표의 설명에 모두가 일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심협의 분혼은 귀등상인의 두 눈을 통해 이표가 말한 곳의 변화를 자세히 관찰했지만, 한참을 살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사이에 주위의 독무가 점점 퍼져 왔다.
하지만 만독혼원주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만약 독을 제거하는 이토록 강력한 수단이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면 모두가 그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이 도우가 잘못 본 건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상황이 매우 급하니 한번 시도해보는 게 좋겠소.”
“좋소.”
귀등상인의 말에 염열이 대답했다.
“당신이 발견했으니 당신이 해보시오.”
전삼칠의 말에 이표는 또다시 분노가 치밀었지만, 도향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자 애써 화를 억눌렀다.
“이 도우, 잠시 후 내가 무진선으로 길을 열어주겠소. 모두가 살아남느냐 죽느냐는 모두 도우에게 달렸소.”
“알겠소.”
“무진선을 사용하면 독무가 분명히 더 몰려올 테니 모두 조심하시오.”
염열이 준비를 마치고는 외쳤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무진선을 강하게 부쳤다. 광포한 바람이 몰아치더니 독무 사이에 통로를 냈다.
이표는 독무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바로 뛰쳐나갔고, 그의 모습은 금세 독무에 뒤덮였다.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신통과 법술을 운공하여 자신을 보호했고, 다시 모여든 독무가 퍼지면서 그들을 전부 삼켜버렸다.
독무 속에서 치익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모두의 방어 수단이 빠르게 무력화되고 있었다. 그들은 오직 법력에 의지하여 독무를 밀어내고 있었지만, 독무를 어느 정도 빨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독무를 많이 마실수록 그들의 저항력도 약해져 이대로 가면 곧 죽음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귀등상인은 손에 만독혼원주를 쥐고 있었는데, 법력을 주입하지 않아도 독무가 알아서 그에게 어느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았기에, 그는 상대적으로 독무를 적게 흡입했다. 다만 모두가 자신을 돌보기에도 바빴고, 심협이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중독 반응을 일으키는 척 연기한 탓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모두가 방법을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을 때였다.
콰지직!
앞에서 갑자기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여기에 있소! 어서들 오시오.”
이표의 목소리가 독무 깊숙한 곳에서 들려왔다.
“됐다!”
모두가 기뻐하며 서둘러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렸다.
원형의 하얀 빛의 문이 허공에 떠 있었고, 이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 독무가 무서워서 벌써 들어갔군.”
그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유홍이 말했다.
“어서 안 가고 뭐 하는 거요?”
만수진인이 재촉하고는 가장 먼저 빛의 문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만류했다.
“잠깐!”
모두가 뒤를 돌아보니 가장 뒤에 있던 귀등상인이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들 보시오. 이쪽에 사혼주의 잔해가 보이오?”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찾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독무 때문에 모두에게 환각이 생긴 게 분명해요.”
도향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고, 만수진인은 좌절했다.
그때, 다시 한번 이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지 않고 뭘 하는 거요?”
이번에는 누구도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심협의 분혼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그에게는 만독혼원주가 있어서 중독이 덜했고, 허상과 진실의 차이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다.
옆의 독무에서 이표가 달려 나오더니 유홍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독 때문에 미친 게요? 왜 안 오는 거요?”
유홍은 인상을 구기더니 이표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무방비로 걷어차인 이표는 털썩 쓰러지더니 멍하니 있다가 이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왜 이러는 게요? 뭐 잘못 먹었소?”
유홍은 당황하여 말했다.
“어라? 환상이 아니네?”
“무슨 환상? 이보시오, 다들 빨리 안 가면 진짜 여기서 죽을 거요!”
이표가 소리치고는 냅다 출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반신반의하며 서둘러 쫓아갔다.
그 순간, 다른 빛의 문이 모두의 앞에 나타났는데, 아까와는 달리 문 옆에 두 개의 부서진 검은색 돌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그 안에는 혼생주에 박혀 있던 것과 똑같은 금구슬이 보였다.
그제야 모두가 안심하고는 곧장 빛의 문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일부러 가장 마지막에 섰고, 문에 들어가기 전에 만원혼독주를 발동했다. 구슬에서 오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미친 듯이 주위의 고독 안개를 흡수했고, 독무는 잠시 후 만독혼원주 안으로 모두 빨려 들어갔다.
그는 구슬을 챙겨 넣은 뒤에야 빛의 문으로 들어갔다.
눈부신 하얀 빛이 밝아지더니 조금씩 사라졌다.
시야가 차차 회복된 그들은 둥근 형태의 거대한 건물에 도착했음을 알게 됐다.
건물 대전 안은 빛이 가득해 눈이 멀 것만 같았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눈부신 빛에 적응하지 못하고 눈을 가린 채 걸었다.
심협은 마치 성스러운 빛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과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상쾌함이 느껴졌다. 귀등상인의 몸에 침투한 고독이 모두 깨끗이 제거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 이들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시련을 모두 견뎌내고 마침내 상을 받는 순간이 온 것인가 싶었다.
심협은 차분히 주위를 둘러봤다. 대전 중앙의 터는 비교적 낮고 넓었다. 바닥에는 눈처럼 하얀 옥석 같은 것이 빛을 반사했다.
원형 공터를 사이에 둔 맞은편에는 비교적 높은 평대가 있었는데, 거기에 일곱 개의 사람 모양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남자, 여자, 노인, 어린아이 등이었는데, 하나같이 무족 복장을 하고 있어서 매우 신성하고 엄숙해 보였다.
모두가 공터에 발을 디디려는 순간, 충만한 기운이 갑자기 사람 모양의 조각상에서 뿜어져 나왔다.
“살아 있는 건가?”
사람들은 이상을 발견하고는 풀어졌던 긴장감을 다시 끌어올렸다.
“저게 뭐지?”
“이곳을 지키기 위해 무족이 세워놓은 수호 석상 같은데……. 안에서 영식 파동이 느껴지는 걸 보니 신혼이 봉인된 것 같아요.”
“너희는 후예 대인의 능침을 침범했다. 그것이 죽을죄임을 알고 있느냐?”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입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분노한 듯한 목소리가 석상에서 들려왔다.
“헛소리는 그만해라! 우리는 혼생문과 혼사문의 시련을 통과한 후손들이다. 이제 후예가 남긴 전승을 받으러 왔다.”
전삼칠이 마음을 가다듬고 외쳤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곱 개의 석상의 눈꺼풀이 갑자기 뒤집히면서 모두 두 눈을 떴다.
하지만 여전히 돌로 만들어진 이들에게는 눈동자가 없어서 퍽 기묘해 보였다.
“망할 놈들…….”
가장 중앙에 있는 여자 석상이 입을 벌렸다 닫자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뭐야? 혼생문과 혼사문 뒤에도 시련이 있다니, 그 족장은 왜 말을 안 해준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하오? 저 석상들을 전부 부숴버리면 그만 아니겠소?”
염열의 말에 이표가 씩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각자의 법보를 꺼내 들며 한바탕 싸울 준비를 했지만, 심협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때, 대전 전체가 갑자기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닥이 좌우로 흔들리지는 않았고, 땅 아래로 무언가가 지나가는 것처럼 위로 솟았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마치 물결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너희는 누구냐? 왜 진혼주(鎭魂柱)를 부순 거지? 무라(巫羅)가 보낸 자들인가?”
가운데 여자 석상이 다시 입을 열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 심협은 좋지 않은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무라? 진혼주? 도대체 무슨 소리야?”
도향이 눈살을 찌푸렸다.
“후예 능침의 시련이 아니었나? 진혼주가 뭐지?”
만수진인도 의혹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들이 영문을 알기도 전에 대전의 진동은 더욱 격렬해졌고, 땅이 흔들리면서 둔탁한 굉음이 들려왔다. 모두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그것들이 도망쳐 나왔다!”
여자 석상이 나직하게 탄식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둥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몇 개의 강력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모두가 일제히 한 곳을 돌아봤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여섯 개의 검은 짙은 안개가 뭉게뭉게 몰려왔다. 안개에서 매우 강력한 요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강력한 요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