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27화 (927/1,214)
  • 927화. 만귀가 고독을 흡수하다

    “귀등 도우, 혼생주를 부쉈다고 했는데 어디 있소?”

    전삼칠이 물었다.

    “저걸 부수자마자 모두 환상에서 빠져나왔으니 아마도 저게 혼생주일 거요.”

    귀등상인이 부서진 검은색 기둥을 가리켰다. 검은색 우산 파편 사이에 산산조각 난 검은색 돌이 있었다.

    그들은 둘러서서 연구한 결과, 검은 돌의 중앙에 서로 연결된 채 박혀 있는 수많은 금색 구슬이 매우 복잡한 법진임을 알아냈다. 다만, 돌기둥이 부서지면서 법진도 부서졌기에 본래의 모습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들이 상대했던 독충과 독전갈은 이 법진의 소행일 거라 모두가 추측했다.

    “이제 혼사문으로 들어가서 혼사주를 부숩시다.”

    이표의 말에 일행은 바로 흩어져 혼사문의 입구를 찾았다. 하지만 한참을 찾아도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혼생주가 숨겨져 있던 천장을 올려다봤다. 혼생주가 부서진 곳에 팔각형 거울이 보였는데, 거울 면이 칠흑처럼 까매서 잘 보이지 않았다.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검은 빛이 날아가 거울에 꽂혔다.

    우웅-.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거울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울러 거울의 각도가 기울어지면서 반사된 빛이 대전 문간을 비추자 갑자기 하얀 빛이 흐르는 소용돌이로 변했다.

    “출구다!”

    유홍이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가 들어온 대문에 있었다니…….”

    만수진인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음 관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갑시다.”

    염열이 기운차게 외치고는 앞장서서 빛의 소용돌이로 들어갔다. 이어서 그의 모습은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도 바로 뒤를 따랐다.

    심협은 가장 마지막에 들어갔다.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 그는 다시 부서진 혼생주를 돌아봤다.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분노의 감정이 폭발하며 달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한순간 번득이고는 바로 사라졌다.

    심협은 하얀 빛의 소용돌이가 곧 사라질 것처럼 일렁이자 얼른 들어갔다.

    눈앞에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이윽고 조금씩 시력을 되찾았다.

    그곳은 새로운 공간이었다.

    “조심해!”

    주위를 살피기도 전에 고함이 들려오자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거대한 금색 뱀 꼬리 같은 것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끝에 금속광택이 흐르는 것이 마치 칼날 같았다.

    그가 곧바로 침착함을 되찾고 돌아보니, 먼저 들어온 자들이 몸길이가 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구렁이 일고여덟 마리와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게 보였다.

    이 구렁이들은 꼬리는 온통 금색에 머리에는 뿔이 하나씩 있었는데, 뿔 끄트머리에는 검은색 고리 무늬가 있었다. 거대한 몸에도 불구하고 매우 빨랐다.

    혼생문과 달리 혼사문은 들어오자마자 주위를 살핀 틈도 없이 공격이 시작되자 모두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방금 심협을 공격했던 구렁이가 몸을 돌리더니 돌진해왔고, 거리가 가까워지자 몸을 높이 들고 입을 크게 벌리며 꽂히듯 내려왔다.

    “우오오오!”

    황소의 울음소리 같은 외침에 이어 시커먼 연기가 구렁이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 연기는 검은 기둥이 되어 심협에게 떨어졌다.

    “귀등 도우, 조심하시오! 그 고사(蠱蛇)의 독무는 매우 독하오!”

    만수진인의 외침에, 본래는 정면으로 받아치려던 심협은 생각을 바꿨고, 귀등상인의 손을 돌려 만귀번을 꺼내 세웠다. 법술이 발동되자 만귀번에서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귀신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이어서 수백, 수천의 온갖 귀혼이 만귀번에서 튀어나와 앞다투어 고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를 본 고사는 검은 안개를 독의 기둥으로 만들어 주위를 쓸었다. 수천 마리의 귀혼이 독 기둥과 충돌하자 흩어졌고, 처량한 울부짖음 속에 재로 변해갔다.

    “실로 강력한 고독이로군.”

    심협은 내심 놀라 급히 몸을 날려 피했다. 보통 때라면 순양비검의 불꽃이 이 고독을 태울 수 있는지 시험해 봤겠지만, 지금은 귀등상인의 술법밖에 사용할 수 없었기에 매우 번거로웠다.

    그가 허공으로 뛰어올랐을 때, 염열이 입에서 금색 불꽃을 뿜으며 무진선을 크게 부쳤다. 이에 불꽃은 순식간에 백배로 치솟아 커다란 불길이 되어 단숨에 고사 한 마리를 뒤덮었다.

    고사는 괴로움에 몸을 격렬하게 뒤틀었다. 그러자 대량의 검은 독무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열염의 불꽃과는 상극이었기에 고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타버리고 뼈만 남았다.

    염열이 다시 무진선을 부치자 바람이 날아가 고사의 잔해를 잿더미로 만들어 완전히 흩어버렸다.

    하지만 그가 안도하기도 전에 고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독무가 매우 가느다란 구렁이로 변하더니 다시 달려들었다.

    이를 본 심협이 적잖이 놀랐다. 그 고사는 분명히 죽었는데도 흩어지지 않고 모습을 바꿔서 공격해온 것이다. 독전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한 고독이었다.

    그가 열염의 싸움을 더 지켜보려는데 뒤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이 곧장 몸을 돌려 보니, 10장 크기의 검푸른 거미가 여덟 개의 눈을 부릅뜨고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검푸른 거미의 배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다시 수축하면서 검은색 독사(毒絲)가 배 아래에서 뿜어져 나와 허공에 칠흑 같은 거대한 그물을 펼치면서 귀등상인을 덮쳐왔다.

    귀등상인은 황급히 피하려고 했으나, 그 순간 옆에서 두 개의 날카로운 창이 갑자기 찔러와 그의 좌우를 막았다.

    이렇게 되니 결국 뒤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거미의 뒷다리 두 개가 땅 깊은 곳에 박혔고, 심협은 덜컥 불길함이 치솟았다.

    그가 양팔을 크게 휘두르자 뒤에서 수많은 검은색 덩굴이 튀어나와 뒤로 물러서던 그의 몸을 받치더니, 엄청난 힘으로 내던졌다. 뒤로 물러나던 그는 이제 오히려 쏜살처럼 앞으로 돌진하는 형세가 된 것이다.

    그 순간, 그의 뒤쪽 땅이 갑자기 쩍 갈라지더니 매우 날카로운 창 같은 거미의 발 두 개가 뚫고 나왔다. 그가 계속 뒤로 물러났다면 결과는 처참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는 검은색 그물이 뒤덮여 있었고, 결국 피하지 못한 채 그물에 칭칭 감겼다.

    치이익!

    귀등상인의 몸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자기 몸은 아니었지만, 심협의 신혼은 강렬한 고독이 이 몸을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독소의 힘은 마치 자의식이 있는 것처럼 귀등상인의 몸을 조금씩 파고들었고, 그럴 때마다 심협은 감지력을 조금씩 잃어갔다. 만약 이 독소가 온몸에 퍼지거나 식해에 침투한다면 이 몸을 고독이 완전히 지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귀등상인의 본래 신혼은 이미 소멸한 터였고, 지금은 심협의 분혼이 조종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의 주인인 귀등상인처럼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대신, 이 몸에 얽매이지 않고 고독에 대응할 수 있었다.

    심협은 당황하지 않고 귀등상인의 몸을 휘둘러 만귀번을 다시 꺼냈다. 다만 이번에는 바로 공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귀번으로 자신과 거미줄을 감쌌다.

    검푸른 거미는 포획한 사냥감이 검은 깃발에 가려지자 화가 났는지 곧바로 발을 휘둘러 귀등상인의 몸을 찌르려 했다.

    그 순간, 만귀번이 갑자기 활짝 펼쳐지면서 세 구의 검은색 연시가 맹수처럼 돌진하여 검푸른 거미의 등에 올라탔다.

    연시들이 날카로운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독거미의 등을 미친 듯이 찢어대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검푸른 독거미는 극심한 고통에 뒤로 물러나면서 자신의 등을 향해 발을 휘둘러댔다. 하지만 연시들은 그때마다 재빨리 고개를 숙여 피하고는 오히려 더욱 미친 듯이 거미의 등을 잡아 뜯었다.

    독거미의 등에서 검은색 독무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그때, 한 구의 검은 연시가 심협의 조종에 따라 독거미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뒤이어 피와 살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독거미의 뱃속에서부터 들려왔다.

    이윽고 거미의 배에 기다란 상처가 쩍 하고 갈라지더니 연시의 시커먼 두 손이 그 안에서 튀어나와 좌우로 쫙 벌렸다. 이어서 연시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이 연시는 독에 부식되어서 얼굴은 엉망이 되었지만, 움직임에는 지장이 없는지 계속해서 거미의 배를 뚫었다.

    연시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거미 배의 상처에서 대량의 독이 흘러나왔다.

    검푸른 독거미는 비틀거리더니 마침내 옆으로 쓰러졌고, 몸이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시체에서는 더 많은 검은 독무가 피어올랐고, 잠시 후에는 한 마리의 거대한 거미가 되어 다시 심협을 공격해왔다.

    심협은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옆으로 물러나 거리를 벌리는 동시에 세 구의 연시를 조종해 공격을 이어갔다.

    하지만 연시들이 휘두른 날카로운 손톱은 독거미의 몸을 통과하여 허공을 때렸다. 이와 동시에 앞서 심하게 부식됐던 연시의 몸은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순식간에 부패해 악취를 풍겼다.

    이를 본 심협은 곧장 나머지 두 구의 연시를 뒤로 물렸다. 이어서 다시 손을 휘두르자 만귀번에서 귀신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수많은 귀혼이 파도처럼 쏟아져 나와 그 독거미를 덮쳤다.

    귀혼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독거미의 몸이 찢겨나갔고, 귀혼들은 곧바로 뿜어져 나온 고독에 부식되어 저절로 흩어졌다.

    하지만 고독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 많은 만귀를 모두 막아낼 수는 없었고, 귀혼의 파도가 물러났을 때에는 독거미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심협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이 부상을 입었지만,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저들의 실력이 약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때, 기이하고 낮은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매미 소리 같으면서도 또 매우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아직 흙을 파헤치지 못한 어린 매미의 소리처럼 들렸다.

    심협이 의아해하는데, 소리가 점점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심협의 눈이 커졌다. 뭔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그는 바로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옆으로 피하려 했지만, 자신의 몸이 아니었기에 조금 늦어졌다. 이로 인해 극심한 통증과 함께 그의 오른쪽 뺨이 팍 하고 터져나갔다.

    심협은 상처를 살필 새도 없이 시선을 돌려 방금 뭔가가 날아온 곳을 돌아봤다. 궤적 끝에서는 반투명한 빛이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다시 사라졌다.

    또다시 오른쪽 얼굴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들어 만져보니 손가락에도 그 통증이 전해졌다. 재빨리 보니 손가락이 까맣게 그을린 데다 부식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가 손을 흔들자 물이 떠올라 거울을 만들어냈는데, 거울을 들여다본 심협은 크게 놀랐다. 얼굴의 상처가 부식되면서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겨나 그 안쪽의 근육과 뼈가 훤하게 보였던 것이다.

    “고독에 매우 강한 뭔가가 있소. 속도가 빨라서 발견하기 힘드니 모두 조심하시오!”

    심협이 서둘러 주의를 주었다.

    “으아악!”

    저 멀리서 이표의 비명이 들려왔다.

    “금잠고(金蠶蠱)로군요! 모두 조심하세요!”

    도향이 그 물건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서둘러 외쳤다.

    심협은 경계심을 끌어올린 채 얼굴의 상처를 치료하려 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상처가 더 커지지는 않았지만, 전혀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그 안의 고독이 귀등상인의 피와 법력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갔다. 더욱이 아까 독충과 고사, 독거미를 죽일 때 약간 들이마셨던 고독이 지금 이 순간, 마치 부름을 받은 것처럼 갑자기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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