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25화 (925/1,214)
  • 925화. 살벌독충(殺伐毒蟲)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독충들이 위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마치 검은 비가 떨어지는 것 같았고, 도저히 피할 곳이 없었다.

    “모두 비켜!”

    염열이 버럭 외치고는 대전 중앙에 섰고, 한 손으로 법결을 맺었다. 그러자 온몸이 붉게 빛났다. 그 상태로 그는 고개를 위로 젖히며 입을 쩍 벌렸다.

    한 줄기 불길이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가더니 1장 정도 앞에서 폭발하면서 하늘을 뒤덮는 불바다가 되어 쏟아져 내리는 벌레 비와 충돌했다.

    쾅! 쾅! 쾅!

    화염이 맹렬한 기세로 폭발하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화염 우산이 머리 위에 펼쳐져 떨어지는 독충들의 비를 남김없이 덮어 버린 꼴이었다.

    탁! 탁! 탁! 탁!

    벌레들이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짙은 악취가 대전에 퍼지기 시작하자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심협은 그제야 알아챘다. 염열이 뿜어낸 불꽃에 터진 벌레들의 독소는 불에 타기는커녕 오히려 불꽃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화염 우산의 끝부분은 불꽃의 색깔이 이미 기이한 녹색으로 변해 있었다.

    염열도 당연히 이를 눈치채고는 불길을 바로 끊어냈고, 상공의 불꽃은 잠시 더 타들어가다가 마침내 완전히 꺼졌다.

    검게 그을린 벌레 사체가 떨어지자 모두 다급히 각자의 방어 수단을 펼쳐서 막아냈다.

    귀등상인은 손을 휘둘러 겹겹의 검은색 덩굴로 등나무 우산을 만들어 막는 동시에 해독약을 먹었다.

    다른 이들도 각자 단약을 먹거나 혹은 해독 법기를 발동했다.

    한참 후에야 독충 사체들은 모두 떨어졌다. 그러나 다시 머리 위를 바라본 이들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대전 지붕에는 다시 독충들이 빼곡하게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아까보다 많았을 뿐만 아니라 몸집도 서너 배는 컸다.

    이 독충들은 거미처럼 생겼는데, 다리는 네 개였고, 등에는 하얀색 무늬가 있었다. 역시나 검은 연기를 뿜어냈는데, 그 역시 좀 전의 벌레들보다 몇 배는 짙었다.

    “온다!”

    누군가 가볍게 외쳤다.

    사람 머리통만 한 검은색 독거미들이 일제히 떨어져 내렸고, 그중 상당수가 일행의 몸 위로 떨어졌다.

    귀등상인은 머리 위를 덩굴 우산으로 덮은 터라 몸에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한데 그 위에 떨어진 독충들이 덩굴을 타고 본체를 향해 몰려왔다.

    심협은 무의식적으로 순양검을 꺼내려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될까 봐 꾹 참고는 귀등상인의 핏빛 가시덩굴을 휘둘러 기어오르는 독충들을 떨어트렸다. 다행히도 이 독충들은 그 수에 비해 방어력이나 공격력은 별것 아니라 일격에 죽어나갔다.

    대전 안에서는 수사들이 독충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바닥은 독충의 사체로 뒤덮였다.

    “겨우 이건가? 너무 쉬운데?”

    이표가 약간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도 불안하긴 했는지 대전 위를 살폈다. 다행히 그곳은 텅 비어 있었고, 새로 나타나는 독충은 없었다.

    “방심하지 말고 혼생주를 찾을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도향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한데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전의 위에서 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움직임은 아까보다 몇 배나 컸다.

    모두가 그 소리를 들고 일제히 위를 바라봤다. 천장의 대들보에는 어느새 인간과 비슷하지만 다소 기괴한 생명체가 몇 마리 서 있었다. 마치 예닐곱 살 어린아이 같았는데, 온몸은 검푸르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저것들…… 언제 나타난 거지?”

    귀등상인이 놀란 듯 중얼거렸다.

    “모르겠소. 순식간에 불쑥 튀어나왔소.”

    이표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때, ‘그것’들이 갑자기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그들의 두 눈은 비정상적으로 큰 데다 흰자가 없이 까맸고, 이마에는 괴상한 뿔이 솟아 있었다.

    “저것들…… 전설 속 독충 중의 독충이라는 살벌독충(殺伐毒蟲) 같은데…….”

    만수진인이 한참을 살펴보더니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귀등 도우, 도우는 평소에도 신기한 것들을 많이 연구하고 그러지 않았소? 저것들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모르시오?”

    전삼칠이 갑자기 물었다.

    진짜 귀등상인이면 알지도 모르지만, 심협은 저런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저런 음흉한 것들을 연구하는 취미는 없소.”

    그는 속으로 전삼칠을 욕하고는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차갑게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위에서 갑자기 끽끽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소름 끼치는 웃음이 그치기도 전에 살벌독충들은 괴성을 지르며 대들보에서 떨어져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를 본 모두가 일제히 흩어졌다.

    그중 한 마리가 가장 먼저 만수진인에게 달려들었다. 머리의 뿔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독침이 그를 향해 날아갔다.

    만수진인이 소매를 휘두르자 물이 허공에 나타나 검은색 독침을 감싼 채  나선형으로 돌면서 막아냈다. 하지만 소용돌이 물줄기는 이내 검게 물들었고, 끈적끈적하게 변했다.

    만수진인은 황급히 소매를 휘둘러 그 ‘기름’을 땅에 떨어트렸다.

    치익!

    하얀 연기가 땅에서 솟았고, 단단한 돌바닥이 순식간에 부식되면서 깊은 구멍이 생겨났다.

    “엄청난 독성이군!”

    만수진인은 눈을 홉뜬 채 경악했다.

    다른 사람들도 살벌독충과 맞붙기 시작했다.

    염열의 화속성 신통은 살벌독충과 상극이었다. 그가 손을 들어 내리치자 화염이 살벌독충의 몸에 떨어졌다.

    살벌독충은 온몸이 화염에 휩싸였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끽끽거리며 달려드는 동시에 뿔에서는 끊임없이 독침을 발사했다.

    염열은 손을 휘둘러 막으면서 살벌독충을 자세히 관찰했다. 이것들의 공격력은 강한 편이 아니었지만, 독성은 놀라워서 그의 불꽃에도 어느 정도 저항력을 보였다.

    한데 그때, 불꽃에 휩싸인 살벌독충이 갑자기 펑 하며 폭발했고, 시커먼 연기가 열염을 향해 몰려왔다.

    염열이 깜짝 놀라 급히 뒤로 물러나 자세히 바라보니 검은 연기는 반딧불만 한 독충들이었다.

    “이렇게 변할 수 있다니!”

    그가 경악하는 사이 독충들은 벌써 엄청난 속도로 그의 앞까지 다가와 다시 사람처럼 변했고, 입을 쩍 벌렸다.

    새까만 동굴 같은 입속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그대로 염열의 갑옷을 공격했다.

    “크윽!”

    염열은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전삼칠과 만수진인은 반사적으로 비명이 들린 쪽을 돌아봤는데, 이들과 싸우던 살벌독충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 틈에 맹공을 퍼부었다.

    두 사람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치명적인 공격을 막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편, 염열을 쓰러뜨린 살벌독충은 그를 완전히 죽일 기세로 과감하게 쫓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온 순간, 땅에 쓰러져 있던 염열이 몸을 훽 돌려 먼저 살벌독충에게 다가왔는데, 그의 얼굴에는 불꽃 가면이 한 장 더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 염열은 입에서 금색 불꽃을 뿜어내 살벌독충의 얼굴을 공격했다.

    “으아악!”

    살벌독충이 비명을 질러댔는데, 마치 어린아이의 비명소리 같았다.

    이 금색 불꽃은 방금 전까지의 붉은 불꽃과는 확연히 달라 불꽃 자체에 점성이 있는 듯 살벌독충을 완전히 감싸버렸다.

    타오르는 불꽃에 비명을 지르던 살벌독충은 다시 수많은 독충으로 변하려 했지만, 불꽃에 붙잡혀 그럴 수가 없었다.

    이를 본 염열이 손을 휘두르자 검은색 불꽃에 휩싸인 채 타오르는 7층 보탑이 허공에 나타났고, 그대로 살벌독충의 위로 떨어지며 흡수했다.

    곧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탑 꼭대기에서 피어올랐다. 독충의 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건곤현화탑(乾坤玄火塔)! 역시 너한테 있었구나.”

    전삼칠도 곁눈질로 이 광경을 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한 손으로 살벌독충의 목을 잡고는 손에서 검은 검기를 뿜어냈다. 검기는 작은 검진 감옥으로 변하여 독충을 덮어 버렸다.

    안에 갇힌 살벌독충은 수많은 작은 독충으로 흩어졌지만, 여전히 벗어날 수 없었고, 수많은 검기에 끊임없이 베이고 베여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여러 사람 가운데 심협이 조종하는 귀등상인은 가장 여유롭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을 공격하는 살벌독충이 없음에도 그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이 기회에 각자의 수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한 번 쭉 살펴보니 모두가 여유 있게 살벌독충을 상대하고 있었다. 저 독충이 그들에게 위협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데 그때, 또다시 기이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심협은 곧바로 머리 위를 올려다봤지만,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어떤 이상한 움직임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온 대들보 한쪽은 뭔가 달랐다. 금속 광태가 감돌았다. 아까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독충에게 시야가 가려져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데 심협이 자세히 관찰하기도 전에 그 기이한 소리가 갑자기 더 커졌다.

    귀등상인은 바로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바닥의 마름모무늬에서 수많은 검은색 독전갈이 끊임없이 튀어나와 모두의 몸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살벌독충과 다투고 있던 유홍은 급작스럽게 뛰어오른 독전갈의 침에 쏘이고 말았다. 그가 미리 시전한 방어 주문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크윽!‘

    낮은 신음과 함께 손을 휘둘러서 그 독전갈을 떨어트린 그는 살벌독충을 내버려둔 채 날아올라 허공으로 피했다.

    심협이 돌아보니 그의 다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상당 부분이 보랏빛으로 변했고, 독소가 침투했는지 검은 기운이 종아리를 타고 빠르게 위로 퍼져갔다.

    그때, 도향이 재빨리 옆으로 날아와 푸른색 금문(金紋) 영부를 유홍의 상처에 붙였다. 영부에서 빛이 번뜩이더니 순식간에 타오르면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이 유홍의 종아리를 감쌌다.

    이윽고 푸른 빛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퍼져 있던 검은색 독기도 함께 줄어들어 상처 부위로 모여들었다.

    “참아.”

    도향이 짧게 말하자 유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도향이 검으로 가볍게 긋자 유홍의 상처 부위에 있던 피와 살점이 독전갈의 침과 함께 떨어져 나왔다.

    유홍은 낮게 신음했으나,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이 독전갈은 고독을 품고 있소. 쉬지 않고 고독을 방출하고 있으니 찔리지 않아도 법보와 신통으로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을 거요. 더는 지체할 수 없으니 서둘러 독전갈을 처리하고 혼생주를 찾아야 합니다.”

    도향은 그렇게 말한 뒤 솔선수범하여 곡현성반을 꺼내더니 독전갈이 밀집된 곳으로 가서 몇 번 돌렸다. 곡현성반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성화대진(星火大陣), 발동!”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곡현성반이 반짝이자 작은 팔각형 대진의 허상이 진반에서 나왔고, 순식간에 몇 배로 커져 반경 10여 장을 뒤덮었다.

    허광이 응축된 대진에서 금빛이 반짝이자 법진 바로 위에 찬란한 별의 바다가 펼쳐졌다. 이 별바다는 삼성멸마 신통이 지나오는 성진 대해와 비슷해 보였다.

    다음 순간, 유성 같은 빛이 대진 상공에서 끊임없이 날아와 땅을 폭격했다.

    콰콰쾅!

    폭발음이 연달아 울렸고, 성진 유광들에 독전갈들은 산산조각이 나 잔해가 사방으로 튀었다.

    유홍은 부상을 치료 중이라 당장은 움직일 수 없었기에 이표가 이어서 손을 휘둘렀다. 청흑색 기다란 벼루가 허공에 나타나더니 반짝이는 금문과 함께 순식간에 백배로 커져 살벌독충들을 향해 떨어졌다.

    꽈르릉!

    벼루가 땅에 떨어지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고, 살벌독충과 독전갈이 짓눌렸다.

    다른 사람들도 가만히 지켜보지 않고 일제히 법보를 꺼내 땅에 가득한 독충을 공격했다.

    염열이 팔각형의 설백색 부채를 꺼냈는데, 검은색 선이 몇 줄이 그려진 것이 마치 팔괘의 손괘(巽卦) 같았다.

    그가 일견하기에 매우 평범해 보이는 부채를 휘두르자 푸른색 소용돌이가 쏟아져 나와 독전갈을 휩쓸었다. 지나가는 곳마다 바람 소리가 크게 일었고, 수많은 바람의 칼날이 순식간에 독전갈들을 베어버렸다.

    소용돌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독전갈의 잔해조차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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