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23화 (923/1,214)
  • 923화. 십이조무(十二祖巫)

    귀등상인은 눈살을 찌푸렸고, 소요경 안의 심협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도 족장의 모습을 봐서는 아무리 높은 가격을 제시해도 거래에 응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흔한 기회가 아니었다. 백아 부족의 다른 무기는 모르겠지만 마도 족장의 뼈 지팡이는 무력이 충만한 무기라 섭채주의 무족 혈맥을 여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초조해진 그는 뼈 지팡이를 빼앗고 싶었지만, 이곳은 백아 부족의 본거지인 만큼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그럼 제가 무족의 법기를 잠시만 빌렸다가 이틀 뒤에 돌려드린다고 하면 허락하시겠습니까? 교환 조건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심협이 생각하더니 요구를 낮췄다.

    “송구합니다. 무기가 있어야 무족이 존재한다는 선조님들의 유지가 있었습니다. 본족의 무기는 절대 외부인에게 넘길 수 없습니다. 설령 아주 잠시라도요.”

    마도 족장이 고개를 저었다.

    심협도, 귀등상인도 눈살을 찌푸렸다.

    “허나 귀등 도우께서 정말로 무족의 법기가 필요하시다면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일 함께 갈 후예대신의 능에는 후예대신께서 사용했던 강력한 무기가 보존되어 있으니까요. 이 지팡이보다 더 강력합니다. 다만 도우께서 그것을 얻고 못 얻고는 기연에…….”

    “그게 사실입니까?”

    “물론입니다. 일족에 전해지는 후예대신에 대한 자료에 그리 적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족장님의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정말 간절하게 여러분께서 후예대신의 전승을 계승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야 우리 백아 일족도 더는 이 오지의 섬을 지킬 필요가 없어질 테니 말입니다.”

    마도가 길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심협은 속으로 의아해했다. 그는 지금껏 백아 부족이 이 섬에 남아 있는 이유가 섬 주위의 검은 안개 금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도의 말대로라면 저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부디 저희 중 누군가 후예대신의 힘을 이어받아 귀 부족이 하루빨리 해방되길 기원합니다.”

    귀등상인의 말에 마도는 쓴웃음을 지을 뿐, 더는 말이 없었다.

    “마도 족장님, 방금 부족에 후예대신에 대한 서적이 있다고 하였지요, 무족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서 그러는데, 혹시 그 서적이라면 교환할 수 있습니까?”

    귀등상인이 머뭇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그거라면 가능합니다.”

    이번에는 마도 족장도 거절하지 않았다.

    뒤이어 심협은 진선 요수 유해와 몇 개의 진귀한 영재를 세 권의 무족 서적과 바꿨다. 그리고 세 권의 서적을 받자마자 바로 소요경 안으로 넣었고, 심협은 그것들을 재빨리 읽어 내려갔다.

    화령자도 명화연로에서 나와서 같이 읽었다.

    귀등상인은 일어나 작별 인사를 하고는 문으로 나가려다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족장님, 몇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섬 주위의 검은 안개 금제는 백아 부족이 설치한 겁니까?”

    “우리 부족의 부족한 실력으로 어찌 저리 강력한 금제를 설치하겠습니까? 저 검은 안개 금제는 천년쯤 전에 갑자기 나타났는데, 저희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천년 전이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저희도 잘은 모르오. 다만 동화라는 젊은이가 와서 후예대신의 전승을 얻으려다가 애석하게도 실패했지요. 그때 아마 대신의 능에서 어떤 장치를 건드린 모양입니다.”

    심협은 동화라는 이름에 흠칫 놀랐다. 동화산선은 천년 전 사람이니 그의 이야기가 맞을 것이다.

    “그럼 아까 말씀하셨던, 어둠에 들어가면 사라진다는 현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검은 안개 금제가 나타난 이후입니까?”

    “그렇소. 검은 안개 금제가 나타난 이후로 섬의 어둠에 이변이 생겼지요.”

    마도 족장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집으로 돌아갔다.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고, 산골짜기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으나, 부락 집집마다 불이 밝혀져 있었다.

    심협은 머리 위의 검은 안개 금제를 바라보다가 신념을 발동했다.

    걸어가는 귀등상인의 소매에서 아주 약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양시대 안에 있던 대승기 연시가 땅속으로 들어가 산골짜기 밖으로 나가서는 산속에 멈췄다.

    이를 마친 귀등상인은 바로 돌집으로 돌아갔다.

    집안의 벽에는 형광석(螢光石)이 박혀 있어서 돌집을 밝게 비추었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 두 눈을 감고 정양하고 있었다.

    귀등상인은 말없이 한쪽 구석에 앉아 두 눈을 감았고, 돌집은 금세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소요경 안. 심협은 세 권의 서적을 다 읽고 나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세 권의 서적에는 무족의 역사와 무족 대능 존재에 대해 적혀 있었는데, 그중 후예의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그 외에도 서적에는 과부(誇父), 구봉(九鳳), 형천(刑天) 등의 대무에 관해서도 적혀 있었는데, 특히 십이조무 이야기가 가장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금의 조무 욕수(蓐收), 목의 조무 구망(句芒), 수의 조무 공공(共工), 화의 조무 축융(祝融), 토의 조무 후토(后土), 빙(氷)의 조무 현명(玄冥), 뇌의 조무 강량(强良), 풍의 조무 천오(天吳), 독의 조무 사비시(奢比尸), 암(暗)의 조무 흡자(翕玆), 공간의 조무 제강(帝江), 시간의 조무 구음(九陰)이었다.

    심협은 그중 몇 명의 조무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전부 알지는 못했는데 오늘 마침내 명성이 자자한 십이조무에 관해 모두 알게 되었다.

    “십이조무가 익힌 신통은 다 대단해 보이는군.”

    “당연하지. 십이조무는 반고(盤古) 대신의 정혈이 변한 존재들인데, 그 정혈에는 대도본원(大道本源)의 힘이 담겨 있었지. 그러니까 십이조무는 이 대도본원을 이어받은 존재들이고, 그 하나하나가 하늘을 위협할 정도였다. 손으로 별을 잡고 발로 대지를 부수었던 태고 강자들의 그 강력함을 너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게다.”

    화령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도본원의 힘?”

    “지금의 네 경지에서 이해하기는 이르다. 적어도 태을기 아니면 천존쯤 돼야 이해할 수 있지.”

    화령자가 손을 내저으며 얼버무렸다.

    “무족 혈맥 전승에는 다 대도본원의 힘이 있는 건가?”

    “그렇지. 다만, 백아 부족 사람들은 혈맥의 힘과 대도본원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야말로 희박한 일말의 힘밖에 없더군.”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밤은 금방 찾아왔다. 염열 등은 돌집에서 얌전히 각자 수련했고, 소요경 안의 심협도 마찬가지였다.

    * * *

    산골짜기 밖의 숲속. 귀등상인의 몸을 빌린 심협이 보낸 연시가 붉은 눈을 반짝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주위의 어둠이 갑자기 매우 짙어지더니 커다란 연시의 몸을 삼켰다. 연시의 몸은 점점 흐려지더니 끝내 허공으로 사라진 것처럼 어둠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 * *

    소요경 안의 심협은 두 눈을 뜨고 산골짜기 밖의 어느 쪽을 돌아봤다.

    방금 귀등상인과 그 연시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고, 연시의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짜 이상하군. 이 섬에 정말 기이한 힘이 있는 모양이야!”

    심협은 진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다음 날 새벽. 귀등상인 등은 하룻밤 쉬고 난 뒤 무족 족장 마도의 안내를 따라 후예의 능 앞에 도착했다.

    능 앞 허공에는 크기가 10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돌문이 떠 있었다. 좌우에 돌문을 받치는 물건이 아무것도 없어서 마치 두 개의 외딴 문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심협은 귀등상인의 시야를 통해 앞을 살폈다. 왼쪽 돌문에는 머리에 금관을 쓴 여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춤을 추는 듯한 동작에 옷이 휘날렸다. 양손은 높이 들고 있었는데, 손에는 둥근 태양을 받치고 있었다.

    다른 돌문에는 궁복(宮服)을 입은 가녀린 신녀(神女)가 새겨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춤을 추는 듯한 동작에 옷이 휘날리고 있었고, 높이 올라간 양손에는 초승달이 들린 상태였다.

    사람들은 두 문에 새겨진 것이 희화(羲和)와 망서(望舒)라는 두 여신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용사 여러분, 그대들 눈앞에 있는 일월신문(日月神門) 너머가 바로 후예의 능입니다. 들어가시기 전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곳은 매우 위험하여 지혜와 용기가 부족하다면 여기서 멈추어 헛되이 목숨을 잃지 않길 바랍니다.”

    마도가 그들을 향해 몸을 살짝 숙이며 말했다.

    “족장님의 충고는 감사하지만, 저희는 들어가서 신기를 가져와 삼계의 안녕에 이바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보물이 능에 잠든 채 먼지나 뒤집어쓰고 있다니, 이는 큰 낭비입니다.”

    도향이 웃으며 말하자 유홍과 이표가 맞장구를 쳤다.

    “족장님께서는 이곳을 오랫동안 지켜오셨으니 능의 시련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시련의 비밀에 대해 저희에게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전삼칠이 마도를 향해 공수하며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족장을 돌아봤다. 모두가 이 문제의 답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으니 말씀드리지요. 후예 능침 안의 시련은 모두 두 가지로, 혼생문(魂生門)과 혼사문(魂死門)입니다. 들어가는 순간 능침 안에 있는 온갖 생사의 시련을 겪게 되는데, 하나하나 이겨내어 안에 있는 혼생주(魂生柱)와 혼사주(魂死柱)를 부수면 통과입니다.”

    “통과하면 보물을 얻을 수 있는 겁니까?”

    이표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지혜와 용기에 대한 두 가지 시련이니 진정한 지자(智者)와 용자(勇者)만이 후예대신의 보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협은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이따금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모두가 서로를 쳐다보기만 할 뿐, 누구도 선봉에 나서지 않았다.

    도향이 눈짓을 하자 이표가 그제야 두 문 앞으로 걸어갔다.

    “힘으로 밀면 되는 겁니까?”

    그가 마도 족장을 돌아보며 다시 확인했다.

    족장은 고개를 저었다.

    “힘이 아니라 마음과 신념을 다해야 합니다.”

    이표는 마도를 노려보며 속으로 욕을 뇌까리고는, 문 앞으로 다가가 양손을 올렸다. 차가운 느낌이 손을 타고 몸으로 전해졌다.

    이표는 힘을 실어 밀었으나, 거대한 문은 미동도 없었다.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표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인상을 팍 쓰더니 체내의 법력을 양팔에 주입하며 다시 두 문을 밀었다.

    하지만 거대한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서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이표, 뭐 하는 건가? 시간 끌지 말고 어서 열라고!”

    유홍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이표는 그를 무시하고 이마에 핏줄이 솟을 정도로 힘을 써가며 돌문을 밀었지만, 여전히 소용이 없었다.

    유홍은 뭔가 이상함을 알아채고는 서둘러 다가가 이표와 함께 거대한 돌문을 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돌문은 상상 이상으로 무거워 두 사람이 온 힘을 다해도 열리지 않았다.

    “가끔은 단결도 지혜의 일종이죠.”

    이때,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마도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심협은 상황을 지켜보며 머뭇거리다가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사람들도 잠시 생각하더니 일제히 따라갔다.

    그들은 일렬로 서서 전부 돌문에 손을 올리고 두 개의 문을 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같이 힘을 쓰니 반드시 움직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두 돌문은 마치 웅장한 산처럼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온 힘을 다하지 않았던 자들도 더는 힘을 아끼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커다란 문을 밀기 시작했다. 이들의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갈 무렵, 무겁기 그지없던 거대한 문이 마침내 반응을 보이며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윽고 이들은 인내심이 슬슬 바닥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