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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22화 (922/1,214)
  • 922화. 기이한 어둠

    여섯 명의 진선 존재가 나타나자 백아 부족의 전사들은 술렁였고,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도우들의 실력이 범상치 않은 걸 보니 무명소졸들은 아닌 것 같군요. 한데 어떤 연유로 봉인된 이곳 섬까지 오신 겁니까?”

    마도 족장은 이들의 실력이 이렇게 강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조금은 경계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희는 무은사해의 수사인데 우연히 이 비경에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선배 고인들의 동부와 무덤을 찾으러 다니고 있지요. 혹시 족장님께서 알려주실 수 있다면 귀 부족에 어떤 폐도 끼치지 않고 바로 떠나겠습니다.”

    염열이 담담하게 웃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실 그들은 이미 섬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무족 부락 외에는 찾아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백아 부족은 사람이 많고 실력도 약하지 않지만, 족장 외에는 모두가 진선기에 미치지 못했다. 만약 비경에 막 들어왔을 때의 경지였다면 염열 등도 당연히 백아 일족에게 이렇게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나, 지난 10년 동안 경지가 크게 정진한 데다 강력한 법보들을 얻었기에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목적을 밝힌 것이다.

    “역시 외부인이셨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 섬에 선총이 있는데, 바로 우리 부족의 선조이신 후예대신(后羿大神)의 능침입니다.”

    마도 족장은 차례대로 일곱 명을 둘러보고는 천천히 말했다.

    “대무(大巫) 후예!”

    염열이 몸을 떨었고, 다른 사람도 깜짝 놀라더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대무 후예 상고 시기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트린 그 대능을 말하는 건가?”

    심협이 화령자를 바라봤다.

    “그래. 하지만 후예 대무의 공적은 그것만이 아니다. 상고 요(堯) 시대,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떠올라 곡식을 태우고 초목을 죽여 민가에 먹을 것이 없었지. 또한 알유(猰貐), 착치(鑿齒), 구영(九嬰), 대풍(大風), 봉희(封豨), 수사(修蛇)가 백성들을 해쳤다.

    그래서 요는 후예에게 명하여 주화(疇華)의 들판에서 백성들을 해치는 착치를 죽이게 했고, 북쪽 흉수(凶水)의 구영을 멸하고 동쪽 청구(靑丘) 연못의 대풍을 화살로 죽였으며, 또 알유를 죽이고, 도정호(洞庭湖)에서 수사를 베었으며, 상림(桑林)의 봉희를 사로잡게 했다. 그렇게 만백성이 기뻐하며 요를 천자로 세웠지.”

    “그랬군.”

    심협의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그러한 상고 대능의 선총이라면 분명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을 게 분명했다.

    “후예대신께서 돌아가시면서 보물과 신기를 모두 능침에 묻게 하시고는 용맹한 강자가 그의 신력과 보물을 이어받으면 삼계의 복이 될 거라 하셨습니다.”

    마도 족장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후예의 능침은 어디에 있습니까?”

    계속 듣고 있자니 몸이 근질근질해진 염열이 당장이라도 마도 족장을 붙잡고 캐물을 기세로 몸에서 불빛을 뿜어냈다.

    “대신의 능침은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온 것을 보면 후예대신과 인연이 있는 것 같군요.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오늘은 저희 부락에서 하룻밤을 지내시고 내일 저와 함께 능침으로 가시죠. 다만, 대신의 전승을 받고 안 받고는 모두의 기연에 달려 있습니다.”

    마도 족장은 마치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염열 등은 본래 조금이라도 숨기는 기색이 있으면 힘으로 제압하려 했는데, 이리 순순히 안내해주겠다 하니 의아했다.

    “왜 그러십니까? 가기 싫으십니까?”

    “흠흠, 족장님께서 안내해주시겠다니 당연히 가야죠. 다만 궁금한 것이, 저희는 외부인인데 어째서 이렇게 흔쾌히 안내해주시는 겁니까? 무족인 여러분이 후예 대무의 힘을 이어받으면 더 좋지 않습니까?”

    도향이 헛기침하더니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저희 백아 일족은 후예대신 휘하의 작은 일족에 불과합니다. 과거, 대신께서 돌아가신 뒤, 저희 일족에게 대대로 이곳을 지키며 대신의 계승자가 나타나길 기다리라 당부하셨습니다. 사악한 존재가 아니면 능침으로 안내하라고 하셨지요. 또한 저희의 무족 혈맥의 힘은 미약해 후예대신의 위력(偉力)을 이어받을 수 없으니, 어찌 저희가 그 유지를 더럽히겠습니까?”

    마도 족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도향 등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계속해서 밖에 세워두는 건 실례이니 어서 산골짜기 안으로 드시죠.”

    마도 족장이 웃으며 앞장서자 잔뜩 경계하고 있던 무족 전사들이 좌우로 비켜 서며 길을 열었는데, 그 표정은 엄숙했다.

    염열과 도향 등은 서로를 바라보고는 함께 골짜기로 들어갔다.

    이 섬은 환경이 열악해서인지 아니면 무족 사람들이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않아서인지 골짜기 안의 건물들은 원시적이었다. 집은 커다란 돌을 쌓아서 만들거나 목재로 지었는데, 매우 열악해 보였다.

    유일하게 정교해 보이는 것은 바로 제단이었는데, 그 위에는 수십 장 높이의 연통(煙筒) 같은 거대한 돌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돌기둥 연통 아래에는 연로(煙爐) 같은 물건이 있었는데, 복잡한 무족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요수의 뼈가 타면서 생긴 검은 연기가 돌기둥에서 뿜어져 나가 하늘 위의 짙은 먹구름으로 흘러 들어갔다.

    “족장님, 저건 뭔가요?”

    도향이 걸음을 멈추고 제단의 연통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은 우리 일족의 무법(巫法)으로 태운 요수의 유해로 사살음운(死煞陰雲)을 만들어 우리 일족을 보호하고 있는 겁니다.”

    마도 족장의 말에 도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섬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요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을 본 바 있다.

    백아 무족에는 많은 전사가 있지만, 약한 자들은 요물에 대항할 수 없었기에 전사들이 사냥을 나갔을 때와 같은 비상시에 그들을 보호해줄 장치가 필요했다.

    심협은 연로 주위의 무족 문자에 흥미가 생겨 귀등상인의 걸음을 멈추고 자세하게 살펴봤다.

    “귀등 도우는 무족 문자에 관해 상당히 섭렵했나봅니다?”

    “무슨…… 전 도우 같은 명문 출신이 아닌 산수인 내가 어디 그런 재주가 있겠소? 그저 무족 문자가 매우 현묘해서 좀 들여다보고 있었을 뿐이오.”

    전삼칠은 고개를 끄덕이며 귀등상인을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귀등상인에게 듣기로 전삼칠의 법보 창혼주(蒼魂珠)는 기운을 감지하는 데 뛰어났다.

    ‘이자가 내 존재를 눈치챈 건 아니겠지?’

    심협은 가슴이 철렁하여 더욱 경계하며 자신의 기운을 숨겼다.

    그들은 금방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백아 무족의 거주 지역이라 일족의 노인과 어린아이들은 신기한 것을 구경하는 듯한 눈빛으로 심협 등을 바라봤지만, 와서 말을 걸지는 않았다.

    “누추하지만 양해해 주십시오.”

    마도는 그들을 돌로 만든 집으로 안내했다.

    “아닙니다. 누울 곳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도향 등은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나가려던 마도는 문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아차, 내 정신머리 좀 보게. 가장 중요한 일을 잊었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이 섬에 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금기가 하나 있으니, 바로 어둠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절대로 방의 등불을 끄지 말고, 함부로 외출하지도 마십시오.”

    “어둠에 들어가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 섬의 어둠에는 기묘한 힘이 있어서 그곳에 갇힌 모든 사람은 소리 없이 사라져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이 고수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시도하지 마십시오. 우리 일족도 그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을 잃었는데, 그중에는 진선 존재도 적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아무도 대답이 없자 마도는 몇 마디 더 당부를 하고는 돌아섰다.

    “마도 족장의 말이 믿어지시나요?”

    마도가 사라지자 도향이 양손을 휘둘러 보호막을 치고는 말했다.

    “이 섬이 기이하긴 하죠. 그 범상치 않던 검은 안개 금제도 그렇고…… 어쩌면 마도 족장이 말한 어둠이 그 검은 안개 금제와 관련이 있을지 모릅니다.”

    “전 도우 말에도 일리가 있소. 믿을 만한 건 믿고 그렇지 않은 건 안 믿으면 그만이지. 어쨌든 내일 마도가 후예의 능으로 안내해준다 하니 오늘은 여기서 쉽시다.”

    도향도 이견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볼일이 있으니 어두워지기 전에 다녀오겠소.”

    도향과 전삼칠 등은 귀등상인의 뒷모습을 바라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귀등상인은 돌집을 나와 신식으로 잠시 살펴보더니 산골짜기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금방 큰 돌집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족장님의 거처라 관계자 외에는 출입금지입니다. 귀하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문밖을 지키던 두 명의 무족 전사가 귀등상인을 막아서며 말했다.

    “내 족장님과 상의할 일이 있으니 두 용사께서 말 좀 전해주시오.”

    귀등상인은 그렇게 말하며 두 개의 저물 법기를 꺼내 무족 전사들의 손에 쥐어줬다.

    무족은 신혼을 수련하지 않지만 다른 탐색 비법이 있어서 저물 법기 안을 볼 수 있었다. 저물 법기 안에는 몇 구의 요물 유해가 있었는데, 기운이 강력한 대승기 요물이었다.

    두 명의 무족 전사는 이 유해가 탐이 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방금 안으로 들어가면서 족장이 절대로 방해하지 말라고 당부했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귀등 도우군요. 들어오시죠.”

    그때, 마도 족장의 목소리가 방안에서 들려오더니 대문이 저절로 열렸다.

    두 무족 전사는 안도하고는 길을 비켜섰다.

    심협은 두 사람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넓은 대전이었다. 가장 안쪽의 작은 제단 꼭대기에 웅장한 남자의 신상이 있었는데, 등에 대궁을 메고 손에 칼을 든 모습이 위풍당당해 보였다.

    대전 양쪽에 세워진 두 개의 돌기둥 끝에는 초록빛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지만, 내부를 밝히기는커녕 오히려 대전을 더욱 음산하게 했다.

    심협은 귀등상인의 시야를 통해 대전 위의 조각상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전 안에는 형용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기이한 힘이 가득하여 불편했다.

    “심협, 이 무족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니 저들의 함정에 걸려들지 않게 조심해라.”

    심협도 진즉 경계하고 있었기에 은근히 법력을 운공하여 수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전력으로 반격할 준비를 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도 족장은 제단 앞에 앉아 있다가 귀등상인이 들어오자 돌아섰다.

    “귀등 도우, 곧 해가 질 텐데 무슨 일입니까?”

    “마도 족장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전에 적지 않은 무족 전적을 읽었고, 그들의 유적 몇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무족을 동경해왔습니다. 게다가 다른 이유로 위력이 강력한 무족 법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몇 가지 영재와 귀 부족의 무족 법기 몇 개를 교환하고 싶습니다.”

    귀등상인은 마도 앞으로 다가가 족장 수중의 하얀 뼈 지팡이를 보며 간절하게 말했고, 동시에 저물 법기를 꺼내 내려놓았다.

    이 저물 법기 안에는 대량의 진귀한 영재와 두 마리의 진선급 요수 유해가 있었는데, 심협도 누구에게서 거둔 저물 법기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족 법기와 교환을요? 정말 송구합니다. 이 섬은 물자가 부족하여 무기를 만들 수가 없고, 지금 있는 법기도 이전 세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라 수가 매우 적다 보니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그러니 교환이 불가합니다.”

    마도 족장은 저물 법기를 한번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족장님, 제가 이전에 무족의 제단에서 무족의 연신대진 진도를 얻었는데, 그것도 함께 드리겠습니다.”

    귀등상인은 옥간을 꺼내 저물 법기 옆에 놨다. 연신대진은 무족의 비진(秘陣)이니 무족의 사람이라면 거절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연신대진!”

    역시나 마도 족장의 눈이 반짝거렸지만, 곧이어 그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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