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21화 (921/1,214)

921화. 무족 부락

“이 섬에 다른 사람이 있다니!”

심협은 귀등상인을 날아가게 하여 재빨리 상황을 살폈는데, 확실히 염열 등은 아니었다.

쌍방 중 한쪽은 짐승 가죽을 입은 두 명의 젊은 남자다. 그중 한 명은 덩치가 크고 피부가 검붉었으며, 손에는 붉은색 문로가 새겨진 뼈로 된 도를 들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좀 말랐는데, 뼈로 된 창을 들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온몸이 짙푸른 요수가 있었다. 키가 무려 5장은 될 법했고, 사자 머리에 원숭이 눈, 생김새는 기린 같아서 매우 사나워 보였다. 입에서 푸른색 독무(毒霧)를 뿜어내고 있어서 두 명을 상대로도 우세해 보였다.

하지만 두 청년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듯 달리며 단단한 육체로 사자머리 요물의 발톱을 막아냈다. 날카로운 발톱에 당해도 옅은 흔적만 남을 뿐 피조차 흐르지 않았다.

“법보처럼 단단한 몸이로군.”

소요경 안에서 이를 지켜본 심협이 감탄했다.

“저 둘은 전투 방식이 매우 특이하군. 마치 무족 같아. 그리고 저 요수는 내가 아는데, 변이된 고대 서수(瑞獸)다. 실력이 범상치 않지.”

화령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무족!”

“무족은 외부의 신통을 익히지 않고 오직 육체만을 단련해 몸이 엄청나게 단단하지. 게다가 두 사람의 기운을 보면 틀림없다. 저들은 무족이야.”

화령자가 흥분된 어조로 말했고, 심협은 크게 기뻐했다. 섭채주는 무족의 혈맥을 각성해야 하는 상황이니 어쩌면 저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넌 주철을 살펴보러 간 거 아니었어?”

심협이 옆의 금제를 돌아보며 물었다.

“평범한 인간을 살펴보는 게 뭐 힘든 일이라고……. 심협, 무기(巫器)를 찾아서 섭채주의 무족 혈맥을 열 생각이 아니었나? 좋은 기회다.”

심협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귀등상인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핏빛 가시덩굴이 혈광으로 변하여 고대 서수를 찔러갔다.

고대 서수의 실력은 대승 후기 존재와 견줄 정도였기에 매우 민감했고. 반응도 재빨랐다. 녀석은 크게 포효하더니 가시덩굴의 일격을 피하고는 강철 같은 검은 빛이 감도는 커다란 발톱을 휘둘렀다.

한데 귀등상인이 결인을 했고, 가시덩굴이 갑자기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몇 개의 허상으로 변하며 흔들리자 고대 서수는 어리둥절해졌다.

핏빛 가시덩굴은 그 틈에 발톱을 스쳐 지나가 고대 서수의 배를 뚫고 등 뒤로 나왔다.

“캬아아아!”

고대 서수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발악했지만, 이내 기운이 사라졌다.

가시덩굴은 공격력이 막강할 뿐만 아니라 귀등상인이 만든 시독이 묻어 있어서 진선의 존재도 못 버틸 정도이니 대승기 요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심협이 암암리에 조종하는 귀등상인은 천천히 걸어서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귀등상인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두 무족 청년과 친해질 궁리 중이었다.

한데 덩치가 크고 피부가 검붉은 남자가 눈을 부릅뜨며 귀등상인을 노려봤다.

“누구냐? 누군데 감히 내 전수(戰獸)를 죽인 것이냐?”

다른 무족 청년도 마찬가지로 화난 기색으로 뼈로 된 창을 꽉 쥐며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했다.

소요경 안의 심협은 당황했다. 아니, 자신들의 전수와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싸웠단 말인가?

“아, 생각났다. 무족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전수와 함께 싸우는데, 합체 기술을 사용한다고 했어. 기술을 사용할 때 반드시 둘의 합이 잘 맞아야 하는데, 무족은 영총과 교류하는 방법을 몰라서 끊임없이 싸움으로써 전수와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고 했어.”

화령자가 뒤늦게 말했다.

“그런 건 미리 말하라고…….”

심협은 그를 흘겨봤다.

“나도 언제 어느 전적에서 봤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전에 본 건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하겠나?”

화령자가 무안한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답하자 심협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무족의 언어로 사과했다.

“고대 서수가 두 분의 전수일 줄은 몰랐소. 노부는 서수가 두 분을 해치는 줄 알고 무모하게 나선 것이니 부디 용서…….”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뼈로 된 창이 질풍처럼 곧장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흥! 내 전수를 죽였으니 목숨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덩치가 큰 무족이 분노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다른 청년도 뼈로 된 짧은 창을 던졌는데, 이 창은 하얀 빛줄기처럼 귀등상인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바로 죽이려고 달려든 것이다.

심협은 서둘러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피했다.

“무족은 항상 저런 식이었지. 저들은 말로 하지 않고 반드시 주먹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저들은 약하지 않으니 저 꼭두각시가 부서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화령자가 당부했다.

심협은 내심 불쾌했지만, 어차피 무족의 싸움 방식을 알아보고 싶었던 참이었기에 군말 없이 바로 맞붙어 싸웠다.

귀등상인은 법보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 요수의 천부적인 능력을 시전하여 수많은 가시덩굴로 두 사람을 공격했다.

두 명의 무족에게는 어떤 법력 파동도 없었지만 강인한 육체와 번개 같은 몸놀림, 경악할 만한 힘으로 가볍게 가시덩굴을 갈기갈기 찢었다.

두 사람 수중의 뼈로 된 칼과 창에는 무족의 영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을 휘두를 때마다 영문이 반짝거리면서 무기에 날카로움을 더해 가시덩굴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하지만 귀등상인도 진선 중기의 존재였다. 여기에 심협의 풍부한 전투 경험이 더해지자 금방 우세를 점하여 두 사람의 무기를 빼앗고는 꼼짝도 못 하게 수십 개의 굵은 가시덩굴로 몸을 칭칭 감았다.

“여기까지 하는 게 어떻겠소? 두 사람을 죽일 마음도 없고, 모든 게 오해…….”

한데 귀등상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무족이 분노하며 소리치자 온몸에서 붉은색 문로가 떠오르더니 불꽃이 뿜어져 나와 몸을 감고 있는 덩굴을 모두 태워버렸다.

뒤이어 다른 무족 청년의 몸에서는 자흑색 뇌전이 뿜어져 나와 마찬가지로 덩굴을 갈기갈기 찢었다.

“이건……?”

심협은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무족 혈맥의 힘인데, 체내에 강력한 신통이 깃들어 있지.”

화령자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심협이 일순 당황한 틈에 두 무족은 무기도 버린 채 민첩한 원숭이처럼 먼 숲속으로 도망쳤다. 게다가 숲속으로 들어간 두 사람의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신식으로도 두 사람을 감지할 수 없었기에 심협은 다시 한번 놀랐다.

“무족은 법력이 없어서 쉽게 육체의 기운을 감출 수 있고, 주위 환경과 동화되는 무족만의 비법이 있으니 신식으로도 쉽게 찾아낼 수 없다.”

화령자의 말에 심협은 무족에 더 흥미가 생겼다. 그는 뼈로 된 도와 창을 소요경에 넣고는 귀등상인에게 두 청년을 쫓게 했다.

그의 신식으로는 두 사람을 쫓을 수 없었지만, 아까 싸울 때 두 무족의 몸에 몰래 신식 각인을 새겨놓은 덕에 두 사람이 숲속 서북쪽으로 도망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심협은 소요경 안에서 뼈로 된 도와 창을 자세히 살폈다.

두 무기에는 어떠한 힘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도의 날과 창날에 새겨져 있는 무족의 영문에서 기류가 감돌아 손으로 만지면 뜨거웠다.

옆에서 신식으로 살펴보던 화령자가 실망한 듯 투덜거렸다.

“이 무기들은 무족의 부수적인 법기다. 날카롭고 단단하게 해주는 힘 외에는 큰 의미도 없고, 담겨 있는 무력(巫力)도 많지 않아서 연신대진의 진기 비석보다 못하군. 섭채주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겠어.”

그 말에 심협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편, 귀등상인은 조용히 두 무족 청년의 흔적을 쫓았다.

반 시진 뒤, 두 사람은 산 밑의 골짜기에서 멈췄다.

산골짜기에는 마을이 세워져 있었고, 입구에는 커다란 나무문이 세워져 있었다. 나무문 양쪽에는 전망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활과 창을 든 무족 전사 7~8명이 서 있었다.

산골짜기 상공에는 새까만 구름이 떠 있었는데, 매우 두꺼운 구름에서는 수시로 칠흑 같은 번개가 번쩍여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귀등상인은 산골짜기 밖의 숲에 모습을 감추었다.

“무족 부락인가?”

심협은 귀등상인의 시야를 통해 바깥의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보아하니 사람이 적지 않아 보이는군. 섬을 돌아다니며 선총을 찾느니 저들에게 물어보는 게 더 빠르겠어.”

“귀등상인은 저들과 원한을 샀으니 우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좋겠어.”

심협은 귀등상인의 외모를 바꿔볼까도 생각했지만, 상고 종족인 무족이라면 그런 변화술을 간파하는 신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가는 일을 더 그르치게 될 터였다.

그때, 산골짜기의 커다란 나무문이 열리더니 깃털 달린 모자를 쓴 덩치 큰 무족 노인이 걸어 나왔다. 손에 들고 있는 뼈 지팡이 끝에 검은색 둥근 돌이 박혀서 검은 빛을 발했는데, 멀리서도 강력한 무력(巫力)이 느껴졌다.

10여 명의 무족 전사가 뒤따라 나왔는데, 그중에는 아까 본 두 명의 무족 청년도 있었다.

저 노인은 상대하기 까다로워 보였기에 심협은 내심 긴장하며 바로 귀등상인에게 더욱 완벽하게 자신의 기운을 지우게 했다.

“먼 곳에서 온 손님이시여, 우리 부족까지 왔으니 모습을 드러내시죠.”

무족 노인이 귀등상인이 숨어 있는 숲을 바라보며 바깥 세계의 언어로 말했다.

소요경 안의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족 노인은 귀등상인의 존재를 이미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귀등상인에게 연연나금의 같은 기운을 숨기는 보물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운을 숨기는 신통은 그래도 현묘한 편이었다. 한데 저자는 그것을 한눈에 간파한 것이다. 아무래도 보통 노인이 아닌 모양이었다.

“함부로 귀족의 영토에 들어온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귀등상인이라 합니다.”

심협은 귀등상인을 조종하여 모습을 드러낸 뒤, 화령자가 알려준 무족의 예절대로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인사했다.

“우리 무족의 예절을 아십니까?”

무족 노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옛 서적에서 우연히 봤습니다.”

“저희 무족은 오래전에 사라진 일족인데 저희에 관한 것을 서적에서 봤다니, 우리 무족과 인연이 깊은 모양입니다. 백아(白牙) 일족의 족장 마도(麻圖)입니다.”

무족 노인도 답례했다.

“마도 족장님이셨군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방금 귀족의 두 용사와 오해가 있어 그만 실수로 그들의 전수를 죽여 버렸습니다. 부디 이해해주십시오. 보상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보상하겠습니다.”

귀등상인은 예를 갖추며 양손으로 뼈로 된 도와 창을 두 무족 청년에게 내밀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달갑지 않은 눈빛이었지만, 표정에서는 노여움이 많이 가셨고, 손을 내밀어 두 개의 무기를 받았다.

“오해였다 하니 보상은 괜찮습니다. 무족이 몰락하긴 했지만 전수가 모자라지는 않다오. 귀등 도우께서는 혼자서 우리 섬에 오신 게 아닌 모양이군요. 다른 도우들도 근처에 있는 듯하니 모두 나오시죠.”

마도 족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하하! 저희의 존재를 눈치채다니, 마도 족장님의 신통함에 감복했습니다.”

염열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불빛이 먼 곳에서 날아와 산골짜기 입구로 내려왔다. 염열과 만수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쪽에서는 분홍 빛이 반짝이더니 도향과 유홍, 이표가 모습을 드러냈고, 산골짜기 앞의 땅에서는 노란 빛이 반짝이더니 전삼칠이 땅속에서 나왔다.

심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소요경 안에 있어서 신식으로 주위를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었기에 저들이 이렇게 가까이 왔음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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