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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19화 (919/1,214)

919화. 동천일월(洞天日月)

심협이 손을 들자 조비극은 아쉬워하며 느릿느릿 검은 빛을 거두었다.

귀등상인은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숨을 돌렸다.

“자, 사우흔과 귀언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말해. 그리고 창궁 비경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빠짐없이 말해야 할 게다.”

심협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다.

“주인님, 안심하십시오. 제 비술로 진위를 알아낼 수 있으니, 이자가 조금만 다른 마음을 먹으면 제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주인님,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이자에게 한 시진 동안 연혼술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주십시오.”

심협은 조비극이 정말 그런 비술을 쓸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귀등상인을 위협하기 위해 한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좋아.”

그는 그런 의심을 내색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나와 귀언은 분명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였소. 난 본래 무은사해의 평범한 산수였는데, 오래전 귀언과 함께 무은사해에서 연시 신통에 능통했던 선배의 동부를 발견했소. 천시진경은 거기서 얻은 것이오.”

귀등상인은 몸을 덜덜 떨며 힘없이 말했다.

“그때의 당신은 대승기에 불과했으니 귀언의 성격상 살려뒀을 리가 없을 텐데……?”

심협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따져 물었다.

“그렇소. 동부에 들어가자 귀언은 정말로 날 죽이려고 했지. 다만, 그때의 그는 천기성을 배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중상을 입은 상태였고, 내게는 진선 수사를 해칠 수 있는 멸신주가 있었소. 이를 안 귀언은 나를 살려주는 대가로 자신의 수하가 되면 동부 안의 보물 중 1할을 준다 하였소. 나는 살기 위해…… 그리고 동부 안의 보물을 갖기 위해 그의 요구에 응했지.”

“그리고?”

“귀언은 그 동부의 보물을 얻은 뒤로 폐관하며 부상을 치료하기 시작했고, 내게는 밖에서 온갖 재료와 함께 천성적으로 음맥(陰脈)을 가진 여자 아홉 명을 잡아오라 했소. 그때의 나는 그에게 제약을 받고 있었기에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지. 사우흔은…… 그때 내가 잡아 온 아홉 명의 여자 중 한 명이었소.”

귀등상인은 심협을 곁눈질로 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 순간, 심협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더니 눈에서는 차가운 빛이 뿜어졌고, 귀등상인은 감히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귀언은 음맥이 있는 여자 수사를 잡아다가 뭘 했지? 지살시왕으로 만들었나?”

심협이 눈을 감은 채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고,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랬을 게요. 귀언이 한 일에 관해서는 그가 말해주지 않았기에 나도 많이 알지는 못하오.”

귀등상인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나도 천시진경을 봤는데 지살시왕으로 만들려면 적어도 대승 후기의 여자 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우흔의 경지가 대승 후기였나?”

이 말에 귀등상인은 표정이 변했고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말해!”

심협은 상대가 뭔가 숨기고 있음을 감지하고는 청천벽력 같은 목소리에 천기성의 진혼비술을 담아 호통을 쳤다.

“아, 아니오! 그때 그녀의 경지는 출규 후기였소. 하지만 귀언이 어떤 비술로 수사의 몸과 신혼을 자극하는 동시에 대량의 단약을 집어넣어 단시간에 강제로 경지를 끌어올렸소.”

귀등상인이 덜덜 떨며 말했다.

“그런 비술이 있다고?”

“있을 거다. 상고 시기 약왕종(藥王宗)이라는 문파가 있었는데, 단약을 정련하는 데 전념했지. 그 문파에 확실히 그런 비술이 있었어. 구체적인 과정은 나도 모르지만, 각종 단약으로 하나의 커다란 약로(藥爐)를 만들어 살아 있는 사람을 거기 넣고 비법으로 수사의 몸에 강제로 약효를 흡수시키면 1년 만에 다른 사람의 백 년 수련에 필적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던가. 그렇게 2, 3년 만에 출규기나 대승기 수사를 배출하고는 했다.”

“그런 비술이 있다니!”

“부러워하지 마라. 그렇게 무리해서 약력을 흡수하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워서 평범한 사람은 절대 견디지 못한다. 약왕종은 이 수련법으로 무식한 약인(藥人)을 만들었지. 한데 귀언이 약왕종의 어떤 약인의 술을 썼는지는 모르겠군. 어쨌든 단시간에 그렇게 경지를 빨리 올렸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참혹했을지 짐작할 수 있지.”

그때였다.

쾅!

갑자기 울린 굉음에 귀등상인과 조비극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커다란 푸른 빙산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그 앞에는 지금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싸늘한 얼굴의 심협이 서 있었다.

지살시왕을 만들려면 영지가 온전한 대승기 수사의 신혼을 분리하는 비법을 시전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우흔은 이성이 온전한 상태에서 그런 약인의 술을 겪었다는 것이다.

귀등상인은 살기 가득한 심협의 눈빛을 감히 마주치지 못하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과거, 그는 귀언이 음맥이 있는 여자 수사의 경지를 올리는 방법이 궁금해 몰래 그 여자들이 수련하는 장면을 훔쳐봤는데, 그 광경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었다.

아홉 명의 여자는 팔팔 끓는 약로 안에서 쉬지 않고 약로 안의 약력을 강제로 흡수했다. 강력한 단약의 힘에 몸은 완전히 변형되었고, 처참한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그 비명은 여전히 귀등상인의 귓가에 맴돌았다.

“귀언의 그 비술에 관해 잘 알고 있군. 너도 거기에 가담했는가?”

심협의 칼날 같은 시선이 귀등상인에게 꽂혔다.

“그, 그건 절대 아니오! 난 영재를 모으는 일만 맡았소. 그저 우연히…… 그 여자들의 수련 장면을 훔쳐봤을 뿐이오.”

귀등상인이 급히 부인하자 심협은 조비극을 바라봤다. 조비극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제야 그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죽일 놈의 귀언. 마심에게 그렇게 쉽게 죽도록 두는 게 아니었는데……. 너무 편하게 갔어!”

심협의 싸늘한 목소리에 귀등상인은 식은땀을 흘렸다.

“후에 사우흔을 본 적이 있나? 그녀에 대해 더 아는 건?”

심협은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고는 다시 물었다.

“없소. 귀언을 대신해 재료를 모았고, 그는 나를 다른 곳으로 보냈소. 나도 그자 밑에 있고 싶지 않았으니 먼 곳으로 가서 진선기로 돌파하고서야 나왔소.”

귀등상인은 급히 고개를 젓고는 조금 안심하며 말했다. 다행히 심협은 분노한 와중에도 자신을 절제할 수 있어 보였던 것이다.

심협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침묵했고 귀등상인과 조비극 등은 감히 방해하지 못했다.

“그날 천기성 교역회에서 당신 뒤에 있던 남자를 봤다. 그는 사우흔의 수하인데,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어째서 백 년이 지났는데도 외모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인가?”

한참 뒤, 심협이 다시 물었다.

“주철 말이오? 난 그에게 아무런 짓도 안 했소. 그의 몸은 매우 특이해 늙지도 않아서 나도 호기심에 가까이 두고 자세히 관찰하는 중이었소.”

귀등상인은 그 말을 한 뒤, 자신의 선택을 매우 후회했다. 심협이 자신을 노리게 된 이유가 바로 그자 때문일 터. 한순간의 호기심에 명을 재촉한 꼴 아닌가! 만약 지금 귀등상인이 움직일 수 있었다면 아마 자신의 입을 때렸을 것이다.

“늙지 않는다고? 그는 지금 어디에 있지?”

“내 허리춤에 있는 양시대(養尸袋) 안에 있소. 그자는 늙지 않을뿐더러 오랫동안 음기와 접촉해도 전혀 지장이 없는 걸 봐서는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오.”

귀등은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은색 주머니를 바라봤다.

심협의 손이 푸른 빛을 띠더니 곧장 단단한 빙산으로 들어가 가볍게 그 검은색 주머니를 빼냈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얼음도 그의 손 앞에서는 마치 부드러운 물 같아서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심협, 너의 한빙 신통은 그 자질이 실로 신묘하군.”

“뭘 이 정도로…….”

화령자의 감탄에 심협은 담담하게 웃고는 신식을 검은색 주머니 안에 넣었다.

안에는 건곤대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건곤대보다 더 컸고 사용할 수 있는 재료도 더 좋았다. 또한 내부는 짙은 시기(尸氣)로 가득했다.

심협은 조금 전 진창해를 발동할 때 귀등상인의 재물을 파괴하지 않았다. 귀등상인의 물건은 이미 자신의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승기 연시는 아까 모두 사용해서인지 양시대 안에 남은 연시는 비록 그 수는 많아도 경지는 대체로 약했다.

양시대 공간 구석에는 주철이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데 귀등상인의 말처럼 주위의 짙은 시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심협은 주철이 무사한 것을 보고는 안도했지만, 아직 귀등상인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기에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귀언에 대해 더 아는 것은?”

“아는 것은 모두 말했소. 그자는 매우 교활해서 내게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소.”

“그럼 그 일은 여기까지로 하고……. 당신과 도향, 염열 등이 그동안 창궁 비경에서 겪은 일을 말해봐.”

“알겠소. 그때 비경에 들어온 이후로…….”

귀등상인은 그동안의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어디서 보물을 얻었는지까지도 하나도 빠짐없이 말했다. 도향이나 염열 등과 이렇다 할 친분이 없었기에 당연히 숨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심협이 도향 등을 전부 처리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이런 고통을 겪었으니 너희만 편한 꼴은 못 보겠다는 심보였다.

한편, 설명을 끝까지 들은 심협은 일순 머릿속이 하얘졌다. 귀등상인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창궁 비경에 들어온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창궁 비경 안의 시간 흐름은 바깥 세계와 다른 건가?’

심협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거였어! 창궁 비경이 이렇게 넓었던 것은 이곳은 이미 하나의 세계가 되어 완벽한 동천일월(洞天日月)을 이루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시간 흐름도 인간 세계와 다른 거다!’

‘동천일월? 그게 뭐지?’

심협은 화령자의 탄식에 서둘러 물었다.

‘너도 여러 곳을 돌아다녀 봤으니 적지 않은 비경에 가봤겠지. 그 비경들 안에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별들이 움직이는 자연 현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은데? 있었다고 해도 금제로 만든 환상이었지.’

‘해와 달의 운행, 사계절의 변화는 모두 천도의 운행이니 바깥의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이러한 현상이 자연스럽지만, 비경은 작은 공간을 새롭게 개척한 것에 불과해 여전히 바깥의 대천세계에 의지하지. 허나 비경이 좀 더 진화하면 독립적인 일월성신이 생겨나 독립적인 세계가 되고 시간의 흐름도 바깥 세계와 달라진다.’

‘그렇군.’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귀등상인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그들의 경지가 그렇게 정진한 것이로군. 천지영기가 짙은 이 비경에서 10여 년간 수련하고 천재지보까지 얻었다면 이 정도의 정진은 이상할 게 없지.’

조비극과 귀등상인은 두 사람의 전음 대화를 전혀 듣지 못했다.

“심 도우, 내 사실을 모두 말했으나 지은 죄가 있으니 감히 살려달라고는 못 하겠소. 부디 내 혼백이 육도 윤회에 들어가 다시 태어날 수 있게만 해주시오.”

“약속은 지킨다. 지부 윤회로 가라. 다음 생에는 천리(天理)를 해치는 일을 하지 마라. 안 그러면 정말 혼백이 소멸하게 될 거다!”

심협은 엄중한 목소리로 일길하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날카로운 검기가 스쳐 지나갔고, 귀등상인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뒤이어 기운이 완전히 소멸했고, 머리를 떨궜다. 그 얼굴은 해탈한 표정이었다.

‘그대를 해친 두 사람을 모두 죽였으니 부디 평안히 쉬기를…….’

심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숨을 뱉었다.

“저런 극악무도한 놈에게 약속을 지키실 것 있습니까? 제가 저자의 신혼을 흡수했으면 진선 중기로 돌파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겁니다.”

옆에서 조비극이 투덜거렸다.

“네 수련은 내 따로 안배할 테니 서두르지 마라.”

심협이 조비극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의 심협은 너무도 두려운 존재였기에 그저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비극은 감히 더는 따지지 못했다.

그때였다.

“엇!”

옆에 있던 화령자가 갑자기 외쳤다.

심협이 돌아보니 귀등상인이 죽고 난 뒤 진창해의 얼음 밖으로 나와 있던 머리에 이변이 일어났다. 머리는 푸른 나무로, 머리카락은 줄기로 변하여 빠르게 위로 자라났다. 얼음에 봉인되어 있던 목 아래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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