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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17화 (917/1,214)
  • 917화. 습격

    화령자는 소요경에서 나와 손을 휘둘렀다. 검은색 비석이 황량한 산에 나타났는데, 바로 연신대진의 그 진기(陣器) 비석이었다.

    비석이 빠르게 돌며 수많은 검은색 진문이 뿜어져 나오자 순식간에 반구(半球) 형태의 거대한 보호막이 이 황량한 산을 뒤덮었다.

    “됐다. 여기서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바깥에서는 전혀 알아채지 못할 게다.”

    화령자는 그렇게 말하며 결인했다. 그러자 거대한 보호막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사라졌다.

    “채주의 수련이 중단된 거야?”

    2년 전에 연신대진 연구를 끝마친 것을 알고 있는 심협은 화령자가 발동한 대진을 보면서도 놀라지 않았다. 다만, 화령자가 연신대진 진기를 꺼냈다는 것은 섭채주의 혈맥 돌파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휴, 실패했다. 그녀는 지금 연신대진을 운공하느라 법력 소모가 커서 회복 중이야.”

    화령자가 가볍게 한숨 섞어 설명하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상으로 변하여 산속으로 들어가 귀등상인이 임시로 만든 동부로 접근했다.

    황량한 산 중심, 귀등상인이 만든 동부. 주위에는 그렇게 고명해 보이지 않는 금제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회백색의 커다란 깃발이 동부 위에서 반득이며 동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동부에는 귀등상인이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앞에는 흑옥의 관이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오래된 갑옷을 입은, 매우 부패한 시체 한 구가 놓여 있었다. 시체임에도 강력한 기운을 발산했다.

    귀등상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이 시체는 그가 어느 선배의 동부에서 찾은 것인데, 생전에 태을기 고수라 시체에 아직도 수많은 힘이 남아 있었다. 이토록 강력한 시체라면 그가 수련한 연시의 공법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귀등상인은 눈을 감고 심호흡하여 심신을 진정시킨 뒤 다시 눈을 떴다.

    지금은 이 시체로 자신의 연시 공법의 경지를 높일 시간이 없었기에 최대한 빨리 연시 분신을 만들 계획이었다. 그리 하면 생전의 태을 경지는 아니어도 진선 후기 절정의 실력은 확실히 담보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연시가 있다면 더 이상 도향이나 염열 등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나아가 오히려 기회를 틈타 그들을 하나씩 처리하고 이곳의 이익을 독차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창궁 비경에 들어온 이후로 염열 무리든 도향 무리든 자신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귀등상인이 차가운 눈빛으로 양손을 내밀었다. 손에서 쌀알만 한 수많은 검은 벌레가 섞인 두 줄기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커다란 시체로 들어갔다. 벌레들은 빠르게 시체로 파고들었다.

    이 벌레들은 시충(尸蟲)이라는, 귀등상인의 독문 연시 비술이었다. 이 시충을 이용해 연시에 필요한 힘을 빠르게 시체 곳곳에 주입함으로써 연시의 과정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었다.

    시체에 검은색 부문이 떠오르더니 빠르게 퍼져 나갔고, 커다란 시체의 손발이 미세하게 떨리면서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한편, 동굴 부근에 도착한 심협은 이 무렵 유명귀안으로 주위의 금제를 뚫고 동부 안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연시하는 건가? 저 시체의 기운은 천살시왕과 비슷할 정도로 강력해 보이는군.”

    심협은 이를 막기로 했다.

    그의 시선이 동부 위에 있는 회백색 깃발로 향했다.

    이 커다란 깃발에 담긴 강력한 음기(陰氣)로 미루어 그의 기혈번보다 훨씬 강력한, 적어도 64도 금제가 있는 절정급 법보 같았다.

    유명귀안과 이 깃발의 힘은 근원이 같아서 깃발에 담긴 수많은 강력한 음혼을 감지할 수 있었다. 두 개의 진선기 음혼은 매우 사나웠고, 대승기 음혼은 수십 개가 넘었다. 이 깃발을 시전하면 그 위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심협은 무언가를 읊조리고는 소매를 휘둘러 10여 개의 붉은 빛을 동부 주위로 날렸다. 비검의 모습이 드러나자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열 자루의 순양비검이 빠르게 회전하며 뿜어져 나오는 검광이 서로 연결되었고, 금세 순양금광 검진이 만들어졌다.

    “무슨 일이지?”

    귀등상인은 동부 주위의 이상한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탐색하려 했다.

    그때였다.

    파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동부 주위의 금제가 찢겨 나갔고, 온몸에 금색 번개를 두른 누군가가 날아 들어왔다. 그보다 한 발 앞서 붉은색 검의 허상이 귀등상인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귀등상인은 깜짝 놀랐지만, 연시를 멈추지 않고 어깨를 크게 떨었다. 그러자 핏빛 가시덩굴이 비단처럼 날아가 붉은 검의 허상을 막아냈다.

    “누구냐?”

    귀등상인이 숨을 돌리고는 날카롭게 외쳤다.

    번개를 두른 적의 몸 주위는 보이지 않는 힘이 둘러싸고 있어 용모가 보이지 않았고, 신식도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상대의 기운은 익숙했다.

    “널 죽일 자다!”

    상대가 차갑게 내뱉자 붉은검의 허상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완전히 똑같이 생긴 검의 허상이 가시덩굴 뒤에 나타나 천둥처럼 귀등상인에게 떨어졌다.

    깜짝 놀란 귀등상인은 곧장 입에서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검은 기운은 두 마리의 거대한 구렁이로 변하여 검의 허상과 충돌했다.

    한데 놀랍게도 검의 허상에서 떠오른 태양 같은 금빛 불꽃이 가볍게 두 마리의 구렁이를 삼키고는 거침없이 귀등상인에게로 떨어졌다.

    “헛!”

    귀등상인의 마른 몸은 단숨에 절반으로 갈라졌지만, 바로 나무 인간으로 변했다. 두 다리는 어느새 두 개의 커다란 덩굴로 변하여 땅속에 들어가 있었다.

    동부 반대편 땅에서 초록 빛이 반짝이더니 귀등상인이 허공에 나타났다. 깜짝 놀란 표정의 그는 바로 동부 위에 있는 회백색 깃발을 결인했다.

    회백색 깃발에서 강렬한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온 짙은 회색 안개가 순식간에 동부 안으로 밀려들어와 귀등상인의 몸을 휘감았다.

    밀실 안에 갑자기 음풍이 불어왔고, 한기가 강해지면서 피부가 찢겨 나갈 듯했다.

    번개를 두른 적은 조금 놀라는 듯하더니 손을 들어 붉은색 검을 거두었다.

    그때, 회색 안개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가 뱀처럼 검의 허상을 칭칭 감았다.

    안개에서 흘러나온 음기가 검의 허상 내부로 침투하자 검의 빛이 빠르게 어두워지면서 본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영광이 반짝이는 붉은색 비검이었다.

    귀등상인이 눈을 번득이더니 다시 결인했다. 그러자 몇 줄기의 검은 안개가 회색 안개에서 뿜어져 나가 붉은색 비검을 더욱 강하게 감쌌다. 붉은색 비검은 완전히 갇혀버렸다.

    번개를 두른 사내가 이를 보고는 빠르게 법결을 변환하자 붉은색 비검에서 다시 태양과 같은 금빛 불꽃이 떠올라 주위의 검은 안개를 태우고는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옆에서 핏빛 가시덩굴이 혈홍색 무지개처럼 다시 날아와 비검을 막았다.

    태양진화가 음기를 억제했지만,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았고, 비검은 다시 가로막혔다. 가시덩굴과 비검이 맞부딪히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핏빛 가시덩굴의 엄호 속에 더 많은 어두운 기운이 사방에서 몰려와 앞뒤로 감싸자, 비검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 불꽃은 완전히 막혀 버렸다. 붉은 비검은 별다른 수단이 없어 보였고, 점점 늘어나는 검은 기운에 완전히 감싸여 검은색 고치처럼 변해갔다.

    이를 본 귀등상인은 안정을 되찾고는 차갑게 웃으며 적을 돌아봤다.

    “네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으나, 감히 내게 덤비다니. 더는 살기 싫은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네 신혼을 뽑아내서 내 만귀번(萬鬼幡)의 진선 주혼(主魂)으로 삼아주마! 하하하!”

    광포한 웃음과 함께 두 줄기 거대한 회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하나는 흑옥 관을 감싼 채 짙은 회색 안개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다른 하나의 빛은 갑자기 검은색으로 변했는데, 바로 아까 시전했던 더러운 검은 기운이었다. 회색 빛이 갑자기 검은색으로 변하면서 몇 배나 단단해지더니 번개를 두른 적을 향해 검광처럼 날아갔다.

    이 더러운 기운은 법보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음독이라 몸에 침투하면 진선의 고수도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상대는 갑자기 몸에서 더 많은 금색 번개를 방출했고, 그중 몇 줄기의 금색 뇌전이 검은 기운에 대항했다. 그러자 검은 빛은 순식간에 부서졌고, 함께 흩어진 금색 뇌전 주위로 짙은 음기가 흩어졌다.

    심협은 만귀번을 보며 눈을 번득였다. 이전에는 귀등상인이 저 강력한 법보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최근에 얻은 것일 터. 보아하니 귀장 조비극에게 적합한 무기 같았다.

    귀등상인은 검은 빛이 격파되었음에도 놀라지 않고 다시 만귀번을 발동했다. 다시 여덟 줄기의 회색 빛이 심협을 향해 날아왔다.

    “엄청나게 짙은 음기입니다! 주인님, 대번과 맞서겠습니다!”

    심협이 나서려는 순간, 조비극이 건곤대에서 흥분하며 소리쳤다.

    “좋다. 단, 저 깃발은 나중에 네가 쓰게 될 수도 있으니까 힘을 너무 많이 흡수하지는 마라.”

    심협은 손을 휘둘러 조비극을 풀어줬다.

    조비극은 나타나자마자 바로 입에서 흑홍색 빛을 쏘아보냈다. 흑홍색 빛은 여덟 개로 나뉘어 회색 빛을 하나하나 휩쓸었다.

    회색 빛은 형흉신광과 충돌하자마자 약해지더니 단숨에 흡수되었다.

    거의 동시에 심협이 결인하자 64도 금제가 있는 순양검이 날아가 다른 쪽에 있는 검은 누에고치를 베었다.

    순양검은 매우 강력해서 비단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누에고치가 갈라졌다.

    핏빛 가시덩굴도 튕겨 나가 커다란 벽에 박히면서 영광이 어두워졌다. 손상이 심해 당분간은 회복하기 힘들어 보였다.

    검은 기운의 고치에서 순양검이 날아오르더니 64도 금제의 순양검과 합쳐져 쌍검합벽 신통을 시전했고, 속도가 순식간에 빨라져서 허공에서 사라졌다.

    이를 본 귀등상인은 깜짝 놀라 서둘러 뒤로 피하려 했다. 허나 그의 앞에서 번개 같은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두 자루 순양검이 튀어나와 쏜살같이 교차하며 베어왔다.

    도무지 피할 수 없자 다급해진 귀등상인은 수중의 만귀번을 흔들었다. 그러자 몇 배로 커진 깃발이 거대한 방패처럼 그의 앞을 막았다.

    심협은 대번이 손상될까 우려돼 서둘러 쌍검의 위력을 반 정도 줄였다.

    쌍검의 충격에 만귀번이 갑자기 격렬하게 흔들렸고, 회색 빛이 빠르게 반짝거렸다.

    쌍검의 공격을 막아낸 깃발이 검게 번득이자 검은색 귀물의 그림이 떠오르더니 살아 있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강하게 빨아들였다.

    주위의 허공에서 바람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회색 음기가 사나운 파도처럼 솟구쳤고, 거대한 소용돌이가 허공에 나타났다. 이어서 소용돌이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소용돌이로 빨려가기 시작했다.

    심협은 깜짝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허공에 결인했다.

    쉿!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금빛 검이 동부 벽을 뚫고 위에서부터 검은색 소용돌이를 공격했다.

    푹! 푹!

    무언가를 찌르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검은색 소용돌이는 금빛 검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고, 중심에 있는 칠흑의 노을빛은 강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터져 버렸다.

    귀등상인은 그 폭발에 튕겨나갔다가 간신히 몸을 가누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머리 위를 올려다봤다.

    금빛 검이 뚫고 들어온 벽을 통해 동부 상공에 눈부신 금광이 눈에 들어왔는데, 거기에서 맹렬한 검기가 느껴졌다.

    “검진? 넌 대체 누구냐?”

    귀등상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따지듯 외쳤다.

    “자, 재주는 그걸로 끝이냐?”

    심협은 귀등상인의 말에 답하는 대신 소매를 휘두르며 조롱했다. 두 자루의 순양검이 맑은 소리와 함께 좌우에서 귀등상인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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