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화. 정진
훌쩍 3년이 지났다.
동부 앞에 있던 작은 묘목은 이미 높게 자랐고, 동굴 바닥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였다.
밀실 안. 양의미진진의 환상에서 심협이 나왔다. 그는 허리에 푸른색 옥대를 차고 있었다. 옥대는 온통 푸른 빛으로 번득였고, 전후좌우에 푸른색 구슬이 박혀 있어서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몸에는 흐르는 물 같은 순수한 금빛이 용솟음쳤는데, 한 번 용솟음칠 때마다 주위의 허공이 흔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금빛은 점점 더 짙어져 반경 3장 크기의 금색 빛 덩어리가 되었고, 마치 한계를 돌파하려는 듯 강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금빛 덩어리가 한 번 번쩍일 때마다 밀실이 강하게 흔들렸다. 금제의 힘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머지않아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금빛 덩어리가 안정을 찾고는 천천히 사라지자 심협의 모습이 드러났다.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부령옥대(附靈玉帶)의 도움이 있어도 안 되는군.”
그때, 화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선 후기는 예사롭지 않으니 당연히 돌파하기가 쉽지 않지.”
심협은 담담한 표정으로 옥대를 만지작거렸다.
이 옥대는 부령옥(附靈玉)을 제련하여 만든 것으로, 화령자가 몸에 지닐 수 있는 법보로 만들어주었다. 법력을 보관하는 효과는 그대로였다.
화련단과 불사목 방석, 부령옥대 그리고 꿈속 세계의 수련 경험 등 외적인 도움으로 심협은 1년 만에 순조롭게 진선 중기로 돌파했다. 화련단의 약효는 예상보다도 훌륭해서, 절반만으로도 그는 수련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 약효의 도움으로 비약적으로 경지가 정진하여 2년 만에 진선 중기 절정에 도달했고, 이제 진선 후기까지 반걸음 정도만 남겨두었다.
그는 계속해서 후기로 돌파하려 시도했지만 애석하게도 결국은 실패했다.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런 상황에서 계속 수련만 하는 건 상책이 아니다. 차라리 나가서 돌아다니고 경험을 쌓으면 어떤 계기로 경지가 순조롭게 돌파하게 될 거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지금 내 실력으로는 여전히 거청천과 대적할 수 없으니 차라리 이 비경을 탐사해볼까 해. 여기가 정말로 선총의 땅이라면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을지도 모르니까.”
화령자는 성격상 가만히 한곳에 머무는 것에 이미 질렸기에, 심협의 계획을 듣자마자 바로 기뻐하며 찬성했다.
“채주는 지금 어때?”
“그녀는 지금도 폐관하며 연신대진의 힘을 빌려 무족의 혈맥을 뚫으려고 시도 중이다. 다만, 연신대진 안의 무력(巫力)이 너무 약해서 가능성은 크지 않아.”
3년 전, 화령자는 말했던 탐색 법진으로 섭채주의 몸을 살폈고, 마침내 경지가 정체되고 있는 진짜 원인을 찾아냈다.
화령자의 추측대로 섭채주 몸에는 이족(異族)의 힘이 있었으니, 바로 상고 시대 무족의 혈맥이었다.
심협은 이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섭채주의 부모는 모두 평범한 인간이었다. 허나 화령자의 말에 의하면 무족 혈맥의 힘은 특이해서 요족의 힘처럼 대대로 물려받는 게 아니라 몇 대 혹은 수십 대를 거쳐서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무족의 특이한 혈맥은 인간족의 법력과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섭채주는 이전에는 경지가 낮아서 무족의 혈맥이 드러나지 않다가 뇌겁을 거치면서 무족의 힘이 발현되기 시작했기에 경지가 정체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
화령자도 이에 대해서는 방법이 없었고, 우선은 체내의 무족 혈맥을 자극하여 활성화한 후 해결 방법을 찾기로 했다.
무족 혈맥을 활성화하는 방법은 화령자도 자세히 알지 못했기에, 한동안 연구한 끝에 비석 진기로 연신대진을 설치해 진기 안에 있는 무족의 힘을 이용하기로 했다.
“누이는 외유내강이니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해봐야지. 안 그러면 그녀도 달가워하지 않을 거야. 여기서 나가면 상고 무족의 법보를 찾아서 그녀의 무족 혈맥이 활성화되도록 해봐야겠어.”
심협이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무족의 법기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건가?”
화령자가 조금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한두 개 정도는 대략적인 위치를 알고 있는데, 모두 대능의 수중에 있지.”
심협이 말한 것은 당연히 이정의 육진편과 양전의 삼첨양인도였다.
이정의 육진편은 십이조무기 중 하나인 전신편이고, 그 안에는 현묘하기 이를 데 없는 섭혼 대진이 들어 있다. 다만 이정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육진편을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화령자는 조금 실망한 듯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다물었다.
심협은 동부의 수많은 금제 진반을 거두고는 바로 동부에서 나와 아무 곳으로나 날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끝없는 바다를 며칠 동안 헤맸지만, 아무것도 만나지 못했다.
“쯧쯧, 이 선총의 땅은 정말 크구먼. 어디서 생겨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
화령자도 이 공간의 광활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급할 거 없어. 천천히 찾아보면…….”
심협은 갑자기 말을 끊더니 가볍게 웃었다.
“왜 그래?”
화령자가 의아한 듯 물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진짜 창궁 비경인 모양이군. 벽해요어가 느껴져.”
“내가 그렇다고 했잖아! 지금까지 안 믿은 거야? 눈치하고는…….”
화령자가 의기양양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심협은 가볍게 웃었고, 방향을 바꿔 벽해요어가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반나절을 이동한 후에야 마침내 벽해요어 근처에 도착한 심협은 속도를 절반 정도로 줄였다.
“왜 갑자기 속도를 늦춘 거야? 어서 가자고!”
“벽해요어가 누군가에게 잡혀 있어. 가까이 오니 벽해요어의 통령 각인에서 분노와 고통이 느껴지는군.”
“누군가에게 잡혀 있다고? 거청천인가? 아니지. 분명히 만수진인, 그자들일 거야. 놈들은 평범한 진선 수사라 근간이 얕고 실력도 약한데 무슨 걱정이야?”
화령자는 만수진인과 염열을 우습게 생각하며 비웃었다.
“그자들은 창궁 비경으로 들어온 지 벌써 3년이 됐잖아. 여기에는 고인(高人)의 무덤이 있으니 그들이 운이 좋아 한두 군데를 찾았다면 경지가 크게 전진했을 수도 있지. 그러니 조심하는 게 좋겠어.”
심협은 그렇게 말하고는 연연나금의를 발동하여 행적을 감추고 다가가 다시 반 시진이 지난 뒤에야 마침내 벽해요어를 찾아냈다.
새끼였던 벽해요어가 지금은 많이 자라 있었다. 몸은 거의 10여 장 정도였고, 외형도 많이 변해서 목에 두 개의 날개 같은 지느러미가 뒤로 퍼져 있었다. 입가에는 두 개의 기다란 수염이 생겨서 바람에 날렸고, 피부도 옥처럼 푸르게 변해서 아름다웠다.
이 물고기의 기운도 많이 강해져서 이미 대승 후기에 도달하고 진선까지 멀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정기 태반을 먹고 또 다른 기연을 만난 것 같았다. 안 그러면 실력이 이렇게 비약적으로 늘 수 없었다.
벽해요어는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빠르게 날고 있었는데, 등에는 만수진인과 염열이 타고 있었다.
‘역시 저들이었군!’
심협은 둔광을 발동하여 멀리서 따라갔다.
지난 3년 사이에 만수진인과 염열은 비록 외모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경지는 큰 발전을 이루었다. 염열은 진선 후기, 만수진인은 중기였다. 게다가 두 사람 체내에 충만한 보광(寶光)이 이전보다 더 강한 것을 보니 적지 않은 중보를 얻은 게 분명했다.
‘어떻게 저 정도까지 정진한 거지?’
심협은 상당히 놀랐다. 자신은 화련단의 도움으로 3년 만에 진선 중기에 도달했는데, 염열은 이미 진선 후기에 도달해 있으니, 두 사람에게 상고의 영단이라도 있는 걸까?
두 사람을 관찰하던 심협은 갑자기 뭔가를 느끼고는 뒤를 바라봤다.
뒤를 바짝 쫓아오는 다섯 개의 둔광이 어렴풋이 보였다. 바로 도향 등의 기운이었다.
‘저들도 이곳에 들어왔군. 하긴, 그때 화령자가 회색 공간을 무너트렸으니 공간 안의 환무 금제도 당연히 사라졌겠지. 도향 등이 제때 깨어났다면 창궁 비경에 들어온 것도 놀랄 일이 아니야.’
심협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속도를 조금 늦추자 다섯 명이 바짝 쫓아왔다.
도향 등도 외모는 변화가 없었지만, 역시 경지가 크게 정진해 있었다. 특히 도향은 진선 후기에 도달한 염열과 막상막하가 된 상태였다.
전삼칠 역시 진선 후기에 도달해 있었는데, 얼굴에 은색 형광을 띠었다. 공법이 크게 정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귀등상인과 유홍, 이표는 진선 중기였다.
‘겨우 3년 만에 경지가 이렇게 정진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심협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두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곱 명 모두 이토록 경지가 정진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건 확실히 이상하군.”
화령자도 이상하다고 느꼈다.
자세히 살펴보니 도향 등에게서도 보광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중보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보아하니 창궁 비경에 정말로 보물이 많아 저들 모두 수확을 얻은 모양이야.”
이를 알게 되자 내심 질투가 났다. 자신은 겨우 몇 가지 재료와 그다지 실용적이지 못한 언갑만 얻었고, 그 대가로 거청천의 손에서 죽다 살아났으니 운으로 따지면 저들에게 한참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심협은 금세 이런 감정을 떨쳐냈다.
두 무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이 쫓고 쫓기는 형세였지만, 양쪽 모두 속도를 높이지도 줄이지도 않았고, 긴장된 분위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지금 뭘 하는 거지? 망설임 없이 날아가는 것을 보면 목적지가 확실한 것 같군.”
“비경 안의 선총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동화산선이 이전에 창궁 비경에 들어왔었다고 했으니 선총 지도를 남겨놨을 가능성도 있어.”
“아니야. 양쪽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우니 만수진인과 염열이 추격을 모를 리가 없어. 정말로 지도가 있다면 왜 저들을 떨쳐내지 않고 저리 유유자적하겠어?”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었다.
“나도 모르겠군. 어쨌든 우선 저들을 따라가자고. 정말 선총이 있다면 뒤를 치면 되지.”
화령자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하자 심협은 연연나금의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동하여 멀리서 그들을 뒤쫓았다. 어쨌든 벽해요어도 있으니 놓칠 걱정은 없었다.
앞뒤로 이어진 세 무리는 조용히 날아갔고, 무려 보름을 날고 나서야 염열 등이 속도를 줄였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리라.
검은 그림자가 먼 하늘에 나타났는데, 어떤 건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섬은 아닌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진짜 선총 지도가 있는 모양이야!”
심협이 속으로 기뻐했다.
잠시 후, 검은 그림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바로 수백 리에 이르는, 거대한 검은 안개였다. 이 짙은 안개는 마치 검은색 거대한 요수가 바다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혼돈이 느껴지고 적막하여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검은색 안개 안에서 강력한 법력 파동이 느껴지는 걸로 미루어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강력한 금제 같았는데, 마치 꿈속 세계의 장수촌 외부를 뒤덮었던 하얀 안개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