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14화 (914/1,214)
  • 914화. 폐관수련

    순식간에 나흘이 지나갔다.

    이 기이한 바다의 다른 곳, 거대한 섬 부근의 상공에서 심협은 고민에 빠졌다.

    며칠 동안 그는 계속해서 바다 곳곳을 날아다니며 단서를 찾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이 끝없는 바다와 외딴 섬만 있는 듯했다. 바다 안의 사정도 마찬가지라 비경에서 나갈 수 있는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딱 하나 좋은 소식이라면, 며칠 동안 관찰해도 이 비경에는 어떤 위험도 없는 것인지 며칠 동안 어떠한 습격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언궁에서 쫓겨나면서 이 비경에 들어온 모양이군. 여기에서 나가라면 무슨 수를 써야겠어.”

    심협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천언궁 쪽으로 돌아갔다가는 그곳을 지키고 있는 거청천을 만날 수 있으니 위험했다. 우선은 실력을 키우는 게 먼저였다.

    다행히 그에게는 화련단이 있었다. 이 단약의 강력한 약효를 빌려 폐관하면 진선 후기까지는 어렵더라도 중기까지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심협, 이 바다가 창궁 비경과 비슷하다는 생각은 안 드나?”

    화령자가 불쑥 물었다.

    “창궁 비경? 그곳도 끝없는 바다였으니 비슷하긴 하지만 내가 거둔 벽해요어가 창궁 비경에 들어갔으니까 여기가 창궁비경이라면 감지했을 거야.”

    “벽해요어가 천언궁 같은 곳에 갇혀 있어서 금제가 네 감지를 차단했을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겠군. 한데 왜 여기가 창궁 비경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둘 다 바다라서는 아니겠지?”

    “당연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우선, 창궁 비경의 입구는 끝없는 바다였고, 네가 들어온 이 비경은 천기성에서 멀지 않으니 같은 비경일 가능성이 크다.”

    “일리가 있어. 또?”

    “둘째, 이전에 만수진인과 염열이 창궁 비경 안에는 적지 않은 옛 수사의 무덤이 있다고 했지. 그러니 아마 상고 시기 수사가 만든 선총(仙冢)의 땅일 것이다. 선총 같은 곳은 언제나 영기가 짙은데 생기가 부족하지. 지금 이 비경의 딱 그렇다. 그러니 이곳이 창궁 비경일 가능성이 꽤 높지.”

    “선총의 땅? 경지가 진선기에 도달하면 적에게 죽지 않는 이상 천수를 누릴 텐데 왜 무덤이 필요하지?”

    “누가 선인은 죽지 않는다고 그러던가? 모든 생명에는 끝이 있다. 다만 그 시간이 다를 뿐. 진선 이상 수사는 수명이 길지만, 그렇다고 진정한 불사불멸은 아니지. 삼재의 이해(利害)는 말할 것도 없고, 변화 신통에 능하여 어디에 숨는다 해도 천지 대겁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대겁이 강림하면 제아무리 재주가 많아도 죽을 가능성이 크다.”

    “천지 대겁? 마겁을 말하는 거야? 그 겁은 벌써 지나갔잖아? 설마 변수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거야?”

    심협은 속내를 숨기며 물었다. 견식이 범상치 않고 고금(古今)에 정통한 화령자가 오늘 마겁 이야기를 꺼냈으니 모르는 척 어떻게든 그가 마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천지 대겁이 어디 그렇게 쉽게 지나가겠는가. 예부터 지금까지 모두 네 번을 겪었는데, 매번 삼계에 피가 흐르고 수많은 생명이 죽었다. 백 년 전의 마겁은 겁도 아니었지.”

    “그런 일이 있었어? 네 번의 대겁은 어땠는데?”

    심협은 실제로 흥미가 생겨 다시 물었다.

    “천지의 첫 번째 환난은 반고(盤古)의 몸이 삼계가 된 ‘혼돈파(混沌破)’다. 두 번째는 ‘천주경(天柱傾)’인데, 여와가 하늘의 무너진 곳을 돌로 막은 일이었지. 세 번째 ‘치우추(蚩尤墜)’로, 천지가 정해졌다. 네 번째, ‘봉신명(封神明)’ 때는 천정과 지부의 성인들이 죽었지. 매번 대겁이 강림할 때마다 삼계의 선, 마, 요, 귀를 막론하고 모두 참여하여 생기를 다퉜고, 죽을 용기와 결심이 없다면 선총 안에 들어가 대겁 강림 때 죽은 자들의 혼백이 환생하기를 기다리거나 천백 년까지 다시 선연을 이어갔다.”

    화령자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지금 삼계의 곳곳이 암투를 벌이고 요족과 마족이 몰래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도 마겁이 곧 닥칠 거라는 징조일까?”

    심협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충격을 억누르며 물었다.

    “작은 잔혼에 불과한 내가 어찌 천지 대도를 알겠나? 다만, 지금 삼계의 상황이 봉신 대전이 일어나기 전과 비슷한 것만은 분명해.”

    “음…… 사실 여기가 창궁 비경이든 수많은 선배의 무덤이든 지금은 나와는 관계가 없어.”

    심협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수련을 할 셈인가?”

    화령자의 목소리가 다시 밝아졌다.

    “그래.”

    화령자의 말을 듣고 난 뒤로 심협은 수련할 결심을 더욱 굳혔다. 바깥 세상에 풍운이 몰아친다 해도 지금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비경의 다른 곳을 살펴보든 천언궁으로 돌아가든 지금은 실력을 높이는 게 먼저긴 하지. 그럼 나도 이 기회에 특수한 신통으로 다시 섭채주의 몸을 살펴보겠다.”

    “그렇게 해준다면 고맙지.”

    심협이 진심으로 기뻐했다. 섭채주의 수련이 정체되어 그 자신도 줄곧 마음이 무거웠는데 화령자가 신경을 써준다니, 되든 안 되는 고마웠다.

    심협은 멀지 않은 섬으로 향했다. 폭이 백 리 정도였고, 몇 개의 커다란 산은 대부분 해무에 뒤덮여 해가 보이지 않았다. 폐관수련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그는 산 깊은 곳으로 내려가서 검기로 가볍게 산벽에 동부를 팠다. 이어서 몇 개의 법진을 곳곳에 설치하고 양의미진진으로 동굴 전체를 뒤덮은 후에야 안심하고 가부좌를 틀었다.

    “그럼 난 소요경으로 가서 탐사용 법진을 설치하겠다.”

    화령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요경으로 들어가려 했다.

    “잠깐, 이번에는 어떻게 채주의 몸을 살펴볼 생각인 거야?”

    화령자의 말을 들어보니 이번에는 좀 더 특수한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 같은데, 섭채주와 관련된 일이니 심협으로서는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넌 진법을 잘 모르지 설명해도 못 알아들을 게다. 그냥 간단하게 말하자면, 연신대진과 이전에 익혀둔 몇 개의 법진을 결합해 자세하게 살펴볼 생각이다.”

    “연신대진? 아직 완벽하게 깨달은 게 아닌데 함부로 쓰면 위험하지 않나?”

    “위험은 피할 수 없는 법이지. 그래도 다른 수단도 있으니 받아들일지 말지는 네가 고민해봐라.”

    결국 섭채주 본인의 의견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단번에 승낙했다.

    “충동적으로 하지 말고 한번 잘 생각해봐.”

    심협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저는 화 도우가 제 안전을 보장해줄 거라 믿어요. 그리고 오라버니는 앞으로 더 강한 적을 마주하게 될 텐데 제가 경지를 올리지 않으면 어떻게 돕겠어요?”

    섭채주의 확고한 반응에 심협도 어쩔 수 없었다. 그저 화령자에게 조심해달라고 당부할 뿐이었다.

    이제 그 자신도 수련에 들어갈 때였다. 그는 조비극에게 계속해서 동부 안팎을 경계하도록 명한 뒤, 밀실로 들어가 소매를 휘둘렀다.

    검은 부들방석이 땅에 나타나자 순음의 기운이 풍겼지만, 음한한 느낌은 없었다. 방석 위에 앉자 몸 안쪽에서부터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는 불사목으로 만든 방석이었다. 이 나무는 심마를 다스리고 신혼을 보양해주는 효과가 있었기에 그 검은색 관을 뜯어내고 정화(精華) 부분으로 이 방석을 만든 것이었다.

    심협은 방석 위에 앉아 우선은 신비한 석갑과 천공전에서 얻은 수많은 고급 언갑을 꺼냈다. 그중에는 커다란 금색 화포도 있었다. 이전에는 거청천을 피해 다니느라 제대로 살펴볼 기회가 없었으니 자세히 살펴볼 참이었다.

    심협은 금색 화포를 들고 신식을 넣어 선천연보결로 내부의 금제를 연화했다. 그러자 이 화포의 내부 구조를 알 수 있게 됐는데, 신장화포와 거의 똑같았다. 공격 방식도 다를 게 없었지만, 몇몇 중요한 부분에서 더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만든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이 금색 화포는 신장화포의 강화판이로군.’

    이 화포는 완전무결해서 다섯 개의 고급 언정만 넣는다면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위력은 신장화포보다 몇 배는 될 테니 태을경의 존재라도 제대로 맞으면 단번에 죽게 될 터였다.

    다만 이 신장화포는 한 번 공격할 때마다 고급 언정 다섯 개의 모든 영력을 소모해야한다. 그러니 지금 가진 고급 언정으로는 두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

    심협은 신장화포를 내려놓고 10여 장 길이의 칠흑색의 창을 꺼냈다. 이 창은 현묘한 언문으로 가득한 고급 언갑이었다.

    신식으로 감지해보니 신장화포와 달리 일회용 언창이었다.

    “이름이 ‘암야(暗夜)’였군. 밤에 사용하기 좋은 언창(偃槍)이야.”

    이 창은 안에 담긴 암야의 힘으로 흔적과 기운을 감출 수 있어서 암살에 적합한 절정급 언갑이었다.

    더 절묘한 것은 이 창은 다른 언갑처럼 운사여전결을 높은 경지까지 수련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진선 수사도 조금만 노력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유용하게 쓰일 테니 그는 암야 언창을 조심히 챙겨 넣었다.

    다른 언갑들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것들이었는데, 특히 비천언차(飛天偃車)는 고급 비행용 언갑으로, 차체가 매우 단단한 데다 속도도 엄청났다.

    심협은 이 언갑들을 모두 살펴본 뒤, 다시 그 신비한 석갑을 꺼내 결인했다.

    보랏빛이 반짝이자 안에 있던 자극빙주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구슬 안에 담겨 있는 강력한 자극빙염을 연화하고 흡수한다면 그의 진창해 신통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자극빙염은 마치 벌집 같아서 한번 건드리면 폭주하기에 연화하고 싶다고 연화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현재 자극빙염의 한기는 구슬 안에 얌전히 있었고, 조금도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동부 주위의 양의미진진을 발동했다. 주위의 경치가 흐려지더니 끝없는 초원으로 변했다.

    그가 소매를 다시 휘두르자 열 자루의 순양검이 주위로 날아가더니 검광을 뿜어내며 서로 연결됐다. 그렇게 금세 순양금광 검진이 만들어졌다.

    두 개의 법진을 만들어낸 심협은 그제야 안심하고 유명귀안을 발동하여 자극빙주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고 잠시 후, 손가락을 튕겼다.

    가느다란 검광이 위에서 내려와 자극빙주 위를 긋고 지나가자 영롱하게 빛나던 구슬에 옅은 균열이 생겼다.

    구슬 안에 있던 자극빙염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보라색 빙염이 균열 사이로 뿜어져 나왔고, 하늘을 찌르는 한기가 폭발해 순식간에 검진을 휩쓸었다.

    심협은 당황하지 않고 금광 검진을 발동했다. 그러자 수많은 금색 검광이 휙 날아와 자극빙염과 빙주 사이를 베어서 순식간에 둘을 갈라놨다.

    그는 동시에 진창해 신통을 발동하여 극한의 힘이 담긴 푸른 빛으로 자극빙주를 감싸고는 그 균열을 막았다.

    빙주가 보랏빛으로 반짝이더니 단번에 푸른 빛 안에 있는 진창해의 한기를 전부 빨아들였다.

    구슬의 균열이 몇 호흡 뒤에는 완전히 사라져서 안에 있는 자극빙염을 다시 단단히 봉인했다.

    심협은 그제야 안심하고는 밖으로 뿜어져 나온 자극빙염을 바라봤다.

    빙염은 허공의 순양금광 검진에 단단히 속박되어 있었다.

    심협은 진창해 신통을 운공하여 푸른 빛으로 자극빙염을 감쌌다.

    매서운 자극한기가 빙염에서 흘러나와 진창해의 푸른 빛을 타고 몸으로 전달되면시 심협의 몸에 보라색 얼음덩어리가 생겨났다. 다만, 이 자극빙염의 위력은 한계가 있어서 그의 몸 절반을 얼리는 데 그쳤다.

    심협은 이전에 자극빙한에 얼어붙은 적이 있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체내의 순양검으로 한기의 침투를 막는 동시에 진창해를 운공하여 자극신통을 연화하기 시작했다.

    몇 시진 뒤, 그의 몸을 얼렸던 자극빙염은 전부 사라졌다. 대신 진창해의 푸른빛은 더 밝아진 상태였다.

    심협은 흡족해하며 다시 금광 검진으로 자극빙주에 균열을 만들었다.

    심협은 화련단이 담긴 조롱박을 꺼내서 단약을 삼켰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화련단으로 경지를 올리는 동시에 자극빙주를 연화할 계획이었다.

    눈부신 금빛이 솟아오르더니 이내 심협의 몸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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