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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13화 (913/1,214)
  • 913화. 규칙 위반

    암홍색 대문은 마치 강력한 검기를 감지한 것처럼 붉은색 광막이 갑자기 솟아올라 이전처럼 대문을 막았다. 하지만 안에 있는 심협은 붉은색 광막이 형태는 있어도 사실 없는 것과 다름없고, 그 위력이 이전의 3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 안의 법진이 신서에게 갈려서 망가졌고, 화령자가 복구하긴 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완벽하게 복구하지는 못한 것이다.

    “동설참(冬雪斬)!”

    거청천이 하얀색 대검을 움켜쥐더니 허공을 향해 힘차게 휘둘렀다.

    수십 개의 새하얀 검기가 허공으로 솟구치자 한기가 가득 차올라 마치 겨울에 눈보라가 치는 듯했다. 이런 혹한의 기운을 발하며 검은 붉은색 광막을 베었다.

    꽝!

    붉은색 광막이 굉음과 함께 부서졌고, 새하얀 검기는 바로 암홍색 대문을 베었다.

    암홍색 대문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연달아 울리면서 순식간에 금이 갔고, 곧 완전히 부서질 것만 같았다.

    심협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이자 훼멸명왕의 오른손에 있는 도끼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솟구쳤다. 그 상태로 도끼는 뒤에서 대문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이미 붕괴 직전까지 간 대문이 순식간에 부서지면서 붉은색 도끼는 거침없이 새하얀 검기를 베고 들어가 가볍게 수십 개의 검기를 전부 부쉈다.

    도끼의 붉은 빛은 그러고도 오히려 더욱 강해져서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타는 운석처럼 모든 것을 쓸어버릴 기세로 거청천에게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거청천은 곧바로 반응하지 못했고, 붉은색 도끼가 코앞까지 다가오고서야 서둘러 수중의 하얀 대검을 들고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대검에서 하얀 빛이 미친 듯이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몸 앞에 나타난 수많은 커다란 하얀색 검기가 광막으로 변했다.

    심협은 이 대응에 내심 감탄했지만, 붉은색 도끼의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강하게 검기 광막을 베었다.

    태양 같은 홍백의 빛이 거대한 도끼와 광막이 충돌하는 곳에서 폭발했고, 빛줄기마다 강력한 위능을 담은 채 반경 수백 장을 박살냈다.

    거대한 돌덩이들이 통로 위에서 그대로 무너져 떨어졌지만, 홍백의 빛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붉은색의 거대한 도끼가 검기 광막을 반으로 베어버렸지만, 하얀 대검에 막혀 버렸다.

    이때, 대검이 갑자기 몇 배로 커지더니 거청천의 머리 위로 떠올라서 웅웅 하며 떨리기 시작했다.

    “훼멸명왕! 이럴 수가! 네가 어떻게 그걸 조종하는 게냐? 흥! 허네 네 실력으로는 어차피 그 언갑의 진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터! 순순히 내려와라!”

    거청천은 금색 언갑을 보고는 깜짝 놀랐으나, 이내 다시 차갑게 웃으며 결인했다. 그러자 나머지 세 자루 대검이 번개처럼 날아가 뒤에서 훼멸명왕의 가장 핵심적인 부위 세 군데를 공격하려 했다.

    심협은 이에 아랑곳 않고 모든 신식을 붉은 도끼에 주입했다. 도끼에서는 다시 붉은 빛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변했는데, 그 안에서 태양의 허상이 어렴풋이 보였다.

    이 도끼의 이름은 열일전부(烈日戰斧). 구천의 뜨거운 태양의 위능을 담고 있다는 의미다. 그 위력을 모두 발휘하면 반경 천 리를 태울 수 있다 한다.

    심협은 열일전부의 신통을 전부 발휘할 수 없었지만, 5할 정도는 가능했다.

    파멸성의 힘이 붉은 도끼 안에서 폭발하자 검기의 광막은 산산이 부서졌고, 광포하기 이를 데 없는 힘이 하얀 대검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대검의 검망이 빠르게 번쩍이더니 날에는 균열이 나타나 순식간에 퍼져갔다.

    깜짝 놀란 거청천은 대검 위로 피를 떨어트리고는 급히 법력을 주입했다.

    하얀 대검의 검광이 갑자기 몇 배로 밝아지더니 주위에 수많은 눈꽃이 나타났다. 그러자 날을 타고 퍼지던 균열이 우뚝 멈췄다.

    하지만 한숨 돌리기도 전에 머리 위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훼멸명왕이 검은색 거대한 추를 들어 올리더니 하얀 대검과 붉은 도끼가 충돌한 곳으로 크게 휘둘렀다.

    꽈르릉!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수많은 검은색 뇌전이 거대한 추에서 폭발하더니 순식간에 반경 10여 장을 휩쓸었다. 주위의 땅이 검게 그을렸고, 등에서 날아오던 세 자루 대검은 폭발한 뇌전이 꽂히자 사방으로 날아갔다.

    이 추의 이름은 뇌신추(雷神錘). 천뢰의 힘을 담고 있어 일격에 천지가 울리고, 두 번째 공격에는 번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세 번째 공격에는 만물이 잿더미가 된다.

    열일전부에 뇌신추의 힘이 더해지자 하얀 대검은 굉음과 함께 부서졌다. 이어서 거대한 도끼와 거대한 추는 거청천에게로 향했다.

    거청천이 당황하지 않고 하얀 대검을 치켜들며 두 발에서 다시 푸른 돌풍을 일으켜 옆으로 번개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그가 두 무기의 공격에서 벗어나려는 그때, 훼멸명왕의 두 눈이 보랏빛으로 번쩍이더니 눈에서 수많은 번개가 뿜어져 나와 거청천을 뒤덮어 버렸다.

    거청천의 몸은 단숨에 보랏빛 뇌전에 관통되어 터져 나갔다.

    허나 온 하늘에 퍼진 그의 피와 살은 갑자기 잔광이 되어 사라지더니 동시에 백여 장 떨어진 허공에서 하얀 빛이 번쩍였고, 그곳에 거청천이 나타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한 모습이었다.

    그는 험악한 표정으로 훼멸명왕을 노려보더니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세 자루의 멀쩡한 대검이 날아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비록 죽음은 피했지만 도설검(濤雪劍)이 부서지는 바람에 다시는 사계검진(四季劍陣)을 펼치지 못하게 되었으니, 실력이 크게 줄었든 터였다. 게다가 이곳은 신식을 펼칠 수 없으니 조종이 필요 없는 약한 언갑만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애석해하는 것은 목숨을 지켜주는 진귀한 체겁언인(替劫偃人)을 사용해 버렸다는 것이다.

    “대신 희생시킨 건가!”

    심협은 흠칫 놀랐으나, 바로 훼멸명왕을 발동하여 거청천을 향해 돌진했다. 훼멸명왕을 발동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으니 그 안에 거청천을 죽이거나, 최소한 중상이라도 입혀야만 했다.

    그는 붉은 도끼와 검은색 추를 들어 올려 힘껏 내리쳤다.

    거청천은 이를 세 자루 대검으로 막았다.

    그러나 네 자루 대검을 사용하고도 훼멸명왕을 막아내지 못했으니 세 자루로 가능할 리가 없었고, 점점 밀리며 금세 열세에 빠졌다.

    둘은 청석 통로에서 거침없이 충돌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통로는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두세 개의 길이 무너졌다.

    그때, 갑자기 위엄 있는 목소리가 심협의 귓가에 들려왔다.

    “규칙 위반! 천언궁에서 추방한다!”

    하얀 빛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가볍게 훼멸명왕을 뚫고 지나가 그의 몸을 감쌌다.

    “아차! 비석에 미궁을 부수면 안 된다고 적혀 있었지!”

    목숨을 건 싸움에 집중하느라 잊고 있던 규칙이 그제야 생각났다.

    이는 거청천도 마찬가지라 그 역시 하얀 빛에 휩싸여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사람은 하얀 빛에 휩싸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 * *

    정신이 돌아왔을 때, 심협은 푸른 바다 위의 상공에 있었다.

    주위는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뿐이었고, 하늘에는 하얀 구름과 눈부신 태양이 높이 떠올라 있었다.

    모든 금제가 사라진 터라 신식을 다시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천언궁에서 나온 건가?”

    심협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천언궁을 나왔으니 목숨은 건졌지만, 그곳에 있던 수많은 보물이 아른거렸다. 천선미궁의 지도를 얻었으니 거침없이 휩쓸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쫓겨나 버렸으니 아쉬움에 속이 쓰렸다.

    고개를 들어 먼 허공을 바라보니 거대한 백옥 건물이 허공에서 태양에 반사되어 금빛으로 번쩍였다. 마치 선각(仙閣)의 천궁 같았다.

    건물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한눈에 저 백옥 궁전이 천언궁임을 알 수 있었다.

    심협은 백옥 궁전으로 향하려다가 갑자기 굳은 얼굴로 고개를 홱 돌렸다.

    멀리서 초록색 검광이 번개처럼 반짝였다. 거청천이 초록색 대검을 타고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힘겹게 천언궁까지 들어갔는데 진선 초기의 애송이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쫓겨나고 말았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천언궁에서 쫓겨날 때 훼멸명왕을 가지고 나오지 못한 데다 이미 신식의 소모가 컸던 심협으로서는 거청천을 상대할 힘이 없었기에 망설임 없이 도망쳤다.

    “어딜 도망가려 하느냐! 하뇌참(夏雷斬)!”

    거청천이 보라색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뇌전 같은 검기가 대검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바람과 천둥 같은 굉음을 내며 심협 주위를 뒤덮었다.

    그 직전에, 일곱 자루의 비검이 심협의 발아래 나타나더니 기다란 검홍으로 변해 그를 감싸고 번개처럼 날아갔다. 평범한 진선 수사에 비하면 몇 배나 빠른 속도라 단숨에 뇌전 검기의 영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를 본 거청천은 서둘러 전력으로 초록색 대검을 발동했지만, 심협의 검홍이 더 빨랐고, 두 사람의 거리는 빠르게 벌어졌다.

    “게 섯거라!”

    푸른 빛이 번쩍이더니 푸른 갑옷이 나타나 거청천의 커다란 몸을 뒤덮었다.

    갑오의 등에서 언문으로 빼곡하고 푸른 빛이 감도는 날개가 자라났다. 이어서 그 날개들을 펄럭이자 푸른 빛이 폭발했고, 거청천의 모습이 갑자기 흐릿해지더니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날아와 심협을 따라잡았다.

    “대풍익(大風翼)?”

    신식으로 상황을 감지한 심협은 거청천의 등에 자란 푸른색 날개를 한눈에 알아봤다. 바로 복공이 사용했었던 대풍익이었다. 더욱이 복공이 시전했을 때보다 훨씬 더 정교했다.

    허나 심협도 두려울 게 없었다. 열여섯 자루의 순양검을 만든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이 비검의 어검비행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지금 처음으로 써볼 참이었다.

    심협은 주문을 읊고는 결인하여 몸에서 아홉 자루의 순양검을 전부 소환했다.

    열여섯 자루의 비검이 하나로 어우러지자 심협 밑의 검홍이 갑자기 두 배로 커졌고, 속도도 배나 빨라져 다시 거청천을 저 멀리 따돌렸다.

    “어떻게 저런 속도를!”

    거청천은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몇 가지 수단이 남긴 했지만, 효과가 그리 좋지 않으니 심협을 따라잡긴 힘들 터였다. 달갑지 않지만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편, 심협은 중간에 몇 번 방향을 바꿔가며 전력으로 반 시진을 날았고, 법력이 거의 다 소모된 후에야 작은 섬에서 잠시 멈췄다.

    이 섬은 폭이 5리 정도에 불과했고, 흔한 나무들만 자라고 있어 특이한 점은 없었다.

    작은 산 아래 은밀한 곳에 동부를 파고 또 몇 겹의 금제를 설치한 뒤에야 비로소 심협은 안심하고 밀실 안의 돌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졌다. 훼멸명왕 언갑을 조종하느라 신혼의 힘을 거의 다 써서 정신이 너무도 지쳐 있었기에 더는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비극이 건곤대에서 나와 호법을 섰다.

    * * *

    심협은 꼬박 사흘간 잠을 잤고, 나흘 째에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그사이 소모한 신혼의 힘도 완벽하게 회복됐다.

    그동안 거청천은 나타나지 않았는데,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찾아내지 못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심협은 섬 앞바다 상공에 떠서 주위를 한참 둘러보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갑자기 붉은색 긴 검광이 나타나 휙 하고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배가 쩍 갈라진 해수의 시체가 물 위로 떠올랐다. 이 해수는 생김새가 매우 괴상했다. 악어처럼 생겼는데, 양쪽 볼에는 여덟 개의 촉수가 달려 있었고, 꼬리 끝에는 매우 단단해 보이는 검은 공 같은 물건이 달려 있었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고 이 해수를 이리저리 살폈다.

    ‘참으로 기이한 바다로군. 영기가 매우 짙은데 바닷속에는 생물이 많지 않고, 그 종류도 적다.’

    심협은 천언궁에서 여기까지 도망쳐 오는 동안 이 해역을 관찰했는데, 지금까지 발견한 것은 해수가 다섯 종에 불과했다. 이토록 영력이 짙은 곳이라면 요수가 그 수도 많고 다양해야 할 터인데 이리 황량하다니, 기이한 일이었다.

    이 바다에는 이 악어같이 생긴 해수가 가장 많았다. 비록 몸이 크고 살이 단단하긴 해도 이 해수는 요물은 아니었다. 다른 해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심협은 식견이 넓은 편이었고 삼계 곳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눈앞의 바다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이곳은 삼계의 모처가 아니라 거대한 비경일까?”

    화령자가 소요경 안에서 나왔다.

    섭채주는 소요경에서 수련하며 한계 돌파를 시도 중이라 나오지 않았다.

    “그럴지도……. 한데 여기가 어디든 우선 좀 살펴봐야겠어. 계속 거청천을 주시하고 있다가 접근하면 바로 알려줘. 그 자심지화는 얼마나 지속되는 거지?”

    “그건 걱정 마라. 자심지화는 내가 제어할 수 있어서 이미 각인으로 바꿔놓았으니까. 몇 년 안에는 사라지지 않으니 접근하면 내가 바로 알 수 있을 게야.”

    화령자가 웃으며 말하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검을 타고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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