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12화 (912/1,214)
  • 912화. 비밀 열쇠

    대청은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한데 가장 안쪽 돌 탁자에 위의 검은 철제 상자는 그윽한 검은 빛을 뿜어내며 소요경으로 들어가지 않고 버텼다.

    “이건 뭐지?”

    심협은 다가가 상자를 들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상자는 돌 탁자에 붙어 있었고, 탁자도 바닥과 연결되어 있어서 들 수가 없었다.

    심협은 매우 의아해하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나서 순양검으로 내리쳤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검광과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상자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심협이 더 자세히 살펴보려는 순간, 철제 상자의 검은 빛이 갑자기 파동을 일으키더니 빠르게 서책 모양의 광막으로 변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비밀 열쇠 금제?”

    심협이 중얼거렸다.

    화령자에게서 이런 종류의 금제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보통 밀실 혹은 보물을 지키기 위해 사용되는데, 정확하게 맞는 열쇠로만 열 수 있다. 비밀 열쇠는 주문이나 문자 혹은 그림으로, 강제로 열려고 하면 금제가 폭발해 안에서 지키고 있는 보물이 망가진다.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손에서 금빛을 일으켜 서책 광막에 언(偃)자를 썼다. 글자는 빠르게 사라졌으나, 광막과 철제 상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열쇠가 아닌 것이다.

    좀 더 생각한 끝에 그는 다시 광막에 ‘천언궁’을 썼지만, 역시 아니었다.

    심협은 진중한 얼굴로 여러 번 써봤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 상자의 주인이 특수한 열쇠로 설정한 모양이로군. 포기해야겠어.”

    그렇게 욕심을 버리고 돌아서 나가려던 순간,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그가 다시 돌아서더니 서책 광막에 복잡한 그림을 그렸는데, 바로 지도 두루마리 가장 마지막에 있던 그림이었다.

    그림이 완성되자 서책 광막이 갑자기 강렬하게 파동을 일으키더니 검은색 철제 상자 안으로 들어갔고, 상자 주위에 있던 다른 검은 빛도 모두 사라졌다.

    뒤이어 상자 뚜껑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자동으로 열렸다.

    심협은 흥분을 억누르며 안을 들여다봤으나, 이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상자 안에는 반 척 길이의 검은색 쇠막대가 들어 있었다. 막대에는 수많은 문로가 새겨져 있었고, 어느 곳은 튀어나와서 마치 열쇠 같았다.

    “열쇠? 어디에 쓰는 거지?”

    심협은 그것을 꺼냈다.

    그러자 그 순간, 돌 탁자 옆의 푸른색 벽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수많은 청회색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몇 호흡 뒤, 벽에는 굳게 닫힌 청동 대문이 나타났고, 그 높이가 30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문이었다.

    심협이 대문 정중앙을 바라보자 그곳에 솥뚜껑만 한 둥근 물건이 튀어나와 있었다. 다시 그가 손을 흔들자 둥근 솥뚜껑 같은 것이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그는 수중의 열쇠와 구멍을 번갈아가며 보다가 끼워 넣었다. 구멍과 열쇠는 꼭 맞아떨어졌다.

    “역시 여기였군!”

    심협이 크게 기뻐하며 손을 돌렸다.

    찰칵!

    청동 대문에서 기계 작동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몇 호흡 뒤에 멈추었고, 두껍고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

    심협은 깜짝 놀랐다. 청동 대문 뒤에는 더 크고 넓은 거대한 대청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수백 장 높이에 산처럼 언갑 거인이 서 있었다. 이 거인의 머리는 거대한 대청의 천장에 거의 닿았다.

    언갑 거인의 몸은 황금색이었고, 가슴과 얼굴에는 은백색 기이한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두 개의 커다란 눈은 섬뜩한 보랏빛으로 빛났으며, 거대한 두 손에는 거대한 화홍색 도끼와 검은색의 거대한 추(錘)가 들려 있었다.

    언갑의 모습은 하늘에서 태어난 살신(煞神) 같았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위압과 섬뜩함은 보는 이들을 두렵게 했다.

    “엄청 무서운 언갑이군그래.”

    심협이 숨을 들이켜며 혼잣말을 했다.

    이 언갑 거인의 얼굴에 그려진 무늬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강렬하기 그지없는 살의를 뿜어내고 있어서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두 눈의 보랏빛은 마치 뇌전과 폭풍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도끼와 거대한 추에서는 천지를 파멸할 것같은 무서운 위세가 느껴졌다.

    심협은 언갑 거인을 보다가 오직 천기성의 경천지계만이 이 언갑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천지계와 조금 닮은 것도 같은데……?”

    금색 언갑을 살펴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때, 그의 몸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무명 장로의 영패가 저절로 날아가 찰칵 하며 거대한 언갑의 가슴에 끼워졌다. 그러자 금색 부분이 밖으로 튀어나오더니 숨겨져 있던 문이 나타났다.

    심협은 이 상황에 멍하니 있다가 바로 평정을 되찾고 날아서 언갑 거인의 가슴에 있는 숨겨진 문을 잡아당겼다.

    타탁!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1장 크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사방은 매끄러운 거울 같은 옥벽으로 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금색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 가득한 알록달록한 부문은 주위의 옥벽과 연결되어 있어서 매우 신비로워 보였다.

    “여기가 언갑을 조종하는 곳인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안을 살펴본 후, 위험해 보이지 않자 천천히 들어갔다.

    그곳에 들어선 심협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곳에 들어오니 보탑의 어느 곳에나 있던 금신(禁神) 금제가 사라져서 그의 신식이 자유롭게 몸 밖으로 뻗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탑에 들어온 이후로 그의 신식은 줄곧 몸속에 굳게 갇혀 밖으로 뻗어 나가지 못하여 마치 몸에 꽉 끼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매우 불편했다. 그런 답답함이 사라졌으니 그는 마음껏 신식을 운공하여 펼쳤다. 심지어 신혼 혼사까지 섞어 금색 의자와 주위의 벽옥과도 접촉했다.

    금색 의자에서 갑자기 눈부신 금빛이 번쩍이더니 흡입력이 흘러나오자 심협은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의자에 빨려 들어갔고,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위쪽 옥벽이 갑자기 갈라지더니 금색의 둥근 공이 하나 떨어져 금색 의자 앞에 떠올랐다. 그 주위는 신비한 언문으로 가득했다.

    심협은 깜짝 놀라 바로 천두금준으로 몸을 보호했고, 잠시 후 아무런 위험도 없는 듯하자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찬찬히 앞에 있는 금색 공을 살폈다.

    “이게 뭐지?”

    그가 조심스럽게 신식을 운공하여 금색 공을 살펴보려 하자 공의 문로가 갑자기 전부 번득이더니 빠르게 그의 신식을 흡수했다.

    한두 호흡이 되기도 전에 심협의 신식이 절반이나 흡수됐다.

    심협은 깜짝 놀라 전력으로 신식을 거두려 했으나, 금색 공의 흡입력에 대적하지 못해 신식은 계속해서 빠르게 흡수되었다.

    “이 괴물 같은 놈! 멈춰!”

    심협이 낮게 외치며 전력으로 부주진신법을 운공하자 미간에서 정광이 번득였다.

    머릿속 신혼의 힘이 정광을 발하더니 거대한 부주산이 나타나 금색 공의 흡수를 제압했다. 그러자 금색 공의 흡입력이 빠르게 사라졌고, 이내 완전히 잠잠해졌다.

    그때, 갑자기 담담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나름 괜찮군.”

    심협이 두 눈을 번쩍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냐?”

    주위는 조용했다. 아무런 대답도, 어떤 수상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착각인가?’

    심협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헛!”

    앉아 있는 금색 의자와 수중의 금색 공에서 빛이 뿜어지더니 방대한 금제가 심협의 몸속으로 들어와 그의 신혼의 힘과 서로 연결되었다.

    심협은 갑자기 이 금색 공을 통해 자신과 거대한 언갑이 서로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 언갑을 간신히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와 동시에 그도 이 금색 언갑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름은 훼멸명왕(毁滅明王). 그 힘은 태을 존재를 한참 능가하여 천존 경지에 거의 근접한 정도였다.

    “천존급에 근접한 언갑이라……. 천기성의 경천지계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절정의 언갑이라 할 수 있겠어!”

    심협이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경지가 너무 낮았고, 특히 신식이 충분히 강하지 않아서 이 훼멸명왕 언갑의 모든 힘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거청천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그때, 화령자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심협, 문의 금제는 간신히 복구했는데, 거청천이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어. 길어야 일각 정도면 도착할 거야!”

    심협은 그 말에 깜짝 놀랐지만, 훼멸명왕을 보고는 안심했다.

    “걱정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

    그의 침착한 목소리에 화령자는 속으로 의아했지만, 바로 명화연로로 들어가서 안쪽으로 날아가 청동 대문 안에 도착했다. 신서도 따라서 들어왔다.

    앞에 있는 거대한 금색 언갑을 본 화령자는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고, 명화연로는 그 자리에 계속 멈춰서 감히 다가오지도 못했다.

    반면 신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훼멸명왕의 가슴에 있는 숨겨진 문으로 들어와 심협에게 다가왔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 언갑은 내가 조종하고 있으니까. 들어와.”

    심협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오자 화령자도 그제야 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살펴봤다.

    심협이 결인하자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훼멸명왕의 온몸에서 눈부신 금빛이 번득였다. 동시에 몸에 새겨진 영문이 빠르게 꿈틀거리면서 산처럼 거대한 몸이 빠르게 줄어들어 단숨에 10여 장 정도가 되었다. 수중의 거대한 도끼와 거대한 추도 함께 줄어들었다.

    이것이 천존급 언갑의 특수 능력이었다. 이 정도 급의 언갑은 이미 사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과 비슷하여 자유롭게 언갑의 크기를 제어할 수 있었다.

    비록 많이 축소되었지만, 훼멸명왕의 몸을 감도는 무서운 기운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심협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언갑을 발동하여 밖으로 나갔고, 금세 천공전 대문 뒤에 도착했다.

    그는 언갑 안의 금제를 통해 밖을 내다봤다. 훼멸명왕의 두 눈에서 빛이 강하게 빛나더니 실제 같은 보랏빛이 날아가자 천공전 대문이 갑자기 반투명해졌다. 이어서 바깥의 상황이 훤하게 보였다.

    그때, 거청천이 멀리서 빠르게 날아와 천공전 입구에 도착했다.

    곧 큰 싸움이 일어날 것 같자 화령자는 주위의 언갑을 빤히 바라보다가 소요경 안으로 들어갔다.

    천공전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위의 금제도 처음처럼 복구되어서 마치 아무도 들어온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천공전 금제가 완전무결한 것을 보자 심협을 놓쳐서 우울해져 있던 거청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곧장 머리 위의 하얀색 부적을 거두었다.

    이 부적은 미궁의 통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해주지만, 금석각이나 천공전 같은 곳에 설치된 금제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거청천은 금제를 파훼하려 들지 않고 바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네 개의 검광이 그의 몸에서 나왔고, 네 자루의 대검 중에는 아까 사용했던 하얀색 대검도 있었다.

    다른 세 자루의 검도 외형은 모두 똑같고 색깔과 기운만 달랐다. 초록, 보라, 노랑 세 가지였다.

    거청천이 결인하고 발동하자 흰색, 초록, 보라, 노랑 네 가지 색의 검광이 대검들에서 번득였고, 그의 끊임없는 술법에 점점 강력해졌다. 네 개의 검광은 서서히 합쳐져 기이한 무늬가 만들어졌다. 또 다른 검진이었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검기가 폭발하자 이전에 심협과 싸울 때 사용했던 검기 검진보다 몇 배나 강력했다.

    한편, 훼멸명왕의 시야를 통해 바깥 상황을 지켜보던 심협의 두 눈이 차갑게 반짝였다.

    그는 거청천이 저렇게 많은 검진 신통에 능통할 줄은 몰랐다. 아까 곧장 도망치길 다행이었다. 맞붙어 싸웠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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