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11화 (911/1,214)
  • 911화. 낙서 지도

    거청천은 금방 갈림길까지 쫓아왔다. 현재 그의 머리 위에는 한 장의 부적이 떠 있었고, 그 아래로 파문이 일어나 그를 안개처럼 만들었다. 허상처럼 변한 그는 그대로 통로의 돌벽을 뚫고 지나갔기에 천선미궁은 그에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천언궁은 거씨 가문 후손들이 대대로 찾아 헤매던 성지로, 이곳에는 거원이 평생토록 숨겨온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세상을 놀라게 했던 거원의 언술은 모두 이 천언궁에서 나온 것으로, 그나마도 전부 밝혀진 게 아니라서 천언궁에는 여전히 더 심오한 언술 전승이 남아 있었다.

    거원의 수기(手記)에는 천언궁에 대해 많은 것이 적혀 있었는데, 이 하얀 부적도 거원의 기록을 보고 만든 것으로, 두 번째 관문 천선미궁 대비용이었다. 다만 이 부적은 사용 횟수가 제한적이라 본래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심협이 여기서 날뛰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기에 최대한 빨리 제거해야 했다!

    한데 그때, 소매 안에 숨어 있던 하얀색 작은 짐승은 좌우 양쪽을 두리번거리며 갑자기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빨리 추적 수단을 알아채다니, 심협에게 어떤 수단이 있나 보군.”

    거청천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언갑 공을 꺼내 던졌다. 언갑 공은 빠르게 커져서 눈 깜짝할 사이에 거청천과 똑같이 생긴 언갑인(偃甲人)으로 변했다. 이는 특수한 언갑이라 신혼의 힘으로 조종할 필요도 없었고 전투력도 상당했다.

    거청천이 머리 위의 부적을 결인하자 하얀 빛이 언갑 거청천에게도 떨어졌다. 그것의 몸도 안개 같은 허상으로 변했다.

    두 사람은 양쪽 통로로 나뉘어 쫓아갔다.

    거청천 본인이 빠르게 수백 장 정도 나아가자 심협의 법력 분신이 통로에 조용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손에는 푸른색 외투가 들려 있었다.

    거청천은 분신을 쫓아왔다는 사실에 실망하지 않고 그 푸른색 외투를 보고는 오히려 환하게 웃었다. 대검의 하얀 빛이 바로 법력 분신의 목을 베었고, 검광이 바로 그 푸른색 외투를 휘감았다.

    그에게는 공간을 넘어 살인할 수 있는 저주 신통이 있는데, 반드시 상대가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을 매개로 삼아야 했다. 이 심협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외투가 있으면 그 술법을 시전할 수 있을 터. 비록 죽이지는 못해도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을 터였다.

    한데 검기가 그 푸른색 외투에 접근한 순간, 외투에서 보라색 불꽃이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옷을 잿더미로 만들고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거청천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잿더미를 한참 노려보더니 몸을 돌려 다른 냄새가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다만 그는 급하게 움직이느라 한 줄기 보랏빛이 조용히 검망에 스며들어 대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성공했나?”

    통로에서 빠르게 전진하고 있는 심협의 몸은 허무로 변한 상태였다.

    그는 연연나금의를 발동하여 행적을 감추고 체취와 법력 차단을 차단하려 애쓰고 있었다.

    매우 현묘한 연연나금의를 전력으로 발동하여 미궁의 길을 통과했다. 그러자 미궁은 더는 변하지 않았다. 이곳의 금제가 그를 감지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흥! 내가 직접 나선 일인데 착오가 있을 리가 있나. 거청천이 쫓아오지 않는 걸 보니 그자의 추적술로는 연연나금의를 입은 널 찾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안전해진 건 아니니 서둘러 그자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방법을 찾아라.”

    화령자가 거만하게 말했다.

    옷을 미끼로 함정을 파 미약한 자심지화가 거청천의 법보 안으로 들어가게 한 것은 화령자의 생각이었다. 거청천은 실력이 강하지만, 심계(心計)를 논하자면 얼마나 살아왔는지 모르는 화령자를 따라올 수는 없었다.

    화령자의 닦달에 심협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3백여 장을 날아가 모퉁이를 돌자 전방의 통로가 갑자기 배로 넓어지더니 통로 한쪽 벽에 푸른색 전문(殿門)이 나타났다. 문에는 현판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큰 글자로 ‘금석각’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미 반쯤 열린 문에는 강제로 부순 흔적이 보였다. 거청천의 소행이 분명했다. 아마도 안의 물건은 다 가져갔으리라.

    “잠깐! 금석각? 아까 그 두루마리에 적혀 있던 곳이잖아. 설마 그 두루마리의 낙서가 천선미궁의 지도인가?”

    심협은 퍼뜩 떠오른 생각에 계속해서 이동하면서 두루마리를 꺼내 자세히 살펴봤다.

    그는 본래 이 낙서 같은 지도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천선미궁의 변화무쌍한 통로를 겪고 나서 다시 보니 전혀 달랐다. 어지럽게 그려진 길은 미궁의 수많은 변화였고, 그것이 지도에 하나하나 열거되어 있는 것이었다.

    “진짜 천선미궁의 지도였던가!”

    그때, 또 하나의 길이 나타났다.

    심협은 지도의 표시를 따라 앞으로 날아갔다.

    “이 지도대로라면 이 길은 매우 길다. 이 길이 끝나고 왼쪽으로 두 번 돌면 또 다른 표시가 있는 곳, 천공전(天工殿)이 나오겠군.”

    심협은 지도와 비교하며 빠르게 나아갔다.

    길은 실제로 매우 길어 한참을 날아간 후에야 그 끝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대로 왼쪽으로 두 번 돌았는데, 두 번째 돌 때 통로를 열지 않고 지도에 그려진 선대로 반대쪽으로 우회했다.

    일각 뒤, 심협은 암홍색 전문 앞에 도착했다. 문 위에는 ‘천공전’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진짜 천공전이잖아! 진짜 천선미궁의 지도였어.”

    “엣! 진짜 지도였다고? 도대체 누가 그 어두운 통로에 숨겨 놓은 거지? 이전에 통과했던 사람인가?”

    화령자도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심협은 이걸 누가 남겼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지도만 있으면 자신의 언술로도 천선미궁을 순조롭게 통과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미궁의 지도 가장 안쪽에는 붉은색으로 표시된 출구가 있었는데, 그곳이 천언궁 3층으로 가는 곳 같았다. 그는 반드시 거청천보다 먼저 그곳에 가야 했다.

    그는 가볍게 숨을 내쉬어 가슴 속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앞에 있는 암홍색 대전을 바라봤다.

    “천공전? 언갑을 만드는 곳인가?”

    심협은 앞에 있는 문을 자세히 바라봤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붉은빛이 감돌았다. 아직 거청천이 찾지 못한 게 확실했다.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작은 은색 쥐가 소매에서 나타났다. 바로 신서였다.

    신서는 은빛으로 변하여 대전 쪽으로 날았다.

    은빛이 얼마 날기도 전에 전방의 빛의 강해지더니 붉은색 광막이 나타나 신서의 둔행을 막았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고 망설임 없이 소매를 흔들었다. 아홉 자루의 순양검이 날아가며 빙글빙글 돌더니 서로 하나로 합쳐져 10장 크기의 붉은 대검으로 변해 곧바로 광막을 내리쳤다. 구검합일 신통이었다.

    뒤에서 거청천이 언제 쫓아올지 몰랐기에 천천히 금제를 파훼할 틈이 없었다. 구검합일 신통이 안 되면 바로 번천인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파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붉은색 광막에 긴 구멍이 생겼지만,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견고한 금제로군!”

    심협이 중얼거리고는 바로 번천인을 꺼낼 때, 옆에서 신서가 흥분하여 울부짖더니 광막의 구멍으로 날아가 다시 은빛으로 변하여 문 안으로 사라졌다.

    이를 본 심협은 잠시 기다렸다.

    몇 호흡 뒤, 대문의 붉은색 광막이 갑자기 빠르게 어두워지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삐걱거리며 대문에 틈이 벌어졌다.

    심협은 얼른 문을 밀고 들어간 뒤 다시 닫았다.

    대전 안에는 대청이 있었는데, 크기는 30여 장이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를 커다란 금속 상자가 마치 창고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 가장 안쪽에는 또 하나의 문이 있었는데, 마치 다른 공간으로 연결될 것만 같았다.

    대문 오른쪽에는 붉은색 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법진의 한쪽 구석이 물어뜯은 것처럼 망가져 있었다.

    신서가 법진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심협을 향해 신이 난 것처럼 찍찍 거렸다.

    “잘했어!”

    심협은 웃으며 칭찬한 뒤 금색 단약을 신서에게 던져줬다.

    이것은 특수한 단약으로, 이름은 연수단(煉獸丹)이다. 상고 시기 맹수를 조련하던 문파의 특수 단약으로, 사람이 먹는 것이 아니라 기르는 영수에게 먹였다.

    심협은 화령자가 준 단방대로 단약을 한 무더기 만들어서 신서를 조련했다.

    신서는 입을 벌려 단약을 받고는 한입에 삼키더니 행복한 듯 찍찍거렸다.

    “나는 안쪽을 살펴볼 테니까 너는 이 법진을 복구해줘. 혹시라도 거청천이 오면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 수 있을지도 몰라.”

    심협이 명화연로를 꺼내놓으며 말했다.

    “알았다.”

    화령자는 주저 없이 답하고는 명화연로에서 나와 붉은색 법진을 살펴봤다.

    심협은 금속 상자 옆으로 가서 검으로 사슬을 베고는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커다란 암금색 광석이 들어 있었다.

    “능소지동!”

    그가 깜짝 놀라 다시 다른 상자를 열었다. 거기에도 똑같이 능소지동이 들어 있었다.

    능소지동은 언갑을 만들 때 사용되는 중요한 영재라 천기성에서도 많이 필요로 했다. 그런 물건을 여기서 이렇게 많이 찾았으니, 천기성에 팔면 꽤 많은 선옥을 벌 수 있을 터였다.

    심협은 바로 소요경으로 금속 상자들을 전부 거뒀다. 소요경의 공간이 매우 넓어서 다행이었다.

    커다란 금속 상자를 챙긴 그는 대청 안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안쪽의 문을 통과하자 눈앞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더 커다란 백옥 대청이 나타났다.

    이곳에는 언갑을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가 있었고, 대청 양쪽에는 낮고 기다란 돌 탁자가 있었다. 그 위에 수많은 언갑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이전에 봤던 청사 언갑, 은랑 언갑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상한 종류의 언갑도 많았다.

    언갑 외에도 수많은 거대한 창이며 봉, 도끼 같은 언갑 무기가 있었는데, 언문으로 빼곡한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심협은 이미 천기권을 숙독하여 많은 언갑과 언갑 무기를 알고 있었는데, 여기 대청에는 천기권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물건들이 많았다.

    “설마 이 세상에 언술로 천기성을 뛰어넘은 문파가 있는 건가?”

    심협이 속으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중, 시선이 갑자기 8장 길이의 금색 대포로 향했다.

    이 물건은 그의 신장화포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는데, 조금 더 크고 언문도 더 복잡했다.

    “설마…… 신장화포의 강화판인가?”

    심협이 속으로 추측하며 손을 휘둘러 금빛으로 대포를 감쌌다.

    이 대포는 생각보다 무거워서 지금 그의 법력으로도 들어 올리기가 조금 버거웠다.

    이곳은 신식을 펼칠 수 없었기에 금색 대포의 내부를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다. 그는 신장화포를 열었던 방법대로 대포의 끝을 두 번 때리자, 찰칵 하면서 둥근 홈이 나왔다. 언정이 들어 있지 않아서 텅 비어 있었다.

    다만, 이 홈의 구조상 신장화포에 넣는 고급 언정 다섯 개가 필요해 보였다.

    “이걸 봐서는 고급 언정 다섯 개가 있어야 발동이 되나 보군. 그렇다면 위력은 신장화포 이상이겠어.”

    심협은 금색 대포 끝에 있는 원형 홈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10여 개의 고급 언정이 있어서 바로 발동할 수 있었지만, 이 탑 안의 금제가 신식을 막고 있으니 안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안 그랬으면 거청천을 상대로 위력을 시험해봤을 것이다.

    심협은 아쉬운 듯 혀를 차고는 금색 대포를 거뒀다.

    지금은 긴박한 상황이니 하나하나 다 살펴볼 시간이 없었기에 그는 바로 소요경으로 모든 언갑과 무기 등을 전부 거뒀다.

    언젠가 거청천이 여기도 찾아올지 모르니 이런 진귀한 언갑을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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