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10화 (910/1,214)
  • 910화. 목숨 걸고 도망치다

    천선미궁에 들어온 지도 벌써 한 시진이 지났다. 청석 통로에는 종종 언갑만 있었을 뿐 다른 위험은 없었기에 속도를 좀 높일까 고민하던 때였다.

    앞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는데, 매우 가벼운 것이 여태 만났던 언갑과는 확연히 달랐다.

    심협은 재빨리 연연나금의를 발동하여 행적을 지우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전방에 나타난 자는 바로 거청천이었다.

    “허! 심협, 너도 여기로 전송되었구나.”

    거청천이 흠칫 놀라더니 비릿하게 웃었다.

    “거 도우, 당신도 여기 있을 줄은 몰랐군. 벌써 천언궁 주인의 전승을 얻은 건가?”

    심협은 무척 놀랐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이곳이 천언궁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

    거청천이 돌연 차가운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심협은 그 말에 어리둥절했다.

    ‘거청천은 우리처럼 1층에서부터 올라온 게 아닌가? 오는 도중에 적지 않은 곳에 천언궁이라는 표식이 있었는데…….’

    게다가 거청천이 천언궁이란 소리에 보인 반응으로 미루어 그는 이미 이곳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걸 내가 알려줄 필요가 있나?”

    심협은 머리를 굴리며 대답했다.

    “천언궁은 우리 거씨 가문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성지다. 솔직하게 대답하기 싫다면 죽는 수밖에!”

    거청천이 차가운 눈빛으로 살기를 내뿜으며 설백의 대검을 꺼냈다.

    거대한 검기가 심협 머리 위에 나타나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심협은 이미 거청천과 겨뤄봤기에 당황하지 않고 현황일기곤을 들어 막았다.

    한데 방금 이초(二招)에 심협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거청천의 움직임이나 대검의 위력 모두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방금의 이초로 심협의 오른팔이 검기에 베여서 피가 솟구쳤고, 천두금준도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심협은 서둘러 발천난봉을 시전하여 간신히 뒤로 물러났다.

    “저번에는 실력을 숨긴 건가?”

    심협이 거청천을 노려보며 물었다.

    “당연하다. 진선 초기의 애송이에게 전력을 다했겠느냐? 조용히 숨어 있었으면 모를까, 죽으러 직접 내 앞에 나타났으니 여기서 끝내주마!”

    거청천이 비웃더니 대검에서 한기를 강하게 발하자 통로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경도설참(驚濤雪斬)!”

    거청천이 크게 외치며 대검을 휘둘렀다.

    온 하늘에 날리던 눈발이 갑자기 일제히 뭉치더니 문짝만 한 검기로 변하여 성난 파도처럼 심협에게 쏟아졌다.

    청석 통로는 본래 넓지 않았고, 하얀 검기의 범위는 넓어서 피할 곳이 없었다.

    심협은 주위의 온도가 갑자기 내려갔다는 느낌을 받았고, 몸도 무거워져서 마치 늪에 빠진 것 같았다. 게다가 주위는 천지영기의 연결이 완전히 차단됐다.

    허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양손을 움직여 전력으로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빼곡한 곤봉의 허상이 주위에 나타나 천지를 뒤덮은 검기와 서로 충돌하자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청천이 차갑게 비웃고는 빠르게 검결을 맺자 대검이 갑자기 떨렸고, 통로 안의 하얀색 검기가 빙글빙글 돌더니 하얀 비검들로 변했다. 비검들은 질서정연하게 나열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정묘한 검진을 이루었다.

    매서운 기운의 검기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통로를 가득 채웠고, 곧이어 검광 검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검진이 일제히 심협을 향해 날아들었다.

    심협의 양팔은 어지러운 검흔들로 가득했고, 이 상처들은 얼어붙어 한기가 경맥으로 파고들었다.

    설화검진(雪花劍陣)은 검기로 만들어진 것이라 견고하지는 않았기에 일격을 가하고는 사라졌다.

    “오라버니!”

    섭채주가 소요경에서 심협의 상태를 보고는 깜짝 놀라 바로 주문을 외우고 양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버들잎이 들어 있는 초록빛이 몸에서 날아가더니 소요경을 뚫고 지나 심협의 몸으로 들어갔다.

    심협의 몸에서 초록 빛이 떠오르더니 상처가 빠르게 치유되었고, 법력도 많이 회복되었다.

    “보타산의 양류감로(楊柳甘露)! 공간 법보를 갖고 있구나! 내놔라!”

    거청천이 눈을 번쩍이더니 하얀색 대검을 다시 휘둘러 또다시 수많은 눈꽃을 만들어냈다.

    심협은 섭채주의 도움으로 기운을 차려 몸을 뒤집으며 일어나더니 주저 없이 돌아서 멀리 날아갔다.

    거청천이 지금 보여준 실력은 태을기 반열에 든 강자라 할 만했다. 설령 순양금광검진과 번천인을 사용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천살시왕도 태을기 실력이지만, 보탑 안의 금제가 신혼에 큰 제한을 주니 여기서는 제어하기 힘들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그는 도망치기로 했다.

    거청천이 바로 쫓기 시작했지만, 통로에 갑자기 백 마리 용이 슬프게 우는 듯한 피리 소리가 울려 퍼져 마음으로 파고들더니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거청천은 거씨 가문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온갖 고생을 다 했고, 수없이 좌절했다. 이 피리 소리에 그 기억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흔들렸고, 일순 몸이 굳었다.

    심협은 그 틈에 설화의 영역에서 벗어나 몸에서 초록 빛을 뿜어내며 을목선둔을 시전했다. 여기서는 신식을 펼칠 수 없기에 둔술로 도망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절대 쫓아올 수 없으리라.

    한데 부근의 허공에서 하얀 빛이 치솟아 그가 영력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제길!’

    심협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고는 두 다리에서 달빛을 뿜어내어 사월보와 이형환영, 열석보 등 신법(身法)을 닥치는 대로 시전하여 환영처럼 순식간에 저 멀리 달아났다.

    “어딜 도망가느냐!”

    신지가 회복된 거청천이 버럭 호통을 치며 쫓아왔다. 그의 두 다리는 푸른 빛으로 번득였다. 아마도 신고 있는 신발이 어떤 보물인 것 같았다. 그는 매우 빨라서 두 사람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깜짝 놀란 심협은 앞의 통로가 얼마나 위험한지 신경 쓰지 않고 몸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 순양검을 타고 더 빠르게 날아갔다.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은가?”

    거청천이 차갑게 비웃더니 두 발에서 푸른 빛을 번쩍이고는 빠르게 회전했다. 그러자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푸른색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소용돌이를 타고 날아오른 그는 귀신 같은 푸른색 환영이 되어 다시 거리를 좁혀왔다.

    한데 그때, 심협이 갑자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금색 뇌전이 허공을 뚫고 나타나더니 빼곡하게 시야를 가렸다.

    거청천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하얀 대검으로 허공을 베자 하늘을 가득 메운 검기가 다시 나타나 순식간에 금색 뇌전들을 전부 베어버렸다.

    앞의 통로에 세 갈래 길이 나타나자 심협은 빠르게 가운데 통로로 들어섰다. 그러자마자 통로에서 굉음이 울리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이를 본 거청천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멈추고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작은 개처럼 생긴 하얀색 짐승이 나타나 코를 킁킁거리더니 거청천을 향해 짖었다.

    거청천은 다시 작은 짐승을 거두고는 옆의 통로로 날아갔다.

    통로에서 비검을 타고 날던 심협은 연달아 몇 개의 통로를 지나고 나서야 일단 멈췄다.

    이 천선미궁의 지형은 끊임없이 바뀌기에 한 번 떨어지면 다시 만날 수 없다. 이렇게 멀리까지 도망쳐 왔으니 태을기 고수인 거청천이라 해도 쫓아오지 못할 것이다.

    “화령자, 아까 거청천이 시전한 게 무슨 신통이야? 검기를 검진으로 바꾸던데…….”

    심협이 몸의 상처를 살피며 물었다.

    “나도 검진은 잘 모른다. 다만 저자는 너무 강해서 지금의 넌 적수가 안 되니 최대한 멀리 도망가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지.”

    심협은 치료 단약을 먹고는 다시 날아가려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그는 만일을 대비해 통로마다 천마안을 남겨두었다. 체내의 마기는 방해가 될 뿐이라 당장이라도 다 쓰고 싶었으니 아껼 쓸 이유도 없었다.

    그 천마안을 통해 거청천이 연달아 통로마다 나타나 빠르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심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쫓아올 수 있다니!’

    그는 더 이상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날아가는 동시에 지나가는 통로마다 계속해서 천마안을 남겼다.

    “왜 그러냐? 그놈이 쫓아오는 거냐?”

    화령자가 심협의 지금 모습을 보고는 물었다.

    “무슨 수단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쫓아오고 있어.”

    이 공간은 각종 금제가 가득하여 천마안 효과가 많이 줄어들었기에 먼 곳의 상황을 간신히 느끼는 정도였다. 이전처럼 목소리를 듣거나 화면을 볼 수 없으니 거청천이 무슨 수단으로 쫓아오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천선미궁은 복잡하고 무질서한 것 같으나 사실은 규칙이 있는 것 같군. 거청천이 방금 이곳은 거씨 가문 사람들 들어올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어쩌면 이 미궁의 어떤 비밀을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 상황은 네게 너무나 불리하다.”

    화령자가 말해주지 않아도 심협도 지금 상황에서는 멀리 도망칠수록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발아래로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또 한 자루 비검이 나타났다.

    두 검이 합쳐지자 둔속은 더 빨라졌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검을 더 꺼낼 수도 있었지만, 통로가 넓지 않고 구불구불해 그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두 자루 정도였다.

    도망치면서도 그는 서둘러 대책을 생각했다.

    미궁의 비밀은 바로 알아낼 수 없으니 우선은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 도망치는 것은 방법은 아니다. 거청천을 완전히 따돌릴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보탑을 나가서는 안 될 것 같다. 밖의 광장은 끝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진법과 금제로 만든 환상이었을 뿐이야. 그리 가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과 똑같아. 게다가 지금은 돌아가는 길도 모르니…….’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차라리 통로 깊은 곳으로 가서 천언궁 3층으로 올라가는 것뿐이었다.

    결심한 심협은 통로 깊은 곳으로 향했고,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법력으로 분신을 만들어 그 안으로 보냈다.

    그는 거청천이 어떻게 이 변화무쌍한 미궁을 꿰뚫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거청천에게 그의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이 있는 게 분명하니 이렇게라도 거청천의 추격을 방해해볼 생각이었다.

    “심협, 이런 방법으로는 쓸모가 없어.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거청천은 법력의 흔적을 쫓아서 널 추격하고 있는 게 아닐 거다.”

    “그럼 무슨 수로 날 찾아내는 거지?”

    “추적술은 수천수만 가지다. 나도 대강만 알고 있는데, 만약 내 추측이 맞는다면 그자는 아마 냄새 같은 걸로 네 위치를 파악하고 있을 거다.”

    “냄새? 냄새로 추적하는 건 하급 수사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지. 고급 수사는 자신의 체취를 차단하는 방법이 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협은 이전에 만수진인과 함께 방금각 사람들에게서 도망치던 때가 떠올랐다. 방금각의 이표라는 자는 회돈수를 사용하여 그와 만수진인을 쫓아왔다.

    “수단에는 높고 낮음의 구분이 없다. 목적만 달성하면 그게 바로 좋은 수단인 셈이지. 게다가 아무리 고명한 수단이라도 진짜로 모든 냄새를 차단할 수는 없어. 삼계의 어떤 기묘한 생물들은 냄새에 매우 예민한데, 그 능력은 네 상상을 초월하여 아주 미세한 냄새도 맡을 수 있지. 게다가 이 미궁은 협소하여 냄새로 적을 찾기에 안성맞춤이야.”

    “그래, 그거였어!”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표정이 변해 더 빨리 날기 시작했다.

    뒤쪽 통로에 남겨놓은 천마안을 통해 거청천이 다가오는 것을 다시 한번 감지했는데, 그 속도가 매우 빨라서 금방이라도 따라잡을 것 같았다.

    앞에 또 사거리가 나왔다.

    심협의 눈이 반짝이더니 옷을 벗어서 법력으로 만든 분신에게 그 옷을 들고 다른 방향으로 가게 했다.

    “잠깐!”

    화령자가 갑자기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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