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09화 (909/1,214)
  • 909화. 무족(巫族)의 금법(禁法)

    “서원마봉은 살아 있는 생물의 원기를 흡수하여 사용자에게 제공하는군요. 보타산의 치료 비술과 매우 비슷해서 좋아요. 고마워요, 오라버니.”

    섭채주가 기뻐하며 말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나. 다만, 이 마봉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안의 마기가 몸에 침투하니까 이 반룡벽을 갖고 있어. 마기의 침투를 막아줄 거야.”

    심협은 진원자에게서 받은 반룡벽을 섭채주에게 건넸다. 현재 그는 순양의 힘이 충만해 마기의 발작을 능히 막을 수 있었기에 반룡벽이 더는 필요가 없었다.

    섭채주는 사양하지 않고 반룡벽을 몸에 달았다.

    두 사람은 바로 은빛 문으로 다가갔으나 섣불리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제 어쩌죠? 천언궁 2층으로 가볼까요?”

    섭채주가 심협을 돌아보며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심협은 말없이 주위를 둘러봤다.

    이미 한참이 지났음에도 천기성 사람들이 나타날 기미가 전혀 없었다. 이곳은 천기성의 비경이 아니란 말인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 가보자. 저 문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고…….”

    섭채주는 이의가 없었기에 함께 은빛 문으로 들어갔다.

    눈앞이 밝아지더니 이내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 주위는 하얀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녔고, 끝이 보이지 않아서 마치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앞에는 커다란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보탑(寶塔) 같았다.

    이 탑은 청회색이었고, 하늘까지 솟구쳐 있었다. 아래에서 봤을 때 5층이었는데, 올라갈수록 얇아졌다. 5층의 끝은 머리를 들고 봐야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높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해 그 앞에 서려니 마치 자신이 개미처럼 보잘것없어 보였다.

    이곳에는 보탑과 광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가 천언궁 2층인가?”

    섭채주가 앞의 탑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화령자,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어?”

    심협도 의아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전음으로 화령자에게 물었다.

    “예부터 지금까지 온갖 비경이 난무하는데 내가 어떻게 일일이 다 알겠어? 다만, 내 생각에 이곳은 이상해도 매우 이상하니 다들 조심하는 게 좋겠어.”

    화령자도 주위를 둘러보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천기성 안이 아니라 어떤 비경 같아.”

    “그럼 거청천도 여기로 왔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 채주, 혹시 모르니 우선 소요경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좋겠어.”

    “알겠어요. 조심해요, 오라버니.”

    심협이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말하자 섭채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소요경을 발동하여 섭채주를 안에 넣고는 탑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금세 탑의 문 앞에 도착했다.

    보탑 입구의 문은 50여 장에 이르렀고, 굳게 닫혀 있었다. 문에 하얀 빛이 감도는 걸 봐서는 어떤 금제가 있는 것 같았다.

    심협은 금빛을 발사해 가볍게 밀어봤다.

    쿠르릉!

    대문이 소리와 함께 열리면서 어두운 통로가 나타났다.

    “이렇게 쉽게 열리다니.”

    심협은 문이 너무도 쉽게 열리자 오히려 당황했다.

    통로는 칠흑 같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신식으로 살펴보려 했으나, 좀 전의 대전과 마찬가지로 이 공간에도 금제의 힘이 충만했다. 심지어 그 힘은 대전보다 몇 배나 더 강해서 신식이 전혀 나아가지 못했다.

    심협은 섣불리 들어가지 않고 통영지술로 거울 요괴를 소환하려 했다. 이곳의 위험은 전혀 헤아릴 수가 없었기에 가능한 모든 힘을 사용해야 했다. 거울 요괴는 이미 진선기에 도달했고 신통도 기묘하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허나 아무리 통령지술을 시전해도 거울 요괴의 존재를 느낄 수가 없었다. 강력한 금제가 이곳과 외부의 연결을 차단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한층 신중해진 심협은 현황일기곤을 꺼내고 천두금준으로 몸을 보호한 뒤에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의 어두운 통로는 너무도 어두워 그의 안력으로도 겨우 10여 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위의 어둠이 빛을 흡수하고 있는지 몸을 보호하는 영광도 비치지 않았다.

    “이건 유암명무금법(幽暗溟巫禁法)?”

    화령자가 깜짝 놀랐다.

    “유암명무금법…… 무족과 관련 있는 건가?”

    “맞아. 이런 곳에 왜 무족의 금제가 있는 거지?”

    화령자가 대답하고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심협은 천두금준의 힘을 몇 배로 늘려 더욱 경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한참을 갔을 때, 화령자가 갑자기 외쳤다.

    “멈춰!”

    “왜?”

    “왼쪽에 있는 벽이 이상해. 어서 날 꺼내줘. 어서!”

    심협은 소요경에서 명화연로를 꺼낸 후 화령자가 말한 곳을 바라봤다.

    왼쪽의 벽에 문로가 어렴풋이 보였는데, 무족의 문자 같았다. 그는 무족의 문자를 알지 못했기에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화령자는 명화연로에서 나오더니 그 문자 앞에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문자는 무슨 뜻이지? 알아볼 수 있겠어?”

    “이건 그냥 문자가 아니라 무족의 주문이다. 아무래도 벽에 무언가 감춰져 있는 것 같군.”

    화령자가 입에서 물건을 꺼냈는데, 바로 연신 대진의 검은색 비석이었다.

    그가 손발을 움직이며 마치 미개한 종족의 하늘을 숭배하는 듯한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결인하는 법결은 심협이 봤던 어떤 법결과도 달랐다.

    검은 비석에서 검은 빛이 떠오르더니 끊임없이 벽의 문자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몇 개의 무족 주문이 검은 빛을 흡수하더니 번득이기 시작했다.

    화령자가 손을 그 문자에 대자 아래 벽이 찰칵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면서 반 척 깊이의 홈이 드러났다. 이 홈에는 검은색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두루마리였다.

    “역시 뭔가 있었군.”

    화령자는 두루마리를 꺼내 활짝 펼치더니 일순 멍해졌다.

    심협이 가서 살펴보니 두루마리 안에 담긴 것은 신공에 관한 기록도 아니었고, 현묘한 진도(陣圖)도 아니었다. 그저 어지럽게 교차한 검은 선이었다. 매우 난잡하고 규칙적이지 않아서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선들.

    이 선의 어떤 부분은 문자로 각주를 남겼는데, 전부 무족의 문자라 심협은 알아보지 못했다.

    두루마리의 마지막에는 어떤 표시 같은 매우 복잡한 그림이 있었다.

    “넌 무족 문자를 알잖아. 이게 무슨 그림 같아?”

    “나도 여기 있는 문자만 알아볼 수 있는데 연기전(煉器殿), 금석각(金石閣), 영수원(靈獸圓) 등등이 쓰여 있다. 아무래도 어느 큰 동부의 지도 같은데, 그림이 너무 난잡해. 가짜일지도 몰라. 그리고 마지막 이 그림은 나도 모르겠어.”

    화령자가 매우 실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벽 안에 무족의 진법이나 전적 같은 것이 숨겨져 있을 줄 알았던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 나오자 바로 흥미를 잃었다.

    “여기 무족 문자에는 표시를 해놨어.”

    화령자는 두루마리를 심협에게 던지고는 검은색 비석을 챙겨 명화연로로 돌아갔다.

    심협은 두루마리에 적힌 낙서를 자세히 살폈다. 얼핏 보면 지도 같은데 자세히 보면 또 전혀 아닌 것 같았다. 길은 여러 방향으로 나누어져 있고, 수많은 선이 서로 겹쳐 있거나 혹은 충돌했다. 이런 지형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고개를 흔들고는 두루마리와 명화연로를 챙겨 넣은 뒤 다시 나아갔다.

    통로는 매우 길었지만, 감히 서두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각 정도를 걸었지만, 다행히 중간에 어떤 변고도 없었다.

    칠흑 같은 통로를 지나자 앞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기다란 청석(靑石) 통로가 앞에 나타났다. 통로 옆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몇 줄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천언궁 2층에 도달한 자여, 실력이 비상하고 용기가 가상하도다. 전방은 천선미궁(天璇迷宮)이다. 위험하지만 기연이 존재한다.”

    심협은 비석의 문자를 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이 천언궁 2층임은 확실하지만, 영문도 모르고 이렇게 휘말려서 시련을 겪어야 한다니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전방의 청석 통로를 바라봤다. 특별한 점은 없었다. 양쪽 벽에는 이상한 문양이 많이 새겨져 있었다. 산, 바위, 물, 사람, 새, 짐승 등등. 어떤 것은 정묘했고 어떤 것은 졸렬해서 그린 사람의 의도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청석 통로도 금제가 가득해 여전히 신식으로 살피기란 불가능했다.

    어차피 이렇게까지 됐으니 심협도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나아가려 했다. 한데 그때, 비석 뒷면에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벽에 붙어 있는 쪽의 비석은 지금의 각도에서는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벽에 찰싹 붙어야만 보였다. 그쪽에 확실히 어떤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필적으로 보아 앞에서 본 것과 동일 인물이 적은 글씨인 듯했다.

    “천선미궁에서 벽을 부수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 아니, 그런 말을 이런 곳에 써놓으면 어쩌자는 거지?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심협은 비석을 세운 사람의 어이없는 행태에 혀를 차며 계속해서 비석을 자세히 살펴봤지만, 더는 숨겨진 내용이 없었다.

    글자를 모두 확인한 뒤에야 심협은 청석 통로를 따라 걸었고, 한참 후에  사거리가 나왔다.

    거의 똑같이 생긴 긴 통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불구불했다.

    그는 아까 비석에 새겨져 있던 내용이 생각나자 잠시 생각하더니 정면의 통로를 따라 계속 전진했다.

    얼마 후, 철컥 하는 기계음이 뒤에서 들려오자 심협은 바로 뒤로 날아가 순식간에 아까 그 사거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사거리는 이제 보이지 않았고, 길은 세 갈래로 바뀌어 있었다. 출구로 향하는 길과 왼쪽의 두 갈래 청석 통로는 사라졌고, 왼쪽 앞으로 통하는 통로가 하나 더 생겼다.

    “지형이 바뀌는 미궁이라…….”

    심협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다시 나아갔다.

    다시 두 갈래 길이 앞에 나타났는데, 좌우로 뻗은 길 중 그는 왼쪽 길로 향했다.

    이 천선미궁은 매우 복잡하여 어느 정도 가면 두 개 혹은 세 개의 갈림길이 나왔다. 게다가 길목을 지날 때마다 그곳의 지형은 금세 바뀌었다.

    처음에는 길을 기억해보려 했지만, 갈수록 복잡해져 더는 신경 쓰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그때,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심협은 눈빛이 흔들렸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는 푸른색 언갑이 있었다. 대전에서 본 청사 언갑과 매우 비슷했는데, 팔뚝이 뱀처럼 굽어 있었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곡도가 아니라 노란빛이 감도는 두 자루의 뱀 모양 장도였다. 검날에는 핏빛 문로가 있는 것이 범상치 않았다.

    푸른색 언갑은 심협을 발견하자 바로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미궁의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심협은 언갑과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기에 바로 발천난봉을 시전하여 두 합 만에 푸른색 언갑을 박살냈다.

    두 자루의 뱀 모양 장도는 어떤 재질인지 현황일기곤의 일격에도 부러지지 않고 그저 조금 휠 뿐이었다.

    “그 검에 적지 않은 현귀판(玄龜板)과 혈린석(血鱗石)이 들어 있군. 내게 넘겨. 그럼 현귀판과 혈린석을 추출해줄게. 너한테 많이 필요한데 양이 좀 적네.”

    화령자의 목소리에 심협은 내심 기뻐했다. 현귀판은 말할 것도 없고 혈린석은 혈백원번을 만드는 데 귀중한 재료였다. 천기성에서 찾지 못한 것을 여기서 우연히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소매를 휘둘러 검을 거두고 명화연로로 넣은 뒤 심협은 다시 전진했다.

    푸른색 언갑을 마주친 것이 발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시로 한두 개의 언갑이 나타났다. 이전에 봤던 뱀 모양 언갑도 있었고, 다른 언갑도 있었다.

    언갑들은 모두 그리 강하지 않아서 곤법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고, 그 와중에 뱀 모양 장검을 몇 개 모아서 혈백원번을 만들 정도가 되었다.

    다른 언갑에서도 진귀한 재료를 얻게 돼서 수확이 매우 많았다.

    “이 언갑들이 비석이 말한 위험과 기연인가?”

    심협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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