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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08화 (908/1,214)
  • 908화. 구슬을 거두다

    대검에서 타오르는 듯한 붉은 빛이 삽시간에 열 배나 밝아졌고, 광휘(光輝)가 만 장까지 퍼져 나갔다. 하늘과 땅을 벨 듯한 이 광포한 검은 언뜻 느려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빠르게 날아가 푸른색 검홍과 충돌했다.

    꽈르릉!

    천뇌가 작렬하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모두가 가슴이 철렁했다. 광풍이 파도처럼 대전 전체를 휩쓸었고, 붉은색 검기와 푸른색 검광이 사방으로 튀면서 바닥에는 균열들이 생겨났다.

    푸른색 검홍이 튕겨 날아가더니 바로 사라졌고, 푸른색 언갑의 모습이 드러났다. 수중의 푸른색 대검은 순양검식 구검합일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균열이 가득했다.

    “내 담로검(湛盧劍)을 부수다니, 검식 신통이 제법이구나. 자극한옥순(紫極寒玉盾)까지 부순다면 통과를 인정해주겠다.”

    푸른색 언갑이 담담하게 말하고는 수중의 보라색 방패를 앞으로 들었다.

    방패에서 보랏빛이 빛나더니 대량의 보라색 빙염이 나타났다.

    “자극빙해(紫極氷海)!”

    푸른색 언갑이 양손을 결인해 앞으로 밀었다.

    보라색 빙염이 거대한 보라색 불꽃 기둥으로 변하더니 일제히 심협을 향해 떨어졌다.

    심협은 굳은 얼굴로 양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또 한 자루의 순양검이 그의 몸 안에서 날아갔다. 바로 64도 금제가 있는 순양검이었다.

    붉은색 대검이 순식간에 다시 아홉 자루의 비검으로 변하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푸른색 언갑의 몸 곳곳으로 떨어졌다.

    “금광검진(金光劍陣)! 가라!”

    심협이 짧게 외치자 열 자루의 비검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작은 태양 같은 열 개의 붉은색 광륜(光輪)으로 변했다.

    눈부신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자 푸른색 언갑은 시야가 가려져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더욱이 이 금색 검광에는 신혼을 교란하는 작용도 있어서 오감을 혼란시킴으로써 사물을 판별할 수 없게 했다. 이에 심협을 향해 날아오던 보라색 불꽃 기둥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그의 왼쪽 먼 곳으로 떨어졌다.

    심협은 몸에서 금빛을 강하게 뿜어내 완전히 곤경에서 빠져나온 뒤 바로 금색 광륜 뒤로 날아가 결인했다.

    광륜 속의 비검이 강하게 떨리더니 빼곡한 금빛 검이 뿜어져 나와 허공을 가르며 보라색 불꽃 기둥에 떨어졌다.

    콰르릉!

    보라색 빙염의 강력한 한기에 충돌하자 금빛 검은 바로 보라색 얼음으로 얼어붙었다.

    하지만 이 빛의 검은 그 안에 담긴 힘이 조비극의 음파와는 달랐기에 얼어붙은 상태로도 여전히 맹렬하게 날아갔다.

    폭우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보라색 불꽃 기둥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 개의 구멍이 뚫렸으며, 보라색 빙염은 완전히 부서져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푸른색 언갑이 들고 있던 자극한옥순의 빛도 빙염과 함께 사라졌다.

    이를 본 언갑은 표정이 변하더니 입에서 푸른 빛을 뿜어 자극한옥순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사라지려던 방패의 보랏빛이 바로 안정을 되찾았고, 사방으로 흩어졌던 보라색 빙염도 다시 뭉쳐져 보라색 불꽃의 거대한 손으로 변했다. 그리고 영각(靈覺)으로 방향을 판별하여 허공에 있는 금빛의 광륜을 잡으려 들었다.

    이에 심협이 그 광륜 뒤에 나타나더니 결인했다.

    쾅!

    광륜에서 굉음이 울리더니 수많은 금빛 검이 폭우처럼 쏟아져서 거대한 손을 공격해 벌집처럼 구멍을 숭숭 뚫었고, 이 손은 부서져 사라졌다.

    심협이 결인하자 옆에 있는 세 번째 광륜이 발동되면서 수많은 빛의 검이 떨어졌는데, 이번 목표는 푸른색 언갑이었다.

    언갑은 황급히 보라색 방패로 머리 위를 막고는 보랏빛을 떨어뜨려 광막으로 온몸을 보호했다.

    수많은 금빛 검이 폭우처럼 보라색 광막에 떨어졌다.

    콰콰쾅! 쾅!

    보라색 광막은 강하게 흔들렸고, 빠르게 희박해져 두세 호흡 후에는 완전히 부서졌다.

    푸른색 언갑이 작게 외치자 머리 위의 자극한옥순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위쪽 허공이 흔들리더니 심협이 나타나 암홍색 대인, 번천인을 소환했다. 암홍색 빛이 번쩍이자 번천인은 순식간에 집채만 해져서 떨어졌다.

    꾸르릉!

    자극한옥순은 굉음과 함께 부서졌고, 푸른색 언갑을 보호하던 광막도 함께 부서졌다. 번천인은 운석처럼 계속해서 그의 몸에 떨어졌다.

    푸른색 언갑은 반항할 힘조차 없던 터라 번천인에 강하게 짓눌렸다. 하지만 그 강력한 힘에도 몸 절반만 부서졌을 뿐,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주위의 자극빙염(紫極氷焰)이 흩어져 날아가 대전 곳곳에 떨어지자 극한의 기운이 대전 전체를 뒤덮었고, 바닥과 벽에 대량의 보라색 얼음 결정이 생겼다.

    심협이 번천인으로 공격을 이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좋다. 네가 이겼다. 다음 층으로 가라.”

    푸른색 언갑이 어렵게 말을 뱉고는 입에서 어딘가를 향해 은빛을 쐈다. 그러자 갑자기 허공이 갈라지더니 은색 빛의 문이 생겨났다.

    그 말을 들은 심협은 번천인을 거두고 긴장을 조금 풀었다.

    이내 푸른색 언갑의 눈에 남아 있던 마지막 빛마저 사라졌고, 부서진 몸도 모든 영광이 사라져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극한옥순의 영광도 완전히 사라지더니 갑자기 수많은 보라색 가루로 변하였고, 엄지손가락만 한 보라색 정석이 우르르 굴러 떨어졌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자극빙염이 흔들리더니 갑자기 보라색 정석을 향해 빠르게 모여들었다.

    몇 호흡 뒤, 달걀만큼 커진 자색빙주(紫色氷珠)의 주위로 보라색 빙염이 일렁였는데, 그 모습은 퍽 매혹적이었다.

    대전에 있던 모든 보라색 얼음 결정이 녹으면서 생긴 보라색 한기도 빙주로 모여들어 스며들었다.

    대전 가득하던 한기가 마치 환상처럼 전부 사라졌다.

    심협은 이 상황에 적잖이 놀랐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가 결인하여 금광검진을 해제하자 다시 열 자루의 비검으로 변해 체내로 돌아갔다.

    보라색 얼음 결정이 사라지자 조비극도 다시 자유를 얻었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건곤대 안으로 들어가 치료했다.

    심협도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일순 비틀거렸다.

    순양금광검진은 강력한 만큼 법력 소모가 상당한데, 그 상황에서 번천인까지 썼으니 법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오라버니!”

    옥정병에서 나오던 섭채주는 심협을 보고는 다급히 주문을 외워 보타산의 회복 신통, 보도중생을 시전했다.

    초록 빛이 심협의 몸으로 들어가자 초록색 광환이 주위를 감쌌고, 빠르게 반짝였다. 한 번 반짝일 때마다 주위의 천지영기가 빠르게 모여들어 법력으로 변하여 심협의 체내로 흘러 들어갔다.

    초록색 광환은 아홉 번을 반짝인 후 사라졌고, 심협의 법력은 절반쯤 회복되었다.

    “이제 괜찮아. 많이 회복됐어. 다행히 옥정병을 들고 왔구나.”

    안색이 돌아온 심협이 옆에 있는 병을 바라봤다.

    “스승님께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가져가라고 하셨어요. 다만, 병 안의 금제는 제가 연화할 수 없어서 위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고 그냥 몸을 피하는 용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어요.”

    섭채주가 결인하자 옥정병이 빠르게 줄어들어 그녀의 수중으로 돌아갔다.

    “그 정도면 충분해. 앞으로도 위험해지면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바로 병으로 숨어. 나도 피할 방법이 있으니까.”

    심협이 일어나면서 말하자 섭채주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천천히 푸른색 언갑 옆으로 다가가 한참을 살폈다.

    “이 언갑은 정말 대단했어요. 전투 수단이나 영지 모두 평범한 수사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던 것 같아요.”

    섭채주가 말하는 동안 심협은 몸을 숙이고 언갑의 부서진 조각을 들고 살폈다. 그 안에는 특수한 언문이 새겨져 있었다. 바로 귀언 부문이었다.

    “역시 귀언이었군.”

    “귀언이 뭐예요?”

    심협이 귀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자 섭채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귀언 술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심협은 섭채주를 위로하고는 조용히 은빛 문을 바라봤다.

    이 언갑의 말대로라면 이곳은 천언궁이라는 곳으로, 천기성의 비경인 듯하다. 그렇다면 천기성 사람들이 금방 이곳을 찾아낼 테니 큰 걱정은 없었다.

    나중에 천천히 연구할 목적으로 심협은 푸른색 언갑을 거두더니, 관심있는 눈길로 자색빙주를 바라봤다.

    아까 그의 몸에 침투했던 자극한기는 이미 진창해 신통에 흡수된 후였다. 놀라운 위력의 한기는 진창해 신통을 다시 정진하게 해주어 다음 경지까지 이제 반 걸음만 남겨놓게 됐다. 그러니 만약 이 자색빙주를 연화할 방법만 찾아낸다면 그의 진창해 신통은 제5층 대원만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다만 자극빙염은 위력이 너무 강해 닿는 모든 법력과 물체를 얼려버릴 정도였으니 이것을 거두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심협이 소매에서 푸른 빛을 쏴서 감싸자 자색빙주에서 보랏빛이 반짝였다. 심협이 쏜 푸른 빛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심협은 이런 상황을 예상했기에 얼른 푸른 빛과의 연결을 끊었다.

    “역시 쉽지 않군.”

    심협은 조용히 중얼거린 뒤 또 몇 가지 방법으로 시도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심지어 물건을 흡수하는 법보는 물론 그 안의 금제도 모두 얼어붙었다.

    “오라버니, 이 구슬을 거두려고요? 이 빙주는 범상치 않으니 제 옥정병으로 시도해보죠.”

    섭채주의 제안에 심협은 고개를 저었다.

    “옥정병은 보타산의 지보인 만큼 이 구슬을 거두는 건 문제없을 거야. 하지만 그리 되면 네가 숨어 들어갈 수 없게 되겠지.”

    한데 그때, 심협은 불쑥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그 신비한 석갑이었다.

    이 석갑은 홍련업화나 태양진화 같은 위험천만한 물건도 거둘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그 내부 구조가 어떠한지조차 알아내지 못할 정도로 신비했다.

    ‘이 석갑이면 가능할지도 몰라.’

    그가 법력을 주입하자 석감에서 흡입력이 나와 자색빙주를 감쌌다.

    자색빙주의 빙염이 석갑을 얼릴 것처럼 몇 번 반짝였지만, 금방 사라졌다.

    “정말 되겠는데?”

    심협이 기뻐하며 석갑의 흡입력을 강화했다.

    이내 자색빙주가 석갑 안으로 들어가더니 얌전히 있었다. 자극한기도 석갑에게는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석갑은 심협의 예상보다도 신묘했다.

    심협은 석갑을 소요경에 넣은 후, 섭채주가 얼린 은랑 언갑도 꺼내서 거뒀다.

    섭채주도 구천선릉과 반룡봉을 다시 챙겼다. 구천선릉은 문제없었지만, 반룡봉은 이미 두 동강이 났고, 그 안의 금제도 절반이나 부서져서 더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단봉이 부서져 버렸군. 나한테도 단봉이 있는데 네게 맞을지 모르겠구나.”

    심협은 검은색 단봉, 서원마봉을 꺼냈다.

    그는 이 법보를 얻은 이후로 거의 사용한 적이 없었고, 섭채주가 단봉 법보를 사용하는 데 능숙하니 그녀에게 더 유용할 것 같았다.

    “마족의 법보네요?”

    섭채주는 마봉의 기운을 감지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족도 본래는 삼계의 생령 중 하나이니 선입견을 가질 건 없어. 더욱이 마족의 법보는 우리 선도의 법보보다 더 예리하지. 특히 이 마봉의 신통은 더욱 현묘하니 한번 시험해보고 마음에 안 든다면 다른 걸 줄게.”

    심협이 웃으며 말하자 섭채주는 그제야 서원마봉을 받고 법력을 주입했다.

    서원마봉에서 갑자기 검은 빛이 솟아오르더니 이미 연화를 마친 것처럼 섭채주 주위를 춤을 추듯이 빙글빙글 돌았다.

    섭채주는 연보결을 운공해 서원마봉에 있는 무상(無上) 신통을 감지하고는 얼굴이 활짝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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